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라포션 쇼프팀#3
(신18:1-8)
1. 주제
“여호와께서 그의 기업이 되심이라”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의 다른 지파와 달리 레위인과 제사장에게 땅의 기업이 주어지지 않은 이유를 말씀합니다. 짧은 본문이지만 ‘무엇을 소유해야 안전한가?’라는 깊은 질문을 던집니다.
2. 레위인에게는 땅의 기업이 없다
“레위 사람 제사장과 레위의 온 지파는 이스라엘 중에 분깃도 없고 기업도 없을지니…” (신18:1,2)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면 각 지파는 자신의 기업을 받습니다.
그러나 레위 지파는 다릅니다.
그들에게는 다른 지파와 같은 토지의 기업 נַחֲלָה(나할라)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레위인이 아무것도 받지 못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본문은 놀랍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의 기업이 되심이니라.” (신 18:2)
다른 지파가 땅을 바라볼 때 레위인은 여호와를 바라보아야 했습니다.
그들의 결핍이 아니라, 그들에게 주어진 다른 종류의 기업이었습니다.
3. 여호와를 섬기는 자의 필요도 공동체가 책임진다
그렇다고 레위인이 아무것도 없이 살아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제사장이 백성을 위해 여호와 앞에서 섬기기 때문에 제물 가운데 일정 부분이 그들에게 돌아갑니다.
또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처음 것, 양털의 처음 것도 주도록 하셨습니다.
여기에는 중요한 균형이 있습니다.
레위인은 재물을 자신의 안전으로 삼지 않지만, 공동체는 그것을 핑계로 그들의 필요를 외면해서도 안 됩니다.
여호와를 섬기는 사람과 그들을 책임지는 공동체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4. 레위인의 진짜 특권은 ‘여호와 앞에 서는 것’이다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지파 중에서 그를 택하여 내시고 그와 그의 자손에게 항상 여호와의 이름으로 서서 섬기게 하셨음이니라.” (신18:5)
레위인의 가장 큰 특권은 무엇을 많이 받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여호와 앞에 서서 섬기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에서는 많이 가진 사람이 복된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토라는 다른 질문을 던집니다.
“얼마나 가지고 있는가?”보다
“누구 앞에 서 있는가?”입니다.
레위인의 기업이 여호와라는 말은 단순히 “가난하게 살아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들의 삶의 중심과 안전과 정체성이 소유가 아니라 여호와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5. 어디에 살았느냐보다 여호와를 섬기려는 마음이 중요하다
지방 성읍에 살던 레위인이 마음의 소원에 따라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으로 나오면 그곳에서 다른 레위인들과 함께 섬길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눈에 들어오는 표현이 있습니다.
בְּכָל־אַוַּת נַפְשׁוֹ
베콜 아바트 나프쇼
“그의 마음의 모든 소원을 따라”
여호와 가까이에서 섬기고 싶은 마음이 생겼을 때 그 길을 막지 않았습니다.
출신 지역이나 기존 위치보다 여호와를 섬기려는 마음이 중요했습니다.
6. 같은 자리에서 섬기면 같은 몫을 받는다
“그 사람의 몫을 제외하고는 그들과 같이 몫을 먹을 것이니라.” (신18:8)
새롭게 온 레위인이라고 해서 차별하지 않습니다.
같은 여호와 앞에 서고, 같은 섬김을 감당한다면 동일하게 몫을 나눕니다.
쇼프팀 전체에 흐르는 צֶדֶק(체데크, 공의)의 원리가 여기에서도 나타납니다.
공의는 재판정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예배와 섬김의 공동체 안에서도 필요합니다.
7. 예슈아의 가르침
마태복음 6장에서 예슈아께서는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염려하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마 6:33)
이것은 아무것도 준비하지 말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삶의 우선순위를 무엇에 둘 것인가"에 관한 말씀입니다.
신명기 18장에서도 레위인에게 실제적인 필요가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는 공동체가 제사장과 레위인의 몫을 공급하도록 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토라의 원리는
“필요한 것이 없어도 된다”가 아니라
“필요한 것이 나의 주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라고 볼 수 있습니다.
8. 교훈
결국 질문은 이것입니다
레위인에게 가장 큰 복은 땅이 없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의 기업이셨다는 것입니다.
예슈아 역시 가난 자체를 목표로 삼으라고 가르치신 것이 아니라, 재물이 우리의 마음을 차지하여 여호와보다 앞서지 않도록 가르치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 앞에서 이렇게 질문해 볼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주시는 것을 원하는가,
아니면 여호와 자신을 원하는가?”
가장 좋은 것은 여호와께서 주시는 많은 것을 가지고도 그것보다 여호와를 더 귀하게 여기는 마음일 것입니다.
9. 비유 이야기
"빈 땅을 받은 아들"
한 아버지에게 열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들에게 넓은 땅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어떤 아들에게는 포도원이, 어떤 아들에게는 밀밭이, 또 어떤 아들에게는 양 떼를 기르기 좋은 초원이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막내아들의 차례가 되었을 때 아버지는 아무 땅도 주지 않았습니다.
막내가 물었습니다.
“아버지, 제 땅은 어디에 있습니까?”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너에게는 땅 대신 내 집의 문을 열어 두었다. 너는 언제든 내 집에 들어와 나와 함께 먹고, 내 곁에서 나를 섬겨라.”
처음에 막내는 형들이 부러웠습니다.
형들은 자기 땅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이 포도원이 내 것이야.”
“저 밭이 내 것이야.”
막내는 보여 줄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형들은 자신의 땅을 지키느라 아버지의 집을 찾는 일이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가 막내에게 물었습니다.
“아직도 형들의 땅이 부럽느냐?”
막내가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아닙니다, 아버지. 형들은 아버지께서 주신 것을 기업으로 받았지만, 저는 아버지 곁에 있는 것을 기업으로 받았습니다.”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이제 네 기업이 무엇인지 알았구나.”
신명기 18장의 레위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기업이 되심이니라.” (신 18:2)
레위인에게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의 삶은 ‘여호와께서 주시는 것’보다 ‘여호와 자신’을 바라보도록 구별된 삶이었습니다.
10. 기도
여호와여, 주께서 주신 것을 사랑하다가 그것을 주신 여호와를 잊지 않게 하소서. 무엇을 소유했는가로 제 삶의 가치를 판단하지 않고, 여호와 가까이에 서는 것을 가장 귀한 기업으로 여기게 하옵소서. 필요한 것을 감사히 누리되 그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먼저 여호와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슈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