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송: 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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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보는 부산국제영화제 다큐멘터리
다큐 최우수상 ‘논픽션 다이어리’ 90년대 통해 현재 조명
올해로 18회를 맞는 '2013 부산국제영화제'가 지난 12일 영화의 전당 야외극장에서 열린 폐막식을 끝으로 10일간의 축제를 마쳤다. 영화제 기간 찾아온 불청객 '태풍 다나스'의 영향으로 축제 분위기가 한풀 꺾이는듯 했으나 올해도 변함없이 20만명이 넘는 영화팬들이 찾아 아시아 최고 영화제의 위상을 굳건히 지켰다. 이 가운데 픽션 영화가 주를 이루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28편의 다큐멘터리가 선을 보였다. 한국, 이라크,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뿐만 아니라 스위스, 불가리아, 콩고 등 다양한 국가의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카메라에 담겼다. 연륜이 있는 베테랑 감독부터 신인 감독까지 각자 개성이 묻어나는 다큐멘터리들이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상업영화 틈바구니에서 화제가 된 다큐멘터리를 소개한다.
한국 다큐멘터리들은 오늘날 우리의 현재를 조명하는 작품들이 주를 이뤘다. 사람들이 거주하는 집을 화두로 그 집에 배어있는 흔적을 통해 분단의 아픔을 겪고 있는 한국 근대사를 조망한 김량 감독의 <경계에서 꿈꾸는 집>,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과 비올리스트 용재 오닐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하모니를 만나볼 수 있는 이철하 감독의 <안녕?! 오케스트라>, 한국 사회 이주노동자들의 풍경을 담은 장률 감독의 <풍경> 등은 현재 우리가 직면한 문제에서부터 역사적으로 치유하고 있지 못한 많은 문제를 각기 다른 시각에서 감독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풍성하게 그리고 감동적으로 풀어냈다.
|  | | ▲ 조성봉 감독의 다큐멘터리 <구럼비-바람이 분다> ⓒ영화 캡처 |
또 사회성 짙은 작품도 있었다. KT노동자로 살고 있는 4명의 중년 아저씨들의 일상을 통해 오늘의 노동 현장을 담담히 비추고 있는 김미례 감독의 <산다>, 경제난과 취업난에 허덕이는 88만원 세대의 다른 가능성을 발견하게 하는 이호재 감독의 <잉여들의 히치하이킹> 등이 그것이다. 또 이홍기 감독의 <순천>은 어촌 마을에 사는 칠순 여장부의 삶을 담아내고 있지만, 그녀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맞벌이 부부로 자식 챙기며 바깥일에 쉴 틈이 없는 현대 여성들의 고단함과 맞닿아 있다.
그중에서도 한국 다큐멘터리 최우수상인 비프메세나상을 수상한 정윤석 감독의 <논픽션 다이어리>는 한국 사회를 경악하게 했던 지존파 사건을 통해 한국 근현대사의 기점에 있었던 1990년대를 반추했다. <논픽션 다이어리>는 지존파 사건을 큰 틀로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사건, 5.18 광주민주화항쟁의 원인을 제공한 이들에 대한 처벌 문제까지 엮어내면서 우리 사회의 법제도와 사형제도, 이어 정치와 권력의 문제까지 유연하게 풀어내면서 2013년 오늘 역시, 그 흐름의 연장선 속에 있음을 환기한 작품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심사위원들에게 한국 현대사의 주요 사건들을 독창적으로 구성해 강한 정치적 메시지를 매끄럽게 전달했다는 평을 받았다.
제주 강정마을 사태를 다룬 다큐멘터리도 화제가 됐다. 탁월한 영상뿐만 아니라 신념을 위해 열정적으로 투쟁하는 시민들을 예리하게 그려냈다는 심사평으로 특별언급 됐던 조성봉 감독의 <구럼비-바람이 분다>는 유구한 자연을 두고, 국가안보와 경제논리가 만나 벌이는 거대한 해프닝을 담아냈다. 이 다큐멘터리는 자연을 그냥 자연으로 두자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이야기가 들리지 않는 사람들을 향해 맨주먹으로 목 터지라 외치는 절규이기도 하다.
|  | | ▲ 정윤석 감독의 다큐멘터리 <논픽션 다이어리> ⓒ영화 캡처 |
이번 영화제에 상영된 아시아 다큐멘터리는 전쟁과 빈곤, 사라져가는 전통과 같이 아시아가 공유해 온 오랜 문제들과 성소수자나 정치적으로 추방된 사람들의 삶을 일상의 관찰과 개인의 기억을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풀어냈다. 비아시아권 다큐멘터리의 경우 다양한 삶의 방식을 보여주지만 마을 공용식당과 세탁실과 같이 사적공간과 공적공간이 교차하는 지역을 배경으로 하거나 중남미의 독특한 양식을 보여주는 색다른 소재들의 다큐멘터리가 눈에 띠었다.
아시아 비프메세나상 수상작인 <거리에서>(다니엘 지브 감독 / 인도네시아)는 인도네시아의 수도 자카르타 거리에서 노래를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버스커’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다. 캐나다 태생인 감독은 10년간 자카르타에 살면서 집필 활동은 물론 여러 인도주의 단체 영상 작업을 해왔다고 한다. 주인공들과의 친밀감과 세 명의 주인공이 만들어내는 드라마의 힘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마음 따뜻한 캐릭터들을 통해 인도네시아의 계급제도를 인간적이며 정중하고 감상에 치우치지 않으며 들여다볼 수 있었다는 심사평을 받았다.
부산시네필상을 수상한 <아버지의 정원>(피터 리슈티 감독 / 스위스)은 감독 자신의 부모님에 관한 이야기이다. 영화는 물음에서 시작한다. 아들인 자신에 대한 그들의 생각에서부터 아버지에게는 어머니를, 어머니에게는 아버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간다. 그리고 카메라를 사이에 두고 그들의 일상을 함께 하기 시작한다. 아버지의 정원과 어머니의 가사일과 같은 평온한 일상은 이 물음에 대한 답들이 펼쳐지면서 점점 깊디깊은 골을 마주하게 된다. ‘가족’이 무엇이며, ‘부부’가 무엇인가를 찬찬히 되묻게 하는 사적이되 전혀 사적이지 않은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이야기가 전개되는 동안 보여줬던 인형극, 도전적인 사운드, 실험적인 쇼트 구성 등 틀에 박히지 않은 여러 형식이 가족이라는 인류보편적인 주제를 위트 있게 재해석한 점이 돋보였던 다큐멘터리다.
|  | | ▲ 이라크의 쿠르드족 학살의 역사를 실험적인 방식으로 재구성한 다큐멘터리 <천 한개의 사과> ⓒ영화 캡처 |
이라크의 쿠르드족 학살의 역사를 실험적인 방식으로 재구성한 작품 <천 한 개의 사과>(타하 카리미 감독 / 이라크)는 1988년 이라크 정부의 인종말살정책인 ’안팔작전’에 관한 다큐멘터리다. 당시 이라크 정부는 18만 2000명의 쿠르드족을 학살하고 매장했는데, 감독은 이 학살의 현장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가 은폐된 역사와 희생자들을 되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을 카메라에 담았다. 정향으로 장식한 사과로 화해와 용서를 청하는 쿠르드족의 풍습에 따라 학살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정향으로 장식한 1001개의 사과를 희생자들의 사진과 함께 유리병에 담아 바그다드로 향하는 강물에 띠운다. 학살자들에게 증오와 복수가 아닌 용서와 화해의 악수를 청하는 다큐멘터리다.
이 밖에도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 수상자인 리티 판 감독(캄보디아)의 <잃어버린 사진>( 올해 칸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대상 수상작), 불가리아의 혼돈된 역사를 한 마을의 작은 테이블에 맛있게 풀어낸 <소울 푸드 이야기>(토니슬라브 흐리스토프 / 불가리아, 핀란드), 227분이라는 긴 상영시간 내내 긴 한숨을 쉬게 한 <광기가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왕빙 / 중국), 나라를 되찾고 싶은 티베트인들의 간절함이 절절히 느껴지는 <아버지의 땅>(텐진 체탄 초클리) 등 아쉽게 수상을 놓쳤지만, 감독의 고뇌와 노력이 묻어난 훌륭한 다큐멘터리들이 부산영화제 곳곳에서 관객들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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