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 공동구 3.
대전 지하 공동구 주차장,
점심 식사를 마친 근상과 마해송이 만족한 모습으로 대화를 나누며 카니발로 돌아오더니 마 반장이 차 문을 열고 짐을 꺼냈다.
“어? 마 반장님, 차 키 안 잠그셨어요?”
“아, 이런 제가 깜빡했슴다. 배고파서 밥 생각하느라고! 하하.”
움찔 놀란 마해송이 머리를 긁적이고 계면쩍게 웃으며 얼버무렸다.
“이 물건들 잃어버렸으면 어떻게 하려고요?”
근상이 놀라서 증폭기 가방을 열고 내용물을 살피더니 수량에 변동이 없는지 안심한다.
‘방문’이라는 글씨만 큼직한 출입증을 목에 걸고, 추가 절차 없이 공동구 관리소 종합관제실로 들어온 두 사람은 장치실 쪽문을 지나 아무도 없는 지하 공동구로 내려갔다.
사방이 콘크리트 벽면으로 둘러싸인 넓은 터널을 조금 걸어가자,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는 분기 지점이 나왔다.
지하 공동구는 주로 둔산구 같은 신설 계획도시의 지하에 설치되는 터널이다.
지상에 설치하던 전력선이나 통신선로를 지하로 연결하여 필요한 지점에서 지상으로 분기해서 올려보내는 시설물이다.
수도관이나 중앙집중식 난방시설의 파이프라인도 지하 공동구에 설치된다.
만약 화재나 기타의 원인으로 지하 공동구가 훼손되면, 지상의 도시는 대단한 재앙을 당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지하 공동구는 을지훈련 같은 비상훈련도 시행되는, 국가 중요 기간시설물이다.
마해송이 벽면에 있던 이동식 사다리를 옮겨 다리를 A자로 벌려 터널 천장 높이로 세웠다.
사다리에 올라가 천장에 부착된, 중계설비 동축케이블 분배단의 D 구간에 계측기 측정용 케이블을 T자로 연결하고, 밑에서 근상이 제대로 하는지 올려다보고 있다.
“이제 이 통신구 D 구간만 확인하면 끝나니까, 마 반장님은 계속 계측기로 발진 여부 확인하고 수치만 정확히 불러주세요.”
케이블 연결 작업을 마치고 내려온 마 반장에게, 근상이 자기 무전기의 PTT(press to talk) 키를 엄지로 누른 채 통화시험 겸 송신을 하고 나서 손가락을 뗐다.
“예, 잘 알겠슴다. 스탠바이 하고 있을 거니까 염려 말고 다녀오세요.”
마 반장이 자기 무전기 키를 누르며 수신확인 응답 송신을 했다.
두 사람이 사용하는 무전기 주파수는 소방대원들이 사용하는 450MHz(메가헤르츠) 대역의 UHF(초고주파)이다.
중계설비가 작동 중이면 지상 옥외안테나에서 50m 거리에 있는 무전기로도 지하 공동구 내부의 무전기와 서로 통화가 가능하다.
“최 대리님! 피곤하실 건데, 무거운 증폭기 가방은 두고 가십시오. 통신구 D 구간은 지난번 정기점검 때 다른 통신구나 전력구보다 고장이 적었슴다. 증폭기 교체하게 되면 제가 들고 뛰어가겠슴다.”
“그래 주실래요? 어쩌면 불량이 없을지도 모르겠네요. 한 군데 정도 불량이면, 5시쯤에는 마칠 수 있겠네요.”
무전기를 손에든 근상이 테스터기와 간단한 측정공구가 든 가방만 메고 계단을 내려갔다.
조금 걷다가 다시 여러 갈래로 갈라진 복잡한 계단을 지나서, 통신구 D 구간 터널로 들어섰다.
폭이 3m 정도이고 높이가 2.5m로 곧게 뻗은 시멘트 터널 천장 중앙에 일정한 간격으로 전등이 켜져 있다.
좌·우측 벽면에 설치된 선반형 케이블 트레이 위에, 각종 굵기의 통신케이블이 얹혀서 끝도 없이 포설되어 있다.
터널 중앙의 통로를 따라 근상이 빠른 걸음으로 하염없이 걸어갔다.
중간중간 100m 거리마다 마 반장에게 감도 확인 송신을 했다. 아마 수 킬로미터나 되는 터널 끝 지점까지 걸어가면서 통화가 안 되는 지점이 있는지 체크를 하는 모양이다.
벽면 천장 쪽에 근상이 가져온 것과 똑같은 모양의 선로증폭기와 작은 안테나가, 손가락 굵기의 동축케이블을 따라 수십 미터 지점마다 설치된 모습이 보인다.
그 증폭기가 동축케이블 손실과 안테나 분배 손실을 보상해주어서 수 킬로미터의 거리에서도 양호한 통화가 되도록 하는 모양이다.
“여기는 알파, 통신구 D 구간 천팔백 미터 지점. 감도는?”
수신 대기 중인 마 반장의 무전기 스피커에서 근상의 목소리가 깨끗이 울려 나왔다.
“여기는 베타, 통신구 D 구간 천팔백 미터 지점. 감도 넷, 감도 넷. 이상.”
마 반장이 송신 키를 누르며 답신을 해줬다.
무전기 고유의 칙칙거리는 잡음은 있지만 명료한 음성이면 감도 넷이다. 바로 옆에서 송수신할 때의 감도는 다섯이다.
감도 셋 이상이면 양호한 상태이다.
그런데 답신을 보낸 마해송이 근상이 내려간 계단을 따라 서둘러 지하터널로 내려갔다.
통신구 D 구간 입구에 있는 케이블 트레이 위쪽의 첫 번째 선로증폭기 아래로 다가갔다.
잽싸게 트레이 선반을 딛고 올라선 마해송이 증폭기 앞뒤에 연결된 동축케이블 커넥터를 손으로 끌러서 증폭기를 들어내고, 가져간 새 증폭기로 교체하여 연결했다.
아까 채일권이 폭발물을 장치한 바로 그 증폭기이다.
내려와 올려다보고는 교체한 증폭기의 시커먼 먼지를 면장갑 낀 손으로 쓱쓱 문질러 털고 원래의 위치로 되돌아왔다.
“여기는 알파, 통신구 D 구간 종단 지점. 감도는?”
분배단 지점 계측기 앞에 앉아 시계를 들여다보며 대기 중인 마해송의 무전기가 울렸다.
“여기는 베타, 통신구 D 구간 종단 지점. 감도 셋, 감도 셋. 이상.”
마해송이 얼른 무전기 키를 누르고 답신을 보냈다.
“여기는 알파, 통신구 종단 감도 셋, 확인. 통화시험 종료! 이상.”
“여기는 베타, 통신구 통화시험 종료 확인! 이상.”
교신을 마친 마해송이 천천히 사다리 위로 올라가 계측기 연결용 케이블을 끌렀다.
한참 후, 공동구 통신구 D 구간 입구 지점.
거의 좌우 대칭으로 곧게 뻗어 원근법을 잘 적용해서 그린 도형 같은 그림의 중앙 소실점에, 가방을 메고 무전기를 든 채 먼 길을 걸어 지친 나그네처럼 축 늘어져 걸어오는 근상의 모습이 조그맣게 나타났다.
잠시 뒤에 입구의 첫 번째 증폭기 밑에 다다른 근상이 뒤돌아서서, 걸어온 까마득한 공동구 터널을 바라다봤다.
얼굴에 지친 피로감은 역력하지만, 며칠간에 걸쳐 꼭 해야만 할 일을 무사히 다 마쳤다는 안도감이 엿보인다.
‘응? 저게 언제 교체한 건데 먼지도 없이 깨끗하지?’
무심코 머리 위쪽의 증폭기를 올려다보던 근상이 이상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올라가서 확인해 볼까 망설이며 어깨가 뻐근한 듯 목을 두어 번 좌우로 젖혀본다.
그러다 손목시계를 들여다보고는 그냥 뒤돌아서 입구로 천천히 걸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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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내리고, 가로등 불빛이 환하게 들어 온 대로변, 공동구 사무소 주차장.
마해송이 지하에서 날라 온 계측기를 카니발에 들어 올려 싣고 있다.
무전기를 끄고 쪼그려 앉아 가방에 넣던 근상이 문득 생각난 듯 증폭기가 들어 있는 가방을 열고 내용물을 살폈다.
깜짝 놀란 얼굴로 증폭기 한 개를 꺼내 드는데 때가 시커멓게 묻은, 아까 마해송이 교체하고 들고 온 그 증폭기이다.
“어? 마 반장님!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예? 뭐가요?”
차에서 막 내리던 마해송이, 근상이 손에 증폭기를 들고 있는 모습을 보고 끔쩍 놀라면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교체한 헌 증폭기잖아요? 오늘은 하나도 교체 안 해서 새것만 들어 있었는데!”
( ‘방문’ 표시의 출입증만 목에 걸면 누구나 아무 때나 지하 공동구에 들어갈 수 있는 허술한 경비 현황을 지적하고자 합니다.
선로증폭기 속에 원격조정용 폭탄을 설치하여 무전기 사용주파수 450MHz에 맞춰 지상에서 무선으로 터뜨리는 건 아주 쉽습니다.
건물의 실내 형광등을 무선 리모컨으로 선별하여 켜고 끄는 것과 같습니다.
이어서 다음에는 ‘해경 특공대 11 – 지하 공동구 4’ 편이 연재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