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세 시, 인적 드문 한 골목의 귀퉁이, 사람들은 눈치 채지 못했지만 벌써 이틀째 봉고차 한 대가 이곳을 지키고 있다. 호우특보 때문인지 어제 저녁 시작된 비는 어둠이 깊어 갈수록 장대비가 되어 쏟아진다. ‘타닥타닥’ 끊임없이 봉고차 지붕을 때리는 빗소리에 잠시 눈을 붙였던 장정 둘이 깨어난다. “좀 더 자 둬.” 앞자리에 앉은 한 여성이 낮은 목소리로 던진 한마디에 두 장정이 다시 눈을 감는다. 이 여성의 시선은 어두운 골목에 고정돼 있다. 봉고차가 이곳에 자리 잡은 지 40시간이 넘는 동안 그녀는 단 1분도 눈을 붙이지 못했다.
“제보 받자마자 이 비를 뚫고 서울에서 4시간을 달려 내려왔는데 역시 허탕이네요. 날이 밝으면 올라가야죠.”
서울의 중심가 한 대로에서 벌어진 조폭 간 살인사건, ‘로드킬’의 용의자 XXX의 검거에 나선 김화자 경위(48·강남경찰서 강력2팀장)가 입을 연다.
“조폭 중 연장(칼)을 제대로 쓸 줄 아는, 몇 안 되는 놈이에요. 그래서 빨리 잡아야 하는데….”
며칠 후, 강남경찰서에서 다시 만난 그녀. 조폭 살인범 XXX를 잡기 위해 전국을 누빈 지 15일 만에 ‘집’인 강남경찰서로 돌아왔단다. 어두운 봉고차 속, 잠복근무 중 보여준 매섭고 강렬하던 눈매 대신 상냥하게 다가오는 그녀, 김화자. 그녀는 대한민국 최초이자 유일한 조폭 담당 여성형사다. 2007년 방영된 드라마 <히트>에서 고현정이 연기한 강력반장 차수경의 실제 인물이 그녀다. 책상 위, 아기예수를 포근히 앉고 있는 성모마리아상 아래로 그녀가 몇 달째 쫓고 있는 조폭 XXX의 사진이 붙어 있다.
당직근무를 위해 돌아온 강남경찰서 강력팀의 풍경은 아침부터 분주하다. 잠복수사로 밀릴 대로 밀린 수사기록이 책상에 수북이 쌓여 있고, ‘드르륵드르륵~’ 10분이 멀다 하고 울리는 책상 위 휴대전화 진동음이 분주함을 더한다. 아침에 걸려온 전화에서 확보한 정보를 놓고 강력2팀의 회의가 시작됐다. 팀원을 지휘하는 김화자 경위의 얼굴엔 범인을 잡고 싶다는 열망이 그대로 드러났다. 숨 가쁘던 오전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게 흘러갔다. 점심을 마치고서야 조폭 잡는 여형사로 살아가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마흔 여덟의 일생 중 경찰로 산 지 벌써 28년째인 그녀. “제복이 예뻐서도, 정의감 때문에도 아닌, 단지 서울에 살고 싶다는 마음에 경찰이 됐다”며 웃는다.
“대학에 입학하는 바로 위 오빠를 따라 서울에서 살고 싶었어요. 그때 신문에 난 서울지역 여성경찰 시험공고를 보고 ‘이거다’ 싶어 시험을 본 게 경찰 입문이 됐죠.”
“1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여경이 됐다는 자부심이 컸지만, 30여 년 전 여경의 현실은 실망의 연속이었다”고 말하는 그녀.
“1980년대만 해도 여경은 보직도 없이 일선경찰서에서 사무실에 앉아 서류에 도장을 찍거나, 민원실 비용 처리 등 작은 회사 경리 같은 일만 맡아야 했어요.”
1982년 가을, 조사계 발령을 받은 그는 지원 형태로 강력계 형사 선배들을 따라다녔다. 날치기, 살인, 강도 같은 강력범을 검거하고, 위장-잠복근무에 투입되면서 변화가 시작됐다. “며칠씩 집에 못 간 선배 형사들의 식사와 세탁을 맡거나, 범인검거를 위해 선배 형사와 팔짱을 끼고 신혼부부나 연인으로 위장해 잠복근무를 했죠(웃음). 제가 그런 역을 잘했나 봐요. 선배들이 진짜 같다고 많이 칭찬해 줬어요. 잠복하고, 범인 잡는 현장근무가 너무 재미있었고요.”
조폭, 겁나지 않아요
그 시절 그녀가 맡았던 한 건의 간통 사건은 그녀의 경찰인생을 진지한 삶으로 바꾸어 놓았다.
“대학교수인 여성이 바람을 피워 그 남편이 고소한 사건인데, 아무래도 이상했어요. 자세히 알아보니 현장 조사도 없이 남편 주장만을 그대로 받아들였더군요. 사건을 넘겨받은 후 주변 사람들을 만나고, 탐문 수사를 하니 상황이 정반대였어요. 바람을 피운 남편이 재산분할을 막기 위해 사건을 조작하고 부인을 고소한 거였죠. 사건의 전말이 밝혀진 후 그 여교수가 찾아와 ‘제 인생을 되돌려줘 감사하다’고 말하더군요.”
이 사건을 통해 자신의 일이 한 사람의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는 그.
“인권을 지키기 위한 최일선에 경찰이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죠. 무엇보다 제 수사가 인간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 제 일이 더욱 소중해졌고 애틋함이 생겼습니다.”
1984년, 소년계로 발령받으며 비로소 정식으로 형사란 이름을 얻게 된다. 소년범죄의 성격상 여성형사가 필요했는데, 여성경찰 대부분이 민원, 교통, 사무 등을 하고 있어 사건을 맡을 여성경찰이 없었다. 조사계에서 현장수사로 주목받던 그녀가 자연스럽게 여성형사 1순위로 거론됐다.
“소년계 역시 일반 경찰이 아닌 형사들의 집단이에요. 만 14세 미만이 저지르는 살인・강도・절도・강간 등 강력범죄를 맡죠. 어린아이들이 한 일이라고 믿기 어려운, 잔인하고 치밀하게 계획된 강력 사건들이 쏟아졌죠. 사건 현장에 가면 심장 박동이 요동치면서 살아 있는 것 같았어요.”
2000년대 초반 강동경찰서로 자리를 옮기며 그녀는 본격적인 조직폭력, 윤락과의 전쟁을 시작했다. 그리곤 서울의 대표적인 사창가, 천호동 집창촌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경찰 안에서 이름도 날렸다.
“당시 정말 정신없이 움직였죠. 어느 날 한 선배가 그러더군요. ‘화자야, 될 수 있으면-칼이 뚫고 들어오지 못할 만큼-옷 두껍게 입고 다녀. 그쪽 애들이 너 긋고(찌르고) 갈 거란 소문이 있어’ 하는 거예요. 그런 건 별로 신경 쓰지 않았어요. 어차피 내 일이니까요. 그런데 그쪽 놈들(조폭)이 저에 관한 정보를 다 가지고 있잖아요. 심지어 가족 정보까지. 하루는 중학생이던 아이들이 학교에서 안 왔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저도 엄마인지라 ‘아차’ 싶더군요. 조폭들 상대하면서 그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두렵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는 조폭 중 “사람을 사고파는 놈들이 가장 악질”이라고 했다.
“윤락가에 기생하는 조폭이 그런 놈들이죠. 조폭이란 이름도 아까운 양아치예요.”
2004년 강동경찰서 강력팀 팀장을 맡으며 조폭 전담 형사가 된 김화자. 그녀는 팀을 맡자마자 놀라운 성과들을 이끌어 냈다. 매년 100여 명이 넘는 조폭 검거로 강력범 검거율 1위에 올랐고, 2006년에는 최대 조폭 조직 중 하나인 ‘신21세기파’를 와해시키며 ‘조직폭력 베스트 수사팀’을 수상하기도 했다.
28년차 형사에게 “조폭이 무서울 때가 있느냐”고 물었다. “앞서 말한 것 딱 한 번을 빼면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답한다.
“두려움이란 건 생각하기 나름이에요. 오히려 조폭이 우리 같은 조폭담당 형사뿐 아니라, 갓 입사한 순경에게까지 ‘형님’이라 부르며 꼼짝 못 합니다. 그저 눈에 보이는 험악한 분위기와 덩치 때문에 겁먹을 필요 없어요. 그런 놈들일수록 싸움 못 해요. 맷집만 좋아 그저 병풍 역할만 하는 거지요. 그런 놈들한테 겁먹으면 아무 일도 못합니다(웃음)”.
170cm쯤의 키에 호리호리한 몸매, 예쁘장한 얼굴의 그에게서 강력계 형사의 모습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런 그녀가 합기도와 검도 각 2단, 태권도 1단의 무술고수란다.
“제가 강력계 형사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건 맞아요. 우선 여자잖아요. 조폭팀장도 부드러울 수 있어요. 사실 연장(무기) 쓰고, 싸움질하는 놈들에게 위압감을 주는 풍채가 필요하기도 하지만, 조폭의 양상이 변하고 있어 치밀하고, 지능 수사에 능한 형사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 말 끝에 그는 최근 조직폭력의 양상이 우려 할 만한 형태로 변하고 있다고 했다.
“옛날 홍콩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칼이나 야구방망이 들고 설치는 조폭은 없습니다. 동네 양아치나 그러지요. 요즘 조폭은 합법을 가장해 기업화・지능화되고 있어요. 기업인수・합병이나 주가조작, 인터넷을 통한 활동 같은 형태로 진화하고 있죠. 지금 쫓고 있는 XXX 역시 M&A과정에서 다툼이 일어나 살인한 거예요.”
이런 조폭들을 상대하느라 30여 년 전 고왔던 문학소녀의 모습은 온데 간데 없고 ‘조선어쌍말사전’(욕)에 나오는 모든 언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됐다며 농을 건네는 김화자 경위.
“형사는 콧구멍으로 숨 쉬는 사람이 아니라 발바닥으로 숨 쉴 때 보람을 느낄 수 있다”는 말을 좌우명처럼 말하는 그녀의 눈에서 카리스마와 함께 뜨거운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인터뷰 내내 끊임없이 울리던 휴대전화를 집어든 그녀는 제보자가 XX로 찾아왔다는 연락을 받자마자 다시 동료들과 함께 어딘가로 사라졌다.
사진 : 김선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