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과 몸의 함수 관계 220호
마음과 건강의 함수 관계 마음은 매우 신기한 것입니다. 마음은 사람 전체를 통제합니다. 마음과 몸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는 매우 밀접합니다. 마음의 상태는 건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하나가 영향을 받으면 다른 하나도 그것에 교감합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건강해야 몸이 건강하고,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 영성있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다. 건강한 신체와 인격 속에 바른 신앙과 믿음이 깃들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세대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기 위해 이러한 분야를 깊이 이해하고 있는 것은 중요합니다. 이번 호 신앙 기사에서는 마음이 건강과 영성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이 기사가 하나님의 영이 기쁘게 거하실 수 있는 건강한 몸과 마음을 갖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생애의 빛 편집실
마음이 아프면 몸도 아프다 제1부 마음이 아프면 몸도 아프다
마음과 육체 간에 존재하는 관계는 매우 밀접하다. 마음이든 몸이든 그 중 하나가 병에 걸리면 다른 하나가 동정하게 된다. 신기할 정도로 몸과 마음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마음이 아프면 몸도 아프다. 마음의 상태는 우리의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친다. 질병이 도처에 만연하고 있다. 그런데 원인을 깊이 분석해보면 인류를 고통스럽게 하는 질병의 대부분이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세상에는 정신적으로 병이 들고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그 질병들은 마음의 건강을 회복함으로써만 치유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므로 먼저 마음에 병이 들지 않도록 하는 것이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지름길이다.
1) 마음이 몸에 끼치는 영향 의학에는 “심신증”이라는 병명이 있다. “심신증”은 영어로 “Psychosomatic disease”라고 불리는데, 이것은 마음의 병이 몸의 질병으로 이어진 것을 가리키는 말로, 심리적인 스트레스나 심리적인 긴장상태가 원인이 되어 일어나는 신체의 질환을 말한다. 예를 들어, 걱정되는 일이나 어려운 일로 신경을 많이 쓰거나 낙담했을 때 복통이나 설사, 변비, 구토 등이 일어나고 위나 장의 상태가 나빠지는 경우가 생기는데, 이런 현상을 심신증이라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경우 위장 기관을 아무리 조사해 보아도 검사 소견상으로는 아무 이상이 없을 때가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증상은 일어난다. 이것은 전형적인 심신증의 증상이다. 이 때에 이것을 질병이 아니라고 무시해버려서는 안된다. 이것은 마음에 병이 들었다는 증거이며, 아픈 마음이 영향을 미쳐서 몸이 아프게 된 질병이기 때문이다. 심신증, ‘사이코소매틱스’라는 용어는 1818년 독일의 “하인로드”에 의해 처음으로 정립됐지만, 더 오래 전부터 마음과 질병과의 관계는 관심을 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그 정확한 메커니즘에 대해서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다만 정신이 신경계와 내분비 호르몬계, 면역계 등에 영향을 미쳐서 그렇게 된다고 짐작만 할 뿐이다. 그런데 최근에 이러한 짐작을 뒷받침하는 연구 발표가 있었다. 영국 버밍엄 대학의 “재닛 로드” 박사는 슬픈 마음에 따르는 스트레스와 우울증이 폐렴 같은 박테리아 감염과 싸우는 백혈구의 기능을 방해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슬픈 일을 당하거나 배우자와의 사별 등으로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으면 면역체계가 약화될 수 있다는 사실을 실험 결과를 통해 밝혀낸 것이다. 로드 박사는 1년 동안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등 깊은 슬픔을 겪은 65세 이상 48명을 대상으로 혈액검사를 한 결과, 그런 경험이 없는 사람에 비해 백혈구의 항박테리아 활동이 크게 줄어든 것을 발견했다. 슬픔과 스트레스를 겪은 사람들은 또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솔의 혈중수치가 크게 높았다. 코티솔은 호중구의 활동을 억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면역체계란 세균이나 암세포와 싸우는 우리 몸의 자기방어체계이다. 그러므로 마음의 아픔과 병으로 인해 생기는 스트레스와 우울증이 면역체계를 약하게 만들어 폐렴이나 암을 발생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고보면 한국에서 명명된 “화병”이 모든 병의 근원이라는 말이 틀린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2) 성경이 말하는 심신증
성경은 마음에 문제가 있을 때 그것이 몸에 어떻게 문제를 일으키는가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즉 마음의 기쁨과 즐거움이, 그리고 마음의 슬픔과 괴로움이 우리 몸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잠 17:22).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잠 15:13).
1. 성경에 나타난 엔돌핀 성경은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며 얼굴을 빛나게 한다고 말하고 있는 반면, 마음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 사실은 의학적으로 현재 익히 증명된 사실이 아닌가? 벌써 오래 전부터 성경은 그 진리를 말하고 있지 않은가? 마음의 즐거움은 정말 양약일까? 마음이 기쁘고 즐거울 때 인간의 뇌에서는 엔돌핀이 분비된다. 엔돌핀은 뇌에서 분비하는 호르몬 가운데 가장 긍정적인 효력을 발휘하는데, 그 중에서 특히 베타 엔돌핀은 면역력을 높여주는 효과가 뛰어나며 세균에 의해 감염된 질병이나 바이러스에 의한 질병, 심지어 에이즈와 같은 병에도 강한 저항력 발휘하게 한다. 엔돌핀은 몰핀같은 마약처럼 쾌감을 일으킬 뿐만 아니라 노화를 방지하고 인체의 자연치유력을 높여주는 약리효과도 있다고 한다. 면역세포에 활력을 주어 저항력을 강하게 하고 혈관신경계의 질환 등 성인병에도 놀라운 효과를 발휘하는 것으로도 밝혀졌다. 그런데 문제는 엔돌핀이 체내에서 생성되는 것에는 마음의 상태와 깊은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마음이 기쁘고 즐거우면 엔돌핀이 많이 생성되지만, 우울하고 속상하면 엔돌핀과 정반대의 효과를 내는 아드레날린이 생성된다. 엔돌핀의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즐거운 마음, 유쾌한 생각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성경은 벌써 고대에 이 사실에 대해 증명하고 있었던 것이다. 2. 성경이 말하는 아드레날린 성경은 마음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한다는 표현을 하고 있다. “뼈가 마른다”는 의미가 무엇인가? 뼈에서는 무엇이 만들어지는가? 신체의 뼈 골수에서는 혈구세포, 즉 적혈구와 백혈구 등이 만들어진다. 특히 백혈구는 세균을 잡아먹는 식균작용을 하는데, 세균 감염 등으로부터 신체를 보호하는 면역세포로서 우리 몸의 면역력과 깊은 관계가 있다. 그러므로 뼈가 말라서 제대로 기능을 못할 때 우리 몸에 면력세포 수가 감소하고 면역력이 떨어지게 되어 질병이 발생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이렇게 성경은 벌써 오래 전부터 심령의 근심이 몸을 병들게 한다는 진리를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엔돌핀과 반대되는 물질이 아드레날린이다. 이것은 인체의 교감신경계가 자극을 받을 때 부신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이다. 이 호르몬은 인체가 위기나 급박한 상태에 잘 적응하게 하는 물질이지만,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거나 근심과 걱정이 과하게 되면 아드레날린이 몸에서 많이 분비된다. 아드레날린은 심장을 빠르게 뛰도록 흥분 시켜 심장박동이 올라가게 하고, 혈당과 체온을 올라가게 한다. 그래서 고혈압과 중풍과 당뇨병의 원인이 되기도 하며, 아드레날린에 의해 유전자 세포가 손상을 받을 때에는 노화가 빨라진다고 한다. 혈류량을 증가시키지만, 정작 내장, 소화기관이나 배설기관으로는 평소보다 피가 적게 흐르게 하여 위장기관에 이상을 일으키고 몸의 저항력을 저하시킨다. 과도한 근심이나 스트레스, 마음의 고통과 시험과 죄책감 등은 우리 몸에서 아드레날린을 분비시킨다는 사실을 성경은 곳곳에서 말해주고 있다.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물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시 32:3,4). “나의 괴로운 날에 주의 얼굴을 내게 숨기지 마소서. 주의 귀를 기울이사 내가 부르짖는 날에 속히 내게 응답하소서. 대저 내 날이 연기 같이 소멸하며 내 뼈가 냉과리 같이 탔나이다. 내가 음식 먹기도 잊었음으로 내 마음이 풀 같이 쇠잔하였사오며 나의 탄식 소리를 인하여 나의 살이 뼈에 붙었나이다”(시 102:2~5). 이 성경절들에는 마음의 괴로움이 몸에 끼치는영향들에 대해 표현하고 있다. 그러므로 질병의 대부분의 원인은 마음과 정신적인 고통에서 온다는 사실을알 수 있는 것이다. 슬픔, 걱정, 불만, 후회, 죄책감, 불신 이런 것들은 생명력을 저하시키고 건강의 쇠약과 질병을 초래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과 육체의 건강의 함수관계를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3) 마음의 건강을 진단하라
앞에서 우리는 마음이 육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마음은 몸의 수도이다. 신체의 모든 기관은 마음의 종이다. 마음은 사람 전체를 통제한다. 그러므로 마음이 건강해야 육체도 건강하고 그 사람의 인격과 품성도 건전하고 바람직 한 것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마음의 건강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항상 마음이 건강한 상태로 보존될 수 있을까?
1. 친숙한 것에 의해 꼴지워지는 마음의 법칙 인간의 마음을 창조하시고 그 법칙을 정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마음이 그 법칙과 일치되게 발달하도록 만드셨다. 그렇다면 마음의 법칙이란 무엇인가? 우리의 마음은 신비하다. 마음은 친숙한 것, 가까이 하는 것의 특징들에 동화된다. 마음은 명상하고 생각하고 바라보는 것을 닮아간다. 마음은 명상하도록 훈련을 받은 주제를 점점 닮아가며 성장해 나간다. 그것이 마음의 법칙이다. 그러므로 마음이 건강하기 위해서는 건전한 주제를 생각하고 그것을 바라보고 생각하면 된다. 바라봄으로 변화되는 것은 지적 본성의 법칙일 뿐 아니라 영적 본성의 법칙이기도 하다. 마음은 습관적으로 사랑하고 존경하는 것에 동화된다. 사람은 자신이 세우고 가지고 있는 표준 이상으로 향상할 수 없다. 자신이 최고의 이상으로 삼는 것, 선망하고 좋아하는 것들에 의해 꼴지워진다. 그러므로 마음의 건강을 살펴보려면 마음이 바라보고 있는 것들, 자신의 마음을 꼴지우는 것들, 마음에 영향을 끼치는 것들이 무엇인가 자신의 마음을 살펴보는 것이 우선이다. 그리고 그것이 마음의 건강에 유익과 힘을 주는 것이라면 괜찮지만 만일 그것이 마음의 건강에 해를 끼치는 것이라면 버려야 할 것이다. 만일 당신이 건강한 마음과 몸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면 오늘 당신의 주위를 살펴보라! 당신의 마음을 점령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분석해 보라! 그러면 마음의 건강을 진단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마음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의 마음을 좋은 것으로 채워야 한다. 좋은 영향을 주고 선한 소원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드는 것으로 채워야 한다. 그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우리에게 생명의 힘과 능력을 주시는 사랑의 예수님이시다. 당신은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분을 마음에 닮고 그분을 가까이 하며 예수님처럼 꼴지워지고 있는가?
2. 마음이 가지고 있는 선택의 힘 마음에는 선택의 힘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선택의 능력을 주셨다. 그러나 그것을 활용하는 것은 우리가 할 일이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 없고, 우리의 생각과 욕망과 애정을 지배할 수 없다. 우리는 자신을 순결하게 하여 하나님과 조화되게 만들 수 없다. 그러나 우리의 의지를 그분께 드릴 수는 있다. 우리는 우리의 의지와 마음을 하나님께 순복하고 바쳐야 한다. 만일 우리가 주님을 선택하면 주님게서는 그의 기쁘신 뜻에 따라 우리 안에서 역사하실 것이고, 우리의 마음 전체가 주님의 뜻과 지배 아래 놓이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평안과 기쁨과 행복을 누리게 될 것이며 마음은 건강해 질 것이다.
제2부 하나님의 치료제 하나님의 치료제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살전 5:23). 우리의 영과 혼과 몸 전체가 강건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몸과 마음과 영이 건강하게 될 수 있는 모든 방법과 치료제를 다 가지고 계시다. 원하기만 하면 우리는 언제든지 그 치료제를 하나님께로부터 값없이 얻을 수 있다. 우리는 항상 행복하고 기쁜 마음을 가질 수 있으며 그런 건강한 마음의 상태는 육체의 건강을 불러올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의 건강을 위해 준비해 놓으신 치료제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1) 기도
우리의 인생 길에는 행복하고 기쁜 일만 일어날 수 없다. 더구나 사단이 지배하는 죄악 세상에서는 더더욱 그럴 수 없다. 우리의 삶 속에는 묘하게 슬픔과 기쁨과 행복과 불행과 즐거움과 고통이 씨줄과 날줄처럼 얽혀져 짜여 있다. 우리가 초래했든지 초래하지 않았든지를 막론하고 고난과 근심과 걱정은 불시에 우리를 방문한다. 그 때에 그것을 어떻게 처리하는가에 따라 마음과 몸의 상태는 확연한 차이가 나타난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모든 걱정과 염려를 신앙과 믿음을 통해 잘 처리하므로 마음과 육체의 건강을 크게 상하지 않는 반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불안과 걱정 근심에 시달리게 되므로 마음의 건강은 물론 육신의 건강을 크게 해치게 된다. 그렇다면 그런 확연한 차이를 빚어내는 요인이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치료제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는지 그렇지 않은지의 여부에 달려있다. 하나님의 효과적인 치료제는 첫번째 기도이다. 기도가 무엇인가? 기도는 우리의 사정을 하나님께 아뢰고 알리는 것이다. 그리고 하늘로부터 도움을 구하는 것이다. 기도는 마치 친구에게 하는 것처럼 하나님께 우리의 심정을 펴 놓는 것이다. 우리의 소원과 기쁨과 슬픔과 염려와 두려움을 하나님 앞에 다 내어 놓는 것이다. 기도가 어떤 치료효과를 가져오는 가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보고가 나와서 흥미를 끈다. 미국 텍사스 대학교 “제임스 페네베이커” 박사는 우리 안의 녹음파일을 재생해 타인에게 풀어낼 때, 다음과 같은 신체 반응이 나타난다는 연구 결과를 이렇게 발표했다. “털어놓기는 백혈구와 T임파구 같은 면역 기능에 상당한 효과가 있고, 혈압, 심장 박동률, 피부 전도, 뇌파, 병원 출입일수에도 큰 효과가 있음을 확인하였다.” 미시간대학교의 “콥” 교수 또한 “심리적 상처를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가 많을수록 슬픔이나 질병,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였다. 우리는 하나님께 우리의 괴로움을 “털어놓기” 자체만으로도 마음의 안위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비단 그 뿐인가? 아니다! 자비롭고 사랑이 많으시고 우리의 머리털까지 세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들의 요구에 대해서 무관심하지 않으시다.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자시니라”(약 5:11).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은 우리의 슬픈 일을 보거나 그 슬픈 일에 대한 말만 들어도 민망히 여기시고 동정하시며 불쌍히 여기신다. 우리의 마음을 번뇌하게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털어놓더라도 그가 감당하시기에 과중한 것은 없다. 아무리 복잡한 문제라도 그가 풀기에 너무 어려운 것도 없다. 그분의 자녀 중에 지극히 작은 자가 당하는 어떤 재난이나, 심령을 괴롭게 하는 어떤 근심이나, 기분을 좋게 하는 어떤 기쁨이나, 입술에서 새어 나오는 어떠한 기도라도 우리의 천부께서 못본체 하시거나 관심을 두시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 하나님은 “상심한 자를 고치시며 저희 상처를 싸매시는”(시 147:3) 분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위로해주실 뿐 아니라 우리의 짐을 가져 가시고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신다. 우리는 기도하므로 우리의 괴로움과 스트레스를 주님께 내려 놓을 수 있다. 그럴 때에 우리는 우리의 짐이 가벼워짐을 느끼며 하늘의 평화가 임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고통과 슬픔이 찾아 올 때마다 쉬지 말고 기도하자! 기도야말로 마음의 건강을 위해 꼭 필요한 하나님의 치료제이다. 우리는 믿음으로 기도하고 조금도 의심하거나 염려하지 말고 주님께 모든 것을 맡겨야 한다. 기도는 마음의 건강을 유지하게 하는 가장 효과적인 첫번째 치료제이다.
2) 용서
과거의 잘못에 대해 후회하고 부끄러움과 수치를 느끼는 것, 자신을 책망하고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며, 불만, 후회, 죄책감 등의 감정을 갖는 것은 마음의 건강 뿐 아니라 육신의 건강에 매우 해롭다. 이런 것들은 인간의 생명력을 파괴시키고 건강의 쇠퇴를 초래한다. 예수님이 고쳐준 중풍병자는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심령과 육체를 모두 고침받았다. 육체적 치료와 영적 치료를 함께 받은 것이다. 육체적 질병으로 고통을 당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 중풍병자 처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는 기별을 듣기를 원한다. 죄의 불안과 채워지지 않은 욕망, 그리고 죄의 짐이 많은 질병의 기초가 되고 있다. 죄책감에서 해방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후회와 자책의 감정은 마음을 병들게 한다. 만일 그대 자신이 악한 죄인이라고 느낀다면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하다. 죄책감을 갈바리의 십자가 밑에 내려 놓으라! 죄책감으로 인해 생명과 참된 행복의 샘에는 독이 퍼졌다. 만약 그대가 쓰러져 있다면, 다시 머리를 들고 그대 자신과 그대의 죄에서 시선을 돌이켜 높이 들리신 구주를 쳐다보라! 죄의 독사에게 물린 것을 보지 말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쳐다보라!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내게 내려 놓아라. 내가 네 죄를 질 것이다! 내가 네게 평화를 주리라! 더 이상 네 자존감을 해치지 말라. 너는 내 것이다! 내가 너를 내 피 값을 주고 샀기 때문이다. 약해진 네 의지를 내가 강하게 하리라. 네 죄책을 내가 제거해 주리라!”고 하신다.
그러므로 불안에 떠는 마음을 돌려 주님이 주시는 희망을 굳게 붙잡으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받아 주신다. 그분은 값없는 용서를 제공하시며 은혜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겠다고 말씀하신다. 만일 그대가 주님의 손을 붙잡고 주님이 이끄시고 인도하시도록 허락한다면, 사랑의 주님께서는 그대를 한걸음 한걸음씩 계속 인도하실 것이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용서하신다. 우리의 어떤 죄라도 용서하시면 우리의 어떤 상태라도 받아주신다. 용서는 그리스도께서 나누어 주시는 사랑의 생명력이다. 용서하시는 주님의 사랑은 인간의 뇌, 심장, 신경 등과 같은 모든 부분을 치료의 손길로 어루만진다. 이것은 생명력을 파멸시키는 죄책감과 슬픔, 근심과 걱정에서 심령을 해방시켜 준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찌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찌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 사 1:18). 주님의 약속을 믿는가? 용서받은 사람의 마음에는 평온과 안정과 행복감이 찾아온다. 그것은 세상의 그 어떤 것도 파괴할 수 없는 기쁨, 곧 성령 안에 있는 기쁨, 건강을 주고 생명을 주는 기쁨을 마음 속에 심어 준다. 예수님의 용서와 사랑 안에서 얻는 안식은 그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다. 하나님의 용서를 받고 죄책감에서 해방되는 것은 마음의 병을 치료받는 지름길이다.
3) 걱정을 버리고 믿음
마음의 건강을 해치는 요인 중에 하나는 지나친 염려와 근심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미래에 대해, 혹은 일이 잘못되지 않을까, 혹은 여러 가지 다른 걱정과 근심으로 끊임없이 두려워하고 애를 태운다. 미리 빌려 온 염려와 지나친 걱정으로 스트레스를 받아 건강을 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많은 경우 현재의 필요가 채워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장래 때문에 걱정하는 경우가 많다. 걱정과 근심이 많다는 것은 믿음이 없다는 증거이다. 어떤 사람들은 항상 불행을 예상하거나 실제로 존재하는 어려움들을 과장하여 생각함으로 눈이 어두워져서 감사해야 할 많은 축복을 보지 못한다. 그들이 만나는 장애물들은 모든 힘과 능력의 유일한 근원이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도록 이끄는 대신에 그분에게서 떨어져 나가게 한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불안과 불평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에 관하여 지나치게 걱정하게 되면 연약해지고 병을 일으키게 된다. 침체되고 우울한 생각은 항상 마음의 건강을 해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것은 마음을 건강하게 하는 지름길이다. 성령을 근심하게 해서는 안 되며 모든 염려와 근심을 버리고 주님을 믿어야 한다. 예수께서는 “염려하지 말라”(마 6:25)고 말씀하셨다. 주님은 우리의 모든 필요를 아신다. 생명을 주신 분께서는 그것을 유지하기 위하여 음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시며, 몸을 창조하신 분은 의복의 필요성에 대하여 무관심하지 않으시다. 아침 이슬을 맞아 생기를 머금은 꽃들을 가리키시며, 예수께서는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고 하셨다. 길가에 있는 꽃 하나 하나도 하늘의 별 세계를 움직이는 바로 그분의 능력 덕택에 존재한다. 들의 꽃들은 그분의 손에 의하여 지금껏 세상의 그 어떤 임금이 입은 것보다 더욱 아름다운 옷으로 입혀진다. 그러므로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백합화를 생각하여 보라 새를 보라”고 말씀하시는 분은 꽃을 지으시고 참새에게 노래를 주신 분이시다. 하나님께서는 백합화의 꽃잎 위에 그대를 위한 기별을 불신과 이기심과 해로운 근심을 버릴 때만 읽을 수 있는 말로 기록해 놓으셨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한 당신의 애틋한 마음을 알려 주시기 위해 땅과 공중과 하늘을 아름다운 것으로 채우셨다. 그분께서 그대의 행복과 기쁨을 위하여 천연계 위에다 이처럼 솜씨를 유감없이 발휘하신 것을 안다면 그분께서 온갖 필요와 축복을 그대에게 주실 것을 의심할 수 있겠는가? 주님께서는 우리 각 개인의 이름을 아시며, 사랑하는 독생자 아들을 마치 그 한 사람을 위해서 주신 것처럼 각 사람을 돌보신다. 하나님의 사랑은 너무나 크고 무한하시므로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신다. 만일 우리가 더 많은 믿음, 더 많은 사랑, 더 큰 인내, 우리 하늘 아버지에 대한 더욱 완전한 신뢰를 갖도록 스스로를 교육시킨다면, 이생의 투쟁들을 통과할 때에 더욱 큰 평강과 행복을 얻게 될 것이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불평하고 염려하여 그분의 팔에서 떠나가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요 4: 18)을 것이라고 그분은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관심을 갖고 계신다는 것을 믿으면 우리는 불필요한 걱정을 하지 않게 될 것이다. 우리의 생애는 지금처럼 슬픔으로 가득 차 있지 않을 것이다. 크건 작건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손에 놓일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많은 걱정 때문에 결코 압도당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우리의 모든 염려를 감당할 만큼 충분히 강하시다. 우리가 주님을 신뢰하고 믿고 모든 것을 맡길 때에 우리는 마음의 화평을 누리게 될 것이다. 불리한 상황들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끝까지 믿고 그분의 사랑 안에서 평안히 쉴 때에, 우리는 그분께서 함께하신다는 느낌으로 깊고 조용한 기쁨을 느끼게 될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친구이시다. 온 하늘은 우리의 행복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근심과 두려움은 하나님의 성령을 슬프시게 한다. 우리는 초조하게 하고 피곤하게 만들 뿐, 시련을 견디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근심과 걱정에 빠져서는 안 된다. 우리는 그분의 말씀을 마음에 품고 그분의 약속들을 믿으며 낮에는 그것들을 되풀이하고 밤에는 그것들을 묵상하도록 하자! 해로운 근심을 버리고 주님을 믿을 때에 마음의 건강은 증진될 것이다.
4) 자아 중심에서 벗어난 선행
우리는 너무 자신에게만 집중하고 있다. 자아 중심적이고, 자신을 동정하고, 자아 연민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연약한 마음 상태를 가지게 된다. 우리는 자아 연민을 조심할 필요가 있다. 건강이 좋지 못해서 고생하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 대해 더 관심을 쏟고 자아를 잊어버릴 것같으면, 그리고 자신보다 더 큰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시선을 돌리고 타인을 위해 봉사한다면 “네 빛이 아침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이 옳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종종 자신에게만 국한된 이기적인 생각과 사상을 가지는 사람에게서 우울증이 발견된다. 자신의 어려움, 자신의 괴로움, 자신의 외로움에서 눈을 돌려 다른 사람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위해 선행을 베풀 때에, 그 선행은 친절을 베푸는 사람과 받는 사람에게 다 같이 유익을 줌으로 이중의 축복이 된다.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은 병든 몸과 마음을 치료해 주는 가장 좋은 약 중 하나이다. 의무를 잘 감당했다는 생각과 다른 사람들에게 행복을 제공해 준데 대한 만족감으로 마음이 가볍고 기뻐질 때 그것은 새로운 활력을 온 몸에 가져다 준다. 만일 사람의 마음이 바른 일을 행했다는 의식과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 이바지 했다는 만족감을 가지게 되면, 그것은 혈액의 원활한 순환을 돕고 몸 전체 조직에 새로운 에너지를 가져다 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일을 많이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과 몸에 임한 놀라운 축복을 깨달을 것이다. 진정한 신앙과 경건은 감정이 아니라 자비와 사랑의 일을 행하는 것이다. 이 경건은 건강과 행복에 필수적이다. 그것은 이기심으로 오염된 영혼의 성전에서 어두운 그림자들을 몰아낸다. 참된 경건이 마음속에 자리를 차지하면 의의 태양이 밝은 광선으로 마음을 비추어 준다. 그것은 영혼의 창문들을 하늘을 향해 열어 주어 하나님의 사랑의 햇빛이 들어오게 만든다. 그럴 때에 영혼 속에는 평온함과 안정함이 이르러 오며, 육체적, 정신적, 도덕적 능력이 증가된다. 영광의 소망이신 그리스도께서 마음속에 임재하시는 사람의 마음 속에서는 저절로 타인에 대한 동정과 사랑이 흘러나오게 되며, 다른 사람에게 베푸는 사랑과 동정이 자신을 치료하는 축복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구주의 사랑을 향하여 그대의 마음을 열고,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로 흘러가게 하라! 모든 사람이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과 저항하기 힘든 시험을 당하고 있다는 것과, 그대가 그 짐들을 덜어 주기 위하여 무엇인가 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그대가 누리고 있는 축복을 감사하고, 그대가 받고 있는 보호에 대하여 감사의 마음을 가지며, 귀중한 하나님의 약속으로 마음을 가득히 채워 다른 사람들에게 위로와 힘이 될 말들을 꺼낼 수 있게 하라. 그렇게 되면 그대의 주위에서는 유익하고 고무적인 분위기가 감돌 것이다. 그대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축복이 되는 것을 목표로 삼으라. 그리하면 마음에 행복과 만족이 자라나 육체의 건강도 향상하게 될 것이다.
재 3부사단이 일으키는 마음 병의 원인들 사단이 일으키는 마음 병의 원인들
사단은 인간의 마음을 점령하고 지배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인간의 마음을 병들게 하고 정신을 약하게 할 때에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잃어버리고 시험에 쓰러지게 되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사단은 인간의 마음을 약하게 만들기 위해 온갖 계략을 다 세우고 있다. 하늘에서 쫓겨난 사단은 이 세상에 그의 왕국을 세우고 지금까지 인류를 하나님께 대한 충성에서 돌아서도록 꾀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특히 자신이 하늘에서 사용했던 능력, 곧 인간의 마음에 끼치는 영향력을 사용하여 그렇게 하고 있다. 우리는 사단의 계략을 알아차리고 믿음에 굳게 서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사단이 인간의 마음을 점령하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들이 무엇일까?
1) 낙담과 우울감
낙담과 우울은 마음의 건강에 매우 해로운 것이다. 낙담과 우울은 하나님을 붙잡는 우리의 믿음의 손을 약하게 하고 포기하게 만드는 도구이다. 그러므로 사단은 우리 마음 속에 낙담과 절망과 자포자기의 감정을 넣어주기 위해 힘쓴다. 낙담하거나 우울감을 느낄 때의 인간의 신체와 뇌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에 대한 흥미있는 연구의 사례를 살펴보자. 미국 UCLA 대학 연구진은 트럼프 대통령 당선에 낙담한 시민 60명을 면담 조사하고 기능성 자기공명장치를 이용해 그들의 두뇌를 스캔했다. 연구진은, 실망스러운 선거 결과를 떠올리는 것이 수면, 식욕, 집중력 및 기분에 영향을 미치는지, 또는 구역질이 나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따위의 신체적 증상을 일으키는지 묻고, 선거 후 가족 및 친구관계가 어땠는지 조사했다. 그러자 이 조사에서 상당수(23%)의 참가자는 입맛을 잃고 잠을 설쳤으며,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쉽게 짜증을 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아드리아나 갤반 교수는 “정치적 사건을 전형적인 트라우마로 간주하진 않지만, 우울을 느낀 이들에게 나타난 증상 중 상당 부분은 공포와 무력감과 같은 외상의 특징과 유사하다”고 밝혔다. 우울감과 낙담은 삶의 의지를 잃게 하며 삶의 활력을 잃게 한다. 사단은 우리에게 절망감과 낙담의 감정을 심어주고 우울증에 빠지게 한다. 사단은 “너는 절망적인 상태에 놓여 있어. 너는 회복될 가망이 전혀 없어!”라는 잔인한 임시를 가지고 다가와 인간을 낙담시킨다. 또한 자주 우리에게 너는 죄인이며 인간이 죗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내쫓아 버리셨다는 생각을 마음에 갖게 하려고 유혹한다. 그러나 아무도 스스로 자포자기하거나 낙심하고 실망할 필요가 없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당하고 있는 어려움이 심령과 육체를 아무리 억누르고 있을지라도,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해방시키실 수 있다. 사단이 낙담과 절망으로 우리를 쓰러뜨리려고 할 때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그렇다! 나는 죄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구주가 필요하다! 나는 용서와 사유하심이 필요하다. 내가 그분께 가면 예수님은 나를 용서하실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러 오셨다!” 그리고 성경절을 외우라! 그 약속은 용기와 희망을 줄 것이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 1: 9). 우리는 불쾌한 것으로부터 우리의 눈을 돌이켜 예수님을 바라보아야만 한다. 우리는 종종 실수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결점만을 자꾸 바라보면 믿음이 약해지고 낙담하여 하나님과 그의 허락들이 보이지 않게 된다. 주님을 생각하고 바라보면서 낙담을 이겨야 한다.
2) 슬픔과 두려움
슬픔과 두려움도 마음의 질병을 일으키는 원인 중에 하나이다. 슬픔은 우리 몸의 혈액 순환을 해치는데, 슬픔으로 인해 혈관과 신경에서 혈액 순환이 둔화되며 간의 활동도 방해를 받는다. 또 이로 인해 소화 과정과 영양 섭취 과정이 방해받으며 신체의 골수가 마르게 되는 경향도 생긴다. 사단은 우리를 슬픔과 두려움에 빠지도록 유도하고 있다. 슬픔과 염려는 단 한 가지도 고쳐 줄 수 있는 약이 되지 못하고 오히혀 건강에 큰 해를 끼칠 수 있다. 두려움도 마찬가지로 몸에 해롭다. 우리는 두려움에 대해서 자꾸 얘기하므로 그런 감정을 강화시킨다. 만일 우리가 의심과 두려움에 대하여 생각하면 그것들은 점점 더 크게 느껴질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미래의 어려운 문제들과 만족스럽게 생각되지 않는 미래의 전망을 예상하여 낙담하거나 두려움에 빠져서는 안된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나의 힘을 의지하고 나와 화친하며 나로 더불어 화친할 것이니라”(사 27: 5) 고 하신다. 자신의 생애를 하나님의 지도와 그분을 섬기는 일에 완전히 바치는 사람들은 결코 주님의 대비책 없는 처지에 놓이지 않을 것이다. 어떤 경우에 처하든지 주님께 마음과 생애를 드린 사람은 인생의 길을 지도해 주시는 인도자를 갖게 된다. 아무리 난처한 문제를 가지고 있을지라도 우리 곁에는 확실한 상담자가 있다. 예수님은 우리의 인도자이시며 상담자이시다. 우리는 속절없음을 느끼면서 있는 그대로 주님께 나아가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사랑과 동정으로 우리를 굽어보고 계신다. 비록 우리가 느끼지 못한다해도 그분의 손길은 사랑과 부드러운 동정으로 우리 위에 얹혀져 있다. 비록 슬픔과 사별의 고통과 외로움이 아무리 극심할지라도 우리에게는 동정심 깊은 친구가 있다. 모든 슬픔을 먼저 경험하신 예수님은 우리의 슬픔을 이해하시며 위로해 주신다. 사단은 슬픔과 원인 모를 두려움으로 우리를 엄습하여 인생길에 그림자를 드리워 인간을 사로잡아 간다. 그러나 참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약속들을 주장하며 주님의 평안과 위로 안에 안식할 수 있다. 슬픔에 빠져 있다면 해독제를 찾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상처에 바를 수 있는 향유를 예비하셨다. 길르앗에는 유향이 있으며 그곳에는 의사가 있다. 모든 위기에서 지혜를 얻기 위하여 주님께 간구하라. 시련을 당할 때마다 그 난관에서 벗어날 길을 보여달라고 예수님께 호소하라. 그렇게 할 때에 영안이 열려 구제책을 발견하게 될 것이며, 거룩한 말씀 가운데 기록된 치료의 약속이 슬픔을 이기게 할 힘을 줄 것이다. 이렇게 하면 사단이 한없는 애도와 불신의 함정에 빠뜨릴 수 없게 될 것이며 그 대신에 주님 안에서 믿음과 소망과 용기를 얻게 될 것이다. 성령께서는 기도하고 간구하는 사람에게 명민한 식별력을 주심으로써 모든 축복을 발견하시며 슬픔에 대한 해독제을 발견하게 하신다. 모든 쓰디 쓴 슬픔과 시련의 물방울은 예수님의 사랑과 혼합될 것이며 쓴 물에 대해 불평을 하는 대신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와 슬픔과 뒤섞여서 그 슬픔이 성화된 기쁨으로 변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사단이 주는 모든 유혹과 마음과 몸을 해치는 것들로부터 벗어나자! 우리의 온 몸과 영과 혼을 강건하게 하시는 주님이 우리 곁에 계심을 잊지 말자!
제4부 마음을 하늘로 고정시키라 마음을 하늘로 고정시키라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시 19:14).
마음을 잘 다스리는 것이 건강과 승리의 비결인 것을 명심하는 그리스도인은 매우 적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의무이다. 마음에 병이 든 사람은 올바른 신앙을 가지기가 어렵다. 건강한 마음과 정신을 가진 사람이 하나님과 진리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신앙을 가지기가 더 쉽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과 정신을 건강하게 잘 보존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마음을 잘 다스린다는 것은 곧 생각을 올바로 가지는 것이다. 올바른 생각을 가지기 위해서는 생각을 사로잡아 늘 주님께 복종해야 한다. 인간의 마음은 선이나 악으로써 반드시 점령되도록 되어 있다. 만일 마음이나 생각이 낮은 수준에 처해 있다면, 그것은 마음과 생각이 일반적으로 평범한 문제들을 처리하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두기 때문이다. 사소한 일들과 별 중요하지 않은 일들로 마음이 꽉 차 있는 사람의 마음 속에는 영적인 것이 자리잡을 공간이 없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이 무엇으로 채워 있는가가 마음의 건강의 척도를 가늠하는 길이다.
1) 마음을 조절하는 힘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지배하고 조절할 힘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의 방향을 지향할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일에는 인간의 힘이 미칠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노력이 필요된다. 만일 올바른 생각과 올바른 명상을 가지려면 반드시 마음을 하나님 안에 머물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하늘의 능력과 힘을 간구해야 한다. 생각과 상상력을 지배하여야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의무이며, 그리고 그것을 통해 죄를 승리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다. 우리 마음의 묵상과 명상이 하나님께 열납되게 하려면 우리는 마음과 생각을 부단히 지켜야 한다. 만일 생각들이 정당하게 쓰여지지 않는다면, 종교나 신앙은 우리의 영혼 안에서 힘을 잃게 되고 영혼 안에서 활약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생각이 마구 방황하도록 버려두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생각은 우리의 품성을 꼴짓고 품성은 영생에 대한 우리의 운명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마음은 반드시 거룩하고 영원한 사물들로 점령되고 선정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경박하고 천박한 생각을 품게 될 것이다. 이 문제를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우리의 마음이 자연적으로 타락되고 연약하게 되었음과 또 우리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올바른 길을 추구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우리의 가장 진실한 노력이 합하여 짐으로써만 가능하다. 이 일이 이루어질 때 우리는 승리를 획득할 수 있다. 마음의 힘, 곧 우리의 의지를 늘 하나님께 순복하고 주님의 뜻대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바치고 살도록 하자!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주님께서 조절해 주시기를 맡길 때 우리는 승리의 생애를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2) 생각의 연습
그리스도인 신앙 가운데는 생각을 연습하는 일이 포함되어 있다. 생각들은 반드시 연단되어야 한다. 마음의 허리를 동임으로써 마음이 올바른 방향으로 지향되도록 해야 하며, 계획과 목표를 세운 후에는 매 발걸음 앞으로 전진하여야 하고, 막연한 이상이나 되는대로 한 계획을 따라감으로써 시간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항상 가치 있는 생애의 목적과 목표를 지녀야 할 것이다. 매일의 생각들은 연단함을 받아야 하며 나침반이 남극을 가리키듯이 뚜렷한 목표와 목적을 가져야 한다. 그것은 주님께 열납될 만한 생각과 목표가 되어야 한다. 생각들은 반드시 지배되고 연습되어야 한다. 그 일은 아무도 할 수 없고 오직 자신만이 자신의 생각을 지배할 수 있다. 아름답고 고상한 품성과 높은 영적 표준에 도달하기 위해 투쟁하는 일에 있어서, 성공과 실패의 여부는 생각들을 연단하는 일에 달려 있다. 만일 생각들이 잘 보존되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방향으로 매일 지향된다면, 우리는 악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마음이 자연적, 이기적인 마음, 그 자신의 악한 욕망을 따라가도록 방치된다면, 그 사람은 생애의 목표나 고상한 동기 없이, 또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는 존경심이나, 인류에게 도움이나 유익됨이 없이 행동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우리의 삶은 가치 없는 것이 되고 생각들은 이기적이며 악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각의 바른 습관을 계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우리들은 건전한 것들을 생각하도록 마음을 단련하며, 죄악된 사물들을 보거나 생각하는 것들을 허락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지키기 위해 마음으로 들어오는 통로인 오관을 잘 지켜야 한다. 우리의 뇌는 오관을 통해 자극과 영향을 받으므로, 보는 것, 듣는 것 등 오감을 잘 지켜야 한다. “여호와여 내 입 앞에 파숫군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시 141:3)라는 다윗의 기도처럼 우리는 우리의 마음의 통로에 파숫군을 세워달라고 성령님께 간구해야 한다. 그리하여 성령의 거룩하고 순결하고 아름다운 감화 속에서 살며, 우리의 영성을 좀먹고 갉아먹는 것들이 마음 속에 들어오는 것을 허용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3) 명상의 주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마음에 머물도록 연습시켜야 할 주제들이 있다. 그 주제들을 명상하므로써 마음이 고상해지고 건강해지게 해야 한다. 우리가 명상하고 묵상해야 할 주제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사랑, 타락한 인류를 위해 겪으신 그분의 고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세우신 구속의 계획, 그리고 우리를 위한 그분의 간단없는 중보 사업, 그분의 비할 데 없이 아름답고 존귀한 영광 등이다. 이것들은 천사들도 연구하고 들여다보기를 갈망하는 신비로운 주제들이다. 하나님의 사랑의 신비는 천사들조차도 묵상하며 경탄하는 주제들이다. 우리의 마음을 차지하는 가장 중요한 주제는 무엇인가? 우리를 위해 희생하신 그리스도의 무한한 자비와 사랑은 우리에게 가장 절실하고 심각한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되어야 한다. 하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모든 것을 다 쏟아부어 주셨다. 우리는 주님을 위해 무엇을 드릴 것인가?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드려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구속의 계획의 의미를 깨닫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당신의 백성을 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분의 사명에 대하여 매일 묵상하여야 할 것이다. 계속하여 하늘의 주제들에 대하여 명상함으로써, 우리의 믿음과 사랑은 보다 강하게 자랄 것이다. 그렇게 될 때에 예수님께 대한 더욱 큰 믿음이 생기고 변함없는 신뢰를 가지게 될 것이다. 우리는 사랑하는 예수님과 같이 되려는 영혼의 주림과 갈망을 가져야 한다. 우리의 생각이 그리스도에게 있으면 있을수록 우리는 더욱 그분에 대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 할 것이며 더욱 그분을 세상에 나타낼 것이다. “나의 묵상을 가상히 여기시기를 바라나니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리로다”(시 104:34). 우리의 묵상은 하나님 앞에 가상히 여김을 받을 만한 것이 되어야 한다. 만일 우리들이 게으름과 나태 속에서 우리들의 감각을 만족하게 하는 것만을 계속해서 추구하거나 또 어떤 즐겁게 하는 일과 어리석은 웃음을 유발하는 세속적인 것들에 빠져 있는 한, 우리의 묵상이 하나님 앞에 가납될만한 것이 될 수 없다. 천박한 독서와, 흥분을 일으키는 이야기와 드라마들, 또한 오락을 추구하는 것으로 점령되어 있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사단이 들어와 좌정할 보좌를 내어주는 것이다. 경박한 대화와 어리석은 생각 가운데서 쾌락을 찾으면 영적 사물에 대한 흥미를 점점 잃게 되고 주님의 영적 세계에 머무르는 일에 실패하게 된다. 때때로 겪는 경험이 이것을 증거하지 않는가? 천박하고 가볍고 경박한 대화로써 하루를 지낸 후, 그날 밤 그대는 얼마나 마음의 평화를 가지는가? 그런 날 밤 잠자리에 누우면서 마음이 얼마나 허전하고 무의미한 것을 느끼는가! 우리는 계속적으로 우리의 마음을 그리스도로 채우고 세속과 죄로부터 비워야 한다. 우리가 우리의 마음을 헛되고 천박한 것에서 완전히 비우는 즉시, 그 공백은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기다리고 계시는 그분의 성령으로 채워지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마음은 하늘의 보물 창고에서 채워주는 하늘의 보화로 채워지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만일 우리의 사상과 애정이 그리스도께 머물러 있으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의의 태양이 우리에게 비춰주신 빛을 그대로 반사하게 될 것이다.
마치면서 마음은 몸의 건강에 영향을 미칩니다. 육체의 건강을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먼저 마음의 건강을 지키십시오! 우리는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고귀한 보혈로 산 바된 주님의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고 거룩하게 보존하였다가 주님께 다시 돌려드려야 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점령하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마음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의 마음을 주님께 바치고 하늘의 것들로 마음을 채우십시오! 머지않아 주님의 형상으로 변화된 사람들을 데리러 주님께서 오실 것입니다. 마음과 몸을 건강하게 보존하고, 거룩하게 변하고 성화된 사람들을 데리러, 성품과 마음이 하나님 아버지의 아름다운 성품으로 변화된 사람들을 데리러 오실 것입니다. 영광스러운 주님의 재림의 날에 여러분의 온 몸과 영과 혼이 거룩하게 준비되어 영원한 하늘에 들어가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 내게 구하라 내가 응답하리라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 내게 구하라 내가 응답하리라 "새벽에 하나님이 나를 도우시리로다" (시 46:5).
주님을 계속해서 찾으라 “여호와와 그 능력을 구할지어다 그 얼굴을 항상 구할지어다” 대상 16:11.
기도는 좌악과의 투쟁과 그리스도인적 품성의 계발에 있어서 하늘이 정하신 성공의 방법이다. 믿음으로 하는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오는 거룩한 감화는 탄원자의 마음에 그가 호소한 모든 것을 이루게 할 것이다. 우리는 죄의 용서를 위하여, 성령을 위하여, 그리스도와 같은 성품을 위하여, 당신의 사업을 할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을 위하여 간구할 수 있으며 “받으리라”는 허락이 있다. 인간의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과 친교하고 유한한 사람이 무한하신 분과 교제할 때에 몸과 마음과 영혼에 미치는 영향은 평가할 수 없다. 이와 같은 교제에서 최고의 교육을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은 계발에 있어서의 하나님 자신의 방법이다. 그대의 모든 선한 목적과 선한 의도가 그대에게 악을 저항할 수 있게 해 줄 수는 없다. 그대들은 기도하는 남녀가 되어야 한다. 그대의 간구는 무력하고, 간헐적이고, 변덕스러워서는 안되며, 열렬하고, 끈기있고, 지속적이어야 한다. 기도하기 위하여 언제나 그대의 무릎을 꿇고 있을 필요는 없다. 그대가 홀로 있을 때, 걸어갈 때, 일상생활로 분주할 때, 구주와 이야기하는 습관을 기르라. 마음을 끊임없이 하늘로 향하여 도움과 빛과 힘과 지식을 위하여 조용한 탄원을 올려라. 호흡마다 기도가 되게 하라.
하나님의 힘을 붙잡으라 “그리하지 아니할 것 같으면 나의 힘을 의지하고 나와 화친하며 나로 더불어 화친할 것이니라” 사 27:5.
에녹은 마음이 굳고 고도로 세련되었으며 지식이 넓은 사람이었다. 그는 하나님께 특별한 계시를 받는 영광을 얻었으나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완전하심을 항상 느끼면서 하나님과 끊임없이 교제함으로 가장 겸손한 사람들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하나님과의 연결이 긴밀하게 되면 될수록 자신의 연약함과 불완전함을 더욱 더 깊이 느꼈다. 경건하지 않은 자들의 악행이 증가하는 것을 슬퍼하고 저들의 불신 행위가 하나님께 대한 그의 존경을 감소시키지나 않을까 염려하여, 에녹은 저들과의 지속적 교제를 피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한적한 곳에서 보내며 묵상과 기도에 전심하였다. 이와 같이 그는 주의 뜻을 실행하려고 그것을 더 분명히 알고자 주의 앞에서 기다렸다. 그에게는 기도가 영혼의 호흡 같았으며 그는 바로 하늘 분위기 가운데서 살았다. 이와 같이 하나님과 교제함으로 에녹은 하나님의 형상을 점점 더 반사하였다. 그의 얼굴은 거룩한 빛으로 빛났는데 예수님의 얼굴을 비춘 빛과도 같았다. 그가 하나님과 교통하고 나올 때에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까지 그의 얼굴에 있는 하늘의 인상을 경외심을 가지고 바라보았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책망을 받고 자복과 회개로 겸비하는 자에게는 희망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누구든지 믿음으로 하나님의 허락들을 받아들인 자는 용서를 받을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참으로 회개하는 영혼을 결코 버리시지 않으실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이와 같은 약속을 주셨다. “나의 힘을 의지하고 나와 화친하며 나로 더불어 화친할 것이니라”
하나님께서는 호의로우실 것임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므로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사 그로 자기의 얼굴을 즐거이 보게 하시고 사람에게 그 의를 회복시키시느니라” 욥 33:26.
영혼이 필요를 느껴서 외치는 소리는 그것이 비록 말로 표현하지는 못할지라도 그것이 무시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늘의 하나님과 언약 관계를 맺기에 동의하는 자들은 사단의 능력이나 그들 자신의 성정의 연약한 것대로 방임되지 아니한다. 귀중한 기도의 특권을 올바르게 깨닫고 이용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우리는 예수님께 가서 우리의 모든 필요를 그분께 알려야 한다. 우리는 더 큰 어려움은 물론이요 우리의 작은 염려와 걱정을 그분께 가져갈 수 있다. 우리를 곤란하게 하고 어렵게 만드는 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우리는 기도로써 그것을 주님께 가져가야 한다. 우리가 발걸음마다 그리스도의 임재가 필요함을 느낄 때, 사단은 그의 시험을 개입시킬 기회를 거의 얻지 못할 것이다. 우리의 가장 선량하고 동정 깊은 친구에게서 우리를 분리시키려고 그는 심사 숙고해서 노력한다. 우리는 예수님 외에 아무도 우리의 막연한 친구로 삼아서는 안 된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모든 것을 그분에게 안심하고 알릴 수 있다. 성실한 기도는 어떤 것이나 하늘에서 들으시는 바 된다. 비록 기도가 유창하게 표현되지 않았을지라도 그것이 마음에서 우러나왔다면 이것은 예수께서 봉사하시는 지성소에 올라갈 것이며 예수께서는 귀찮게 여기시거나 더듬으시는 말씀은 한 마디도 없이 완전하신 자신의 아름답고 향기로운 향과 함께 이것을 하나님 앞에 바치실 것이다. 우리가 주님의 명령을 따라 그분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어떤 축복이 우리에게 소유될 것인가! 나는 더욱 열렬하고 효과적인 기도가 있기를 바란다. 그리스도는 믿음으로 그분을 찾는 모든 사람들을 도우시는 분이 되실 것이다.
내가 주를 바랐사오니 주께서 들으시리라 “여호와여 내가 주를 바랐사오니 내 주 하나님이 내게 응락하시리이다” 시 38:15.
거룩한 생애에 있어서 향상하려면 우리는 기도를 많이 드려야 한다. 진리의 기별이 처음 선포되었을 때 우리는 얼마나 많은 기도를 드렸던가! 얼마나 자주 중보의 음성이 방에서, 헛간에서, 과수원이나 숲속에서 들렸는가. 빈번히 우리는 열렬한 기도로 여러 시간을 보내고, 두세 사람이 함께 약속을 주장했다. 때때로 우는 소리가 들리고, 감사의 음성과 찬양의 노래도 들렸다. 지금은 하나님의 날이 우리가 처음 믿을 때보다 훨씬 더 가까워졌다. 그러므로 우리는 초창기보다 훨씬 더 열렬하고 열성적이어야 한다. 우리의 위험은 그 당시보다 훨씬 더 크다. 심령들은 더욱 굳어져 있다. 오늘날 우리는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물들어야 하며 우리가 그것을 받을 때까지는 쉬지 말아야 한다. 기도하라. 그렇다. 흔들리지 않는 믿음과 신뢰를 가지고 기도하라. 언약의 천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그를 믿는 자들의 기도를 확실히 가납하시는 중재자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천연계와 계시(성경)을 통하여, 당신의 섭리와 성령의 감화로써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그러나 이것들만으로는 넉넉지 않다. 우리는 우리의 심정을 그의 앞에 토로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영적 생명과 힘을 얻기 위하여 우리의 하늘 아버지와 실제적 교제를 하여야 한다. 때로는 우리의 마음이 그를 사모하기도 하고 그의 업적과 그의 자비와 그의 축복에 대하여 묵상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교통하려면 우리의 실생활에 대하여 그에게 무엇을 말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
우리가 구하기 전에 우리의 필요를 아심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마 6:8.
예수님 자신도 사람들 사이에 거하실 때에 자주 기도하셨다. 우리 구주께서 그의 의무와 시련을 위하여 굳세게 나아갈 수 있도록 그의 아버지께 새로운 능력의 공급을 구한 탄원자와 간구자가 되신 사실은 그도 역시 우리와 같이 궁핍하고 연약하였던 것을 증거한다. 그는 범사에 우리의 모본이시다. 그는 우리와 같이 연약한 한 형제이며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는 자”(히4:15)로서 그의 품성이 악을 물리치셨다. 그는 죄악 세상에서 심령의 투쟁과 고민을 당하셨다. 그의 인성은 그에게 기도가 필요하게 하고 기도가 특권이 되게 하였다. 그는 당신의 아버지와 교통하는 가운데서 위안과 기쁨을 얻었다. 인류의 구주이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도 기도의 필요를 느끼셨으니 더구나 연약하고 죄가 많은 죽을 수 밖에 없는 인생들은 얼마나 더욱 열심으로 항상 기도할 필요를 느끼어야 할 것인가!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그의 풍성한 축복을 우리에게 주시려고 기다리신다. 무한한 사랑의 샘에서 마음껏 마시는 것은 우리의 특권이다. 우리가 기도를 그렇듯 적게 하는 것은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 중에 아무리 비천한 자라도 진정으로 하는 기도를 들으시려고 즐겨 고대하시고 계시건만 우리들은 우리의 소원을 하나님께 고하기를 매우 싫어한다. 하나님께서는 무한하신 사랑의 마음으로 사람들을 그리워하시고 저희가 구하고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주시려고 하시지마는 그들이 그렇듯 기도를 적게 하고 그렇듯 믿음이 적으니 이것을 볼 때에 하늘의 천사들이 시험에 빠지기 쉬운 불쌍하고 무능력한 인간을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기도는 마치 친구에게 하는 것처럼 하나님께 그 심정을 펴 놓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실망한 자의 기도를 들으심 “내가 경겁한 중에 말하기를 주의 목전에서 끊어졌다 하였사오나 내가 주께 부르짖을 때에 주께서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셨나이다” 시 31:22.
그대의 마음이 완고한 것같이 보인다고 실망하지 말라. 모든 장해와 내적인 모든 적(敵)은 그리스도에 대한 그대의 필요를 더할 뿐이다. 그는 돌과 같은 마음을 제해버리시고 살과 같은 마음을 주시기 위하여 오셨던 것이다. 그대의 독특한 결함을 정복하기 위한 특별한 은혜를 얻기 위하여 그를 바라보라... 모든 우상을 버리고 떼어버리기 어려운 모든 죄악을 버리는 일에 도와 주심을 구하며, 사랑하시는 구주께 부르짖으라. 믿음의 눈으로써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아버지의 보좌 앞에 서서 그의 상하신 손을 내보이시는 것을 바라보자. 그대의 귀하신 구주로 말미암아 그대가 힘을 얻는 것을 믿어라. 성령의 호소에 대한 한번의 반항은 그 두번째 반항의 길을 준비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마음은 굳어지고, 양심은 둔하여져서 마침내는 마비되고 만다. 그와 반대로 유혹을 대항하면 그 때마다 그 다음의 대항을 더욱 용이하게 한다. 승리를 얻을 적마다 새로운 승리를 얻을 길을 준비한다. 유혹을 대항할 적마다, 자기를 버릴 적마다, 죄를 이길 적마다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씨앗을 뿌리는 것이 된다. 모든 이타적 행동은 새로운 영적 힘을 준다... 두 팔을 널리 펴고 주께서는 탕자를 맞이하기 위하여 기다리고 계신다. 그에게로 나아가라. 그리고 그에게 그대들의 잘못과 실수에 대하여 말하라. 그에게 그대들의 새로운 노력을 위한 힘을 주십사고 기도하라. 주께서는 결단코 그대들을 실망하게 하지 아니하실 것이요, 결단코 그대들의 신뢰를 저버리지 아니하실 것이다. 시험이 그대들에게 이를 것이다. 이와 같이 함으로써 주께서는 그대들의 성격에서 거친 것을 닦아 없이하신다. 불평하지 말라. 그대들은 불평함으로 그대들의 시험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즐겨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라. 인내하여 고통을 참으라.
하나님께서 지키실것임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 습 2:3.
폭풍우는 불어 온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회개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광포를 대항할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주께서는 일어나시어 지구를 놀랍게 흔드실 것이다. 우리는 사방에서 분란이 일어나는 것을 볼 것이다. 수천 척의 배가 깊은 바다 속에 침몰될 것이요, 해군들은 물에 빠지고, 인간의 생명은 한때에 여러 백만씩 희생을 당할 것이다. 뜻하지 않니한 때에 여기 저기서 불이 일어날 것이다. 그리하여 어떠한 인간의 노력으로도 이 불을 끄지 못할 거이다. 지상의 왕궁들은 광란의 불꽃으로 소진될 것이다. 철도 사고는 더욱 빈번하게 일어날 것이다. 혼란과 충돌과 또한 일각의 예고도 없는 사망이 중요한 교통로에서 일어날 것이다. 끝은 가깝다. 은혜의 기간은 끄나려 하고 있다. 오! 우리는 찾을 만할 때에 하나님을 찾고 가까이 계실 때에 하나님께 부르짖자! 젊은 친구들이여,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찾으라. 열심을 품고 나오라. 하나님의 도움이 없으면 멸망할 것이라는 사실을 진정으로 느끼고 사슴이 시냇물을 갈급함같이 그대들이 하나님을 갈급하다면, 주님께서 신속하게 그대들에게 힘을 주실 것이다. 그리하면, 그대들의 평안은 지각에 뛰어난 것이 될 것이다. 구원을 바란다면, 그대는 기도해야 한다. 시간을 내라. 기도할 때, 서두르거나 부주의하게 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그대들의 마음속에 철저한 개혁을 일으켜 주심으로 그분의 영의 열매가 그대들 속에 맺히게 해 달라고 간구하라. 그러면, 그대들은 세상에서 빛과같이 빛날 것이다. 하나님의 사업에 방해나 저주가 되지 말라. 그대들은 도움과 축복이 될 수 있다. 사단은 그대들이 완전하고 자유롭게 구원을 누릴 수 없다고 말하는가? 그를 믿지 말라.
택한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실 것임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주시리라” 눅 18:7, 8.
각 시대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천사들을 통해 당신의 백성들을 도우시고 구원하셨다. 천사들은 사람들의 업무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왔다. 그들은 번개와 같이 빛나는 옷을 입고 나타났는가 하면, 먼 길을 여행하는 행인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그들은 마치 피곤한 것처럼 정오에 상수리나무 아래서 쉬기도 하였다. 그들은 사람의 집에 영접되어 대접을 받기도 하였다. 그들은 길 저문 행인들의 안내자도 되었다. 그들은 그들의 손으로 직접 제단의 불을 붙이기도 하였다. 그들은 감옥의 문을 열고 주님의 종들을 놓아 주기도 하였다. 그들은 하늘의 갑읏을 입고 구주의 무덤에서 돌을 굴려 내기 위하여 내려온 일도 있다. 귀하신 구주께서는 우리에게 도움이 필요한 바로 그 때에 도와 주실 것이다. 하늘로 가는 길은 그분의 발자국으로 성별되었다. 우리의 발을 상하게 하는 모든 가시는 이미 그분의 발을 상하게 했다. 우리가 지도록 요구받은 모든 십자가는 우리보다 먼저 그분께서 지셨다. 주님께서는 영혼이 평안을 얻도록 준비시키시고자 투쟁을 허락하신다. 환란의 때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있어서 무서운 시련이다. 그러나 이 시기는 모든 참된 신자에게 있어서 위를 쳐다보고 믿음으로 자기를 둘러 있는 허락의 무지개를 보아야 할 때이다. 그분의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그분의 능력을 나타내시는 때는 바로 한밤중이다. 험악한 하늘의 광경 가운데서 형언할 수 없는 영광으로 맑은 한 곳이 있는데, 거기서 많은 물소리와 같은 하나님의 음성이 “다 이루었다”라고 들려온다.
내가 부르짖으면, 하나님이 응답하시리라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 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시 91:15.
우리는 모두 우리의 기도가 즉시, 그리고 우리의 소원대로 응답되기를 바라며, 혹시 응답이 늦어지거나 우리가 바라지 않은 형태로 응답되면 용기가 꺾이는 시험을 받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참으로 현명하시고 선량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기도를 언제나 우리가 바라는 바로 그 시간에, 바라는 그대로의 형태로 응답해 주지 않으신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모든 소원을 이루어 주시는 것보다 더 풍성하고 더 좋은 것을 우리를 위하여 주실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분의 지혜와 사랑을 신뢰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뜻에 양보해 달라고 그분께 요구해서는 안되며 오히려 그분의 목적에 흡수되어 그 목적을 이루고자 노력해야 한다. 우리의 욕망과 흥미는 그분의 뜻 가운데 잃어버린 바 되어야 한다. 믿음을 시험하는 이같은 경험들은 우리의 유익을 위한 것들이다. 그런 경험들을 통하여 우리의 믿음이 오직 하나님의 말씀의 기초 위에 놓여 진실하고 성실한지, 혹은 환경에 좌우되어 불안하고 변하기 쉬운지 분명히 나타나게 된다. 믿음은 실천을 통하여 강화된다. 하나님은 너무도 지혜로우시므로 실수하지 않으시며, 너무도 선하시므로 정직하게 행하는 당신의 성도들에게 좋은 것을 주지 않고 남겨 두지 않으신다. 사람은 실수가 많으므로, 비록 정직한 마음으로 소원을 아뢰었을지라도, 언제나 자신에게 유익한 것이나 하나님께 영광이 될 것만을 구하지 않는다. 이런 경우에, 지혜롭고 선량하신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때로는 즉시 응답해 주실 것이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우리 자신의 유익과 당신의 영광을 위하여 최선의 것을 우리에게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복을 주신다. 만일, 우리가 그분의 계획을 살펴볼 수 있다면, 우리는 그분께서 우리에게 가장 유익이 되는 것을 아시고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 주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닫게 될 것이다.
무엇이든지 우리가 구하면 받음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요일 3:22.
비록 부모는 그 굶주린 자녀에게서 돌아설 수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결핍하고 갈망하는 자의 부르짖음을 절대로 거절하시지 못하신다. 그분께서는 얼마나 놀라운 다정함으로 당신의 사랑을 묘사하셨는가! 암흑의 날에 처하여 하나님이 자기들을 잊어버리셨다고 생각하는 자들에게 아버지의 마음에서 나오는 멧세지는 다음과 같다. “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사 49:14-16). 하나님의 말씀의 모든 허락은 우리에게 기도할 조건을 제공하는바 여호와의 맹세의 말씀이 우리의 보증이 되는 바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영적 축복은 무엇이든지 예수님을 통하여 주장하는 것은 우리의 특권이다. 우리는 우리가 필요한 바로 그것을 어린 아이의 단순함으로 주님께 아뢸 수 있다. 우리는 그분께 우리의 현실적 사물들을 말씀하고, 그분께 생명의 양식과 그리스도의 의의 두루마기는 물론이요 떡과 옷을 위해서도 간구할 수 있다. 그대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그대가 이 모든 것들이 필요한 줄 아시며 그것들을 위하여 그분께 구하라고 초청하신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선물을 받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이름을 존귀하게 하시고 그대의 필요한 것들을 그분의 풍성한 가운데서 넘치도록 주실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여기고 그분께 나아갈 때에는 우리는 자녀로서 그와 관계됨을 인정하는 것을 잊지 말 것이다. 그대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을 뿐만 아니라 모든 일에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고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분의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들으심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요 14:13, 14.
믿음의 좁은 길 안에서 걸어가라. 모든 일에 주님의 약속을 신뢰하라. 흑암 속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라. 지금은 믿음을 가질 때이다. 그러나, 그대는 흔히 감정이 그대를 지배하도록 허용한다. 그대가 하나님의 영으로 위로받은 것을 느끼지 못하면, 그대는 그대 자신의 가치를 찾는다. 그리하여, 그것을 발견할 수 없게 되면 실망한다. 그대는 예수님 곧 귀하신 예수님을 충분히 신뢰하지 않는다. 그대는 그분의 공로를 모든것 중에서 가장 귀한 것으로 삼지 않는다. 그대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지라도, 그대는 하나님의 은총을 받을 자격을 갖추지 못할 것이다. 그대를 구원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의 공로이며, 그대를 깨끗하게 해줄 것은 그분의 피이다. 그러나, 그대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대는 그대의 몫에서 할 일을 해야 한다. 열심을 내어 회개하라. 그리고 믿으라. 나는 우리의 기도의 응답이 즉시 주어지지 않을지라도 믿음을 굳게 붙들고, 불신이 들어오도록 허용하지 말아야 할 것을 보았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분리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믿음이 흔들리면,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분리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믿음이 흔들리면,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아무것도 받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의 확신은 강해야 한다. 그리하면, 가장 필요할 때에 축복이 소나기처럼 쏟아질 것이다. 하나님의 종들이 하나님의 영과 축복을 받고자 기도할 때, 때때로 그것을 즉시 받게 된다. 그러나, 반드시 그 당시에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 경우에, 약해져서는 안 된다. 그대의 믿음은 주어질 약속을 굳게 붙들어야 한다. 하나님을 완전히 신뢰하라. 그리하면, 그대에게 축복이 가장 필요한 때에 주어질 것이다.
구하라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지금까지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요 16:24.
그 문제는 나에게, 자녀들을 사랑하는 육신의 부모에게 축복을 구하는 어린아이들처럼 제시되었다. 그들은, 부모들이 그들에게 해가 될 줄 알고 있는 어떤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부모들은 그들이 원하는 것 대신에, 그들에게 유익하고 건전한 것을 주게 된다. 나는 진정한 마음에서 믿음으로 드리는 모든 기도를 하나님이 들으시고 응답해 주실 것과, 그 기도를 드린 자가 가장 필요로 할 때 축복을 받되 그의 기대를 훨씬 더 초월한 축복을 받을 것을 보았다. 진실한 성도가 정직한 마음으로, 또한 믿음으로 드린 기도는 결코 허사로 돌아가지 아니한다. “경성”, “기도”, “활동”- 이 세 마디 말은 그리스도인의 표어이다. 그러므로 참 그리스도인의 생애는 항상 끊임 없는 기도의 생애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날 하루에 받은 빛과 능력은 그 다음 날에 받을 시험과 고난을 이기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을 아신다. 사단은 항상 그의 수단과 방법을 변하여 우리를 미혹하기 때문에 우리는 날마다 같지 아니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 우리 앞에 있는 전에 보지 못한 장면들은 우리로 새로운 위험 중에 빠지게 할 것이며 또 우리는 생각지 못했던 새로운 미혹을 항상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하늘로부터 받은 능력과 은혜로써 모든 유혹을 막아내며 행할 바 모든 의무를 다 실행할 수 있다. 구하라. 그리고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라. 겸손과 지혜와 용기와 믿음이 더하기를 구하라. 신실한 모든 기도에는 응답이 있다. 고독한 때와 피로한 때에 또는 시험을 당하는 때 에 드리는 기도가 항상 그대가 기대하는 바대로 응답되지는 않을지라도 항상 그대의 유익을 위해 응답된다.
은밀한 기도는 응답될 것임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마 6:6.
가족 기도나 공중기도가 다 그 위치가 있다. 그러나 영혼의 생명을 유지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은밀한 교통이다. 모세가 하나님의 영광이 거하실 하나님의 성막의 모형을 본것은 산 중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교제하고 있을 때였다. 그러므로 우리가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이상을 명상할 수 있는 은밀한 기도의 장소는 산이다. 그리하여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신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될 수 있도록 우리의 품성을 꼴짓게 될 것이다. 우리가 날마다 하는 일상의 일에 종사할 때에도 마음을 하늘로 향하고 기도하여야 한다. 이처럼 묵묵히 기도 드리는 이러한 기도는 향내와 같이 은혜의 보좌 앞에 상달하며 이로 인해 원수의 계획은 좌절된다. 이와 같이 마음에 항상 하나님을 묵상하는 그리스도인은 결코 패배당하지 않으며 어떤 악한 계교도 그의 평화를 파괴하지 못한다. 하나님의 말씀의 모든 약속과 하나님의 은혜의 모든 능력과 또 여호와의 모든 부요함은 그런 사람의 구원을 보증한다. 하나님께서는 숨은 생각들을 보고 계시다. 우리는 은밀한 가운데 기도할 것이니 그리하면 은밀한 가운데서 보시는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우리들에게 공공연히 갚아 주시리라. 우리는 은밀한 기도를 많이 해야 한다. 그리스도는 포도나무요 그대들은 가지들이다. 그리고 만일 우리가 자라고 번성하기를 원한다면 계속해서 산 포도나무에서 수액과 자양분을 빨아 들여야 한다. 포도나무로부터 떨어져 나갈 때 우리는 아무 힘도 없게 된다. 그대의 탄원을 보좌에 올리고 굳센 믿음으로 붙들어라.
두 사람이 합심하면 이루어 지리라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마 18:19.
이 성실한 적은 무리들의 열렬한 기도는 허지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주님께서 복수하는 자로 나오실 때, 그분께서는 또한 믿음을 순결하나 그대로 보존해 오고 스스로를 세상에서 더럽히지 않고 지켜온 모든 자들의 보호자로 나오실 것이다. 비록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으실지라도 당신께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의 원한을 갚아 주시기로 약속하신 것은 이 때이다. 연합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이것을 위해 기도하고 일하라. 이것은 그대들로 하여금 이기심과 악한 추측들을 이기게 하고 그대를 사랑하시고 그대들을 위하여 자신을 주신 분을 통하여 승리자들 이상의 승리자가 되게 하는 영적 건강과 사상의 향상, 성품의 고결함과 경건한 마음 가져 올 것이다.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고 그대들 자신보다 다른 이들을 더욱 존경하라. 이렇게 하여 그대들은 그리스도와 일치하게 될 것이다. 하늘 우주 앞에서 그리고 교회와 세상 앞에서 그대들은 그대들이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라는 명백한 증거를 나타낼 것이다. 하나님은 그대들이 나타낸 모본으로 인하여 영화롭게 되실 것이다. 세상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마음이 그리스도인적 사랑으로 서로 묶는 이적이 나타나는 것을 볼 필요가 있다. 세상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자리에 함께 앉는 것을 볼 필요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믿는 충실한 자들을 부르셔서 믿지 않고 희망 없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말하게 하신다. 주께서는 우리를 도우사 서로 돕게 하시며 산 믿음으로 그분을 증거하게 하신다.
믿음과 신념이 필요함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히 11:6.
어떤 치료의 경우에는 예수님께서 구한 바 축복을 즉시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문둥병의 경우에는 호소하자마자 즉시 응답을 받았다. 우리가 세속적 축복을 위하여 기도할 때는 기도에 대한 응답이 지체될 수도 있고, 하나님께서 우리가 구하는 것 외의 다른 것을 우리에게 주실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죄에서 해방되기 위하여 기도할 때는 그렇지 않다. 우리를 죄에서 깨끗하게 하사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고 우리로 하여금 거룩한 생애를 살 수 있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다(갈 1:4). 우리를 하늘과 연결시켜 주고 암흑의 세력을 대항할 수 있는 능력을 우리에게 주는 것은 믿음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온갖 악한 기질을 정복하고 아무리 강한 유혹이라도 모두 저항할 수 있는 길을 제공해 주셨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믿음이 부족하므로 그리스도께로부터 떠나 있다고 생각한다. 그와 같은 사람들은 속절없이 무가치한 그대로 자비하신 구주의 긍휼 앞에 자신을 내어놓으라. 자아를 보지 말고 그리스도를 바라보라. 사람들 사이에 다니시면서 병든 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내어 쫓으신 분께서는 지금도 여전히 강한 구속주시다. 그러므로 그분의 약속을 생명나무의 잎사귀처럼 붙잡으라.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 (요 6:37). 그대가 그분께 나아갈 때 그분께서 받아주신다는 것을 믿으라. 그대가 그렇게 하는 동안, 그대는 결코 멸망하지 않을 것이다. 믿음으로 하는 기도에는 하늘로부터 오는 학문이 있다. 인생의 활동에 성공하려고 하는 사람은 누구나 이 학문을 이해하여야 한다.
읽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계 1:3.
성경에 대한 진정한 사랑이 생기고 그 넓은 분야와 그 귀한 보물을 깨닫기를 시작할 때에 학생은 하나님의 말씀을 알기 위하여 얻을 수 있는 모든 기회를 붙잡으려고 열망하게 된다. 그리하여 장소나 시간에 아무 제한도 받지 않고 성경을 연구하게 될 것이다. 또한 이렇게 끊임 없이 연구하는 일이 성경에 대한 사랑을 배양하는 데 있어서 가장 좋은 수단 중의 하나이다. 학생들로 하여금 언제나 성경을 갖고 있게 하자. 기회가 있는 대로 성구를 읽고 거기 대하여 명상하라. 길을 갈 때에도, 정거장에서 기다릴 때, 약속한 사람을 기다릴 때 같은 때에 기회를 이용하여 진리의 보고인 성경에서 어떤 귀중한 생각을 얻도록 할 것이다. 심령의 큰 원동력은 신앙, 희망, 사랑인데 정당한 성경 연구는 이런 것들에게 호소하는 일이 된다. 성경의 외면적인 미, 그 비유와 표면의 미는 그 진정한 보화 곧 신성의 미를 끼워 놓는 일종의 장치에 불과하다.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들의 기록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의 섬광을 볼 수 있다. “그 전체가 사랑스”러우신 그리스도에게서 우리는 하나님을 뵈옵는 것이요 천지간에 있는 모든 아름다움은 다 그로부터 받은 빛의 몽롱한 반영에 불과한 것이다. 성경의 학도가 구세주를 바라볼 때에 그 심령의 신앙과 동경과 사랑의 신비스러운 능력이 생긴다. 사람이 그리스도를 주목하는 생애를 살고 있으면 그가 경모하는 형상에 점점 가까와지는 것이다. 영감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심령에서 솟아 나오는 하늘의 평화와 기쁨의 샘은 위대한 감화의 시내가 되어서 그 감화가 미치는 범위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축북을 끼쳐 준다.
밤에는 그 찬송이 내게 있음 “낮에는 여호와께서 그 인자함을 베푸시고 밤에는 그 찬송이 내게 있어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 시 42:8.
우리가 만일 하나님의 사업을 하기 위하여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면 내일을 위하여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우리의 주인이 되시는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를 아신다. 우리는 볼 수 없는 내일의 사건이 무소불능하신 그의 눈에는 다 공개되어 있다. 근심은 눈멀게 하여 장래를 식별할 수 없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를 보신다. 예수께서는 모든 곤란마다 위안을 주시는 길을 예비하셨다. 예수께서 믿음으로 아버지의 보호 안에서 쉬신 것처럼 우리도 구주의 보호 안에서 쉬어야 한다. 제자들이 예수를 의뢰하였다면 저들은 평강 가운데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얼마나 흔히 제자들이 겪은 경험을 겪는가! 시험의 태풍이 심하게 불고 번갯불이 무섭게 번쩍거리며 파도가 우리 위에 덮칠 때 우리는 우리를 도우실 수 있는 예수가 계심을 잊어버리고 홀로 폭풍과 싸운다. 우리의 희망이 사라지고 거의 멸망하려 할 때까지 우리는 자신의 힘을 의뢰한다. 그 때에야 우리는 예수를 기억한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예수께 구하여 주시기를 요청한다면 우리의 부르짖음은 헛되지 아니할 것이다. 우리는 여러 날 밤을 새우는 일이 있게 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러한 때에는 다만 하나님께서 이해력을 주시고 정신을 깨우쳐 주심으로 우리의 소유인 특권을 인식하게 되기 위하여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하는 시간이 되게 하자. 거룩하고 순결한 분위기 가운데 거하는 심령은 성경의 연구를 통한 하나님과의 교통으로 말미암아 변화될 것이다.
네 심중에 말하라 “너희는 떨며 범죄치 말지어다 자리에 누어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지어다” 시 4:4.
그대 자신의 마음과 또한 하나님께 대한 그대의 사랑의 상태를 면밀히 조사해 보라. 물어 보라. 나는 오늘 하루의 귀한 시간을 내 자신을 기쁘게 하는 데나 내 자신의 오락을 추구하는 데에 바쳤는가? 그렇지 않으면 타인을 행복스럽게 해 주었는가? 나는 나와 관계되는 이들을 도와서 그들이 하나님께 더 큰 헌신을 하게 하고 영원한 사물을 이해하게 하였는가? 나는 나의 신앙을 나의 가정에 들여 왔으며 거기서 나의 언어와 행동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은혜를 나타냈는가? 공손한 순종으로써 나의 부모를 공경하였으며 그리고 이로써 다섯째 계명을 지키었는가? 나는 나의 적은 일상의 의무를 기쁘게 받아들여 믿음으로써 이를 이행하고, 다른 사람들의 짐을 가볍게 하기 위하여 나의 최선을 다하였는가? 나의 입을 막아 죄악을 말하지 않고 나의 혀를 금하여 간교를 말하지 아니하였는가? 내가 능히 영생을 차지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당신의 귀하신 생명을 주신 나의 구주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였는가? 열심을 가져라. 결단성을 가져라.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라. 그리고 의심 말고 믿어라. 특별한 감정이 느껴지기를 기다려서 비로소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리라고 생각하지 말라. 다만 주의 말씀을 신뢰하라. 그리고 모든 것을 하나님의 손에 맡겨 두라. 동시에 그대의 기도를 멸시하시지 않는다는 것과, 또한 하늘 아버지께서 그대의 유익이 되리라고 생각하시는 바로 그 때에 유익이 될 수 있는 방법으로 응답해 주실 것을 확신하라. 그리고 그대는 기도하는 가운데 살라. 겸손히 행하고 부단히 전진하라.
내가 주의 법도를 묵상하리이다 “내가 주의 법도를 묵상하며 주의 도에 주의하며 주의 율례를 즐거워하며 주의 말씀을 잊지 아니하리이다” 시 119:15, 16.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선하심을 생각하고 묵상하는 것은 영혼의 통로를 사단의 제안들에 대해 막아줄 것이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매일 입증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분의 호의들에 대해 무분별하고 그분의 탄원들에 대해 무관심하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영을 통해 우리에게 동정과, 그분의 사랑과 참으심을 감명시키시고자 하신다. 그러나 우리는 그분의 친절의 표를 거의 인식하지 못하고, 그분께서 우리로 배우기를 바라시는 사랑의 공과를 조금밖에 감수하지 못한다. 어떤 이들은 하만과 같이 저들 앞에 모르드개가 있으며, 또한 그가 치욕을 당하지 않으므로 인해 하나님의 모든 은혜들을 잃어버린다. 저들의 심령은, 당신의 원수들을 위해 그분의 귀한 생명을 주신 우리의 사랑스런 구세주의 정신인 사랑 대신에, 적의와 증오가 가득차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같은 아버지를 가졌고, 같은 영원한 집을 향한다고 하고, 같은 엄숙한 신앙을 가졌고, 또한 같은 시험하는 진리를 믿는다고 공언한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싸움을 좋아하는 아이들처럼 서로 다툰다. 사업의 같은 분야에서 일하는 어떤 이들은 서로 불일치 함으로 그리스도의 영과 불일치 하고 있다. 학생으로 하여금 성경을 자기의 인도자로 택하고 원칙을 위하여 반석처럼 서게 하라. 이렇게 하여 그는 어떤 높은 목적에 큰 뜻을 품을 수 있다. 인간성의 모든 철학들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 중에 최고로 인정되지 않았을 때에는 혼란과 수치를 일으켰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귀중한 믿음은 품성의 힘과 고결함을 나누어 준다. 하나님의 선하심, 자비와 사랑이 설명될때, 진리에 대한 이해는 더욱 더 분명하게 될 것이며 마음의 순결과 생각이 명료하게 되려는 욕망은 보다 고상하고, 거룩하게 될 것이다.
내가 밤에 주의 이름을 기억하였나이다 “나의 나그네 된 집에서 주의 율례가 나의 노래가 되었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밤에 주의 이름을 기억하고 주의 법을 지켰나이다” 시 119:54, 55.
하나님의 기별을 전하는 자들이 그 일에 성공하고자 하면 반드시 하나님과 함께 오래 머물러 있어야 한다. 한번은 어떤 곳에서 이웃에 사는 신자들이 저희 목사의 성공하는 이유에 대하여 여러가지로 이야기하는 것을 한 늙은 부인이 듣고 있었다. 저들은 그 목사가 재능이 많은 까닭이라고도 하고 설교를 잘하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또는 그의 행실이 좋기 때문이라고도 하며 여러가지로 이야기 하였다. 그 때에 그 늙은 부인이 나서서 말하기를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제가 그 이유를 말씀 드리지요. 그 분은 전능하신 하나님과 매우 친한 때문입니다”고 하였다. 누구든지 엘리야와 같이 하나님을 신실히 섬기고 그와 같은 믿음을 가지면 하나님께서는 그 때처럼 친히 자신을 나타내실 것이며 누구든지 야곱과 같이 하나님께 매달려 구하면 또한 그 때와 같은 결과를 보게 될 것이다. 믿음으로 구할 때에 하나님께로부터 능력이 이르게 된다. 구주께서는 하늘 아버지와 조용히 교통하실 수 있는 고요한 산을 좋아하셨다. 종일토록 사람들을 멸망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열심히 일하셨다. 병자들을 고치시고 슬퍼하는 자를 위로하시며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고 실망하고 낙담한 자들에게 희망과 기쁨을 주셨다. 이렇게 분주한 일과를 마치신 후에는 밤마다 복잡한 도시를 떠나 산으로 나가 하나님께 기도하셨다. 그분은 종종 밤새도록 기도하시었다. 그러나 이렇게 하늘 아버지와 친히 교제하신 후에는 원기가 있고 활기가 있었으며 앞으로 행하실 일과 당하실 시험에 대해서 더욱 마음을 굳게 가지셨다. 약하고 죄많은 인간이 자기의 조물주 하나님께 말할 수 있는 특권을 가졌다. 우리는 우주를 통치하시는 왕의 보좌에 상달할 말을 할 수 있고 길을 걸어 갈 때에도 예수님과 이야기할 수 있으니 예수님께서는 “내가 네 우편에 있노라”고 말씀하신다.
내 영혼이 하나님을 갈급함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뵈올꼬” 시 42:1, 2.
그리스도의 사랑을 한번 맛본 사람은 계속적으로 더 많이 마시려고 부르짖는데 받은 것을 나누어줄 그 때에 더 풍부하게 받게 되는 것이다. 사람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각 계시는 깨닫고 사랑하는 능력을 더해 준다. 목마른 영혼에게 보내신 그리스도의 호소는 아직까지 진행되고 있으며, 명절의 마지막 날 성전에서 들은 자들에게보다도 더욱 큰 능력으로 우리에게 호소한다. 샘물은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열려 있다. 피로하고 목마른 자들에게 영원한 생명의 신선한 물이 제공되어 있다. 하나님의 사업을 위한 가장 큰 승리는 유력한 토론이나 방대한 시설이나 큰 세력이나 또는 풍부한 자금으로 인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요 골방에서 친히 하나님께 나아가 열성과 간절한 믿음으로 그 전능하신 팔을 의지함으로 얻어진다. 참 믿음과 참 기도는 그 힘이 얼마나 큰가! 이는 인간 탄원자가 무한하신 사랑의 능력을 붙드는 두 팔과 같다. 믿음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의지하는 것 곧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또 우리에게 가장 유익한 것이 무엇인지를 아심을 믿는 것이다. 그리하여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자기 마음대로 하는 대신에 하나님의 방법을 택하게 한다. 곧 우리의 부족한 지혜를 대신하여 하나님의 온전한 지혜를 받아 들이게 하며 우리의 연약한 것 대신에 하나님의 능력과 우리의 죄 대신에 하나님의 의를 받아 들이게 한다. 우리의 생애와 우리 자신은 이미 하나님의 소유이다. 믿음은 우리가 주의 소유임을 시인하며 그분의 소유된 축복을 인정한다. 진리, 의, 순결은 인생의 성공의 비결이다.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이 세가지를 소유하게 한다.
그분의 손의 행사를 생각함 “내가 옛날을 기억하고 주의 모든 행하신 것을 묵상하며 주의 손의 행사를 생각하고” 시 143:5.
하나님의 자비하신 은혜는 순간마다 그대들을 둘러싸고 있다. 따라서 그대들의 축복은 날마다, 어떻게, 또 어디에서부터 오는가를 생각해 보는 것은 유익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귀하신 축복이 그대들의 마음에 감사의 정신을 일으키게 하라. 그대들은 하나님의 모든 축복과 그대들에게 나타나는 끈임없는 인자하심을 헤아릴 수 없으니 하나님의 축복은 원기를 새롭게 하는 빗방울과 같이 무수한 까닭이다. 구름과 같은 자비가 그대들 위에 머물러 있다. 그리하여 지금 곧 그대들에게 방울이 되어 떨어지려 하고 있다. 만일 그대들이 구원의 귀한 선물을 감사한다면 그대들은 날마다 새로와지는 것을 느낄 것이요, 예수의 보호와 사랑을 감각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그대들은 화평의 길로 인도함을 받으리라. 천연계의 있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만물을 보라. 그대들의 마음을 바쳐 조물주께 감사하도록 하라. 자연의 책 가운데는 우리의 마음에 유익이 되는 연구가 있다. 감사할 줄을 모르는 분별 없는 자가 되지 말라. 그대들의 총명의 눈을 떠서 자연계에 나타난 하나님의 법칙의 아름다운 조화를 보라. 그리고 경외심을 갖고 그대의 창조주, 곧 하늘과 땅의 최고의 통치자를 존경하라. 만일 청년들이 천연계의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조화와 성경 말씀에 계시된 그의 권위와 능력을 연구한다면 그들은 하나하나의 연구를 통해서 저들의 재능은 더욱 촉진되고 향상된다. ...하나님의 능력의 모든 경이를 바라봄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마음은 모든 교훈 가운데 가장 어렵고 또한 가장 유용한 교훈을 배우게 될 것인데 곧 인간의 지혜는 무한하신 하나님과 연결되고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성화되지 않는 한 어리석은 것이라는 사실이다. 만일 우리가 신실히 자연의 책을 연구해 본다면 우리는 그 자연의 책이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능력을 명상하는 데 있어 풍성한 근원이 되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우리 자신을 기도하는데 바침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하니” 행 6:4.
그대가 사단의 고안에 의해 미혹되지 않고, 부주의 하고, 경솔하고, 허탄한 정신에 팔리면서 종교적 임무를 수행함으로 그대의 양심을 달래지 않도록 기도하라. 그렇다. 전에 결코 해 본적이 없는 기도를 하라. 세상의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그리스도인이 쾌락을 사랑함은 온당하지 않으나, 그러나 지구의 역사가 곧 마쳐지려고 하는 장면인 지금은 얼마나 더 그러한가. 그대의 영생의 소망의 기초가 너무 든든히 놓여 졌다고 할 수 없다. 그대의 영혼의 복지와 그대의 영원한 행복은 그대의 기초가 그리스도 위에 세워졌는지에 달려있다. 다른 이들이 세상의 향락을 갈망하는동안 그대들은 명백한 하나님의 사랑의 약속을 진실하게, 그리고 열렬하게 갈망하면서 ‘누가 내게 나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분명히 하도록 보여줄 수 있는가?’ 라고 부르짖으라. 마귀의 흑암이 기도를 등한히 하는 자들을 둘러싼다. 원수의 속삭이는 유혹들은 저들을 죄에 빠지게 한다. 이 모든 것은 다 저희가 하나님께서 저들에게 지정하신 신령한 기도의 특권들을 사용하지 아니하는 까닭이다. 기도는 전능하신 자의 무한한 자원을 쌓아둔 하늘 창고를 여는, 믿음의 손에 놓여진 열쇄임에도 불구하고, 왜 하나님의 아들과 딸들이 기도하기를 꺼려하는가? 끊임없는 기도와 부지런한 경성이 없이는 우리는 부주의하게 되고 정로에서 탈선할 위험이 있게 된다. 대적은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는 길을 막아서 우리가 열성있는 간구와 믿음으로 시험을 이길 만한 은혜와 능력을 얻지 못하도록 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한다.
순간적인 기도를 계속함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롬 12:12, 13.
기도를 꾸준히 하는 것은 응답을 받는 한 조건이 되어 왔다. 우리의 믿음과 경험이 자라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항상 기도하여야 한다. 우리는 “순간마다 기도를 하며”(롬 12:12 영문),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골 4:2)있어야 한다.... 끊임없는 기도는 우리의 심령이 하나님과 끊임없이 연결됨을 의미하는 것, 즉 생명이 하나님께로부터 흘러 나와서 우리의 생애로 들어오고 다시 순결과 거룩함이 우리의 생애에서 하나님께로 흘러 돌아가는 것이다. 기도에 있어서 부지런함이 필요하다. 아무 일로든지 그대는 방해를 받지 말라. 예수와 그대의 영혼 사이에 교통이 막히지 않도록 온갖 노력을 다하라. 기도를 습관적으로 늘 하는 곳으로 가서 하도록 기회를 찾으라. 하나님과 교통하기를 참으로 원하는 자들은 기도회에 참석하게 될 것이요 또 저희의 의무를 신실히 행하며 저희가 얻을 수 있는 모든 유익을 얻으려고 열심으로 갈망하게 될 것이다. 저들은 저희가 하늘의 빛을 받을 수 있는 처지에 들어가기 위하여 온갖 기회를 이용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가족 테둘이 안에서 기도를 할 것이나 무엇보다도 은밀한 기도를 등한히 하여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영혼의 생명이기 때문이다. 기도를 등한히 하면서 영혼이 번영할 수는 없다. 가족 기도나 공중 기도만으로는 넉넉치 않다. 홀로 조용한 가운데서 하나님의 감찰하시는 눈 앞에 우리의 영혼을 열어 놓을 것이다. 은밀한 기도는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만이 들으셔야 한다. 호기심을 가진 자의 귀는 이러한 기도의 호소를 듣지 말아야 한다. 은밀한 기도에 있어서 영혼은 주위의 영향과 소란으로 방해를 받지 말아야 한다. 그 영혼은 조용히, 그러면서도 열렬히 하나님을 찾아 나아갈 것이다. 은밀한 것을 보시고 중심에서 나오는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는 분에게서 나오는 그 감화는 아름답고 지속하는 것이다.
바울의 모본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골 1:9.
바울과 그의 동료들이 타고 여행을 계속해야 할 배가 출항하려 하므로 형제들은 급히 배에 올랐다. 그러나 사도 자신은 드로아와 앗소 사이의 가까운 육로를 택하였고 앗소에서 그의 동료들을 만나기로 하였다. 이리하여 그는 짧은 기간이지만 명상과 기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가 예루살렘을 방문하는데 관련된 어려움과 위험들, 그와 그의 사업에 대한 그곳 교회의 태도, 또한 다른 지방에서의 교회들의 상태와 복음 사업에 대한 관심 등 이런 것들이 그가 진지하게 그리고 근심스럽게 생각하는 주제이었고 그는 하나님께 능력과 지도를 간구하기 위하여 이 특별한 기회를 이용하였다. 그대들은 골방에서 기도할 것이요 그대들의 매일의 업무를 행할때에도 그대들의 마음을 자주 하나님께로 향하게 하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한 것도 이렇게 함으로 된 것이다. 이렇게 하는 묵상기도는 좋은 향내와 같이 은혜의 보좌 앞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그 심지가 하나님을 굳게 의지하는 자를 사단은 능히 정복할 수 없다. 하나님께 기도를 올리기에 부적당한 시간이나 장소는 없다. 열성있는 기도의 정신으로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하게 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거리의 사람이 많은 곳에서나 일에 종사하고 있는 중에서라도 우리는 옛날 느혜미야가 아닥사스다왕 앞에 자기의 소원을 아뢴 것처럼 하나님께 기도하여 그의 지도를 구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은밀한 교통은 우리가 어디 있든지 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 기도하리라 “그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 시 116:2.
우리는 항상 마음문을 열어 놓고 예수께서 하늘의 손님으로서 우리의 마음에 들어와 계시기를 청하는 초청을 보내야 할 것이다. 비록 우리의 주위가 더럽고 부패된 분위기로 둘려 있을지라도 우리는 그 더러운 공기를 호흡하지 않고 하늘의 깨끗한 공기 가운데서 살 수 있다. 우리는 진정한 기도로써 우리의 심령을 하나님께로 올림으로 불순한 망상이나 불신성한 생각이 우리의 마음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모든 문을 막을 수 있다. 하나님의 붙들어주심과 그의 축복을 받기 위하여 마음문을 열어놓는 자들은 이 땅의 분위기보다 더 거룩한 분위기 가운데서 행할 수 있게 될 것이며 하늘과 끊임없는 교통을 지속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예수에 대한 더욱 명확한 견해와 영원한 실재에 대한 더욱 충분한 이해를 가질 필요가 있다. 성결함의 미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마음을 채워야 할 것이며, 따라서 이것을 성취시키기 위하여 우리는 하늘 사물에 대한 거룩한 계시를 받기 위해 간구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늘 공기를 호흡하기를 허락하시도록 우리의 심령을 항상 하늘로 향하게 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과 매우 가까이 삶으로써 뜻하지 않은 시험을 당할지라도 우리의 생각이 마치 화초가 태양을 향하는 것처럼 자연적으로 하나님을 향하도록 할 것이다. 그대들의 소원과 기쁨과 슬픔과 염려와 두려움을 하나님 앞에 내어 놓으라. 그대들은 그분을 괴로우시게 하거나 피곤하시게 할 수 없다. 그대의 마음을 번뇌하게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분에게 내어놓으라. 그분이 감당하시기에 너무 과대한 것은 없다. 그 까닭은 그가 세계들을 붙드시고 우주의 모든 사건을 관리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다소라도 우리의 평강에 관계되는 일은 그것이 아무리 사소할지라도 그가 주목지 않으시는 것은 없다.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리이다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시 5:3.
그대는 아침에 일어날 때에 그대의 무능함과 하나님의 능력을 받을 필요를 느끼는가? 그대는 그대의 소원을 겸손하게 또한 진심으로 천부께 고하는가? 만일 그렇게 하면 천사들은 그대의 기도를 주목할 것이요 만일 이 기도가 외식하는 입술에서 나오지 아니하였으면 그대가 무의식 중에 과오를 범할 때에나 또는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과오를 범하게 하는 감화를 끼칠 위험이 있을 때에 그대를 호위하는 천사는 그대의 곁에서 그대로 하여금 보다 더 좋은 길로 행하도록 인도하고 그대가 할 말을 선택하여 주고 그대의 행위가 바르게 되도록 감동해 줄 것이다. 만일 그대가 위험 중에 있음을 느끼지도 아니하고 시험을 대항하기 위하여 주의 도우심과 힘을 구하지도 않으면 그대는 반드시 곁길로 나가서 방황하게 될 것이다. 그대가 의무를 등한히 한 사실은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책에 기록될 것이요 그대는 심판의 날에 부족한 것이 드러날 것이다. 아침과 밤에 그대의 가정에서 그대 자신을 위하여 승리를 얻으라. 그대의 매일의 활동이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게 하라. 기도할 시간을 가지라. 그리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시는 것을 믿으라. 믿음을 그대의 기도에 혼합시켜라. 그대는 언제나 즉각적인 응답을 받은 것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때가 믿음이 연단되는 때이다. 그대가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는지, 그대가 실제적인 산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 깨달을 수 있는 시험을 받게 된다. 하나님과 교제함으로써 좋은 사상과, 고상한 욕망과, 진리에 대한 명철한 인식과, 고귀한 행동의 목적을 격려받게 된다. 이와 같이 하여 하나님과 연결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과 딸들로 인정하신다. 그들은 끊임없이 향상하고 또 향상하여 하나님과 영원에 대한 좀 더 뚜렷한 관념을 가지게 된다. 그리하여 필경 하나님께서는 그들로써 세상에 대한 빛과 지혜의 통로가 되게 하신다.
그 이름이 거룩하고 지존하시도다 “여호와께서 그 백성에게 구속을 베푸시며 그 언약을 영원히 세우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고 지존하시도다” 시 111:9.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드릴 때에는 공중의 앞에서든지 혹은 은밀한 방에서든지 주 앞에 무릎을 늘 꿇고 하는 것이 우리의 특권이니 우리의 모본이신 예수님께서도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으며” 그분의 제자들도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다”고 기록되었다. 바울은 말하기를 “이러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라”고 하였고 에스라는 하나님 앞에 이스라엘의 죄를 고백하려고 “무릎을 꿇었”다. 다니엘은 “하루 세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다. 하나님께 대한 참된 경외심은 하나님의 무한히 위대하심을 깨닫고 또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이식함으로 생겨난다. 각 사람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그곳에 임재하고 계심을 마음 속 깊이 인식하여야 한다. 기도하는 시간과 장소는 하나님께서 그곳에 임하여 계시므로 거룩하다. 또한 태도가 경건하면 경외심이 더욱 깊어진다. 시편 기자는 여호와를 가리켜 “그 이름이 거룩하고 지존하시도다”고 하였고 천사들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를 때에 그 얼굴을 가리운다. 그런즉 타락하고 죄많은 우리 인간이 여호와의 이름을 말할 때에 얼마나 경건하고 두려워하는 태도를 취하여야 하겠는가! 노소를 물론하고 누구든지 하나님께서 특별히 임하여 계시는 곳을 어떻게 여겨야 할 것인지 이 성경의 말씀을 심중히 생각해보기를 바란다. 공중 집회에서든지 혹은 가족 예배나 또는 은밀한 방에서든지 간에 어렵고 과장된 말로 기도하는 것은 합당치 않다. 특히 공중 앞에서 기도 드리는 자는 쉬운 말을 사용하여 다른 사람이 다 그 말을 잘 이해하고 그 기도에 함께 연합할 수 있게 하여야 한다.
오직 나만은 주님께 부르짖으리라 “나는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여호와께서 나를 구원하시리로다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내가 근심하여 탄식하리니 여호와께서 내 소리를 들으시리로다” 시 55:16, 17.
우리가 그리스도를 매일 교제하는 동무로 삼으면 한 보이지 않는 능력이 우리를 둘러 싸고 있는 것을 감각하게 될 것이요 우리가 예수를 쳐다봄으로 그의 형상과 같이 화하게 될 것이다. 즉 주를 쳐다봄으로써 우리가 변화될 것이다. 우리의 품성이 천국에 들어갈 만큼 부드러워지고 세련되고 고상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하고 친밀히 지내는 그 확실한 결과는 경건함과 순결함과 열심을 더하게 할 것이다. 그리하여 기도의 능력이 자라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신령한 교육을 받고 있는데 이것은 근면과 열심 있는 생애로써 드러난다. 매일 열심으로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도우심과 그의 유지하심과 그의 능력을 얻고자 하는 사람은 진리와 의무의 분명한 개념과 행동의 고상한 목적을 가지게 될 것이요 또한 계속적으로 의를 사모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연락을 유지함으로써 사람들로 더불어 교제하는 가운데 우리의 마음을 주관하는 빛과 평화와 안정함을 그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다.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얻은 힘과 무엇에나 깊이 생각하고 조심성 있게 마음을 훈련시키는 꾸준한 노력은 사람으로 하여금 매일 행할 의무를 위하여 준비하게 하고 또한 어떠한 환경에서든지 그 마음을 평화롭게 가지게 한다. 우리는 이 지구 역사상 가장 엄숙하고 중요한 시기에 살고 있다. 우리는 마지막 날들의 위기 가운데 살고 있다. 중요하고도 두려운 사건들이 우리 앞에 있다. 우리는 기도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도망하며, 주님을 발견하도록 개인적으로 열심히 주님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이 일을 우리의 첫째 사업으로 삼아야 한다.
주님을 찬양하라 “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그를 송축함이 내 입에 계속하리로다”시 34:1.
우리의 헌신적 활동(기도)이 구하고 받는 것으로만 이루어져야 하겠는가? 우리는 언제나 우리의 필요를 생각하고 우리가 받는 혜택은 결코 생각하지 않을 것인가? 우리는 그분의 자비를 받는 자이면서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감사를 표현하지 않고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하신 일에 대하여 그분을 결코 찬양하지 않을 것인가? 우리는 지나치게 많이 기도하지 않고, 감사하는 일에 지나치게 인색하다. 만일 하나님의 부드러운 자비가 더 많은 감사와 찬양을 불러일으켰을 것 같으면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 훨씬 더 큰 능력을 소유하게 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점점 더 풍성해 지고 그분을 더욱 찬양하게 되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그대는 그대의 현 상태를 바꾸고 그대의 간구에 찬양을 더하라. 그대가 그분의 선하심과 자비를 생각할 때 그대는 그분께서 그대의 필요를 생각하시리라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기도하고, 열렬하게 기도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그러나 찬양하는 일을 잊지 말라. 그렇게 되면 그분의 모든 자녀가 그분의 품성을 옹호하게 된다. 그대는 주님을 존귀케 할 수 있고, 도우시는 은혜의 능력을 보여줄 수 있다.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을 감사하지 않고 예수님의 거룩한 자비도 감사하지 않는 자들이 많이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의 계획에 나타난 무한한 은혜를 모멸하기까지 한다. 이 큰 구원에 참여하는 모든 자들이 이 문제에 있어서 분명하지 않다. 그들은 감사하는 마음을 계발시키지 않는다. 그러나 구속의 주제는 천사들이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것은 끝없는 영원한 시대를 통하여 구속받은 자들의 과학과 노래가 될 것이다. 그것은 신중하게 생각하고 지금 연구할 가치가 있지 않은가? 우리는 마음과 영혼과 음성을 다하여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을 인하여”(시 107:8)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