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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이탈주민”의 남한 정착기~~~```
안녕 하세요..?
맑게 심성기입니다...
2012년 4월~~~
경기도에서는 경기도에 거주하는 “북한 이탈주민(8,000여명)/전국(28,000여명)”의 남한내 원만한 정착을 돕기 위하여 “남한가족”과 가족간 결연사업을 시작 하였으며, 관심을 갖고 있던 일이라 얼른 신청을 하였더니 덜커덕 선정이 되어 지난 1년여 기간동안 우리 가족의 또다른 가족인 “북한가족”의 남한내 정착을 위하여 많은 시간을 함께 하였습니다.
다행 스럽게도 2013년 2월 현재 우리의 “북한가족”은 성공적인 케이스로 정착하고 있으므로 지난 2012년 12월에는 “북한 이탈주민 결연가족 정착 성공기”세미나에 참석하여 우리의 “북한가족”의 남한 정착과정을 많은 “북한 이탈주민”들에게 소개한 바가 있습니다.
더불어 또 다른 “북한 이탈가족”과의 결연을 한 바가 있습니다.
오늘은, 경기도 김포에 정착하고 대구로 이사가기로 확정된 “북한가족”의 정착내용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북한가족”은 53세의 “모친”과 24세의 “아들” 그리고 19세의 “딸”로 구성되어져 있었습니다. “딸”은 정서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예민한 시기 임에도 불구하고 괄괄한 성격탓인지 무난하게 중학교에 배치받아 뛰어난 적응력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여졌습니다.
다만,19세인데 중학교에 배정된 것은 북한의 학제를 인정하지 않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나이로 인한 개인적인 어려움은 다소 있었음을 대화과정에서 알 수 는 있었습니다.
“딸”의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들어보면~~`학교배정받아 첫 등교하는날...
선생님왈 :“얘들아...이번에 우리반에 새로운 학생이 전학왔다..”
“헌데 은희는 북한에서 왔어...”
“너희들이 많이 도와주길 바란다..”라고 하였답니다.
은희왈 :“안녕..?” “나 은희야..” “북한에서 전학왔는데 너희들이 도와주면 좋겠어..”
라고 본인이 북한에서 왔음을 공개적으로 이야기 하면서 학교적응이 쉬워 졌다고 합니다.
사실 많은 학생들이 처음 북한에서 온 것을 숨기는 것에서부터 어려움과 맞닥트린다고 하는 것을 보면 여자 이지만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헌데, 문제는 “아들”에게 있었습니다.
가정을 책임져야하는 “가장”으로서~~`
이곳 남한에서 공부를 하느냐..?
직업교육을 받은후 직장에 취직을 하느냐..?
를 놓고 수 없이 많은 날을 저와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공부에 대한 열망이 대단히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만, “모친”이 건강이 안좋은 관계로 본인이 하고싶은 부분을 마음껏 할 수 없는 현실적인 어려움에 혼란과 방황의 시간을 갖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어느날 울리는 전화소리~~~
나왈 :“예, 심성기입니다..”
아들왈 :“큰 아버지, 저 광명이입니다..”
나왈 :“전화번화 바꿨니..?”
아들왈 :“예...”
나왈 ;“왜..? 무슨일 있니..?”
아들왈 :“밤에 시간좀 있으세요..?”
나왈 ;“그래..시간과 장소를 정해주면 그리 갈게..”
이렇게 하여 아들과의 첫 번째 면담을 “결연가족”맺은후 15일째 되는 날 하게 되었습니다.
식당에서 만난 아들은 너무도 심각했습니다.
아들왈 :“큰 아버지..저 괜히 남한에 왔나봐요..”
나왈 :“무슨 소리야.,절대 그렇지 않아..”
“처음이라 그렇지..우리가 힘을 합하면 금방 자리잡을 수 있을테니 너무 걱정하지마..”
라고 하는 나의 마음도 무겁기는 마찬가지 였다.
“북한 이탈주민”들 모두가 갖는~~~
첫 번째 문제는 영어가 전혀 안된다는 것이다.
영어화된 어휘가 수 없이 우리사회에서는 말을 알아듣지를 못하니 이보다 더 갑갑한 경우가 있을까요..?
두 번째는 북한식 말투입니다.
“북한 이탈주민”들은 단군의 자손은 동포로서 동등한 대접을 생각하고 남한에 왔건만 남한사람들의 인식은 “연변사람”정도로 인식하고 무시하고 막대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세 번째는 컴퓨터를 전혀 못한다는 점입니다.
남한에서 기본적인 컴퓨터를 못하는 국민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분들은 한번도 컴퓨터를 접해본적이 없는 경우 역시 대부분입니다.
이러다보니~~~
“북한”에서보다도 더 많은 사회적 차별을 받는다고 스스로 생각하고는 이에 방어적 울타리를 더 강력하게, 더 높이 쌓으면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나왈 :“그래...근본적으로 생각해보자..”
아들왈 :“하고싶은 것을 해야할지..?” “무엇을 해야할지...?” “큰아버지가 정해 주세요..”
이게 무슨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 입니까..?
내가 무슨 능력으로, 내가 무슨 권한으로 24세 젊은 청년의 인생을 결정하여 이렇게 하거라 할 수 있단 말입니까..? 바로 이 시간에 하늘이 무너지는 “아들”의 아픔이 나의 가슴에 자리 잡았습니다. 그리고 다짐 했습니다. 그래 “함께 노력하자...”라고 말입니다.
나왈 :“내가 이야기를 할테니..그냥 듣기만 해봐..”
아들왈 :“예..큰아버지..”
나왈 :“우선는 컴퓨터를 배우자..” “나라에서 학원교육은 무료로 시켜주지..?”
아들왈 :“예..남한사람과 함께 배우는 것은 안되고, ”북한사람“들을 모아서 시켜줘요..”
그리고 “하나원에서 워드정도는 배웠어요..”한다.
나왈 :“내가 시청 담당 공무원과 경찰서 담당 경찰관에게 연락할테니 준비해..”
아들왈 :“하나원에서 교육학원은 각자가 알아서 시청과 경찰서에 신고하라고 했어요..”
나왈 :“그럼 내일부터 학원 알아보자..”
이렇게 해서 “아들”은 3개월간의 컴퓨터학원에서 기본적인 컴퓨터를 배웠습니다.
모자라는 부분은 나의 두딸이 시간 나는대로 우리집에서 또는 “북한가족‘집에서 추가교육을 3개월 내내 하였습니다.
“모친”의 건강이 좋지않아 경제활동이 안되므로~~~
하루속히 “아들”이 취업을 해야만 하는 상황인지라.
이 문제로 아마도 10번이상 둘이 만나 이야기 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리고 어느날 커피숍에서 결론을 냈습니다.
아들왈 :“대학가고 싶습니다..”
나왈 :“어느대학을 생각 하는데..”
아들왈 :“서울의 00대학을 말한다..”나왈 :“꼭 대학을 가고 싶다면 00기술대학을 가자..”
아들왈 :“그래도 남한에서는 대학이 중요 하다던데요..”
이런 우라질...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습니다.
남한생활 5개월에 이리도 남한사회에 물들다니...
나왈 ;“혹시 대학은 취업후 일정기간 지난후 생각해보면 안될까..?”
“아들”의 얼굴빛이 변한다.
아들왈 :“왜요..?”극히 도전적이다.
나왈 :“모친의 건강도 생각하고, 은희의 학교도 생각하고, 너의 장래도 생각해보면..”
“대학나와서 놀고먹는 애들 많다는 얘기 들었지..?”
“정말 심각하거든, 대학은 들어가서 졸업을 하지 않을려고들해...”
“왜..? 취직이 안되니까..”
“물론..취직하는 친구들은 하지,,하지만 네가 그 범주에 들기는 어려워 보이기도 하고..”
아들의 가슴 무너지는 소리가 작은 한숨을 통하여 나의 가슴에 또 다른 모습으로 견고하게 자리 잡았습니다. 너무도 미안 했습니다.
“청운의 꿈”을 안고 “중국”,“미얀마”를 거쳐 생사를 넘나들며 남한에 왔건만 “청운의 꿈”은커녕 하루하루 먹고 사는것도 쉽지 않으니 말입니다.
아들왈 :“큰아버지 생각이 정 그렇다면 해볼께요..”
나왈 :“고맙다,지금의 결정이 결코 후회되지 않도록 함께 노력하자..”
아들왈 ;“그러면 뭘 하죠..?”
나왈 :“북한에서 또는 학교졸업하면 하고 싶었던 일이 뭐야..?”
아들왈 :“자동차 회사에서 일하고 싶었는데..”한다.
나왈 :“너 혹시 자동차정비는 어떻게 생각하니..?”
아들왈 :“자동차 정비요..?” “제가 할 수 있을까요..?”
나왈 :“누구든지 배우면 할 수 있지..”
이러한 과정을 수차례 더 거쳐서 “자동차 정비”를 배우기로 했습니다.
지인왈 :“성기야,잘 지내지..?”
나왈 :“형님, 나 부탁이 있는데.. 만나서 얘기하고 싶은데..”
지인왈 :“주말에 집사람하고 놀러와..”
나왈 :“예..이번 주말에 갈께요..”한다.
나왈 ;“형님..다름이 아니라..내가 ”북한가족“하는거 아시죠..?”
지인왈 :“알지..신문에 다 났잖아..”
나왈 :“그집 아들이 자동차 정비를 하고싶어 하는데..”지인왈 ;“자동차 정비를...? 생각보다 힘들텐데..할 수 있을까..?”한다.
나왈 :“아직 젊으니까 한번 맛빼기로 배울 기회를 주고 싶은데..여기서..”
나의 말꼬리가 하염없이 죽어든다.
지인왈 :“여기서..?”
나왈 :“예..안되나요..? 안된다기 보다도 더 좋은 정비센터가 있는데 부담된다야..”
나왈 :“형...시작만 할 수 있게 해줘요..” “생각보다 아이가 괜찮아요..”
또한 여러차례 형님과의 대화를 통하여 “자동차 정비센터”에 취직을 하였습니다.
취직후 3개월여가 지난 요즈음~~~
이제는 부분적으로는 직접 정비를 하기도 하고, 고객과 직접 대면하면서 남한사회로부터 받았던 마음의 상처도 많이 치유되었으며, 특히 형님 부부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기술도 익히고, 인간관계도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는 “아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습니다.
그리고~~~~
지난 2월 16일(토)~~~
나왈 :“그래..광명이구나..뭐 좋은 일 이라도..”
아들왈 ;“큰아버지 내일 저녁먹게 시간 있으세요..”
나왈 :“아들이 시간내라면 무조건 내야지..” :“참, 모친은 어떠셔..?”
아들왈 :“병원은 다니는데 많이 좋지는 안으세요..”한다.
나왈 :“언제 만나나..?”
아들왈 :“큰아버지 내일(17일) 시청앞 00한정식에서요..”
나왈 :“그래..우리가족은 내가 연락할테니. 모친께 얘기드리고 함께나와..”
아들왈 :“예..큰아버지..”
그리고 2월 17일(일) 오후 7시~~~
나왈 :“애들아 빨리 준비하자,.늦겠다..”
딸들 :“아빠..잠깐이면 돼요..”
아내왈 :“나는 안 물어봐요..”
나왈 :“어른은 빼고..”
아내왈 :“그러기만 해봐요..”한다.
00한정식 문을 열고 들어서니 종업원이 반갑에 맞아준다.
종업원이 “북한 이탈주민”인 것이었다.
종업원왈 :“심성기선생님 되지죠..?”나왈 ;“예..맞기는 한데,,저를 아시나요..?”
종업원왈 :“00가족”이 모셔달라고 부탁 했어요..“한다.
나왈 ;“아..예..그러셨군요..”딸들 :“얘네들은 어디 있는거야..?:”
아내왈 ;“조용히들 하시지..”했다,
이때 방문이 열리면서~~`
모친왈 :“현솔이 아버지 여깁니다...”
나왈 ;“먼저 오셨네요..저희가 먼저와야 하는데..”
아내왈 :“그러게요..어머님 죄송합니다..”
아들과 딸왈 :“큰아버지..안녕 하세요..?”한다.
딸들왈 :“안녕 하세요..?” “얘들아 안녕..?”
나왈 :“들어가자...”
이렇게 하여 들어가 정중하게 서로간 인사하고, 지난 시간들을 안주삼아 소주한잔 하면서 이야기는 “화기애애”해진다.
아들왈 :“큰아버지..저희 대구로 이사가게 되었어요..”
나왈 :“무슨소리야..대구라니...이곳에서도 아직 적응이 덜 되었는데..”
“어머님...이게 무슨 소린지요..?”모친왈 :“예..맞습니다..대구로 이사가야 합니다..”
아내왈 :“안돼요..대구는 너무 멀어요..”
딸들왈 :“광명아, 은희야...왜그래...”한다.
자초지정은 이러 했습니다.
제가 소개시켜준 “자동차 정비센터”에서 나름 열심히 배우고 기술을 연마 했다고 합니다.
그러던중 “북한 이탈주민”가운데서 수년전에 남한에 정착하여 대구에서 “자동차 정비센터”를 규모있게 하는 분이 계시는데, 광명이를 이쁘게 보게되어 함께 일하자고 했답니다.
물론 조건도 지금 보다야 많이 좋다고 합니다.
또 한가지는 “모친”의 건강이 좋지 않은 관계로 대구로 가면 좀더 쾌적한 생활환경이 된다는 이야기 였습니다.
특별하게 반대할 이유가 없어 보였습니다.
또한 제가 무슨 권한으로 반대를 할 수 있겠습니까..?
다만,제가 보기에는 아직도 남한생활에 적응이 덜 되었다고 보여지는데 또 다른 도시인 대구로가서 적응 하자면 더 많은 시간과 더 많은 어려움이 있을것으로 생각되므로 조심스럽게 “안가면 안될까..?“를 얘기해보지만 확고하게 결심한 터라 더 이상 반대하지 못했습니다.
모친왈 :“현솔이 아버지의 고마움음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나왈 ;“뭘요,,제가 해드린 것이 뭐 있나요.”
아내왈 :“오히려 저희가 죄송스럽네요..”
아들왈 :“큰아버지..우리는 참으로 행복합니다..”
“이렇게 신경써주는 남한가족은 없었습니다..”
“저는 대구로 이사가도 큰아버지는 죽을때까지 큰아버지입니다..:”한다.
나왈 ;“그렇게 생각해주니 고맙고, 미안하다..”
아들왈 :“저와 동생은 결혼도 해야하고..그때도 큰아버지는 제곁에 계셔야 합니다..”
눈물이 핑돈다.
정말 해준 것이 없는데 저들은 이리도 고마워 하니, 가슴이 먹먹하다.
얼마나 사람의 정이 그리웠으며, 이리 작은 일에도 이렇게 많이 고마워 할까..?
그래 이 가족의 마음을 주는대로 받아 들이자..라고 되뇌입니다..
나의 눈물로 칙칙해진 분위기를 바꾸기 위하여
나왈 ;“은희야..너 영어마을 2번 갔다왔다면서..”
은희왈 :“예...영어 한번 해볼까요..?”
나왈 :“그래 좋지..”
현솔왈 :“아빠,,얘 영어 무지잘해요,,”한다.
은희왈 :“영어로 많은 이야기를 한다,.”그래 잘한다,
다시 나의 눈물의 주책없이 또 흐른다.
3살어린 동생들과 학교생활 하면서 얼마나 마음고생 많았을까..?를 생각하니...
나왈 :“그래,,우리 은희 장하다...”
그리고 가만히 안아준다,..그리고 속삭인다.
나왈 :“은희야,,,.고맙다...”
은희왈 :“큰아버지 고맙습니다..”
순간 방안은 눈물바다가 된다.
이렇게 지난 10개월을 되새기며 울다가, 웃다가를 수차례 반복한후 자리를 우리집으로 옮긴다. 이곳 김포를 떠나 대구로 가는데 따스한 차 한잔은 집에서 직접 대접하고 싶다는 아내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우리집~~~
나는 광명이와 은희를 서재로 데리고 간다.
서재에는 이런저런 책들이 3,000권정도 가즈런히 정리되어 있습니다.
물론 이 책들은 한권도 빼지않고 제 주머니에서 돈주고 샀으며, 한권도 빼지않고 모두 읽었으며, 읽은 순서대로 번호를 부여해 놓았습니다.
지난 2010년에는 “풍무동 자치센터 도서관” 개소식에는 1,000권을 기증하여 도서관이 개관할 수 있도록 하여 “김포시청”에서 감사패를 받은바도 있답니다.
저의 책에 관한 소신하나 “책은 반드시 사서봐라...”그리고 보관 했다고 “시간이 지난 다음에 다시 읽어라..” “새로운 의미로 내 가슴에 들어온다..”랍니다.
나왈 ;“얘들아...이 책들 가운데서 읽고싶은책, 갖고싶은책은 모두가져가라..”
광명왈 :“몇권이요..”
나왈 ;“갖고 가고 싶은대로,,,선물이야...”
은희왈 :“전집류 갖고가도 돼요..?”
나왈 :“당근이지...‘” “그럼 골라서 준비해놔..”
모친왈 :“안 주셔도 괜찮습니다..”
나왈 :“많이 아쉽고, 속상해서 그럽니다..”
아내가 준비한 “모과차” “대추차” 홍삼차“ ”녹차“ 등이 사람수에 맞게 각각 다른 찻잔에 얹혀 나온다,.이렇게 자상하게 신경쓰는 아내가 사랑스럽다.
모친왈 :“현솔이 어머니..죄송해서 어떻해요,,”
아내왈 :“별말씀을요...저희가 더 죄송하죠..”
아이들 모두왈 :“야,,너 뭐 마실래..?” “엄마 우리가 좋아 하는거 마셔도 되죠..?”
아내왈 :“어머님 먼저 정하신 다음에 하자...”
아이들 모두왈 :“예...”
하고는 자기들 끼리 킥킥대고 뭐가 좋은지 차 한잔씩 들고는 다른 방으로 향한다.
아이들 뒷모습을 바라 보는데 또 다시 흐르는 나의 눈물들~~~
아내왈 :“이 양반이 원래 이래요...”한다.
모친왈 :“저도 다 알지요...”
나왈 :“내가 뭘~~~”
이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앞으로의 계획부터 시작하여 아이들 결혼까지 두루두루 대화하고나니 에고 밤11시다...
모친왈 :“이제는 가야 겠네요..” “넘 늦었는데..”아내왈 :“저희가 댁까지 모셔다 드릴께요..”
나왈 :“좋아요...”
모친왈 :“버스가 있는데 뭐 그럽니까..? 괜찮습니다..”
아내왈 :“여보,,,준비해요,,,사람이 많으니 당신차로 가요,..”
나왈 :“예..마님...”
“모친”께서 가만히 웃으신다..
댁까지 모셔다 드리면서~~~
아이들 한명 한명을 꼭 안아준다.
그리고 속삭이듯이 말해준다.
“광명아..너는 반드시 유능한 자동차 정비사가 되어서 사장이 될거야..”
“그때까지 좀 힘들더라도 참고 견디자..”
“그리고 모친 잘 보살펴 드리고,,,”
“은희야..큰아버지는 네가 너무 대견스럽다..”
“어디에 살던지 나는 네 큰아버지이니 마음의 상처받지말고 지금처럼 꿋꿋하게 지내자.”
“사랑하는 내딸 은희...화이팅,,”
“아이가 더욱 안겨온다,,”
“정이 그리워,,,사랑이 그리워...”
이 두아이들의 몸과 마음에서는 봄을 재촉하는 개나리, 진달래 향기가 우리의 마음을 촉촉하게 적셨습니다.
“모친”을 비록한 “광명”이 “은희”의 앞날에 행복과 희망이 넘치길 기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추신 :또 다른 “북한 이탈주민” 결연가족인 “호림이 가족”을 위하여 2013년을 새롭게 시작해 봅니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좋은 일 하셨네요....대구로 가시는 분 들의 행복을 기원합니다....
감동 받았습니다. 저도 이만갑 프로그램을 비록 기타 비슷한 토큐멘터리등을 거의 빼놓지 않고 보아 왔었는데 현실을 핑계로 뭔가를 해보고싶은마음만 가득하지 실제로 실천에 옮기지 못하는 제가 늘 원망스러웠었습니다. 호림이가족에게도 큰 사랑과 희망을 전해주시리라 믿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글쓴분도 정말 대단하시네요. 두 가족 모두에게 행운이 가득하길 바랍니다.
자유평화통일로 다가서는 발걸음.............존경스럽습니다. 형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