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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의 죽음과 사후세계
1. 유교의 상, 제례
가. 유교의 상례
조선 시대의 유학자들은 주자학의 수용 이후 가족 친지의 죽음을 대하는 문화적 양식을
중국의 古禮에 연원을 둔 상례와 제례의 규범으로 정착시켜 왔다.
喪은 상실을 의미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상례는 부모의 죽음을 완전한 존재의 소멸이 아닌 존재의 이동 또는 사라짐에 의한
이별의 문제로 인식하고, 그 이별을 슬퍼하는 심정을 아름답게 꾸미고
떠나간 존재에 대한 孝敬을 지속하도록 규범화한 것이다.
그런데 상례 속에는 죽은 사람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서 거행하는 虞祭와
죽은 사람의 혼을 먼저 죽은 조상의 귀신들과 함께 모시는 祔祭,
그리고 小祥과 大祥 등의 제사가 있다.
상(喪)자에 대한 뜻풀이를 보면 상례(喪禮)의 진정한 의미를 잘 알 수 있다.
상(喪)은 곡(哭)과 망(亡)의 뜻이 모아진 글자이다.
여기서 곡은 ‘슬픈 눈물이요 통곡’ 이다.
망은 ‘땅이나 널 속에 들어가는 죽음’ 을 뜻한다.
이를 보면 상은 ‘통곡으로 맞는 죽음’ 이라 할 수 있다.
사람의 죽음을 상이라 부른 것은 효자의 마음에 차마 죽었다는 말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예(禮)라는 글자는 옥 꾸러미를 그릇에 받쳐 신에게 제사지내는 풍(豊)자에서 연원한다.
인간과 신의 관계를 정립하는데 쓰이던 예를 인간의 삶에 적용한 것이 바로 유교라 할 수 있다.
유교에서 말하는 예는 ‘가장 원만한 인간관계’를 말한다.
이를 보면 유교적 정의로 상례란 ‘슬퍼서 차마 어쩌지 못하는 자식이 효심으로
죽은 자를 떠나보내기 위해 행하는 원만한 의례’ 라 할 수 있다.
나. 유교의 제례
유교에서 제사의 대상은 하늘, 땅, 자연, 그리고 인귀들이다.
인귀들에는 물론 조상신도 포함이 되는데,
비록 혼과 백은 흩어졌지만 기운이란 항상 감응하는 것이기 때문에
제사를 올리는 후손이 정성을 다해 재계하고 간절히 그 조상을 생각하면
흩어진 조상의 혼백이 생전과 같이 감응하여 일시적으로 혼백이 합쳐진다고 본다.
그래서 제사 7일 전부터 재계하며 돌아가신 분을 간절히 생각하고,
제사를 지낼 때에도 꼭 앞에 계신 듯이 한치의 의심없는 마음을 유지한다.
그리고 제사 절차상에서도 흩어진 조상의 혼백을 모으는 상징적인 여러 절차들을 거친다.
자손의 그 지극한 마음과 믿음에 조상의 흩어진 혼과 백이 감응하여 생전시처럼 잠시 모였다가
다시 돌아가는 것이 제사의 시작과 끝이다.
그 방법으로 냄새가 좋은 향을 태워서 하늘에 있는 혼을 부르고,
향기 좋은 술을 땅에 뿌려서 땅속의 백을 부른다.
이렇게 돌아오는 장소로 위패에 혼과 백을 맞이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초혼의례(招魂儀禮)이다
2. 유교의 혼백(魂魄) 구조론
유교철학에서 인간의 구조는 혼백 구조론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성리학의 혼백 구조론에 대해 먼저 이해하지 않으면 전통 유교의 상제례를 이해할 수 없다.
가. 인간은 물론 만물의 생몰(生沒)은 기의 응취소산(凝聚消散)에 의한다.
유교철학에서는 인간의 혼(魂)과 백(魄)은 기(氣)가 모이고 흩어지는 것(凝聚消散)에 의해
생존하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하는 것으로 본다.
즉 사람은 물론 모든 만물이 존재하고 사라지는 생성소멸은
기(氣)의 허실(虛實), 동정(動靜), 취산(聚散), 청탁(淸濁)에 의해서
모이는 것을 생(生), 흩어지는 것을 사(死)라고 본다.
삶은 기의 신장(伸張)이고 죽음은 기의 수축이다.
그 이론의 고전적 근거는 이러하다.
① 주자는 “生은 기가 모이고 혼백이 결합하는 것이며,
死는 기가 흩어지고 혼백이 분리되는 것이라”(氣聚則生, 氣散則死)고 했다.
또 “정(精)과 기(氣)는 엉기면 사람이 되고, 흩어지면 귀가 된다.”(精氣凝則爲人, 散則爲鬼)고 하고,
“기(氣)를 혼(魂), 체(體)를 백(魄)이라"(氣曰魂, 體曰魄) 했다.
② 율곡 이이도 “사람이 죽으면 혼기는 하늘로 올라가고 정백(精魄)은
땅으로 내려가서(魂氣昇于天 精魄歸于地)
그 기가 점차 흩어져 결국에는 모두가 소멸되어 없어진다”고 했다.
이와 같이 사람의 혼백은 기(氣)의 이합집산에 따라 그것의 생존과 수명이 좌우된다고 설명한다.
나. 혼백(魂魄) 구조론
(男, 양, 혼, 天氣) → 上鬼( 淸, 靈的 ) → 神 → 魂(3혼)
↗
사람 人
↘
(女, 음, 백, 地氣) → 下鬼( 濁, 覺的 ) → 鬼 → 魄 (7백)
인간은 천기(天氣)인 혼(魂)과 지기(地氣)인 백(魄)의 결합으로 생성된다.
백(魄, 地氣)은 육신의 형체를, 혼(魂, 天氣)는 정신세계를 형성하는 구성요소다.
예기「제의(祭義)」에 대한 정현(鄭玄)의 주(註)에는 “입으로 내쉬고 코로 들이쉬는 것은 혼(魂)이고,
귀로 듣고 눈으로 보는 것, 즉 감각적 요소인 백(魄)은 정(精)이며,
따뜻한 기운은 혼(魂)이 되고, 차거운 기운은 백이 되며, 움직이는 것은 혼(魂)이고,
고요한 것은 백(魄)이다.”고 설명했다.
이 경우 백(魄)이 먼저 생기고 혼(魂)이 나중 생긴다.
백(魄)은 남녀의 구합(媾合)할 때 생성되며,
혼(魂)은 아기가 자궁에서 나오며 첫 울음을 우는 순간 형성되는 것이라 한다.
혼(魂)은 ‘云 + 鬼’의 합성어로써 ‘云’은 ‘구름’(雲), ‘공기’, ‘하늘의 기운’을 말하며,
백(魄)은 ‘白 + 鬼’로써 ‘白’은 아버지의 흰 색의 정액(Sperma, Sperm)을 나타낸다.
여기서 ‘혼’은 ‘淸, 靈的’(subtilior-Intelligens)인 것으로 인간의 ‘영적’ ‘정신적 요소’가 되고,
‘백’은 ‘濁, 覺的’(crassisor vegetiv-sensitiv) 뼈를 중심으로 골격으로 하여
인체의 ‘육체적인 요소’를 이룬다.
3. 유교의 죽음
가. 삶도 제대로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는가
과연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는가?
이것은 참으로 어려운 문제이다.
왜냐하면 타인의 죽음에 대해서는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어도
나의 죽음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공자께서는 ‘삶도 제대로 모르는데 우리가 어떻게 죽음을 알겠느냐’ 라는 입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계로가 귀신 섬기는 것을 물으니
공자께서 "아직 사람도 섬기지 못하는데 하물며 어찌 귀신을 섬길 수 있겠는가."
감히 죽음에 대해 물으니 "아직 삶도 제대로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는가."
季路問 事鬼神, 子曰 未能事人 焉能事鬼. 敢問死 曰 未知生 焉知死.
아직 삶에 대해서도 모르면서 어찌하여 죽음까지 알려 하느냐며
제자가 차근차근 공부하지 않고 덤벙대는 것을 꾸짖는 말일 수도 있고,
삶을 알게 되면 죽음은 저절로 알게 된다며 타이르는 말일 수도 있다.
아무튼 이 말에서 공자는 죽음보다 삶을 더 중시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중시했다기보다 더 절실하게 생각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죽음은 우리의 객관적 인식이 다가갈 수 있는 경험의 영역 바깥에 존재하기 때문에
죽음 현상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죽음에 대한 객관적 담론을 확립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어쩌면 죽음의 문제는 과학적 인식의 영역에 속하기보다는
직관이나 느낌이 관여하는 형이상학적 영역에 속하는 문제인지도 모른다.
사실 따지고 보면, 죽음에 이르기 전에 삶이 있다.
당장 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공자는 살아 있는 사람들끼리의 질서, 곧 윤리 도덕에 더 큰 관심을 가졌다.
인(仁)을 말하여 사랑을 가르쳤고〔仁愛人也〕, 효(孝)를 강조해
사람은 이 세상에 단독자(單獨者)로 오는 것이 아니라,
무수한 조상을 뿌리로 해 태어나는 것이며,
‘나’ 를 출발점으로 해 또 무수한 자손이 뻗어 나간다는 것을 가르쳤다.
알고 보면 사람은 죽음으로 하여 삶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손의 모습으로 영원히 이어져 간다는 것을 효에서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죽음이나 내세에 대하여 직설적으로 말한 바는 없지만,
삶을 알면 죽음은 저절로 알게 되며, 현세의 연장이 곧 내세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공자는 죽음에 대해 각별한 경의를 지니고 있으며 언제나 죽음에 대비하고 있었다.
나. 유교의 내세관
내세관이 없으면 종교도 없다는 말과 같이 유교는 내세관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죽음관도 확실하지 않다.
유교적 입장에서 본 죽음은 그것이 인간의 운명이요 자연의 법칙이라는 입장이고
그렇기 때문에 이를 담담히 받아들이고 그것 때문에 지나친 고뇌와
고민 속에 빠져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세 지향적인 유교는 공자의 말대로 살아서 세상에 할 일도 많은데
죽은 후의 일을 논의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태도이다.
즉, 공자는 신보다는 현실주의였기에 “죽음을 말하지 말고 귀신을 이야기하지 말라”고
한 점으로 보아 유교의 죽음에는 피안이 없거나 있어도
그렇게 중요한 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유교에서의 이성적 사고의 귀결은 그것과 다르다.
유학자들은 死生에 정해진 명이 있으며,
그것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 바로 인간의 태도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죽음은 인간 존재의 당연한 귀결이므로
그것에 대하여 호오의 감정과 태도를 취하는 것은 매우 부질없는 일이라는 생각을 낳는다.
그러한 호오의 감정을 전환하여 安心立命으로 나아가는 것이
유학자들의 이상적인 태도라고 할 수 있다.
4. 장례 절차
가. 혼백이 분리되는 입관의식
사람이 죽으면, 상례의 절차를 따라 죽음의 의식을 진행한다.
고복(皐復), 발상(發喪), 전(奠), 습(襲)(시신 목욕), 반함(飯含)의 순서를 거쳐
염(殮), 곧 수의를 입히고(小殮), 입관(大殮) 절차를 진행한다.
그런데, 여기서 입관 절차가 중시되는 것은
혼과 백이 제각기 자기 귀처(歸處)로 갈라져 이산(離散)하는 절차이기 때문이다.
즉, 혼(魂)은 그 본래의 기인 천기(天氣)(사당, 신주)로 돌아가고,
백(魄)(시신)은 그 본래 기인 지기(地氣)로 돌아가기 위해서 관속에 입관되어
상여를 따라 무덤으로 간다.
따라서 시신을 관에 넣기 전에는 관(棺)이라고 하지만,
그 속에 백(魄, 시신)을 모신 후에는 구(柩)라고 한다.
이것이 바로 이 과정에서 혼백(魂魄)의 ‘혼’(魂)과 ‘백’(魄)이 분리 된다는 시점이다.
즉 하늘의 氣를 받은 혼(魂)과 땅의 기를 받은 백(魄)이 서로 합쳐서
「사람」을 형성하고 있었는데, 사람이 죽으면 혼은 하늘의 기로 돌아가고,
백은 땅의 기로 돌아가게 되는데(魂昇魄降)
바로 이 과정에서 혼은 혼백(魂帛)으로 가서 자리를 잡고,
백은 시신과 함께 관 속에 들어가 있다가 산소에 묻히게 되는 것이다.
조선 초기의 학자 남효온(南孝溫)은 그의 귀신론(鬼神論)에서
문 : 사람이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
답 : 체백은 땅으로 돌아가고, 혼기는 못가는 데가 없다.(體魄歸于地 魂氣則無不之也)
문 : 그렇다면 무엇이 제사를 흠향하는가?
답 : 기가 흠향한다(氣之享也)고 했다.
나. 영좌(靈座) 설치의 의미
입관에 이어 영좌를 꾸미고 혼백(魂帛)상자(혼령의 임시 거처)를 만든다.
비단으로 혼백(魂帛)을 접어 혼백상자에 넣고 죽은 사람이 입던 옷을 종이에 싸서
교상(交牀, 交椅)에 모신다.
이 영좌(혼백상자)가 오늘날에는 사진 놓는 것으로 대체되었다.
이 혼백을 만들어 영좌를 설치하는 과정이 바로 관으로 들어간 시신(魄)과
영좌에 안치된 혼(魂)이 분리되는 절차다.
다. 발인하는 행차에서의 혼⦁백 운송과 상여의 의미
발인 행차의 순서는, 명정 → 공포(功布) → 혼백(魂帛) → 만장(輓章) → 설베 → 상여 →
운불삽(운삽과 불삽, 부채같이 생긴 것) → 상주 → 복인 → 무복친(無服親) → 조문객의 순서다.
사대부는 불삽을 쓰고 서민은 운삽을 쓰도록 되어 있었으나,
통속에서는 불삽(黻翣)과 운삽(雲翣)을 쓴다.
불삽은 백(魄)의 인도를 나타내고, 운삽은 혼(魂)의 인도를 나타내는 깃발(旗)이다.
그런 까닭에 운삽은 상여 앞에서 들고 가고, 불삽은 상여 뒤를 따라 가서,
불삽은 백이 돌아가는 땅에 하관할 때 명정과 함께 땅에 묻는다.
※ 설베 : 혼백상 다음에 만장이 뒤따르고 설베가 양옆으로 늘어선다.
설베란 원래 험한 산으로 상여가 올라갈 때 상여를 잡아당기는 베였으나,
지금은 흔히 광목(廣木)을 상여 앞쪽 좌우로 길게 늘여 부인들이 떼지어 잡고 간다.
입관절차에서 혼은 영좌(靈座, 또는 魂帛箱子)로 가고,
백(魄)은 시신을 따라서 관속으로 들어감으로 말미암아 서로 분리된 혼과 백(魄)은
발인 행렬에서도, 제각기 따로 따로 무덤으로 향한다.
‘혼(魂)’(魂箱, 靈座)은 ‘영여’(또는 靈車라고 한다)에 실려 가고,
‘백(魄)’은 상여에 실려 나간다.
영여는 2인교 가마를 메듯이 끈을 가위 표로 엇걸어 어깨에 걸고
두 손으로 가마채를 잡을 수 있도록 되어 있는 작은 가마인데,
이곳에는 혼백상자와 향로, 영정 등을 실어 혼을 싣고 간다.
라. 대지(地母)의 혈(穴, 자궁), 음택(墓)
사람의 정신적, 육체적 양 구성요소인 ‘혼’과 ‘백’이 사람이 죽으면,
제각기 그 돌아가는 곳이 다른데, 혼(魂)은 하늘에 뿌리를 두고 있으므로
천기(天氣)로 돌아가고, 백(魄)은 땅에 뿌리를 두고 있으므로 지기(地氣)로 돌아간다.
그런데, 풍수에서는 백(魄, 시신)이 묻히는 묘 자리를 여성의 상징(穴, 자궁)에 비정한다.
무덤 자리를 잡는 일은 백(魄)의 정백(精魄)이 땅(地母)의 혈(穴)을 찾아 들어가는 이치다.
혈처의 입수(入首)는 음부(陰阜), 두뇌(頭腦)는 음핵(陰核), 안 두덩은 내음순(內陰脣),
선익(蟬翼)은 외음순(外陰脣), 내명당(內明堂)은 질구(膣口),
혈(穴)은 대지의 자궁으로 들어가는 옥문(玉門)에 비정한다.
남성이 길혈(吉穴)을 찾아 들어가서 다산(多産), 다복(多福), 부귀영화를
대대로 누리게 된다는 풍수의 매장사상이다.
체백득음(體魄得蔭)이면 유체수음(遺體受蔭)이라 했다.
마. 신주(神主)
하관을 하고 지석(誌石)을 묻고 흙을 덮는 사이에 곧 바로 축(祝)이 손을 씻고 서향하여
신주(神主)에 글씨를 쓴다.
이것은 백(魄)이 광중으로 들어가면 혼령이 떠서 모실 곳이 없다고 생각하여
신속히 신주를 써서 그 의거할 곳을 마련한다.
이어 축(祝)이 받들어 영좌에 놓고 혼백(魂帛)을 상자 안에 넣고 향을 피우고
술을 따른 다음 “감히 아룁니다.
체백(體魄)은 무덤 속으로 돌아가셨지만, 혼령은 집안으로 돌아오시옵소서.
신주가 이미 이루어졌으니 엎드려 바라건대 높으신 신령(高靈)께서는 옛 것을 버리시고
새 것을 좇아 여기에 기대고 의지 하옵소서”라고 고축한다.
평토가 끝나면 상주는 신주를 앞에 모시고 그 뒤에 혼백(魂帛)을 모시고
그 뒤에 상주가 뒤 따라서 집으로 돌아오는 반혼(返魂), 초우제, 재우제, 삼우제로
세 차례 지내는 우제(虞祭)를 지내고,
삼우제 후 3개월 후에 졸곡제(卒哭祭)를 지낸다.
영좌(靈座, 魂帛箱子)에 모셔 둔 신주는 졸곡제가 끝나고 부제(祔祭)를 지낼 때에
조상신의 반열로 올라간다.
그 표시로 사당에 자리 잡아 안치한다.
5. 혼백의 사후(死後) 잔생
가. 사후 혼백의 최종 목표는 조상신(神)의 반열에 드는 데 있다.
혼백이 궁극적으로 가는 곳은 조상신(神)의 반열에 드는 데 있다.
그 절차는 제례의 절차 중 부제(祔祭)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부제는 졸곡제를 지낸 그 이튿날 새벽에 지낸다.
나. 어느 시점에 조상신의 반열에 들게 되나?
혼백이 조상신(鬼)으로 승격되는 것은 부제(祔祭)를 지낼 때부터다.
「예기」잡기(雜記) 下에는 “졸곡제사 이후로는 신(神)으로써 섬긴다”고 했다.
이때가 되면 사자(死者)의 혼령은 비로소 조상신(祖上神)으로 승격된다.
다시 설명하면, 하관 → 반혼 → 초우제(하관 당일) → 재우제(초우 후 1~2일)
→ 삼우제(재우 후 1~2일) → 졸곡제(삼우제 후 3개월, 90일) → 부제(祔祭, 졸곡제 후 이튿날)
이런 순서인데, 바로 이 부제로부터 혼백은 신격화되어 조상신의 반열에 들게 된다.
즉, 하관 → 삼우제(3일) → 졸곡제(90일) → 부제(1일)이니 혼령이 조상신이 되는데
소요되는 기간은 약 95일가량 걸린다.
고례에서는 死後 3개월이 지난 후 빈(殯)을 설치한 때도 있었으니,
그렇게 계산하여 3개월을 더하더라도 혼백이 신격화되는 기간은 185일을 지나지 않았다.
다. 혼령의 차별 대우 - 누구나 다 조상신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죽은 자의 혼령이 모두 다 조상신이 되는 것이 아니다.
조상신의 반열에 들 수 없는 결격 조건으로는
① 생리적으로 미숙하여 죽은 자의 혼령
② 도덕적으로 악한 자의 혼령
③ 불행하고, 원통하게 죽은 자의 혼령
④ 비명횡사
⑤ 객사한 혼령
⑥ 무자(無子)한 경우
⑦ 서출(庶出)
⑧ 적자(嫡子)의 제사를 받을 수 없는 경우
⑨ 춘추시대까지는 사대부 귀족 계층의 혼백만이 귀(鬼) 즉, 조상신이 될 수 있었다.
서민과 하천민(下賤民)의 경우 그들의 혼백은 죽어서도 조상신의 반열에 들지 못하고,
쉬이 소멸되는 존재로 여겼다.
라. 귀(鬼, 혼백)의 사후 상태는 어떠한가?
① 생리적으로 미숙하거나 도덕적으로 선하지 못한 혼령은 육체를 떠나는 순간
오래 살지 못하고 조만간 소멸되어 없어져 버리고 만다.
② 불행하게 죽은 혼령은 조상신의 반열에 들지 못하고 원혼(怨魂)이 되어 배회하다가 소멸된다.
『춘추좌전 주소 (春秋左傳 注疎)』에 “자산(子産)(B.C. 517년경)이 말하기를
‘귀신은 돌아가 편히 쉴 곳이 있으면 여귀(厲鬼)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③ 후손들로 부터 제사를 충분히 받아먹지 못한 귀는 배를 주리게 되어 기진하여 소멸된다.
『주자어류 고문해의(朱子語類 考文解義)』에도 “신은 항상 존재하지만,
제사는 항상 지내지 않기 때문에 굶주린다(神常在, 而祭不常行, 故曰綏也)”고 했다.
④ 제사를 지속적으로 공궤 받은 귀(鬼)도 그 포양(飽養)의 풍부, 빈곤, 장단(長短),
정성 여하에 정비례하여 3, 4대 가량 잔명(殘命)을 유지하다가 소멸되고 만다.
⑤ 건국시조의 신주나 부조지전(不祧之典, 혁혁한 공을 세워 영구히 그 귀를 섬기라고
특명한 혼령으로 초절화된 귀신도 세월이 오래되면
모두가 종극적(終極的) 적멸(寂滅, 無化)에 이르게 된다.
이와 같이 혼백(人鬼,鬼)은 영원불멸하는 존재가 아니고,
사람이 죽은 후 그 잔생(殘生)을 얼마간 잔존하다가 시간상 늦고 빠른 차이는 있으나
소멸되어 사라지는 시한적 존재이다.
장계이(張繼弛)도 귀신은 인간의 죽은 혼백으로 죽은 후
얼마 동안은 존재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없어진다“고 말했다.
마. 조상신(鬼)의 잔명(殘命)기간은 얼마나 되나?
① 주례(周禮) : 6代 120년
② 선가(仙家)인 숙저자(叔苴子) : 5대 100년. 숙저자(叔苴子)는
“5대만에 없어 지지 않은 혼은 없다”(無五世不盡之魂)라고 했다.
③ 정자(程子), 주자(朱子) : 80년. 고조유복(高祖有服) 불가부제(不可不祭).
그래서 4代 봉사(奉祀)를 해 왔다.
④고려 말의 정몽주와 조선조 세조(世祖)때 편찬한 경국대전(經國大典)에서는
6품 이상은 3대만 제사하고(3대x20년=60년), 7품 이하는 2대만 제사하고(2대x20년=40년),
서민은 부모만 제사하라(20년)고 국법으로 정했다.
그렇지만, 백성들은 경국대전의 규제를 무시하고 4대 봉사를 거행하였다.
근래의 가정의례준칙에는 2代만 제사하라는 규정이 있다.
이상과 같이 사람의 혼백은 죽은 후 95일이 지나서 지내는 부제(祔祭)로 부터
조상신으로 신격화되어
잔생(survivance)을 살게 되는데, 그중 미허(微虛)한 것은 일찍 소멸되고,
성숙한 것도 길어야 100여 년 정도면 거의가 다 소진(消盡)되어 무화(無化)되고,
혹 부조지전 등 특별한 경우의 초절화된 귀도 시차는 있지만
종국에는 모두 소멸되어 없어져 버린다는 것이 제례에 스며있는 죽음관이다.
6. 마무리 글
유교철학에서의 인간의 생과 사(死)는 기의 응취소산에 있다고 본다.
즉, 남녀의 성교시 형성된 백(魄)과 태아가 출생하여 첫 호흡 때에 형성된다는 혼(魂)이
인간의 뼈를 중심으로 한 육신과 정신적 요소를 구성하여 한 일생을 살게 된다고 본다.
사람이 죽으면, 혼은 신주(神主)에 의거하고, 백(魄)은 시신과 함께 무덤으로 흩어진다.
사람이 죽은 지 100여 일 가량 지나서 드리는 부제(祔祭)를 통하여 혼령은 조상신의 반열에 든다.
누구나 다 조상신이 되는 것은 아니나,
조상신이 된 혼령도 100여 년 잔생(殘生)을 지내면
촛불이 다 타서 없어지듯 소진되고 만다고 보는 것이
유교의 상, 제례에 스며있는 죽음관이다.
즉, 조상신은 영원불멸하는 존재가 아니라 시한적으로 잔존하다 소진하는 것으로 본다.
생(生)은 기의 응취(凝聚)요, 사(死)는 기의 소산(消散)이다.
또한, 조상신은 이승이나 저승을 달리 할뿐
먹고 마시고 희노애락하는 ‘인간성’을 그대로 간직하는 일종의 생물학적 귀신이다.
그리고 이승에서 부귀영화를 누렸으면, 저승에서도 역시 그런 것을 경험하게 된다는
관념에 근거하여 저승에서도 계급주의적 차별성이 있다.
상, 제례 의례를 봉건계급사회를 통치하는 이데올로기의 방편으로 이용한 예다.
유교의 상, 제례사상은 이승과 저승 사이에 장소의 변화가 있을 따름이지 별 차이가 없다.
그래서 공자는 “제사 때에는 조상이 앞에 계신 듯,
신을 모실 때는 신이 앞에 있는 듯이 제사를 지내라”
(祭如在, 祭神如神在. 論語⦁八佾篇)고 했다.
1. 유교의 상, 제례
가. 유교의 상례
조선 시대의 유학자들은 주자학의 수용 이후 가족 친지의 죽음을 대하는 문화적 양식을
중국의 古禮에 연원을 둔 상례와 제례의 규범으로 정착시켜 왔다.
喪은 상실을 의미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상례는 부모의 죽음을 완전한 존재의 소멸이 아닌 존재의 이동 또는 사라짐에 의한
이별의 문제로 인식하고, 그 이별을 슬퍼하는 심정을 아름답게 꾸미고
떠나간 존재에 대한 孝敬을 지속하도록 규범화한 것이다.
그런데 상례 속에는 죽은 사람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서 거행하는 虞祭와
죽은 사람의 혼을 먼저 죽은 조상의 귀신들과 함께 모시는 祔祭,
그리고 小祥과 大祥 등의 제사가 있다.
상(喪)자에 대한 뜻풀이를 보면 상례(喪禮)의 진정한 의미를 잘 알 수 있다.
상(喪)은 곡(哭)과 망(亡)의 뜻이 모아진 글자이다.
여기서 곡은 ‘슬픈 눈물이요 통곡’ 이다.
망은 ‘땅이나 널 속에 들어가는 죽음’ 을 뜻한다.
이를 보면 상은 ‘통곡으로 맞는 죽음’ 이라 할 수 있다.
사람의 죽음을 상이라 부른 것은 효자의 마음에 차마 죽었다는 말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예(禮)라는 글자는 옥 꾸러미를 그릇에 받쳐 신에게 제사지내는 풍(豊)자에서 연원한다.
인간과 신의 관계를 정립하는데 쓰이던 예를 인간의 삶에 적용한 것이 바로 유교라 할 수 있다.
유교에서 말하는 예는 ‘가장 원만한 인간관계’를 말한다.
이를 보면 유교적 정의로 상례란 ‘슬퍼서 차마 어쩌지 못하는 자식이 효심으로
죽은 자를 떠나보내기 위해 행하는 원만한 의례’ 라 할 수 있다.
나. 유교의 제례
유교에서 제사의 대상은 하늘, 땅, 자연, 그리고 인귀들이다.
인귀들에는 물론 조상신도 포함이 되는데,
비록 혼과 백은 흩어졌지만 기운이란 항상 감응하는 것이기 때문에
제사를 올리는 후손이 정성을 다해 재계하고 간절히 그 조상을 생각하면
흩어진 조상의 혼백이 생전과 같이 감응하여 일시적으로 혼백이 합쳐진다고 본다.
그래서 제사 7일 전부터 재계하며 돌아가신 분을 간절히 생각하고,
제사를 지낼 때에도 꼭 앞에 계신 듯이 한치의 의심없는 마음을 유지한다.
그리고 제사 절차상에서도 흩어진 조상의 혼백을 모으는 상징적인 여러 절차들을 거친다.
자손의 그 지극한 마음과 믿음에 조상의 흩어진 혼과 백이 감응하여 생전시처럼 잠시 모였다가
다시 돌아가는 것이 제사의 시작과 끝이다.
그 방법으로 냄새가 좋은 향을 태워서 하늘에 있는 혼을 부르고,
향기 좋은 술을 땅에 뿌려서 땅속의 백을 부른다.
이렇게 돌아오는 장소로 위패에 혼과 백을 맞이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초혼의례(招魂儀禮)이다
2. 유교의 혼백(魂魄) 구조론
유교철학에서 인간의 구조는 혼백 구조론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성리학의 혼백 구조론에 대해 먼저 이해하지 않으면 전통 유교의 상제례를 이해할 수 없다.
가. 인간은 물론 만물의 생몰(生沒)은 기의 응취소산(凝聚消散)에 의한다.
유교철학에서는 인간의 혼(魂)과 백(魄)은 기(氣)가 모이고 흩어지는 것(凝聚消散)에 의해
생존하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하는 것으로 본다.
즉 사람은 물론 모든 만물이 존재하고 사라지는 생성소멸은
기(氣)의 허실(虛實), 동정(動靜), 취산(聚散), 청탁(淸濁)에 의해서
모이는 것을 생(生), 흩어지는 것을 사(死)라고 본다.
삶은 기의 신장(伸張)이고 죽음은 기의 수축이다.
그 이론의 고전적 근거는 이러하다.
① 주자는 “生은 기가 모이고 혼백이 결합하는 것이며,
死는 기가 흩어지고 혼백이 분리되는 것이라”(氣聚則生, 氣散則死)고 했다.
또 “정(精)과 기(氣)는 엉기면 사람이 되고, 흩어지면 귀가 된다.”(精氣凝則爲人, 散則爲鬼)고 하고,
“기(氣)를 혼(魂), 체(體)를 백(魄)이라"(氣曰魂, 體曰魄) 했다.
② 율곡 이이도 “사람이 죽으면 혼기는 하늘로 올라가고 정백(精魄)은
땅으로 내려가서(魂氣昇于天 精魄歸于地)
그 기가 점차 흩어져 결국에는 모두가 소멸되어 없어진다”고 했다.
이와 같이 사람의 혼백은 기(氣)의 이합집산에 따라 그것의 생존과 수명이 좌우된다고 설명한다.
나. 혼백(魂魄) 구조론
(男, 양, 혼, 天氣) → 上鬼( 淸, 靈的 ) → 神 → 魂(3혼)
↗
사람 人
↘
(女, 음, 백, 地氣) → 下鬼( 濁, 覺的 ) → 鬼 → 魄 (7백)
인간은 천기(天氣)인 혼(魂)과 지기(地氣)인 백(魄)의 결합으로 생성된다.
백(魄, 地氣)은 육신의 형체를, 혼(魂, 天氣)는 정신세계를 형성하는 구성요소다.
예기「제의(祭義)」에 대한 정현(鄭玄)의 주(註)에는 “입으로 내쉬고 코로 들이쉬는 것은 혼(魂)이고,
귀로 듣고 눈으로 보는 것, 즉 감각적 요소인 백(魄)은 정(精)이며,
따뜻한 기운은 혼(魂)이 되고, 차거운 기운은 백이 되며, 움직이는 것은 혼(魂)이고,
고요한 것은 백(魄)이다.”고 설명했다.
이 경우 백(魄)이 먼저 생기고 혼(魂)이 나중 생긴다.
백(魄)은 남녀의 구합(媾合)할 때 생성되며,
혼(魂)은 아기가 자궁에서 나오며 첫 울음을 우는 순간 형성되는 것이라 한다.
혼(魂)은 ‘云 + 鬼’의 합성어로써 ‘云’은 ‘구름’(雲), ‘공기’, ‘하늘의 기운’을 말하며,
백(魄)은 ‘白 + 鬼’로써 ‘白’은 아버지의 흰 색의 정액(Sperma, Sperm)을 나타낸다.
여기서 ‘혼’은 ‘淸, 靈的’(subtilior-Intelligens)인 것으로 인간의 ‘영적’ ‘정신적 요소’가 되고,
‘백’은 ‘濁, 覺的’(crassisor vegetiv-sensitiv) 뼈를 중심으로 골격으로 하여
인체의 ‘육체적인 요소’를 이룬다.
3. 유교의 죽음
가. 삶도 제대로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는가
과연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는가?
이것은 참으로 어려운 문제이다.
왜냐하면 타인의 죽음에 대해서는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어도
나의 죽음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공자께서는 ‘삶도 제대로 모르는데 우리가 어떻게 죽음을 알겠느냐’ 라는 입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계로가 귀신 섬기는 것을 물으니
공자께서 "아직 사람도 섬기지 못하는데 하물며 어찌 귀신을 섬길 수 있겠는가."
감히 죽음에 대해 물으니 "아직 삶도 제대로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는가."
季路問 事鬼神, 子曰 未能事人 焉能事鬼. 敢問死 曰 未知生 焉知死.
아직 삶에 대해서도 모르면서 어찌하여 죽음까지 알려 하느냐며
제자가 차근차근 공부하지 않고 덤벙대는 것을 꾸짖는 말일 수도 있고,
삶을 알게 되면 죽음은 저절로 알게 된다며 타이르는 말일 수도 있다.
아무튼 이 말에서 공자는 죽음보다 삶을 더 중시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중시했다기보다 더 절실하게 생각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죽음은 우리의 객관적 인식이 다가갈 수 있는 경험의 영역 바깥에 존재하기 때문에
죽음 현상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죽음에 대한 객관적 담론을 확립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어쩌면 죽음의 문제는 과학적 인식의 영역에 속하기보다는
직관이나 느낌이 관여하는 형이상학적 영역에 속하는 문제인지도 모른다.
사실 따지고 보면, 죽음에 이르기 전에 삶이 있다.
당장 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공자는 살아 있는 사람들끼리의 질서, 곧 윤리 도덕에 더 큰 관심을 가졌다.
인(仁)을 말하여 사랑을 가르쳤고〔仁愛人也〕, 효(孝)를 강조해
사람은 이 세상에 단독자(單獨者)로 오는 것이 아니라,
무수한 조상을 뿌리로 해 태어나는 것이며,
‘나’ 를 출발점으로 해 또 무수한 자손이 뻗어 나간다는 것을 가르쳤다.
알고 보면 사람은 죽음으로 하여 삶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손의 모습으로 영원히 이어져 간다는 것을 효에서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죽음이나 내세에 대하여 직설적으로 말한 바는 없지만,
삶을 알면 죽음은 저절로 알게 되며, 현세의 연장이 곧 내세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공자는 죽음에 대해 각별한 경의를 지니고 있으며 언제나 죽음에 대비하고 있었다.
나. 유교의 내세관
내세관이 없으면 종교도 없다는 말과 같이 유교는 내세관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죽음관도 확실하지 않다.
유교적 입장에서 본 죽음은 그것이 인간의 운명이요 자연의 법칙이라는 입장이고
그렇기 때문에 이를 담담히 받아들이고 그것 때문에 지나친 고뇌와
고민 속에 빠져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세 지향적인 유교는 공자의 말대로 살아서 세상에 할 일도 많은데
죽은 후의 일을 논의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태도이다.
즉, 공자는 신보다는 현실주의였기에 “죽음을 말하지 말고 귀신을 이야기하지 말라”고
한 점으로 보아 유교의 죽음에는 피안이 없거나 있어도
그렇게 중요한 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유교에서의 이성적 사고의 귀결은 그것과 다르다.
유학자들은 死生에 정해진 명이 있으며,
그것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 바로 인간의 태도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죽음은 인간 존재의 당연한 귀결이므로
그것에 대하여 호오의 감정과 태도를 취하는 것은 매우 부질없는 일이라는 생각을 낳는다.
그러한 호오의 감정을 전환하여 安心立命으로 나아가는 것이
유학자들의 이상적인 태도라고 할 수 있다.
4. 장례 절차
가. 혼백이 분리되는 입관의식
사람이 죽으면, 상례의 절차를 따라 죽음의 의식을 진행한다.
고복(皐復), 발상(發喪), 전(奠), 습(襲)(시신 목욕), 반함(飯含)의 순서를 거쳐
염(殮), 곧 수의를 입히고(小殮), 입관(大殮) 절차를 진행한다.
그런데, 여기서 입관 절차가 중시되는 것은
혼과 백이 제각기 자기 귀처(歸處)로 갈라져 이산(離散)하는 절차이기 때문이다.
즉, 혼(魂)은 그 본래의 기인 천기(天氣)(사당, 신주)로 돌아가고,
백(魄)(시신)은 그 본래 기인 지기(地氣)로 돌아가기 위해서 관속에 입관되어
상여를 따라 무덤으로 간다.
따라서 시신을 관에 넣기 전에는 관(棺)이라고 하지만,
그 속에 백(魄, 시신)을 모신 후에는 구(柩)라고 한다.
이것이 바로 이 과정에서 혼백(魂魄)의 ‘혼’(魂)과 ‘백’(魄)이 분리 된다는 시점이다.
즉 하늘의 氣를 받은 혼(魂)과 땅의 기를 받은 백(魄)이 서로 합쳐서
「사람」을 형성하고 있었는데, 사람이 죽으면 혼은 하늘의 기로 돌아가고,
백은 땅의 기로 돌아가게 되는데(魂昇魄降)
바로 이 과정에서 혼은 혼백(魂帛)으로 가서 자리를 잡고,
백은 시신과 함께 관 속에 들어가 있다가 산소에 묻히게 되는 것이다.
조선 초기의 학자 남효온(南孝溫)은 그의 귀신론(鬼神論)에서
문 : 사람이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
답 : 체백은 땅으로 돌아가고, 혼기는 못가는 데가 없다.(體魄歸于地 魂氣則無不之也)
문 : 그렇다면 무엇이 제사를 흠향하는가?
답 : 기가 흠향한다(氣之享也)고 했다.
나. 영좌(靈座) 설치의 의미
입관에 이어 영좌를 꾸미고 혼백(魂帛)상자(혼령의 임시 거처)를 만든다.
비단으로 혼백(魂帛)을 접어 혼백상자에 넣고 죽은 사람이 입던 옷을 종이에 싸서
교상(交牀, 交椅)에 모신다.
이 영좌(혼백상자)가 오늘날에는 사진 놓는 것으로 대체되었다.
이 혼백을 만들어 영좌를 설치하는 과정이 바로 관으로 들어간 시신(魄)과
영좌에 안치된 혼(魂)이 분리되는 절차다.
다. 발인하는 행차에서의 혼⦁백 운송과 상여의 의미
발인 행차의 순서는, 명정 → 공포(功布) → 혼백(魂帛) → 만장(輓章) → 설베 → 상여 →
운불삽(운삽과 불삽, 부채같이 생긴 것) → 상주 → 복인 → 무복친(無服親) → 조문객의 순서다.
사대부는 불삽을 쓰고 서민은 운삽을 쓰도록 되어 있었으나,
통속에서는 불삽(黻翣)과 운삽(雲翣)을 쓴다.
불삽은 백(魄)의 인도를 나타내고, 운삽은 혼(魂)의 인도를 나타내는 깃발(旗)이다.
그런 까닭에 운삽은 상여 앞에서 들고 가고, 불삽은 상여 뒤를 따라 가서,
불삽은 백이 돌아가는 땅에 하관할 때 명정과 함께 땅에 묻는다.
※ 설베 : 혼백상 다음에 만장이 뒤따르고 설베가 양옆으로 늘어선다.
설베란 원래 험한 산으로 상여가 올라갈 때 상여를 잡아당기는 베였으나,
지금은 흔히 광목(廣木)을 상여 앞쪽 좌우로 길게 늘여 부인들이 떼지어 잡고 간다.
입관절차에서 혼은 영좌(靈座, 또는 魂帛箱子)로 가고,
백(魄)은 시신을 따라서 관속으로 들어감으로 말미암아 서로 분리된 혼과 백(魄)은
발인 행렬에서도, 제각기 따로 따로 무덤으로 향한다.
‘혼(魂)’(魂箱, 靈座)은 ‘영여’(또는 靈車라고 한다)에 실려 가고,
‘백(魄)’은 상여에 실려 나간다.
영여는 2인교 가마를 메듯이 끈을 가위 표로 엇걸어 어깨에 걸고
두 손으로 가마채를 잡을 수 있도록 되어 있는 작은 가마인데,
이곳에는 혼백상자와 향로, 영정 등을 실어 혼을 싣고 간다.
라. 대지(地母)의 혈(穴, 자궁), 음택(墓)
사람의 정신적, 육체적 양 구성요소인 ‘혼’과 ‘백’이 사람이 죽으면,
제각기 그 돌아가는 곳이 다른데, 혼(魂)은 하늘에 뿌리를 두고 있으므로
천기(天氣)로 돌아가고, 백(魄)은 땅에 뿌리를 두고 있으므로 지기(地氣)로 돌아간다.
그런데, 풍수에서는 백(魄, 시신)이 묻히는 묘 자리를 여성의 상징(穴, 자궁)에 비정한다.
무덤 자리를 잡는 일은 백(魄)의 정백(精魄)이 땅(地母)의 혈(穴)을 찾아 들어가는 이치다.
혈처의 입수(入首)는 음부(陰阜), 두뇌(頭腦)는 음핵(陰核), 안 두덩은 내음순(內陰脣),
선익(蟬翼)은 외음순(外陰脣), 내명당(內明堂)은 질구(膣口),
혈(穴)은 대지의 자궁으로 들어가는 옥문(玉門)에 비정한다.
남성이 길혈(吉穴)을 찾아 들어가서 다산(多産), 다복(多福), 부귀영화를
대대로 누리게 된다는 풍수의 매장사상이다.
체백득음(體魄得蔭)이면 유체수음(遺體受蔭)이라 했다.
마. 신주(神主)
하관을 하고 지석(誌石)을 묻고 흙을 덮는 사이에 곧 바로 축(祝)이 손을 씻고 서향하여
신주(神主)에 글씨를 쓴다.
이것은 백(魄)이 광중으로 들어가면 혼령이 떠서 모실 곳이 없다고 생각하여
신속히 신주를 써서 그 의거할 곳을 마련한다.
이어 축(祝)이 받들어 영좌에 놓고 혼백(魂帛)을 상자 안에 넣고 향을 피우고
술을 따른 다음 “감히 아룁니다.
체백(體魄)은 무덤 속으로 돌아가셨지만, 혼령은 집안으로 돌아오시옵소서.
신주가 이미 이루어졌으니 엎드려 바라건대 높으신 신령(高靈)께서는 옛 것을 버리시고
새 것을 좇아 여기에 기대고 의지 하옵소서”라고 고축한다.
평토가 끝나면 상주는 신주를 앞에 모시고 그 뒤에 혼백(魂帛)을 모시고
그 뒤에 상주가 뒤 따라서 집으로 돌아오는 반혼(返魂), 초우제, 재우제, 삼우제로
세 차례 지내는 우제(虞祭)를 지내고,
삼우제 후 3개월 후에 졸곡제(卒哭祭)를 지낸다.
영좌(靈座, 魂帛箱子)에 모셔 둔 신주는 졸곡제가 끝나고 부제(祔祭)를 지낼 때에
조상신의 반열로 올라간다.
그 표시로 사당에 자리 잡아 안치한다.
5. 혼백의 사후(死後) 잔생
가. 사후 혼백의 최종 목표는 조상신(神)의 반열에 드는 데 있다.
혼백이 궁극적으로 가는 곳은 조상신(神)의 반열에 드는 데 있다.
그 절차는 제례의 절차 중 부제(祔祭)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부제는 졸곡제를 지낸 그 이튿날 새벽에 지낸다.
나. 어느 시점에 조상신의 반열에 들게 되나?
혼백이 조상신(鬼)으로 승격되는 것은 부제(祔祭)를 지낼 때부터다.
「예기」잡기(雜記) 下에는 “졸곡제사 이후로는 신(神)으로써 섬긴다”고 했다.
이때가 되면 사자(死者)의 혼령은 비로소 조상신(祖上神)으로 승격된다.
다시 설명하면, 하관 → 반혼 → 초우제(하관 당일) → 재우제(초우 후 1~2일)
→ 삼우제(재우 후 1~2일) → 졸곡제(삼우제 후 3개월, 90일) → 부제(祔祭, 졸곡제 후 이튿날)
이런 순서인데, 바로 이 부제로부터 혼백은 신격화되어 조상신의 반열에 들게 된다.
즉, 하관 → 삼우제(3일) → 졸곡제(90일) → 부제(1일)이니 혼령이 조상신이 되는데
소요되는 기간은 약 95일가량 걸린다.
고례에서는 死後 3개월이 지난 후 빈(殯)을 설치한 때도 있었으니,
그렇게 계산하여 3개월을 더하더라도 혼백이 신격화되는 기간은 185일을 지나지 않았다.
다. 혼령의 차별 대우 - 누구나 다 조상신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죽은 자의 혼령이 모두 다 조상신이 되는 것이 아니다.
조상신의 반열에 들 수 없는 결격 조건으로는
① 생리적으로 미숙하여 죽은 자의 혼령
② 도덕적으로 악한 자의 혼령
③ 불행하고, 원통하게 죽은 자의 혼령
④ 비명횡사
⑤ 객사한 혼령
⑥ 무자(無子)한 경우
⑦ 서출(庶出)
⑧ 적자(嫡子)의 제사를 받을 수 없는 경우
⑨ 춘추시대까지는 사대부 귀족 계층의 혼백만이 귀(鬼) 즉, 조상신이 될 수 있었다.
서민과 하천민(下賤民)의 경우 그들의 혼백은 죽어서도 조상신의 반열에 들지 못하고,
쉬이 소멸되는 존재로 여겼다.
라. 귀(鬼, 혼백)의 사후 상태는 어떠한가?
① 생리적으로 미숙하거나 도덕적으로 선하지 못한 혼령은 육체를 떠나는 순간
오래 살지 못하고 조만간 소멸되어 없어져 버리고 만다.
② 불행하게 죽은 혼령은 조상신의 반열에 들지 못하고 원혼(怨魂)이 되어 배회하다가 소멸된다.
『춘추좌전 주소 (春秋左傳 注疎)』에 “자산(子産)(B.C. 517년경)이 말하기를
‘귀신은 돌아가 편히 쉴 곳이 있으면 여귀(厲鬼)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③ 후손들로 부터 제사를 충분히 받아먹지 못한 귀는 배를 주리게 되어 기진하여 소멸된다.
『주자어류 고문해의(朱子語類 考文解義)』에도 “신은 항상 존재하지만,
제사는 항상 지내지 않기 때문에 굶주린다(神常在, 而祭不常行, 故曰綏也)”고 했다.
④ 제사를 지속적으로 공궤 받은 귀(鬼)도 그 포양(飽養)의 풍부, 빈곤, 장단(長短),
정성 여하에 정비례하여 3, 4대 가량 잔명(殘命)을 유지하다가 소멸되고 만다.
⑤ 건국시조의 신주나 부조지전(不祧之典, 혁혁한 공을 세워 영구히 그 귀를 섬기라고
특명한 혼령으로 초절화된 귀신도 세월이 오래되면
모두가 종극적(終極的) 적멸(寂滅, 無化)에 이르게 된다.
이와 같이 혼백(人鬼,鬼)은 영원불멸하는 존재가 아니고,
사람이 죽은 후 그 잔생(殘生)을 얼마간 잔존하다가 시간상 늦고 빠른 차이는 있으나
소멸되어 사라지는 시한적 존재이다.
장계이(張繼弛)도 귀신은 인간의 죽은 혼백으로 죽은 후
얼마 동안은 존재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없어진다“고 말했다.
마. 조상신(鬼)의 잔명(殘命)기간은 얼마나 되나?
① 주례(周禮) : 6代 120년
② 선가(仙家)인 숙저자(叔苴子) : 5대 100년. 숙저자(叔苴子)는
“5대만에 없어 지지 않은 혼은 없다”(無五世不盡之魂)라고 했다.
③ 정자(程子), 주자(朱子) : 80년. 고조유복(高祖有服) 불가부제(不可不祭).
그래서 4代 봉사(奉祀)를 해 왔다.
④고려 말의 정몽주와 조선조 세조(世祖)때 편찬한 경국대전(經國大典)에서는
6품 이상은 3대만 제사하고(3대x20년=60년), 7품 이하는 2대만 제사하고(2대x20년=40년),
서민은 부모만 제사하라(20년)고 국법으로 정했다.
그렇지만, 백성들은 경국대전의 규제를 무시하고 4대 봉사를 거행하였다.
근래의 가정의례준칙에는 2代만 제사하라는 규정이 있다.
이상과 같이 사람의 혼백은 죽은 후 95일이 지나서 지내는 부제(祔祭)로 부터
조상신으로 신격화되어
잔생(survivance)을 살게 되는데, 그중 미허(微虛)한 것은 일찍 소멸되고,
성숙한 것도 길어야 100여 년 정도면 거의가 다 소진(消盡)되어 무화(無化)되고,
혹 부조지전 등 특별한 경우의 초절화된 귀도 시차는 있지만
종국에는 모두 소멸되어 없어져 버린다는 것이 제례에 스며있는 죽음관이다.
6. 마무리 글
유교철학에서의 인간의 생과 사(死)는 기의 응취소산에 있다고 본다.
즉, 남녀의 성교시 형성된 백(魄)과 태아가 출생하여 첫 호흡 때에 형성된다는 혼(魂)이
인간의 뼈를 중심으로 한 육신과 정신적 요소를 구성하여 한 일생을 살게 된다고 본다.
사람이 죽으면, 혼은 신주(神主)에 의거하고, 백(魄)은 시신과 함께 무덤으로 흩어진다.
사람이 죽은 지 100여 일 가량 지나서 드리는 부제(祔祭)를 통하여 혼령은 조상신의 반열에 든다.
누구나 다 조상신이 되는 것은 아니나,
조상신이 된 혼령도 100여 년 잔생(殘生)을 지내면
촛불이 다 타서 없어지듯 소진되고 만다고 보는 것이
유교의 상, 제례에 스며있는 죽음관이다.
즉, 조상신은 영원불멸하는 존재가 아니라 시한적으로 잔존하다 소진하는 것으로 본다.
생(生)은 기의 응취(凝聚)요, 사(死)는 기의 소산(消散)이다.
또한, 조상신은 이승이나 저승을 달리 할뿐
먹고 마시고 희노애락하는 ‘인간성’을 그대로 간직하는 일종의 생물학적 귀신이다.
그리고 이승에서 부귀영화를 누렸으면, 저승에서도 역시 그런 것을 경험하게 된다는
관념에 근거하여 저승에서도 계급주의적 차별성이 있다.
상, 제례 의례를 봉건계급사회를 통치하는 이데올로기의 방편으로 이용한 예다.
유교의 상, 제례사상은 이승과 저승 사이에 장소의 변화가 있을 따름이지 별 차이가 없다.
그래서 공자는 “제사 때에는 조상이 앞에 계신 듯,
신을 모실 때는 신이 앞에 있는 듯이 제사를 지내라”
(祭如在, 祭神如神在. 論語⦁八佾篇)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