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도 어느 두메, 다 쓰러져가는 초가집 뜰에 서 있는 한 소년이 있었다. 소년은 혼자 중얼거렸다.
“대체 저 산줄기가 어디서 일어나서, 어디 가서 그쳤는지, 그림 그린 것이라도 있었으면,
앉아서 알 도리도 있으련만, 우리들 배우는 책에는 도무지 그런 것이 없으니 어쩌면 좋을까.”
이 소년의 성은 김이요, 이름은 정호다. …
그 후 몇 해가 지나서 친한 친구에게 읍지도 한 장을 얻었는데, 펴본즉 산도 있고 시내도 있고
마을의 모양이 손금 보듯 자세했다.
김정호는 뛸 듯이 기뻐하며 그 지도를 가지고 동네마다 돌아다니며 일일이 맞추어보았다.
그러나 생각과는 달리 지도는 실제 지형과 아주 딴판이었다.
너무나도 실망한 그는 그 후 서울에 정확한 지도가 있다는 말을 듣고 상경하여 궁중 규장각에 있는
조선팔도지도 한 벌을 얻었다.
그러나 그 지도 역시 실지로 조사한 결과 그 부정확함은 역시 전의 읍지도와 다름이 없었다.
그는 자기 손으로 정확한 지도를 만드는 방법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는 것을 깨달았다. …
김정호는 그동안 팔도를 세 번 돌아다니고 백두산을 여덟 차례나 올랐다. …
그는 하나둘씩 나무판을 사 모으고 틈틈이 그의 딸과 함께 지도를 새겼다. …
얼마 후 병인양요가 일어나자 김정호는 [대동여지도]를 어느 대장에게 건네주었다.
그 대장은 뛸 듯이 기뻐하며 이것을 대원군에게 바쳤다.
외국을 배척하던 대원군은 지도를 보고 크게 화를 내며 말했다.
“함부로 이런 것을 만들어서 나라의 비밀이 다른 나라에 누설되면 큰일이 아니냐.”
대원군은 지도판을 압수하고 김정호 부녀를 잡아 옥에 가두었다.
부녀는 그 뒤 옥중에서 고난을 겪다가 죽었다.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조선어독본](1934년)에 실려 있는 내용이다.
이 내용들은 근래까지 초등학교 교과서에 거의 그대로 실리며 김정호에 대한 상식으로 굳어져 왔다.
그러나 근래의 연구들은 이 사실들을 하나하나 반박하며, 일제가 흥선대원군을 매도하고
식민통치를 강화하기 위해 여러 대목을 날조했음을 밝히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