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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21;1-14. 예기치 않은 재난 앞에서 문제를 푸는 방법. 2022. 11. 6.
먼저 오늘본문의 내용과 배경입니다. 광야 앞에 섰던 다윗이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왕권에 복귀를 합니다.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예루살렘에서 쫓겨난 장면이 삼하15장에 나옵니다. 그런데 쫓겨나면서 이런저런 경험을 했습니다. 저항하는 사람들이 누구이며 반역에 붙어있는 세력이 누구이며 그리고 아직도 사울 왕을 그리워하며 사울 왕의 후손에게 정통성을 부여하고 저주하고 손가락질을 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다윗의 잘못에 대하여 다윗을 키질하고 다윗을 마음에 두면서도 또 다른 경험을 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에는 예루살렘으로 복귀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었습니다. 그런데 또 다시 나라와 백성들을 섬기는 다윗에게 또 다른 어려움이 찾아 왔습니다. 예기치 않은 재난으로 또 다른 어려움을 겪습니다. 지금 다윗은 예루살렘으로 복귀를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마음과 사랑과 배려로 모든 것이 평정이 되었습니다. 다윗에게 다시 돌아오게 되는 은혜를 허락하셨고 약속하신 것을 다시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제 새로운 진용으로 군대장관과 참모진들을 꾸렸습니다. 그 말씀이 20장 마지막 부분입니다. 20;23-26, 요압은 이스라엘 온 군대의 지휘관이 되고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는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의 지휘관이 되고 아도람은 감역관이 되고 아힐룻의 아들 여호사밧은 사관이 되고 스와는 서기관이 되고 사독과 아비아달은 제사장이 되고 야일 사람이 다윗의 대신이 되니라
여러분, 새로 시작을 했으니까? 잘 되어야지요? 인적 쇄신도하고, 새로운 정책을 가지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스라엘을 섬기려고 합니다. 여기에 시너지가 붙어서 이전보다 더욱 풍요로운 시대를 열어가야 되잖아요? 그래서 21;1, 시작도 다윗의 시대라고 합니다. 이제 다윗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습니다. 광야의 인생에서 이제는 안정되고 소망이 되는 다윗의 시대를 열어가려고 막 시작을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웬일입니까? 다윗의 시대에 연부년 3년간 흉년이 듭니다. 거듭하여 기근이 들었습니다. 다윗의 시대에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기는커녕 먹는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여러분, 의식주의 문제인 먹는 문제가 해결이 되어야 백성들이 안심을 합니다. 왜냐하면 삶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왕과 각료와 서기관과 제사장과 대신과 비서들을 새로 구성하고 출발한 새로운 시대, 다윗의 시대에, 백성들의 의식주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백성들의 삶이 무너지면 또 다시 광야의 인생이 되는 것은 역사가 증명을 합니다. 여러분, 기근이 무엇입니까? 비가 오지 않아서 농사를 지을 수 없을 때 겪는 재해입니다. 우기와 건기가 분명한 지역에서 우기 때 비가 와야 하는데, 연이어 삼 년 동안이나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부족한 식량과 물의 부족으로 고통과 어려운 상황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다윗의 시대가 자연재해로 위기를 맞았습니다. 그런데 자연재해는 다윗이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윗이 다시 어려움의 문제 앞에 직면합니다. 그런데 다윗은 이 문제와 위기를 그리고 내일과 미래를 위하여 너무나 쉽고 간단하게 풀어냅니다. 여러분, 예기치 않았던 재해와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다윗은 수없이 고통을 당하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10년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 광야인생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세 번이나 광야 인생에서 복을 받는 자리까지 왔습니다. 여러분, 나라와 백성의 안정과 성장과 변화를 위해서 무엇이 우선순위이고 무엇이 필요할까요? 여러분, 변화된 사람만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사건을 읽어낼 수 있습니다. 다윗은 이 사건을 읽어냅니다. 사건을 읽어내야 해답을 얻을 수 있고, 광야의 인생이 되지 않습니다. 다시 오는 고난을 이겨 낼 수가 있습니다. 백성과 나라를 바로 세울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윗이 어떻게 년 부년 3년의 문제를 풀어 갑니까?
1.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위로와 공감입니다. 고통을 받는 백성들을 위해서 위로를 하고 공감을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다윗은 먼저 하나님께 무릅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께 묻습니다. 문제 앞에 그 문제의 이유를 여호와께 묻습니다. 다시 내몰릴 환경과 예상치 못했고 하지 할 수도 없었던 년 부년 3년의 기근을 하나님께 올려 드렸습니다. 왜냐하면 이 재난은 다윗이 책임지고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처음 기근이 들었을 때는, 요즘처럼 이상기온이겠지. 그렇게 한 해를 지냈습니다. 그런데 삼년이나 연속으로 기근이 들면서 다윗 왕은 무엇인가를 깨닫습니다. 다윗은 기도의 사람입니다, 이전의 모든 문제가 원인이 있었음을 체험한 다윗은 연부년 삼년 동안의 기근 속에 하나님의 분명한 메세지가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의 고통과 아픔과 기근을 위해서 공감하고 위로하면서 다윗 왕은 무릎을 꿇었습니다. 하나님!!! 이 땅에 삼 년이나 계속적으로 기근이 일어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고통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나라가 아닙니까? 누가 백성의 아픔을 호소하겠습니까? 저의 책임 아닙니까? 다윗은 또 다시 광야로 몰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알게 해 주십시오. 깨달은 대로 실천하겠습니다. 그런데 다윗의 간구에 응답하시는데 삼 년 동안이나 기근을 내리신 이유는 다름 아닌 사울 왕 시대의 문제가 아직 해결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1절에 이는 사울과 피를 흘린 그 집을 인함이니 저가 기브온 사람을 죽였음이니라. 사람을 죽인 사울 왕과 피를 흘린 집안을 하나님께서 기억하셨습니다. 사울 왕이 어떤 집안에게 피를 흘리게 한 것과 이로 인해서 피를 흘린 집안을 생각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문제는 이 일의 원인이, 년 부년 3년, 기근의 원인이 다윗 왕 때 일이 아니고 사울 왕 때의 일입니다. 다윗으로서는 너무나 억울합니다. 그것은 내가 한 일이 아닌데. 왜 년 부년 3년의 기근을 주셨는가? 왜 이렇게 하십니까? 이유를 왜 나 한태 묻습니까? 라고 도리어 이유를 물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사람들은 그렇습니다. 책임의 문제 앞에 다른 사람 때문에 발생한 일은 나와 상관이 없다고 합니다. 앞사람의 일로 내가 책임을 지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논쟁으로 귀중한 세월 다 보내다가 결국 하고 싶은 일과 꼭 해야 하는 일들을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다윗의 입장에서 하나님의 처사가 너무나 억울하고 속이 상합니다. 전임자인 사울 왕이 잘못한 일들 때문에 삼 년 동안이나 온 나라에 가뭄과 흉년으로 기근이 들었습니다. 잘못하면 또 다시 광야의 인생이 되는 단초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달랐습니다. 전임자의 책임이라고 떠넘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어떻게 해야 이 어려운 난관을 해결 할 수 있느냐며 여호와 하나님께 묻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자신이 그 문제에 대하여 책임을 지겠다는 선언입니다. 자신이 책임을 졌습니다. 그리고 해결하려고 직접 억울함과 분노에 가득 차 있던 기브온 사람들을 불렀습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내가 어떻게 속죄하여야 너희가 여호와의 기업을 위하여 복을 빌겠느냐? 다윗은 당면한 기근 문제를 해결할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과 나라의 어려움을 해결하고 그리고 자신들을 원망하고 미워했던 기브온 사람들에게서 복을 받는 민족으로 삶의 길을 열어 주려고 합니다. 여러분, 진정한 위로와 공감은 책임의 문제가 제기 됩니다. 다윗은 책임을 졌습니다.
2. 그러면 왜 진상확인과 책임이 필요한가? 다윗은 확실한 책임을 지지 위해서 이렇게 되어 진 원인을 찾았습니다. 원인 규명이 왜 필요합니까? 책임의 소재가왜 있어야 합니까? 백성들의 문제를 해결하고 위로와 새로운 앞으로의 전진을 위해서 그렇습니다. 슬픔과 회한과 트라우마를 이겨내기 위해서 그렇습니다. 다윗은 진상규명과 책임의 소재를 밝혀냅니다. 그러면 도대체 사울 왕 시대에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2-1. 사울 왕은 이방 민족에 대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출애굽기 34장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시내산에서 언약을 체결하시면서 강조한 부분이 있는데 이방인에 대한 내용입니다. 출 34:11-17 장차 가나안을 점령하면 그 땅의 대표적인 7족속들을 내어 보내고 그들이 섬기는 신이나 우상들을 따라가지 말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언약 백성의 순결한 삶에서 떠나 불순종의 올무가 될까 염려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사무엘서 입니다만 그 배경은 여호수아서 7장에서 10장까지의 배경입니다. 이때 이스라엘은 광야 40년을 마감하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막 정복하기 시작한 때이었습니다. 수 10:8절 이하에 보면 이스라엘이 남방 5개국과의 싸움은 이전 싸울 때와 비교하여 이스라엘의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이 있을 때 움직였습니다. 그런데 말씀대로 진행하지 않았습니다. 아간의 잘못으로 아이 성의 점령이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여호수아의 용사 삼천명 중 36명이 죽었는데 그 나머지 용사들과 곁에서 지켜보던 군대와 백성들의 마음이 물같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기도 없이 맺은 기브온과의 계약에서 많은 실수를 했습니다. 여호수아가 다시 아이성을 점령할 당시, 그들은 먼 나라에서 온 것 같이 꾸며 여호수아에게 자신들과 조약을 맺자고 요청을 하였고 여호수아는 그들의 제안을 그대로 받아 들였습니다. 살기 위해서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언약을 맺은 지 삼 일만에 그들이 먼 곳에서 온 족속이 아니라 기브온, 그비라, 브에롯, 기럇여야림 등에서 온 것이 드러났습니다. 기브온 민족이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거짓말을 그대로 믿고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은 약속을 하고 계약을 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언약과 계약을 하고 약속을 했습니다. 결국 기브온 사람들은 여호수아에 의하여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서 살게 되지만 거짓의 이유 때문에 종이 되어 나무를 패며 물 긷는 사람들이 됩니다. 그런데 가나안 6 거민들이 기브온이 이스라엘과 화친했다는 소식을 듣고 기브온을 먼저 공격을 합니다. 문제는 이 때에 여호와의 이름으로 약속한 것 때문에 여호수아는 기브온 민족을 도와주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우박을 내리시며 도우셨고, 여호수아는 하나님께 태양을 기브온에 머물도록 간구하면서 전쟁이 마무리가 된 역사입니다. 수10:14, 여호와께서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신 이 같은 날은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었나니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셨음이니라. 약속하고 계약한 기브온 백성들을 위해서 이스라엘과 여호수아 군대가 나머지 6나라의 연합군과 싸웠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기브온 백성들의 삶은 고급스러운 삶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편입되는 것으로 만족하며 지내왔는데, 그리고 세월이 흘렀는데, 사울 왕 시대에 이 언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기브온 민족을 학살했습니다. 그리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도망쳐 겨우 목숨을 부지했지만 힘이 없으니까 그들은 억울함도 호소하지 못했고 저항도 하지 못하며 지내왔습니다. 그리고 그 사건은 역사의 뒤안길로 지나가 버리는 듯 했는데 다윗의 시대에 하나님께서 문제를 제기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이름으로 공동체가 된 사람들은 이방인이 아닙니다. 이방의 개념을 뛰어넘어 함께 동행을 하고 동거할 형제자매입니다. 이 것을 말씀하는데 이 것이 진상규명의 시작입니다.
2-2. 책임의 소재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이름으로 한 계약과 약속의 파기는 아니 됩니다. 약속에 신실한 사람을 하나님이 축복하십니다. 하나님은 주의 백성이 진실하기를 원하십니다. 비록 기브온 족속이 속임수로 계약을 맺었지만 하나님의 이름으로 한번 맺은 계약은 영원히 지키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알아보고 기도하고 확인해야 될 책무가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에게 있습니다. 왜냐하면 여호와의 이름으로 계약을 하고 약속을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진실입니다. 배신하지 않습니다. 약속을 지키고 계약을 지킵니다. 오늘 1절에 의하면 이스라엘에 3년간 기근이 들었는데 그 이유를 400년 전 여호수아가 기브온과 한 맹세를 사울이 짓밟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중요 합니다. 여러분, 지혜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약속에 인생을 묶는 것입니다. 사사기 시대에 기브온 족속은 남방 히위족속으로 불렸으며, 이스라엘이 약할 때도 한 번도 배신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나중 아론 계열 일부로 들어가 성전에서 시중드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기브온 땅을 축복하셔서 솔로몬이 그 땅에서 일천번제를 드렸으며 솔로몬의 꿈과 비전도 기브온 땅에서 주셨습니다. 기브온은 충성의 상징입니다. 한번 한 약속은 영원히 변치 않아야 합니다. 느헤미야 3장 7절 에 바벨론에서 귀환이후 무너진 성벽을 재건한 사람도 기브온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기브온 민족을 사랑했고 생각했습니다. 여러분, 오늘 본문도 기브온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일어난 결과입니다. 사무엘하 20장까지 다윗의 이야기는 마무리됩니다. 물론 다윗의 죽음까지는 열왕기하 2장까지 소개되어 있지만, 21장에서 24장은 전체 사무엘 서를 요약하고, 신학적인 결론을 맺습니다. 한마디로 사무엘 서는 하나님의 헤세드와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와 신실하심을 말씀합니다. 사분오열 되었던 사사시대가 한 나라로 반듯하게 세워질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님의 긍휼 때문입니다. 물론 다윗이 정치를 잘했고 여러 가지 수고를 했고, 군사력이 강했기 때문도 있지만, 그것 때문에 나라가 바로 세워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배후에서 도우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다윗이 하루아침에 곤두박질한 적이 몇 번입니까? 그 많은 실패 속에서도, 실패도 보통 실패가 아닌 그런 실패 속에서 거뜬하게 오뚜기처럼 일어난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기가 막힌 일들이 벌어지면서 복귀했던 이유는 운이 좋거나, 부하를 잘 두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긍휼이 이스라엘을 지키고, 다윗을 지켰기 때문입니다. 이런 기가 막힌 일들과 필요 할 때 적재적소에 맞게 들어맞는 이유가 자기 자신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때문입니다. 그런데 다윗의 정치가 사울의 정치나 이후의 왕들의 정치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 무엇입니까? 약속에 근거한 긍휼이고 헤세드의 정치입니다, 하나님 원하시는 정치입니다. 다윗은 절대 자기 성격과 자기 분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공작하지 않았고 사찰하지 않았습니다. 율법으로 하지 않고 긍휼로서 모든 일을 대처했습니다. 사울이 자신을 죽이려고 해도 긍휼로 다가서고, 사울이 죽어도 우는 이유는 하나님의 긍휼을 체험한 다윗이 자신의 생애에서 하나님의 긍휼을 구체화했기 때문입니다. 그 모든 배후에는 하나님이 있습니다. 하나님 식으로 하면 된다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가르쳐 준대로 하면 승리하고 복을 받습니다. 그러면 나라도 살고, 본인도 살고 공동체 구성원도 세워집니다. 다윗은 최종 책임자로서 위로와 격려를 하고 아픔을 치유했습니다. 책임자로서 약속의 바탕 위에 하나님의 긍휼을 정치에서 만들어 갔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광야의 사람이 아니라, 책임과 이유를 자신에게서 찾는 위대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약속에 대하여 충실 합니다. 책임을 지는 사람을 축복하십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약속과 계약 앞에 충실하라고 합니다. 다윗은 약속에 충실 했습니다. 그러나 사울 왕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과 기브온 민족에게도 지키지 않았습니다. 약속을 파기 했고 자기의 주장을 내 세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면서 많은 약속을 합니다. 그 약속의 바탕위에 긍휼을 베푸시는 삶으로 위대한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3. 책임을 어떻게 구체화 시킵니까?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들과 기브온 민족에게 위로하고 격려를 합니까? 오감을 넘어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초월의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연 부년 3년의 기근을 해결해야만 합니다. 다윗은 년 부년 3년, 기근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그 문제는 약속을 회복하는 것으로부터 시작을 합니다. 다윗이 위대하게 된 이유가 몇 가지 있습니다. 다윗에게 있어서 기근이라고 하는 문제가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보다 분명하고 정확하게 깨닫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기브온 지도자들이 요구하는 일곱 명의 사울의 후손들을 지정해 처형함으로써, 피를 흘린 곳에서 속죄를 받지 아니하면 속죄함을 받을 수 없다는 민35: 33의 말씀을 그대로 실천합니다. 다윗은 사울의 잘못을 자신의 잘못으로 간주하며 기브온 사람들의 한을 풀어 주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기업으로 번영을 누리기 위해서는 약속 파기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합니다. 그는 기근이 하나님의 진노하심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사실 가뭄과 기근은 시내산 언약에 규정된 형벌입니다. 레 26:19-20, 신 28:38-40에 나오는 이 언약적인 형벌의 목적은 여호와와 언약을 맺은 이스라엘이 여호와께로 다시 돌아오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범국가적으로 내린 재난의 원인을 알기 위하여 여호와를 찾았고 결국 그는 그 원인을 알았습니다. 한 나라의 재해는 이유 없이 찾아오지 않습니다. 사고가 아니고 책임을 다 하지 않은 재해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알면 행동에 나서야지요. 그런데 지금의 한국은 어떻습니까? 세계의 외신들은 그 이유와 책임의 소재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고 메시지를 전하는데 한국의 대부분의 언론들은 몰라요. 정치인들도 모르고 정부는 책임이 없다고 합니다. 모니터링이 다 되는 IT 강국이 한국입니다. 국격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다윗은 약속 파기의의 결과가 년 부년 3년의 기근의 원인이라는 것을 알고 약속을 회복하는 일로 책임을 집니다. 그러면 왜 약속을 회복할까요?
3-1. 하나님 이름의 약속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문제가 무엇입니까! 사람과의 약속도 중요하지만 여호와의 이름의 약속이 중요합니다. 사람과 사람의 약속이 있고 하나님과 사람의 약속이 있습니다. 그런데 계약과 약속위에 당사자의 신실함과 정직이 요구됩니다. 그래서 계약이고 커버넌트입니다. 그런데 사람과의 약속이나 계약도 위반이 되면 배로 변상을 합니다. 한번 맺은 계약과 약속은 자기마음대로 파기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현대 사람들은 약속을 약속으로 보지 않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배상도 없이 일방적으로 파기 합니다. 여러분, 사람과의 약속도 귀중 합니다. 특별히 긍휼과 관계된 약속은 더욱 중요 합니다. 베푸는 약속은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생명입니다. 생명이기 때문에 약속과 계약은 신실하게 지켜져야 하고 이행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계약을 지키려는 사람과 지키지 않는 사람에게 향한 하나님의 뜻이 어디 있느냐? 입니다. 계약의 바탕 위에 긍휼을 따르지 않은 자와 따른 자의 차이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맺은 언약은 싫든 좋든 이 언약을 따라야 합니다. 그런데 사울왕은 이런 언약을 무시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하는 것 한 두 번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 버릇이 또 나타났는데 이것 때문에 다윗시대에 3년 계속해서 흉년이 들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보살핌으로 하늘에서 비가 내리는 땅인데 잘못을 하면 제일 먼저 일어나는 것이 기근입니다. 왕상 18장에 선지자 엘리야가 활동하던 아합 왕 때에도 기근이 들지 않습니까! 유명한 사건 있지 않습니까! 엘리야가 기도하고, 머리를 무릎사이에 집어넣고 기도해서 기근이 끝났습니다. 그런데 기근이 들자 다윗은 현실을 보면서 하나님의 그 어떤 요구가 있고 징계의 의미와 관심과 관여의 의미를 알았습니다. 사실 기브온은 이스라엘 백성이 아닙니다. 12지파 속에 있는 지파가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땅에 들어갈 때 정복하고 몰아내야 했던 민족입니다. 그런데 이방민족이 함께 살고 있는 것이, 함께 동거하는 것이 아마도 사울은 꺼림 직하고 불편했습니다. 그래서 이 민족을 씨를 말리려고 대량학살을 했습니다. 사울 왕은 싫은 것은 싫다 표명하는 사람 아닙니까! 다윗이 싫어서 여러번 죽이려 했고, 제사장도 자기 구미에 안맞으니까 다 죽이지 않았습니까! 학살 하는 것과 죽이는 것이 사울의 특기예요. 언약 같은 것은 신경을 안 쓰고 그냥 무시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의 약속을 우습게 여기고 하나님의 이름을 헌 신짝 내 버렸습니다. 그런데 사울 왕 때에야 이 일을 밝혀도 문제가 해결 안 될 것 같으니까 다윗 때에 하나님께서 물으셨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기브온 민족에게 사죄하고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그랬더니, 사울가문의 7명을 요구합니다. 7명만 남아서 7사람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완전수를 잡아서 이 일에 대해 잘못했다는 것을 표명하기 위한 선전효과입니다. 다음에도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을 사전에 예방하는 효과입니다. 그러면 다윗은 어떤 근거에서 이렇게 합니까?
3-2. 긍휼이고 불쌍히 보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하나님의 이름의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결과입니다. 지금 당장 더 큰 문제가 안 일어나도 나중에 쓰나미처럼 어려움이 밀려옵니다. 그래서 다윗은 기브온 민족에게 긍휼을 베푸는 것으로 시작을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기브온 민족에게 긍휼을 베풀다 보니까? 또 다른 사람이 억울함을 당합니다. 사울 가문에 리스바라는 여인이 울기 시작을 합니다. 사울의 둘째 부인 정도 되는 여인인데 매력적인 인물입니다. 사울이 죽고 나서 아브넬 삼촌이 이 리스바 여인과 동침해서 물의를 일으켰던 그 여인입니다. 그런데 이때 이 여인의 아들이 죽었습니다. 그래서 이 리스바라는 여성이 우는데 얼마나 서럽게 우는지 소문이 퍼졌습니다. 10절에 보면 아야의 딸 리스바가 굵은 베를 가져다가 자기를 위하여 반석 위에 펴고 곡식 베기를 시작할 때부터 하늘에서 비가 시체에 쏟아지기까지 그 시체에 낮에는 공중의 새가 앉지 못하게 하고, 밤에는 들짐승이 범하지 못하게 한지라. 이에 아야의 딸 사울의 첩 리스바의 행한 일이 다윗에게 들리매. 얼마나 울었냐하면 기간으로 따지면 거의 6개월입니다. 울려면 이 정도는 울어야 되지요.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잖아요.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어겼으니까 심판받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데 내 아들이 매달려 있는데 눈이 감겨집니까? 이것 도 볼 수가 없습니다. 아무 힘도 없는 여인이니까 할 수 있는 것이 우는 것 밖에 없죠. 이러니까 다윗의 귀에 들렸습니다. 여인의 아픔과 슬픔과 그 애절함이 다윗에게 부딪혔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에서 율법을 이기는 것이 무엇 입니까! 긍휼이고 진심입니다. 예수님이 율법을 이기는 이유가 무엇 입니까! 율법에 대항해서 말하는 이유가 무엇 입니까! 긍휼이고 진심입니다. 진심 없는 율법과 긍휼 없는 율법은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혼자 매일 철야하면서 기도하고, 울고 있는 이 진심과 이 긍휼이 사람을 울립니다. 여러분, 사람 살리고 사람을 돕기 위해서 율법이 만들어졌지, 사람을 괴롭히려고 만든 율법이 아닙니다. 이 하나님의 마음을 다윗이 다시한 번 깨닫습니다. 율법을 율법대로 다 해석하지 않고, 긍휼을 베풉니다. 어떻게 합니까? 이때까지 사울의 무덤이 길르앗 야베스에 있었습니다.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이 사울의 시체가 성벽에 매달려 있던 것을 가져와서 자기 땅에 묻지 않았습니까! 그 유골을 가져와서 정중하고, 명예롭게 장례식을 거두고 치루어 주었습니다. 사울 왕의 아버지와 할아버지인 기스의 무덤에 안장을 하고, 그 후에 이 자녀들의 시체도 안장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는 여기서 해결됩니다. 기브온 민족과 사울의 가문에 긍휼을 베풀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긍휼을 가지고 이웃을 보시면 재난과 뜻하지 않던 문제가 해결이 됩니다. 그런 여러 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3-3. 원인 규명과 책임의 소재를 밝히고 그리고 거기에 합당한 처리와 긍휼로 위로하고 격려하면 그 후에야 기도를 들으시느라. 근본을 치료하니까? 하나님께서 들으셨습니다. 14절에 사울과 그 아들 요나단의 뼈와 함께 베냐민 땅 셀라에서 그 아비 기스의 묘에 장사하되 모두 왕의 명대로 쫓아 행하니라 그 후에야 하나님이 그 땅을 위하여 기도를 들으시니라. 무슨 말씀입니까! 이제야 기근이 그쳤습니다. 다윗이 사울 가문에 문제제기를 해도 기근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문제의 원인을 해결했는데도 문제는 여전히 남았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의 긍휼과 이 다윗의 긍휼이 해답이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말씀 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단순히 율법을 어기면 심판받아! 그것이 아니라, 긍휼로 살아야 할 것을 말씀합니다. 기브온같이 연약해 보이는 사람들에게 보여줄 것이 무엇이냐? 긍휼로 보여주고 긍휼로 대해야 합니다. 리스바에게 보여 줄 것이 무엇입니까? 긍휼입니다. 사울 가문에 보여 줄 것이 무엇입니까? 긍휼입니다. 다윗이 광야의 인생에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긍휼입니다. 성경 전체가 보여주는 것이 무엇 입니까? 하나님이 보시는 긍휼, 예수님의 십자가의 긍휼입니다. 그런데 그런 긍휼을 보이기 위해서 하나님의 품에 안겨야 됩니다. 여인이 하나님의 긍휼에 기대니까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여러분, 무엇을 잘하고, 열심히 한다고 다 해결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2절에 사울 왕이 유다와 이스라엘을 위하여 열심이 있으므로 기브온 민족과의 약속을 파기 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열심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야곱을 보십시오. 열심으로 따지면 이 사람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형 속이려고 계략 펴는 것 보십시오. 때에 맞춰서 팥죽을 만들지 않나! 몸에 양털하고, 목소리 변조해서 축복받으려 하지 않나? 부인 하나 얻기 위해 20년을 죽어라 고생하지 않습니까? 엄청난 사람이죠. 하나님 앞에서도 이 열심이 꺾입니까! 절대 안 꺽 지요? 하나님과 씨름하고, 안다리 걸고 그러다가 어찌 됩니까! 환도 뼈 부러지고. 그런데 열심으로 제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씨름에서는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나중에 축복해달라고 합니다. 씨름 할 때는 축복받지 못하던 사람이 씨름을 포기했더니 축복을 받습니다. 품에 안겼더니 해결이 됩니다. 여러분,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과 일하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씨름먼저 하는 것이 아니라, 품에 안기는 것입니다. 품을 배운 사람이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이 리스바 여인이 이후에 무엇을 말하고 다녔겠습니까! 하나님의 은혜와 다윗의 긍휼을 말하고 다니지 않았겠습니까! 잘못했지만, 긍휼로 보아주시더라, 하나님은 긍휼이시고 사랑이시라. 하나님의 품에 안겼더니 여인의 아픔이 해결되었고, 민족의 아픔이 해결되었습니다. 다윗의 능력과 실력과 리더십 아닙니다. 그 긍휼에 매달려 살 때 다윗의 탑이 세워집니다. 그래서 14절에 그 땅을 위하여 기도를 들으시니라, 그 후에야 라는 표현은 단순히 사울의 후손을 처형한 후가 아니라, 기브온 백성들을 위로하고, 사울 가문의 슬픔에 대하여 긍휼을 베풀고 정리되지 못했던 베냐민 지파의 조상의 묘실에 대한 것 까지 해결한 이후입니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계절입니다. 무엇인가 묵상하고 무엇인가 생각하고 무엇인가 다짐을 하고 싶은 시간들입니다. 빈 그릇 채워가는 여정의 이 가을의 아름다움 속에 주의 은혜가 넘쳐나야 합니다.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점점 들어가지만 우리의 수고는 헛되지 않습니다. 고후3:16, 우리의 겉 사람은 후패하나 속사람은 날로날로 새롭도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삶의 기근과 재난의 문제가 있습니까? 주님께서 긍휼의 은혜를 베푸셔서 여러분의 문제가 해결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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