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nata for Arpeggione in A minor, D821 | |
슈베르트 아르페지오네 소나타 가단조 D821
Franz Schubert (1797~1828)
1. Allegro Moderato- 2. 3 전악장 연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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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eter Wispelwey, cello - Paolo Giacometti, fortepiano | |
작품개요 및 배경
이 곡은 오늘날 흔히 첼로 소나타라고 하지만 본래는 '아르페지오네'(Arpeggione)라는 악기를 위해 작곡되었으며 결코 첼로를 위해 쓴 곡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 '아르페지오네'는 1823년에 발명된 뒤 얼마 후 곧 잊혀져 버려서 이 곡도 첼로 연주하는 것이 상식화되고 말았기 때문에 '아르페지오네'라는 악기 이름은 이 소나타로 간신히 그 존재를 보존하고 있을 뿐이다. '아르페지오네'는 빈의 슈타우퍼라는 사람이 발명한 것으로서 기타의 장점을 가미한 첼로풍의 악기이며 여섯 줄의 현을 지녔고 첼로보다 높은 음역을 자유로이 표현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 소나타에는 높은 음을 풍성하게 쓰고 있어서 오늘날의 첼로로 연주하려면 매우 높은 기교가 요구된다.
슈베르트가 27세 때인 1824년에 작곡하였으며 이 해에 그는 5월부터 10월초까지 헝가리의 에스테르하찌 백작 저택에 초대되어 머물렀는데 여기서의 생활은 쾌적했던 모양으로 정신적인 건강을 어느 정도 되찾았다.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를 작곡한 것은 헝가리로부터 빈으로 돌아온 11월이었다. 슈베르트 본래의 음악으로 전체가 감싸여 있으므로 다른 음악의 영향이 분명하게 구별되는 부분이 드러나지는 않았으며 멜로디나 리듬을 채용한다 하더라도 모두 자기 것으로 완전히 소화한 채 뛰어난 슈베르트의 작품으로 완성되어 잇는 점은 이 작곡가의 천분이라 아니할 수 없다. 특히 이 작품에서는 그러한 재능이 확실히 보인다.
작품 전체를 뒤덮고 있는 우수의 정감은 낭만파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슈베르트의 개성이라고 할 수 있는 아늑한 비애감이 도처에 배어 흘러 듣는 이의 눈시울을 뜨겁게 만든다. 이따금 구름 사이의 햇살 같은 밝은 빛이 엿보이다가 이윽고 비애의 잿빛 구름에 다시 가려지는데, 제2악장의 동요를 연상케 하는 멜로디를 중심으로 하여 전개되는 세계가 그 좋은 본보기이다. 제3악장의 알레그레토도 경쾌함을 유지한 채 진행되는 피날레가 역시 깊은 우수로 가득 찬 서정 세계의 본질을 역력히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곡의 탄생 배경
나는 밤마다 잠자리에 들 때, 다시는 깨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아침이 되면, 오직 어제의 슬픈 생각만이 다시 나를 찾아옵니다. 이처럼 나는 즐거움이나 다정스러움도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슈베르트는 27세인 1824년의 일기에서 이렇게 말하고, 또
"나의 작품은 음악에 대한 나의 이해와 나의 슬픔의 표현입니다. 슬픔으로서 만들어진 작품만이 사람들을 가장 즐겁게 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슬픔은 이해를 날카롭게 하고 정신을 굳세게 해줍니다."
라고 쓰기도 했다.
슈베르트는 아무도 정확하게 진단할 수 없던 자기의 허약한 건강을 몹시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동안에도 유명한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의 가곡집이라든가, 가장 널리 알려진 <피아노 소나타 a단조>(작품 143) 등의 걸작이 만들어졌던 것이다.
그해인 1824년 여름에 슈베르트는, 에스테르하찌 일가와 함께, 쩨레스로 갔었다. 그는 여기서 오래간만에 상쾌한 나날을 보낼 수 있었으리라 여겨진다. 아마 슈베르트의 실내악곡 가운데에서 가장 아름답고, 또한 가장 다정스러운 정취가 풍부한 <현악 4중주곡 a단조>가 만들어진 것도, 이 해 여름의 일이었다. 백작의 딸인 '카롤리네와'의 사이에 로맨스가 싹튼 것도 이 때문이라 하겠다. 슈베르트는 여섯살 쯤 젊어졌다는 말을 들었을 정도였다.
쩨레스는 헝가리의 향토색이 짙었으며, 그래서 슈베르트는 슬라브나 마쟈르의 요소를 풍부하게 채택하여 몇 개의 실내악곡을 작곡하였던 것이다. 그는 아르페지오네라는 새로운 악기에 흥미를 가졌던 것도 사실이나, 한편 이 기타에 첼로를 더한 듯한 성질의 음에 헝가리풍의 특징을 발견하고 그것에 매혹되어 작곡하기도 했던 것이리라. 따라서 이 소나타에는 슬라브풍이나 마쟈르풍의 힘차고 개성적인 성격이 아름답게 나타나 있다.
아르페지오네(Arpeggione)는 1823년 빈의 악기제작자 케오르그 슈타우퍼에 의해 만들어진 악기의 이름이다. '기타 첼로'라는 별칭에서 알 수 있듯이 오늘날의 기타와 유사한 크기와 외형의 악기를 첼로처럼 활을 현에 문질러 연주하는 형태의 악기였다.
슈베르트는 빈센초 슈스터라는 아르페지오네 주자를 위해 소나타를 작곡하였는데, 슈스터라는 인물은 이 악기를 위한 교본을 남긴 유일한 인물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르페지오네는 서서히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진 악기가 되어버렸고, 이 악기를 위해 작곡된 작품도 슈베르트의 이 작품이 거의 유일하게 남아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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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페지오네는 슈베르트 당대에 애호를 받다가 후에 사라진 악기이다. 기타와 유사한 형태, 음높이를 갖고 있으며 기타처럼 반음씩 나누어지는 지판을 가지고 있지만 첼로처럼 세워 활로 연주하는 악기이다. 오늘날 주로 첼로로 연주되는 이 곡은 주로 첼로의 중고역을 이용하게 되므로 콧노래를 부르는 듯한 독특한 정취를 풍긴다. 슈베르트의 풍요한 멜로디라인이 잘 살아 있는 느긋하면서도 아늑한 소나타이다.
악기 아르페지오네는 소형의 첼로, 바하 시대에 사용되었던 비올라 다 감바(Viola da gamba)와 흡사한 모양을 했으며 전반적으로 오늘날의 기타를 연상시키는 악기였다. 현재에 와서는 많은 첼로와 피아노로 연주되나, 이 악기는, 지금의 첼로보다 피치가 높기 대문에, 아르페지오네를 위해 작곡된 작품을, 오늘날의 첼로로 연주할 경우에는 높은 음부의 빠른 패세지를 자유롭게 연주하는 것은 매우 어려우며 또한 리듬에 변화를 준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리고 이 곡에는 카사도의 편곡에 의한, 첼로와 관현악과의 협주곡풍의 형태나 또는 도브링거 편곡의 피아노와 바이올린의 2중주의 형태로도 연주되고 있다.
작품 구성
제 1악장 알레그로 모데라토, a단조, 4/4박자.
소나타 형식의 알레그로 모데라토이며 피아노에 이어 곧 첼로가 우수를 머금은 제1주제를 노래하기 시작하고 낭랑하게 울리는 첼로라는 저음악기의 독특한 음색이 한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그런 아름다움을 펼쳐준다. 제2주제는 좀 밝으며 전개부에서 자주 사용되지만 그러나 제1주제의 인상이 지배적이기도 하다. 코다는 미끄러지듯이 유연하고 아름다우면서도 슬픔을 간직한 첼로의 노래로 끝난다.
정상적인 소나타 형식으로 작곡되어 있다. 9마디의 피아노 전주 다음에, 감미로울 정도로 우아한 주제가 첼로로 노래된다. 이 제1주제는 곡의 주상(主想)으로서는 다루어지지 않으나, 곡의 정취로서는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다. 이와는 반대로, 제2주제는 명랑하고 경쾌한 성질이다. 사실은 이 기분이 작품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첼로가 5개의 화음을 피치카토로 연주하여 제시부를 마친다. 전개부는 첼로의 피치카토와 피아노로 시작하고, 제1주제가 약간 첼로로 노래된 다음, 거의가 제2주제를 바탕으로 한 전개가 된다. 언제나 유머러스하고, 명랑한 기분이 강조되고 있다. 이윽고 느릿한 첼로의 접속 악구가 있고, 재현부에 들어간다. 공식대로 제1, 제2주제의 재현이 있고, 서정적인 코다가 된다. 첼로가 호소하듯이 연주하는 이 코다는, 과연 슈베르트의 개성을 강하게 나타내어 아름다우며 인상적인 코다이다.
제 2악장 아다지오, E장조, 3/4박자, 세도막 형식.
아다지오는 첼로가 연주하는 칸타빌레 주제를 중심으로 하여 변주 형식의 부분이 전개된다. 마음껏 첼로의 저음으로 연주되는 이 가요 악장은 진주의 눈물 방울로 5선지에 적어 넣은 듯 눈부시게 영롱한 첼로뿐만 아니라 피아노의 연주도 아름다운 악장이다.
약간 자유롭게 변주곡풍으로 다루어진 것이 특징이다. 피아노의 서주가 있은 다음, 마치 슈베르트의 리이트처럼 여겨지는 애수와 동경을 지닌 주제가 육중하게 첼로로 연주된다. 첼로의 낮은 음넓이를 참으로 아름답게 연주하려고 고려한 듯한, 자유로운 변주가 계속된다. 세도막 형식을 은연중에 교묘하게 변화시킨, 슈베르트가 자주 쓴 수법이다. 첼로와 피아노의 대조가 두드러지며 아름답다. 첼로와 피아노의 2중창이라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형용이 없을 만큼 격조가 높은 악장이다. 그런 다음, 곡은 첼로의 인상적인 접속 악구로서 그대로 끝 악장에 들어간다.
제 3악장 알레그레토, A장조, 2/4박자.
누구나 들으면 감동하는 악장이며 알레그레토이며 론도 형식이다. 쾌활함을 겉으로 드러내 보이지만 끝에서 다시 우수 속에 잠기는 첼로의 탄식은 깊은 인상을 아로새겨 준다.
제2악장의 가요풍의 특징을 그대로 론도에 옮긴 형식으로서, 갑자기 첼로로 시작되는 론도 주제는, 순조롭게 전(前) 악장의 주제와 융합되고 있다. 이것이 집요할 정도로 되풀이된 다음, 짧은 접속악구가 있고, 제2주제가 나온다. 이것은 제1악장의 제2주제를 연상시킬 정도로 명랑하고 경쾌하다. 또한 헝가리풍인 첼로의 피치카토가 그것을 더욱 강조한다. 이윽고 곡은 호탕한 곡취를 더하여, 제3주제가 제시된다. 에피소우드풍으로 사용된 이 제3주제는, 자유 분망하게 활약하여 유머러스한 곡취를 강조 한다. 그 뒤 론도 주제가 원조로 돌아와, 동기를 자유롭게 변경시킨 코다에 옮긴다. 밝고 경쾌한 곡취 뒤의 애수 같은 이 코다는 참으로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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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peggione
19세기 중반 오스트리아 빈에서는 유명한 바이올린과 기타 제조업자였던 요한 게오르크 슈타우퍼(1778~1853)가 살고 있었다. 그의 역량이 어느 정도였는가는 그 당시 수타우퍼가 디자인했던 헤드스톡 부분은 20세기의 전기 기타인 펜더 스트라토캐스터에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것을 보면 능히 짐작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1823년 오늘날 '아르페지오네' 라고 알려져 있는 새로운 악기를 개발하였고, 빈 일반 음악신문 4월 30일자에 이 악기를 소개했는데, 당시 기사를 보면 '이 악기는 기타 다로므, 혹은 기타-첼로라고 부를만한 것으로 모양은 일반의 기타와 그다지 다를 바가 없지만. 음역은 훨씬 넓으며, 여섯줄이 매여져 있는 것은 기타와 같으나, 현을 기러기발로 지탱하고 있는 점과 손가락이 아닌 활로 연주하는 것은 첼로와도 같다, 소리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음량도 풍부한데, 고음은 오보에에 저음은 바샛 호른의 영역까지 미치고 더블 스톱 연주까지 가능하여 특히 반음계 악구의 연주에 잘 어울린다'라고 묘사하고 있다.
일반 기타와 똑같이 E-A-D-G-B-E의 순으로 조율하도록 되어 있고. 바이올린 족의 밋밋한 지판 대신 24개의 금속 기러기발로 지판이 나뉘어져 있던 이 독특한 악기를 세상에서 가장 슬픈 악기라고 지칭한 것은 슈타우퍼의 손에 의해 태어난 이후 현역악기로서는 제대로 대접을 받았던 기간이 고작 10여 년에 지나지 않았던 까닭이다.
이 악기가 개발된 직후인 1824년 슈베르트가 이 악기를 위해 소나타를 한 곡 작곡하였을 뿐, 다른 작곡가 어느 누구도 이 악기의 존재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고. 10년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 또한 아르페지오네의 독특한 음향을 사랑하는 아주 소수의 연주자들에 의해서 그 명맥이 이어져왔을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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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우퍼는 낭만주의 꽃을 피웠던 19세기의 대기를 호흡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르페지오네 15-6세기 비올족 악기들의 음향 이론을 그대로 접목시켰는데, 사실 여기에서 아르페지오네의 수명을 단축시킨 모든 문제가 출발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크 시대까지 맹위를 떨쳤던 비올족의 현악기들과 기타 류트 등은 음량의 한계 때문에 바이올린족 악기들에게 오케스트라의 주인공 자리를 빼앗기고 말았는데, 바로크 말기인 1760년대 후반, 유럽을 두루 여행하면서 각지의 음악에 대해 기록을 남겼던 찻스버니도 이미 지적했듯이 그것은 이미 예견되어 왔던 것이다.
그후, 새로운 포르테피아노의 개발 및 개량이 한참 진행된 19세기였던 만큼 아르페지오네는 볼륨이라는 물리적인 측면에서 반주 악기인 포르테피아노와 동등한 혹은 우월한 위치에 절대 설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음량이나 기술적인 측면을 떠나 역간 목이 쉰 듯 어슴푸레하게 들리는 아르페지오네의 울림에서 우러나오는 향기만을 생각한다면, 너무나 매력적인 악기임에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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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거의 공통적으로 해당되는 것이겠지만 기교나 유명세와는 거의 상관없이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는 연주가 있습니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면 객관적으로 납득할만한 명쾌한 이유를 제시하지 못하는 그런 연주, 지금보다 많이 푸르런 젊음이었을 때 가슴을 파고들어 들뜨게 했던 첫 사랑의 열병과도 같은 신선함이 살아있는 연주……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가슴 한 구석엔 누구나 그런 연주 한 두 개 정도는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정도의 낭만도 허락되지 않는다면 정말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더 정내미 떨어지는 곳이 될른지도 모릅니다.
슈베르트는 사실 어지간히 들어서는 어필하기 어려운 작곡가입니다. 사람을 확 끄는 화려함도 웅장함도 엄숙미도 적고 중.고등학교 음악 시간에 모차르트, 베토벤과 함께 삼총사로 등장해서 울궈먹을 만큼 울궈먹었고 해서 뭔가 좀 새로운 것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매력적인 존재라고 말하긴 힘듭니다. 작곡분야도 넓지 않아 음악사에 그다지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하는 교향곡들과(미완성 교향곡이 유명하긴 합니다만…..) 피아노 음악과 현악 4중주를 중심으로 한 약간의 실내악들, 그리고 유일하게 독보적인 가치를 인정받는 가곡들이 그의 작품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고 보아도 과장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슈베르트의 보석 같은 작품 하나가 있습니다. 옛날에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져간 아르페지오네(Arpeggione)라는 6현 악기를 위해 썼다는 소나타(D.821)가 그것입니다. 음악을 좀 듣는다는 사람치고 이 곡을 듣지 않는 사람을 아직 못 봤습니다. 이를테면 베스트셀러라는 이야기가 되는데 그러면서도 음반은 의외로 적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것은 지금 이 음반과 로스트로포비치/브리톤(Decca), 슈쿠 이와사키 라는 일본인 반주자와 함께한 야노스 쉬타커의 실황반(서울음반), 푸르니에/위보(EMI),그리고 오케스트레이션 해 놓은 가스파르 카사도(Vox)정도가 고작입니다. 첼로의 역사를 주름잡아온 기라성 같은 첼리스트들….파블로 카잘스를 비롯해서 그레고리 피아티고르스키, 엠마누엘 포이어만, 쟈클린 뒤 프레까지도 아르페지오네를 녹음했다는 이야긴 아직까지 못 들어봤으니 이 거장들이 이 곡에 관심이 없었던지 아니면 다른 곡들을 녹음 하느라 그냥 스쳐 갔던지 둘 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습니다. 선율은 슈베르트답게 달콤하게 아름답고 마음이 시릴 만큼 슬픈 빛을 띄지만 뭔가 빼먹은 듯한 느낌이 드는걸 느낍니다. 알쏭달쏭한 그것의 형태를 오랜 시간 동안 생각해 왔지만 알 수가 없었습니다.
도무지 설명할 순 없는 느낌이지만 웬지 이게 전부가 아닐 것이라는 느낌, 뭔가를 남겨두었는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늘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마이스키의 나긋나긋하지만 무엇을 열심히 정말 한눈 팔지 않고 진지하게 말하려는 태도와 아르헤리치의 한걸음 반 뒤에서 천천히 산책길을 따르는 듯한 정겨운 반주는 말할 수 없는 앙상블을 만들어내며 ‘아르페지오네는 이 정도는 되어야지!’하는 뿌듯한 긍지와 포근함을 듣는 이로 하여금 느끼게 충분하지만 그래도 허전한 부분이 남는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래봐야 별 수 없으니까 살아가다 보면 깨닫는 날도 오겠지.….속 편하게 생각하고 느긋하게 드러누워 등허리로 방바닥 닦아가며 천장으로 피어 올린 담배연기로 벽지를 누렇게 탈색시키며 10여 년간 이 연주를 질리지도 않고 들어왔습니다. 가끔 듣다가 지겨워지면 Francoise Hardy의 ‘Comment te dire adieu’ 같은 곡이나 황병기의 섬뜩한 ‘미궁(홍신자의 목소리는 압권입니다)’ 같은 걸 듣고 나면 그런대로 견딜 만 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엔가 문득 깨달았습니다. 뭔가 빠져 있는 느낌은 슈베르트의 반 토막짜리 삶이 지니는 한계 때문이라고……물론 오래 산다고 해서 뭔가 깊어진다고 규정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인생의 양(Quantity)과 질(Quality)은 무관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일반론이 사람 잡는다고 무얼 어떻게 딱 규정해 놓게 되면 시시각각으로 변증법의 날개 아래 태어나고 소멸되는 그 많은 변수를 설명해 낼 재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만사는 ‘Case by Case’가 제일인 법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슈베르트의 경우 그의 허락된 삶이 너무 짧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슈베르트의 작품 중에서 남들 다 높이 평가하는 그 향기 그윽한 예술가곡들도 교향곡들도 현악 4중주들도 전부 다 즐겨 듣지 않습니다. 그저 구색 맞추는 정도로 몇 장씩 가지고 있는 게 전부고 공부하는 마음으로 가끔 듣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피아노 소나타들의 아름다움은 탁월한 데가 있습니다. 담백하면서도 깊은 맛이 나고 부드럽고 사람을 한 20여 년 전의 기억으로 쉽게 이끌어 갑니다. 또 하나….아르페지오네도 마찬가지 입니다.
솔직히 첼로는 별로 즐겨 듣는 악기가 아니었습니다. 중얼거리는 것도 같고 변명하는 것 같기도 한 음색도 별로였고 살 찐 바이올린 같은 모양도 마음에 들지 않는 악기였습니다. 남들은 무반주 첼로 조곡의 위대성을 이야기 하지만 제가 그걸 깨닫는 데는 적어도 10종류 이상의 음반과 15여 년의 세월을 필요로 했고 그 전에는 눈이 아플 때 틀어놓고 잠을 청하면 그렇게 잠이 잘 올 수가 없었습니다. 특히 카잘스의 연주는 적당히 낡은 음질이 주는 흑백 영화 보는 것 같은 느낌과 나직한 소리로 인해 낮잠의 훌륭한 동반자였으니 이 조곡을 오래된 선반 위에서 꺼내 갈고 닦아 환갑이 넘어서야 비로소 음반에 옮긴 거장에게는 참 분통이 터지는 일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취향이 그런걸 어떻게 하겠습니까…..앞의 리뷰에서도 한 말 같은데 이 음반도 명반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별로 못 봤습니다. 그러나 첼로도 흐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해 준 것만으로도 이 음반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여깁니다. 요즘 같은 겨울의 약속 없고 식구들도 다 계 모임이나 집들이 가고 조용한 쉬는 토요일 저녁에 향 좋은 스리랑카 산 홍차 두번째로 울궈내 가지고 손에 쥐고 앉으면 오디오에 걸어볼 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피터 비스펠베이는 뛰어난 테크닉과 음악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원전악기로 그 시대의 음악을 연주하는 몇 안되는 뛰어난 연주자의 하나이다. 그의 레퍼토리는 바흐의 작품에서 엘리엇 카터, 카겔, 슈니트케 등 젊은 현대 음악가들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다.
피터 비스펠베이는 1985년 네덜란드에서 가장 유망한 젊은 연주가에게 2년마다 주어지는 엘리자베스 에버츠상을 수상하였으며, 1992년에는 네덜란드에서 가장 권위있는 상인 네덜란드 음악상을 수상하였다. 그는 지난 수년 동안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과 브리튼, 베토벤, 브람스의 소나타 연주를 통해 많은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았다.
피터 비스펠베이는 암스테르담 로얄 콘서트헤보우와의 정기적인 협연을 통해 바로크, 고전, 낭만, 현대 음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레퍼토리를 선보이고 있다. 그는 로마, 밀라노, 파리, 헬싱키, 보스턴, 뉴욕, 멕시코, 비엔나에서 성공적으로 데뷔하였으며, 1994년에는 베를린, 런던, 리옹, 본, 도쿄, 뉴욕, 보스턴, 필라델피아, 몬트리올, 퀘벡 등지에서 리사이틀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피터 비스펠베이는 암스테르담에서 첼로 정격 연주계의 대부라 할 수 있는 안너 빌스마와 딕키 보에케를 사사하였으며, 미국에서 폴 카츠, 영국에서 윌리엄 플리트를 사사하였다. 그는 로이스 샤피로, 로버트 레빈 등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들과 함께 수차례 공연하기도 하였다.
피터 비스펠베이는 정기적인 오케스트라 협연을 통해 드보르작, 엘가, 차이코프스키, 쇼스타코비치, 뒤티에, 이베르, 슈니트케, 하이든, 베토벤, 브람스의 협주곡을 연주하였다. 그는 암스테르담 로얄 콘서트헤보우, 네덜란드 라디오 챔버, 독일 라디오 챔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네덜란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네덜란드 윈드 앙상블, 모스크바 챔버 오케스트라, 서독일 심포니아, 슈튜트가르트 챔버 오케스트라 등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와 협연하였다. 2003년에는 세계 정상의 교향악단 라이프치히 게반트 하우스와 세계 순회공연을 갖기도 하였다.
바흐의 무반주 모음곡과 베토벤, 브람스 소나타, 브리튼 모음곡, 코다이, 크럼브, 에셰 등의 작품이 수록된 그의 CD는 세계 언론의 극찬을 받았으며, 네덜란드 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상을 여러 차례 수상하였다. 피터 비스펠베이는 네덜란드의 레이블 채널 클래식을 통해 앞으로도 계속 음반을 발매할 예정이다. 1995년에는 레저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과 리케티, 힌데미트, 세션 등의 작품을 CD로 출시하였다. 또한 네덜란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드보르작을, 로테르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바르톡의 협주곡을 녹음하였고, 99년에는 비스펠베이는 바흐 무반주 모음곡을 발표해 또 한번 화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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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