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 아버님 돌아가신지 벌써 20여년전 고향은 이북 신의주 선천 어려서 압록강 땜목위에서 놀던 시절
할아버님은 외할아버님과 함께 집을 나서서 지금에 가평근방 깊은 산속에 은신하면서 춘천으로 향하는 우편국 차를 기습 독립자금 조달책으로 활동하다가 결국 감옥살이 하면서 이질로 돌아가시고
할머님은 6남매 먹여살리기 힘들어 아버님은 초등학교도 마치지 못한채 압록강 건너 중국에서 한동안 거지 생활을 하셧슴니다 어려서 이야기는 통 듣지도 말씀 하지도 않앗슴니다
다행히 성인이 되면서 신의주 영화관 영사기사로 일하시다가 625전쟁후 군인으로 참전 마산에 커다란 군용텐트를 치고 많은 사람들이 같이 잠잣으며 개울 건너편 큰 군용텐트는 교회로 예베도 보고
미군 주둔 지역앞 사과상자 하나놓고 뭔가를 팔던 어머님 생각이 어렴푸시 나곤 함니다
전쟁후 큰 구멍난 서대문 중림동 높은집 수리후 정착하며 아버님은 운 좋게 서울 세관 초창기 맴버로 영사실장으로 취직후 한국에 들어오는 모든 영화검열 세금부과 수많은 영화 제작자들 영화인들에게는 큰 벼슬이엿죠
모든 영화제 심사워원 극장표는 말만하면 얻어주시고 어려서 세관 영사실서 수많은 영화를 보면서 자란시절 서울역뒷편 초등2년 크리스마스 선물로 사주신 스케이트 그 스케이트로 결국 나에 인생이 긴 ㅡ선수생활로 이여졋슴니다
요즘 프로골프 선수 일년 예산이 2억에서 ㅡ4억 요즘 노래 잘하는 신인 가수 일년 홍보비 3억씩 5년을 투자해야 뜬다고 함니다
나역시 부모님 덕분에 선수생활을 잘 햇슴니다
신앙심 강한 할머님에 기도 덕분에 잘먹고 건강하게 외국생활 잘하고 살아가는데 늘 감사할뿐임니다
돌아가신 아버님 늘 사무실 시간만나시면 한문공부 영어공부 하시던 모습 어려서 너무 고생하셔서 덕분에 나는 호강하며 살앗슴니다 신혼집도 독립유공자 에게 특별히 주는 신도림동 빨간 장미꽃벽이 잇는 68평집을 받아서 생활햇고 68년부터 일본 전지훈련을 갈때 마다 용돈20만원씩 올때는 늘 선풍기 박스로 멋진 옷들을 쇼핑 하며
첫댓글 참 열심히 사셨습니다..
모든 아버님들도...
Happy Father's day!
💐
한국도 잘 다녀 오시구요..
추천#1.
감사함니다
농부를 천직으로 살다 가신 제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비교하면
제이정1 님의 할아버지, 아버지께선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가셨네요.
어머니 생각 · 3(성묫길)
---------------------------- 박 민 순
소싯적 꿈을 키우며 자란
고향 어귀에 다다르면
마중 나온 바람이
부모님 사랑처럼 온몸을 감쌉니다
살아가기 바쁘다는 핑계로
가뭄에 콩 나듯 찾아뵈니
죄스러운 마음으로 큰절 올립니다
아버지가 소 몰며 쟁기로 밭 갈면
새참 내오시던 어머니
그 서낭댕이골 밭머리에
생시처럼 다정하게 누워 계신 부모님
평생 다툼 한번 없어
금실 좋기로 소문났는데
먼저 가신 아버지
16년 만에 어머니 만나셨으니
하늘나라에서지만 얼마나 반가웠을까?
숨바꼭질하던 느티나무 지나
고향 떠나올 때
등 뒤에서 부는 바람은
부모님 온기처럼 살갑습니다.
감사함니다
할아버지 외할아버지 그리고 아버지 모두 훌륭하십니다
어머님에 대한 애틋한 마음 글 속에서 절절히 느껴져 옵니다
제이정님 건강하시고 오늘도 좋은 데이~되세요
감사함니다
할머님이 힘드셧죠
고맙습니다.
Happy Father's day!
대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