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은 2023. 6. 17. 토요일.
하늘빛깔이 맑다.
칠십년 전(1950년대 초)....
종가집 며느리였던 내 어머니를 떠올린다.
내 할아버지(어머니한테는 시아버지)는 대전에서 사셨다.
시골에서 집안 행사가 있을 때에나 할아버지는 시골집으로 오셨다.
할아버지가 오신다는 기별을 받으면 산골 아래에서 사는 최씨네 남자들은 십리가 더 되는 읍내 기차역으로 마중을 나갔다.
종조부(작은할아버지), 숙부(작은아버지), 오촌당숙 두서넛, 나이가 아주 어린 나와 쌍둥이 동생 등이 신작로를 따라서 기차 역전으로 걸어서 나갔다.
할아버지가 오시면 어머니는 안사랑방에 장작을 넣어 군불을 땠다.
할아버지는 시조를 좋아하기에, 할아버지가 시골에서 며칠 머무시면 근동의 시조꾼들이 꾸역꾸역 몰려 들었다.
갓 쓰고, 도포 입은 영감들의 '청산리 벽계수야.....' 하는 시조 가락이 크게, 구성지게, 끊임없이 이어졌다.
이처럼 내 어머니는 시아버지(내 할아버지)를 극진히 잘 모셨으며, 내 할아버지도 큰며느리인 내 어머니를 잘 대했다고 여긴다. 조부가 대전으로 떠나시는 날까지.
지금은 2023년.
어머니의 아들인 나는 지금 서울 송파구 잠실에서 산다.
내 큰아들네도 잠실지역 이웃 아파트 단지에서 산다.
설 추석 제사, 나와 아내의 생일 등이 다가오면 내 아내는 인근 지역 아파트에 사는 며느리한테 전화로 미리 말을 한다.
'차례 제사 지낼 무렵에 오너라.'
내 아내 혼자서 잠실 새마을시장 등에 나가서 제사용, 차례용 등의 음식물을 준비한다는 뜻이다.
아들네는 차례 제사 지낼 무렵에서야 온다.
이처럼 우리 집안에서는 며느리를 아주 소중히 여긴다.
며느리는 내 소중한 손녀, 손자를 낳아서 잘 보살펴 준다.
집안 식구 모두가 만나면 늘 잘 웃기에 서로가 서로를 잘 배려해 준다.
나중에 보탠다.
지나간 세월 저머너.... 많은 기억이 떠오르고...
잠시 쉬자.
1.
오늘은....
외국사위의 첫째 동생 사둔(아룬) 사돈이 소포 택배를 잠실로 보냈다고 한다.
*외국인 아룬은 한국에 나와서 일한 지가 꽤나 오래되었음.
큰 박스 안에 열두 개의 무척이나 큰 과일이 들어 있었다. 야자수 과실이다.
묵직하게 크고, 겉이 단단해서... 아내는 부엌칼로 반으로 쪼개려고 애를 썼다.
자칫하면 칼날이 삐끗하면 크게 다칠 수 있다는 우려.....
나는 야자수 열매를 얼추 고정시킨 뒤 부엌칼을 야자수에 대고는 망치로 칼등을 쿵쿵 내리 찍었다. 단단한 목질의 야자수 열매를 반으로 가르기 시작했다.
칼날로 벌려진 틈새로 즙이 줄줄 새기 시작했다.
기겁을 하다시피 나는 주방쪽으로 갔고, 아내가 가져온 큰 양푼에 담았다.
거실바닥에 즙이 줄줄 묻었고, 나는 물걸레로 두어차례 닦아냈다.
※ 거실바닥에 물이 잔뜩 쏟아져 있으면 나무판자가 부풀어 오를 수도 있기에...
망치로 칼등에 다시 거듭 내리치니, 플라스틱으로 된 자루가 똑하며 부서졌다. 완전히 파괴되었다.
내 실수이다. 평소에도 농기구 연장 등 살림살이 연장을 조심스럽게 다루는 내가 오늘은 실수를 하다니....
부서진 부엌칼을 주워서 다시 망치로 내리쳐서... 결국 야자수 열매를 반으로 갈라졌다.
아내가 티스푼으로 하얀 즙이 묻는 속을 파서 내게 내밀었다.
나는 고개를 내저으며 거절했다.
내가 부엌칼을 부셨다는 실수에 화가 났기에.
하지만 아내와 큰딸은 내가 과일을 먹지 않는데에 오히려 화가 났나 보다.
아내가 부글거리면서 남편인 나를 지청구한다.
'왜 안 드셔요?'
나는 입 꾹 다물었다.
성깔이 표독스럽게 사나운 내가 눈초리를 쳐들면... 맹독사가 따로 없을 게다.
참자. 서로의 이해부족과 오해가 자칫 엉뚱한 갈등으로 변질될 수 있기에...
* 무모한 짓이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법을 전혀 모르는 채 마구잡이로 힘(근력)으로만 처리하려고 했으니 실패.
이렇게 무식한 내 행동에 대하여 화가 치밀었음.
처음 접해 보는 물체에 대해서 섣부른 판단으로, 힘으로만 강제로 해결하려고 했던 내 무모함에 대한 분노였다.
성깔이 깐깐해서 사물을 자세히 분석하던 내가 왜.... 코코넛 야자수 열매를 제대로 다루지 못한 데에 대한 속상함이었다.
* 사진은 인터넷으로 검색. 무단 게재를 용서해 주실 게다.
아내가 톱으로 켜야겠다고 농기구 가게로 나갔다. 작은 실톱 하나와 드라이버 4개를 사왔다.
제품은 made in chaina. 가격이 무척이나 싸다.
지정학상 중국은 우리나라와 무척이나 가까운 나라이다. 그런데 아국과 중국과의 정치상황은 늘 불안하다.
나중에 보탠다.
밤 자정이 가까운 시각....
전립선비대증 약을 먹고는 자자.
무척이나 피곤....
2023. 6. 17. 토요일 밤에
* 자다가 일어났다. 01 : 30.
2023. 6. 18. 일요일이 시작되었다.
첫댓글 야자수 코코넛 열매는 너무 단단해서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하지요.
칼날이 부러질 정도였는데 다치지 않으신 것만도 천만의 다행입니다.
저는 아직 코코넛 열매 속의 즙을 먹어 보덜 몬 했습니다.
남들 이야기나 티비를 보니께 달달하면서 먹을만 하다(맛나다)고 하더군요.
최 선상님도 전립선 비대증으로 약을 잡수시는군요.
저는 매일 아침에 '전립소 쏘팔매트' 한 알씩 먹습니다(쏘팔매트는 아들놈이 사서 택배로 보내줍니다. 10여년째).
댓글 고맙습니다.
오늘 아침에 아내를 보고 말을 꺼냈다.
'내일 갈 수 있어?'
아내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간 나와 아내는 봄철 내내 아팠다. 나는 꽃가루 알레르기 현상으로, 아내는 코로나 후유증이 아닐까 하는 우려로...
아내는 코로나에 감염되지 않았는데도 마스크를 오래 썼기에 면역력이 약화되어서 생긴 병이 아닐까 하고...
다행이다. 내일 아침( 6월 19일)에 자동차를 끌고 고향에 내려갈 수 있다는 게...
박 선생님 댓글 고맙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제 어머니의 일생....
정말로 안타깝고, 답답한 시대상이었습니다.
산골마을은 무척이나 가난했고... 그래도 서로를 위하는 마음(협동심)을 지녔지요.
초상, 제사, 시제. 들판과 산판에서 일을 할 때면 많은 사람들이 와서 힘을 보탰지요.
사람이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사회였는데 21세기 2020년대인 지금 왜그리 세상인심은 팍팍해졌을까요.
식구가 많으면 그만큼 여인네의 삶은 고단했지요. 책임감으로.....
설과 차례준비, 제사준비, 잔치준비 등 누가 주관하나요. 여자이들지요.
며느리.. 남의 집으로 시집 온 새댁인 여자... 무슨 힘이 있을까요?
어린 며느리를 보듬는 게 가장 먼저 시어른이어야겠지요.
시아버지가 며느리를 소중히 여기면 집안사람도 덩달아 앳된 며느리를 보살피게겠지요.
지금은 세대가 분리되어서 각각 따로 살지요.
지나간 과거 구시대의 가족사를 살짝 더 생각합니다.
여자 특히 며느리를 존중하며, 아껴주는 그런 사회풍토였으면 합니다.
자녀 출생이 많은 시절
고부간의 갈등으로 많은 문제점
여자가 여자를 이해 못하고
군대식 보복 처사에 얼마나
울고 울며 보따리 쌀 생각에
친정 살림 빈하면 더욱 눈치
고생만 하던 시절 여자로 태어나
멍애 만 짊어지고 살다간 많은 며느리
집안이 화목 하려면
어머니 역활이 중요
시부 시모 사랑 제일 입니다.
그 사랑 다 받고 내맘대로 살았었도
일가를 이루고 튼튼히 끌고 가기에
저 또한 오른손으로 내 엉덩이 톡톡
치며 칭찬 합니다 ㅎ
좋은글 읽었습니다.
혹시 댓글 문제 있어
지적 당해도 싸따 그런 마음으로 ㅎㅎ
휴일 잘 지내십시요^^
댓글 고맙습니다.
제 어린시절 산골마을에서 살 때....
제사가 많은 집안이라서.....
음식준비에 늘 바쁘게 움직이어야 했고....
당시의 촌에서는 초상을 치루고, 환갑잔치, 결혼잔치를 하면 음식을 넉넉히 장만해서
서로 나눠 먹었지요. 멀리 떨어진 마을에는 아낙네들이 잔치음식을 머리에 이고 날라서 마을사람들한테 나눠주었지요.
그 중심에는 주부인 며느리의 수고가 많았을 터.
살림살이 안주인은 며느리이지요.
남의 집으로 시집가고, 내 집으로 시집오는 며느리를 모두가 소중히 아끼며 보듬어 주었으면 합니다.
50년대 종갓집 며느리의 삶
여인의 삶중에서 가장 고단한
삶중에 하나 였을거 같습니다
예전엔 정말 필요없는 허례의식
어쩜 고스란히 여인들의 몫이
이었을거 같습니다.
그렇게 고생을 하셨지마는
아주 현대적이고 합리적인
시어머님 같어십니다.머느님을
소중하게 여기시고 일등 자상하고 사랑이 넘치는 일등 어머님
이십니다.
전 지금껏 애들엄마 제사 일일이 챙겨왔었지요. 인제 그것
절에 위탁을 하던지 아님 그만
두던지 아예 없애던지 해서
제 아들들 편하게
해주려고 합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금박사님은 마음이 아주 건강하시니 몸건강도 자연스럽게 회복되겠지요.
며느리... 전혀 낯선 고장으로, 새로운 가문으로 와서....살림을 이어받아서 더욱 풍성하게 꾸미지요.
며느리가 있기에 지금껏 인류는 자손을 이어갔지요.
이런 며느리한테 모두들 고마워해야 하지요.
저도 제사를 많이 줄였습니다.
더욱 줄여야겠지요.
시집 온 며느리한테 부담을 주기에... 이제는 간소화해서....
금박사님.
마음건강, 몸건강 더욱 챙기시기 바랍니다.
저도 함께 지지합니다!
효부 중 효부셨던 부인께서 며느님 아끼시는 마음이 글에 잘 나타나 있군요.
저 역시 6형제 중 막내 며느리 였었지만 연로하셨던 시부모 님을 20년 모셔 본 사람으로 제 며느리를 힘들게 하고싶지 않아 알밤톨 같이 귀여운 손자 둘을 낳아 잘 키우고 있는 제 며느리에게 평소 배려를 많이 해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
댓글 고맙습니다.
제 어머니한테 서울에서 같이 살자고 권했더니만 어머니가 고개를 흔들면서 반대하시대요.
'만약에 내가 며느리와 서로 싸운다면 너는 누구편들럐? 어머니편? 아내편? 너희들끼리 편히 살거라'
말씀하시고는 엄니는 시골집에서 혼자 사셨지요. 하나뿐인 며느리를 소중하게 아꼈다는 뜻이지요.
수피 님도 며느리 사랑을 하시는군요.
제가 '고맙습니다'라고 고개 숙입니다.
가정, 일가친척이 편안해야 사회가 건전하고, 국가가 더욱 육성해지겠지요.
서로를 아끼는 고부간의 사랑으로 가득 차기를 모두한테 기원합니다.
수피님 고맙습니다.
네 행복 하루 되세요
오늘 고향에 가시는군요
잘 다녀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