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롱 신자라는 말이 있다. 아프지도 않으면서 공갈, 보험금 혹은 그냥 휴가 등의 목적으로 병원에 입원한 사람을 은어로 나이롱 환자라 부른다. 나이롱 신자는 여기서 파생된 말이다. 즉 믿음도 없으면서 종교 활동을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 나이롱 신자는 목사에게는 피해를 줄지 모르지만 타인에게나 사회에는 아무 피해를 주지 않는다. 그러나 교회가 나이롱이 될 때는 문제가 심각하다. 한국에서 반기독교 정서가 점점 만연하는 것은 바로 이런 나이롱교회 때문이다.
외국에 살면 한국 달력이 귀해서 질을 따질 처지가 되지 못해서 아무 것이나 생기는 데로 걸어 놓을 수밖에 없다. 우리 집에는 어떻게 내 손에 들어왔는지 모르지만 달력이 아닌 3개월 치가 한 장에 나와 있는 ‘분기별력’인 CTV라는 기독교계 TV 방송국에서 만든 달력이 걸려 있다.
그런데 그 달력에 있는 사진을 보니까 그 사진들이 내 생각으로는 예수가 없을 만한 곳만 골라 찍은 것만 같다. 왜냐하면 유명한 목사들의 행사 사진, 대규모 집회, 화려한 성가 경연 대회 등 무늬만 예수표인 행사 사진들이었을 뿐 정작 성경에 예수가 있겠다고 했던 곳 고아와 과부가 있는 곳, 갇히고 배고픈 자들이 있는 곳인데 그런 곳은 한 군데도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그 달력을 보면서 어느 날 문득 ‘아! 이 달력이야 말로 바로 한국교회의 수준을 말해 주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나이롱 교회의 모습들이다.
호주는 일 년에 한번 크리스마스 때 교회에 가는 것을 포함해서 정규적으로 교회에 출석한다는 사람이 9% 밖에 되지 않고 주일마다 교회에 가는 사람은 5% 밖에 안 된다. 복지 제도가 잘 되어 있다고 세계가 부러워하는 스칸디나비아 반도는 정규적 예배 참석율이 2%이다.
이런 모습을 보고 흔히 무식이 하늘을 찌르는 한국 목사들이 ‘서구 교회는 죽었다’고 떠들어 댄다. 사람의 몸으로 따지자면며 서구교회는 왜소하기는 하지만 건강하다. 허우대가 멀쩡하지만 체질이 허약하고 속으로 곪은 것은 한국 교회이다.
호주에서는 아직 기독교 방송도 아닌 공영방송에서 한국 같으면 수준 높은 신학대학에서나 있을 법한 강연과 토론이 자주 나온다. 영국의 BBC는 방송 편성 규정에 의거 매년 일정 시간 이상의 종교 관련 프로그램을 방영하도록 되어있다. 그러나 지난 20년간 BBC의 전체 방송 시간은 2 배 이상 늘었음에도 불구하고, 1988년 총 177시간이었던 종교 관련 프로그램이 2008년에는 155시간으로 오히려 줄어든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종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줄어드는 것을 반증한다.
한국에 있을 때 한 번은 CBS의 최장수 간판 프로그램인 ‘새롭게 하소서’ 담당 PD에게서 전화가 왔다.
누구에게 어떻게 소개를 받았는지는 모르나 방송에 한 번 출연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내가 하는 일은 그 프로그램의 성격에 맞지 않을 것 같다.’고 정중하게 사절을 했더니 PD가 오히려 놀라서 ‘방송출연을 사양하는 목사님은 처음 본다.’ 고 했던 기억이 있다.
사실은 나는 사양을 한 것이 아니고 내가 하는 빈민운동의 깊은 뜻을 ‘새롭게 하소서’ 정도의 감상적인 수준의 방송에서 설명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완곡하게 표현한 것이었다.
인류에게 나일론은 한 때 ‘기적의 섬유'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나일론은 선호가 아니라 기피하는 섬유이다. 나일론 보다는 순모, 순면을 더 선호하는 시대가 되었다. 한 마디로 나일론은 인공적으로 '섞은 것'이다. 그런 까닭에 언제나 인간들이 필요에 따라 섞지 않는 원시적인 예수의 모습을 찾는 일이 절실하다. 유독 예수에다가 자기의 정치적인 신념이나 유익을 섞어서 써먹는 사람들이 많아서 어서 나이롱 기독교가 되는데 큰 일조를 하고 있다. 이명박, 문창극, 최근에 적십자 총재로 낙하산을 타고 내려온 김성주 등등. 제발 예수를 좀 가만 놓아두었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