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봉투
-삼십년 월급쟁이 내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류 우 식-
내가 “월급쟁이” 노릇 30년 10개월 22일, 그간에 받은 월급은 모두 372번이나 된다. 달마다 나오는 월급은 한 달 동안의 노동대가로서 봉투 속에다 현찰을 넣어 주었기에 이른바 “월급봉투”라는 말이 생긴 것이다. 월급봉투는 월급쟁이와 그 가족들의 생계가 달려 있고 생활의 밑천이기에 월급쟁이 생활에는 절대적 가치이다. 월급봉투가 유일한 소득원인 바에야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그 봉투가 마음에 찬 것은 아니었으나 그런 봉투마저 만져보지 못한 생활권 밖의 사람들도 참 많은 세상에서 월급봉투라는 것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살아온 나는 퍽 행운이었다. 적은 월급이나마 고맙게 여기며 아끼고 쪼개고 허리띠를 졸라 매며 가계를 꾸려온 아내이기에, 기죽지 않고 부족함을 잘 참아가며 올곧게 자라준 자녀이기에 나는 보통가장으로서 평온하게 살아온 평생이다. 어쨌건 이 월급봉투 덕분이다. 그래서였을까 이 월급봉투를 소중히 차곡차곡 모아두었다. 372장이 되어야 하는데 웬일인지 그 중에 6장이 없어져서 아쉽기 그지없다. 어째서 일까, 아무래도 정성이 흐렸던 탓일까?
이 봉투는 내 젊은 시절 절절한 애환이다. 30 년이 넘는 공직생활의 적나라한 내 발자국이고 그 긴 세월 속에 고스란히 녹아있는 내 삶 바로 그것이다. 급여액과 그것을 구성하는 내용 등의 급여의 변천은 물론 세금을 비롯한 공과금의 형태와 액수, 부조금 동호회 활동 심지어 식대 등 등 직장의 분위기도 생생하게 얘기해 주고 있다. 봉급이 오를 때마다 봉투 뒷면에다가 퇴직금을 미리 가늠해 보는 산식과 계산된 액수가 빽빽하게 적혀 있기도 하다. 퇴직금 계산액을 확인하고 무엇을 느꼈을까? 혹은 서글픔 혹은 작으마한 자위감 같은 것이었을까?
월급봉투에는 그달의 봉급액이 적혀있고 공제액과 실수령액을 알려준다. 월급의 전산화가 이루어지기 전까지의 봉투에는 관련항목을 직접 또는 별지에다가 등사판을 대고 밀어서 미리 인쇄하여 놓고 해당사항을 깨알처럼 일일이 수기(手記)하였기에 정감이 넘쳐났다. 뿐만 아니다. 그 봉투의 모양새는 나라살림살이 형편도 보여준다. 어떤 것은 지질이 매우 안 좋은 노랑색이고 어느 때는 그것조차 없어서 우편물 발송용 허름한 것을 쓰기도 한다. 그러다가 1970년대 후반기에 들어서면서 정부에서 월급봉투 전용으로 조달청 조달물품으로 만들어서 썼는데 “버리면 휴지되고 모으면 자원 된다”는 표어를 붙여서 봉투 종이때기를 자원으로 다시 쓰자는 선장문구가 찍히고 “절약하면 부강한 나라” “쓰고 나서 후회 말고 쓰기 전에 절약하자”며 경제개발시대에 국민자본 형성을 위한 국가정책의 한 단면을 보는듯하여 40년 이전으로 돌아가며 온 국가가 혼연 일체로 전력투구하던 시절을 회상하게 된다. 또 어떤 것은 “정직 질서 창조”라는 표어를 붙여 국민의 공복으로서의 공무원의 자세를 강조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봉급지급의 계산시스템을 전산화시켜서 전산이 공직사회의 업무중심에 자리 잡게 됨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다가 월급을 공무원 본인으로부터 그의 가족에게로 돌려주는 사회의 변화현상을 보게 된다. 곧 월급을 봉투에 담아 현금으로 그 개인에게 지급하는 형태로부터 은행통장에 바로 입금시키는 방법으로 바뀌는데 그 때가 1984년 7월부터이다. 그 때는 참으로 허전했었지. 현찰이 든 묵직한 월급봉투 대신에 빈껍데기만 받았으니 월급날이 월급날 같지가 않고 오히려 무언가 빼앗기는 날이 되고만 것이었다. 월급날이면 마음 든든하여 한껏 기분이 고조되어 집에 가서 봉투 내밀며 가장으로서의 권위랄까 뭐 그런 것 좀 부려보는 재미를 빼앗기고 만 것이었다.
그런 월급봉투! 나 국가공무원 재정직 5급을류(재경서기보)의 첫 월급봉투 1967년 8월분은 수령액 5,438원이었다. 그 액수는 온전한 한달이 못되고 일할계산으로 공무원 임명일로부터 처서 24일분일 것이다. 봉투에 적힌 그 수령액 글자는 눈을 감아도 선명히 눈에 박혀 나오곤 했다. 금방 찢어 질것만 같은 지질이 나쁜 노랑 종이봉투 탓도 아니고 잉크를 찍어서 철필로 쓴 글씨의 특이성 때문도 아니다. 첫 월급, 나의 땀 나의 정념 어찌 보면 내 인격의 가치가 처음으로 경제가치로 환치되어 형상화하는 그런 수치이기 때문이리라. 다음 달 한달 온전한 월급은 수령액이 7,780원이었고 공제액 중 구내 이발소의 이발요금이 40원 이었으니 물가를 짐작하는데 참고가 될 것 같다. 봉급 수령액이 1만원이 넘어 선 것은 1968년 4월(10,012원)이다.
월급봉투의 공제내역이 참 재미로운 것도 의외의 것도 있다. 예를 들면 사무실에서 보조인력을 쓰면서 직원들이 개인 주머니를 털어서 그 보수를 지급한 것이다. 공무를 집행하는데 필요한 보조인력을 공무원 개인들의 공동 염출로 충당하다니 상식으로 통하지 않는 일이 아닌가! 또 “제2경제”라는 명목으로 1968년 9월부터 매달 30원을 공제하여 국가가 경제건설 기금조성을 위하여 공무원들에게 공권력을 작동시켜 의무적으로 납부케 하였는가하면 정부미 쌀을 정부가 공무원에게 판매하여 월급에서 공제하였는데 곡가조절 내지 정부미 소비를 목적으로 공무원들을 활용한 경우이다.
그래서 여러 가지 의미에서 이 월급봉투는 내 직장생활에서 가장 적나라한 족적이고 살아 있는 역사인 것이다. 아들 평우가 나의 이 월급봉투 정리하는 것을 보더니 “우리 집 가보네요”라며 봉투 하나하나를 매우 진지하게 들여다본다. 첫 월급 5천여원을 확인하면서 호기심 섞인 웃음이 얼굴에 가득하다. 아마도 화폐가치를 현재의 것과 비교하지는 못하겠지만 ‘애개개 이렇게 적어...’ 하는 것만 같다. 비교적 풍요를 구가하는 현대를 살아가는 젊은 아들 평우의 호기심을 읽으며 인생 연륜의 흐름, 사회 국가의 변화발전을 이 월급봉투를 통해서 깊이 있게 느껴주기를 기대한다. 월급봉투를 정성스럽게 비닐 파일에 하나하나 끼워 넣으며 나름대로 깊은 사념에 사로잡힌다. 이 월급봉투가 길이 보존되어, 이것들이 하나하나 모아지면서 나 남구/嵐丘의 가정이 형성되었고 가꾸어 졌으며 이것이 한 사람의 삶이였음을, 가장 평범하게 살아온 삶의 표본이었음을, 달리 꾀부리지 못하고 가장 가늘게 살아온 그 긴 여정이 이런 것이었음을 가만가만 속삭여주었으면 한다. 이제 와서 생각하니 젊음이 있었기에 행복이었고 그 행복은 내가 만든 것이 아니라 바로 가족이 함께 만들었음을 다시금 생각하며 깊은 고마움을 보낸다. 아울러 늦었지만 나라에도 그때는 몰랐던 진한 감사의 마음을 이제 와서야 바친다.
첫댓글 신변정리를 하면서 이것 저것 만지다가 월급봉투 정리를 하는데 옛날이 생각되어 적어 보았습니다.
류우식님! 참으로 감명깊은 내용이었습니다. 류형같은 분이 공직에 계셨기에 이나라가 존재했구나하는 감회를 갖게합니다. 생의 애환이 고스란히 담긴 월급봉투를 보는 아이들에게 무슨 교육이 따로 필요하겠습니까? 좋은 유산인데 그렇게 하지못한 제자신이 부끄럽습니다. 제 과거를 회고반성해 볼수있는 좋은 교훈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월급봉투(봉급명세서)는 한 개인의 또다른 이력서나 마찬가집입니다. 이것들을 잘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이 이외로 많다는 것은 이 봉투속에 자신의 희로애락이 그대로 담겨있기때문일 것입니다. 뜻깊은 글 잘 읽었습니다.
잊어버리고 살았던 지난 공직생활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갑니다. 공감이 가는 훌륭한 글 잘 읽었습니다.
월급봉투를 읽으면서 내가 걸어온 길이 그위를 그대로 투영하네요 참 좋은 자료 보존하셨읍니다 틀림없이 가보가 될것입니다
비슷한 시기에 공직에 들어 왔던 저로서도 첫월급을 얼마였지 생각했는데 역시 4천여원을 받았군요. 다시 한번 어려웠던 때를 생각하게 됩니다.
어쩌면 가보(家寶)제1호인 월급봉투 366매를 공개경매에 붙일 의향은 없습니까. 아마도 파격적인 가격으로 낙찰되리라 봅니다. 축하합니다.
작은 월급이었지만, 그 월급이 우리가정을 지탱해주고 지금의 내가 있게했기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좋은 글을 잘 읽었습니다.
대단합니다. 할말이없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래도 월급봉투받아 안주머니에 넣고 부듯한마음으로 집에 가던시절이 그립습니다.
격변시대를 살아온 우리 공무원들의 월급봉투 | 한개인의 유물이아니라 우리공무원들의 유물로 국가기록원으로 보내어 보존하느것이 어떨까요?
저에게도 모아 놓은 월급봉투를 어떻게 처분할까 했더니 가보로 넘기면 되겠습니다. 월급봉투 처분방법을 알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선배님 월급봉투 잘 읽어습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한공수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