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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쟁사상 (和諍思想)>
원효(元曉) 대사는 대승불교 주요경전 대부분을 섭렵한 후,
어느 한 종파에 치우치지 않는 통효(通曉)한 사람이었다.
따라서 원효 대사가 주장한 화쟁사상은 당시 종파주의적 방향으로
나가던 불교이론을 특정 종파에 연연하지 않고
전체 불교를 회통(會通)케 하고, 일승불교(一乘佛敎)로 귀결시켜
자기분열이 없는 불교의 사상체계를 정립하고자 했다.
그러므로 화쟁사상의 궁극 목적은 일승불교(一乘佛敎)의 구현에 있었다.
그 일승불교의 이념이 바로 통불교(通佛敎)다.
이 통불교의 이론체계가 곧 화쟁사상이다.
이러한 화쟁사상은 중국과 일본불교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특히 고려의 의천(義天)과 지눌(知訥) 및 중국의 법장(賢首法藏) 등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의천과 지눌은 원효 대사를 높이 숭앙했으며,
당시 대립적인 위치에 있던 선(禪)과 교(敎)를 회통시키기 위해
의천은 교관병수(敎觀幷修)를, 지눌은 정혜쌍수(定慧雙修)를 주장함으로써
화쟁정신을 이어갔고, 조선시대에는 함허(涵虛)와 휴정(休靜)으로
이어져 한국불교의 뚜렷한 특징을 이루었다.
화쟁은 여러 사상과 논쟁 가운데 그 핵심을 파악해
곡해와 대립을 낳고 있는 부분을 서로 통하게 해 원융을 이루는 사상체계이다.
즉, 화쟁사상이란 원효 대사의 사상적 근본을 구성하는
화회(和會)와 회통(會通)의 논리체계를 말한다.
불교의 이론은 대체로 연기론과 실상론(實相論)의 둘을 바탕으로 해서 무궁무진하게 전개돼왔다.
모든 존재의 진실된 모습을 시각적인 현상에 입각해 파악해가는 것이 연기론이고,
공간적인 형상에 입각해 파악해가는 것이 실상론이다.
원효 대사는 그 어느 교설이나 학설을 고집하지도 아니했으며
또 버리지도 않았다.
따라서 ‘화쟁사상’은 연기론과 실상론을 바탕으로 모순과 대립을
하나의 체계 속에서 다룬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원효 대사는 아래와 같은 주장을 폈다.
「위도자영식만경 (爲道者永息萬境),
수환일심지원 (遂還一心之原)」
“도를 구하는 자로 하여금 만 가지 경계
(번뇌, 이론, 주장, 다툼, 차별, 망상)를 길이 쉬어(永息)
드디어(遂) 일심(一心)의 근원(心源)으로 돌아가게(還)하고자 함이다.”
화쟁사상의 바탕에는 ‘일심(一心)’이 있다.
우리 모두가 한마음이 될 때 주체와 객체의 분별이나 다툼이
사라진 ‘화쟁’이 된다.
‘일심(一心)’은 선종(禪宗)의 대표적 화두이다.
「만법귀일 일귀하처(萬法歸一 一歸何處) : 만법이 하나로 돌아가는데
이 하나는 어디로 가는 가」라 했다.
일체, 제행, 제법이 다양하지만 결국 하나로 돌아간다.
그 하나는 바로 불법이다.
그러니 왈가왈부 아무리 색다르게 주장해봤자,
결국 불법으로 귀일 할 것이니, 너무 날카롭게 대립할 것이 아니라
하나로 귀일해야 한다는 말이다.
원효 대사는 매양 비판하고 분석하면서도
항상 긍정과 부정의 두 가지 논리를 융합해서 보다 높은 차원에서
새로운 가치를 찾아냈다. 모순과 대립을 한 체계 속에
하나로 묶어 담는 이 기본구조를 가리켜 그는 화쟁이라 했다.
이러한 화쟁은 그의 모든 저서 가운데서 줄기차게
뚫고 나가는 기본적인 논리였다.
삼승과 일승의 문제를 비롯해
대승불교의 거대한 두 흐름인 중관과 유식,
성불할 수 없는 존재,
일천제(一闡提)에게 불성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
또 불신(佛身)의 다양한 의미 등이 화쟁의 대상이었다.
즉, 화쟁사상이 나오게 된 배경에는 일체중생실유불성(一切衆生悉有佛性)이라는
본래불(本來佛) 사상이 자리하고 있었다.
화쟁사상은 모든 중생을 부처로 보는 데에서 출발을 했다는 말이다.
그는 나열했다가 합하고(開合), 주었다가 뺏고(여탈/與奪),
세웠다가 무너뜨리고(立破) 하는 논리를 이용해 불교사상에서 나타나는
온갖 쟁론을 분석하고 총합해 결국에는 조화롭게 어우러지도록 했다.
분석과 통일 또는 긍정과 부정의 어느 한 측면에서 정의하길 지양하고,
객관적인 논리에 근거해 총합과 회통을 추구했다.
이런 논법이 화쟁이다.
그리하여 원효 대사는 불교 안의 여러 사상과 주장들을
모두 ‘한마을(一心)’의 발현으로 보고,
그 발현의 여러 양상들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통합하려 했다.
이러한 화쟁의 원리는 <십문화쟁론(十門和諍論)>ㆍ<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疏)> 등의
저서에 잘 나타나 있으나 <십문화쟁론>은
현재 전하지 않고 있으나 부분적으로 이해가 가능하다.
원효 대사는 <대승기신론소>에서 ‘마치 바람 때문에
고요한 바다에 파도가 일어나나 파도와 바다는 둘이 아니다.
우리의 일심(一心)에도 깨달음의 경지인
진여(眞如)와 무명(無明)이 동시에 있을 수 있으나
이 역시 둘이 아닌 하나’라고 했다.
그리하여 원효 대사는 화쟁사상으로 반야와 유식의 대립을 넘어섰으며,
화쟁사상의 근본원리는 극단을 버리고
화(和)와 쟁(諍)의 양면성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출발하는데,
몇 가지 특징이 있다.
① 화쟁을 원융회통(圓融會通)이라고도 한다.
원효 대사가 살던 시대에 여러 종파와 사상이 들어와 혼재돼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언어와 교리에 집착하지 않으면서 대립을 넘어서
여러 사상과 종파를 통합코자 노력했으며,
각 종파들의 서로 다른 이론을 인정하면서도 논리적 근거를
일심(一心)에 두고 보다 높은 차원에서 통합을 시도했다.
그리고 연기론(緣起論)과 실상론(實相論)을 바탕으로
특정한 교설이나 학설을 고집하지 않고 비판과 분석을 통해
보다 높은 가치를 이끌어내 모순과 대립을
하나의 체계 속에서 다루므로 화쟁(和諍)이라 했다.
② ‘화쟁(和諍)’이라는 말 자체는 원효 대사의 고유용어로서
내가 옳다면 상대방도 옳고,
상대방이 그르다면 나도 그를 수 있다는 입장에 서는 것이다.
이것이 개시개비(皆是皆非), 쌍차쌍조(雙遮雙照)로서,
모든 대립적인 이론들은 결국 평등하다는 것이다.
즉, 코끼리를 만져본 장님들이 다 다르다고 말하지만
모두가 코끼리를 만지고 말한 것이므로 다 옳다고 할 수도 있고,
또 모두가 코끼리 전체를 말하지 못했으므로
모두 그르다고도 할 수 있다.
이렇듯 동시긍정과 동시부정의 입장에서
‘나’를 바라보고 상대를 바라보는 것이 화쟁의 입장이다.
③ 자기의 견해만 옳다는 아집과 집착을 버릴 때 쟁론이 해소된다는 것이다.
‘화쟁’은 실상(진실, 진리)을 드러내어
서로의 생각과 관점을 조절하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실과 실상은 구별해야 한다.
사실(事實)은 펙트(fact)이며 실상(實相)은 진실 또는 진리다.
그리하여 원효 대사는 근본 원리의 실상법(實相法)에 입각해
불변(不變)과 수연(隨緣), 염(染)과 정(淨), 진(眞)과 속(俗),
공(空)과 유(有), 인(人)과 법(法) 등이
다 일법(一法)ㆍ일심(一心)ㆍ일리(一理)의 양면일 뿐
원래부터 서로 대립되고 양단된 존재도 이원적 원리도 아니라는 것을
논증해, 상대적 세계의 차별은 불완전한 인식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하여 철저한 진속일여(眞俗一如), 염정불이(染淨不二)를 주장했다.
그리고 화쟁론에서
인간세계의 화(和)와 쟁(諍)이라는 이면성을 인정하면서,
화와 쟁은 정(正)과 반(反)에 집착하고 타협하는 합(合)이 아니라,
정과 반이 대립할 때 돌이켜 정과 반이 가지고 있는 근원을 꿰뚫어보아
이 둘이 불이(不二)라는 것을 체득함으로써 쟁과 화를 동화시켜 나가는
불이사상(不二思想) 원리를 화쟁사상으로 풀이하고 있다.
이래서 화쟁은 변증법적 불교논리 전개의 백미라 하겠다.
우리 사회는 분쟁과 갈등 그 자체를 문제 삼고 있으나
분쟁과 갈등은 진리를 드러내는 하나의 에너지나 기회
또는 원천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화쟁’이라는 것은 다른 것을 녹여 하나로 만든다거나
다른 상대를 종식시켜 해결하는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생각을 유지하는 가운데 어떻게 공존할 것이냐 하는 문제다.
그래서 화쟁은 상대방의 옳음을 발견하는 과정이다.
그리하여 논쟁을 대화의 상태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러한 화쟁(和諍)이란 원효 사상의 근본을 이루는
화해(和會)와 회통(會通)의 논리체계를 이르는 말로,
엄밀히 말하면 원효 대사로부터 시작돼 한국불교의 전통으로
이어 내려온 사상이다.
연기론(緣起論)과 실상론(實相論)을 바탕으로 해서
특정한 교설이나 학설을 고집하지 않고 비판과 분석을 통해
보다 높은 가치를 이끌어내는 사상이라고 할 수 있으며
모순과 대립을 하나의 체계 속에서 다루므로 화쟁이라 했다.
“이 화쟁사상을 불교의 원리에서 보면
유물론과 유심론이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심(心)과 물(物)이 진여법성으로 평등일여다.
오온법(五蘊法)과 육대(六大)가 인연 따라
중생과 국토, 정신계, 물질계에 구현된 것이니
본래 이원(二元)이 아니다.
그러므로 화쟁사상을 좀 더 현대적으로 유추하면,
물심일여(物心一如)ㆍ개전불이(個全不二)ㆍ
만물화쟁(萬物和諍)의 원리라 할 수 있다.” ― 아놀드
<십문화쟁론(十門和諍論)>은
바로 이러한 화쟁사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그의 핵심적인 저술이다.
그는 여러 이설을 십문으로 모아 정리하고 회통함으로써
일승불교의 건설을 위한 논리적 근거를 제시했다.
그의 이와 같은 통불교적 귀일사상은 한국불교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십문화쟁론(十門和諍論)-
원효(元曉) 대사가 살았던 시대는 세 나라(고구려, 백제, 신라)가
끊임없이 각축하고 항쟁하는 대립과 갈등을 거쳐
삼국통일이 이루어져가면서 전쟁은 일상화되고,
죽음은 현재화되고 있었던 시기였다.
그런 과정을 거쳐 삼국통일이 이루어진 이후에는,
체제정비와 이념체계의 통합, 민심의 수습이라는 과제가 남아 있었다.
그런 시대적 과제에 원효 대사가 답한 것이
‘십문화쟁론(十門和諍論)’이었다.
화쟁은 오늘날의 용어로 말한다면 ‘소통(疏通)’에 가깝다고 하겠다.
하지만 그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부처님의 뜻(佛意)’에서 비롯되고 있다.
따라서 화쟁이라는 소통을 통해 도달하고자 한 것은
일심(一心)의 세계, 곧 부처님 ‘진리의 세계’였다.
그러므로 원효 대사의 화쟁과 일심의 사유체계는
삼국통일 과정에서 드러난 여러 가지 문제들,
예컨대 ‘전쟁의 일상화’와 ‘죽음의 현재화’를 통해서
한없이 고통 받았던 민중의 마음의 상처를
부처님 가르침에 의거해서 치유할 수 있는 논리였으며,
나아가서는 정치적 제도적 통일을 넘어서
‘정신적인 통일’과 ‘마음의 통일’을 도모하고자 하는
거시적 안목이기도 했다.
현실적으로는 어제까지 적으로 싸우다
오늘은 한 지붕 밑에 같이 살아야 하는 사람들을 위한 이념체계,
즉 ‘화해의 논리’와 ‘통합의 철학’ 이 화쟁이요, 일심이요,
십문화쟁론이었다.
원효 대사는 230여권의 논주서(論註書)를 지었는데,
그 중에 대표적 저술이 이 <십문화쟁론>이다.
원효 대사 화쟁사상의 압권이라 할 수 있다.
불행하게도 이 저서가 전하지 않아 유감이지만 일부 경판이
해인사 사간장경전(寺刊藏經殿)에 봉안돼 현전하고 있다.
국보 제206-28호로 지정된 상권 2판(二板) 4장(四張)(9, 10, 15, 16)과
31, 32장이 현전하고 있는데, 이 경판은 고려 고종 때,
현전 팔만대장경(재조장경)보다 훨씬 이전에 새겨진 경판인 것 같다.
그리고 그의 다른 저술과 언행 및 전기를 통해,
그리고 이후 여러 학자들에 의해 연구된 <십문화쟁론>의
주요내용을 미루어보면, 백가(百家)의 이론(異論)을 모아서
십문(十門)으로 분류해 난점(難點)을 들어 판결하고,
이점(異點)을 모아 정리해 화회(和會)함으로써
일승불교(一乘佛敎)를 건설하고자 하는
논리적 근거를 제시한 것이라 추정된다.
즉, 어느 한 종파나 문헌에 치우침이 없었고,
어느 하나의 특정한 교학을 주장하지도 않았다.
그의 화쟁사상은 불교 안의 모든 사상을 조화시키고 통일함으로써
부처님의 참 정신을 구현하려 한 것이었다.
그리하여 부처님의 살아있는 교훈을 이 땅에서 실현코자 했다.
그리고 9세기 초에 세운 ‘서당화상비문(誓幢和上碑文)’에서는
<십문화쟁론>을 원효 대사의 대표적 저술로 인식하면서
화쟁의 의미를 부각시켰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훌륭하다는 칭송을 받았다고 전한다.
그만큼 이 비문이 조성된 9세기 초에도 이미 <십문화쟁론>에 대한
평가가 대단히 높았음을 알 수 있다. 비문의 중요내용은 아래와 같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세상에 계실 때는 원음(圓音)에 의지했기 때문에
의혹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부처님이 가신지 오래된 지금에는
사람들이 번뇌가 무겁고 깊어서,
삿된 견해가 비처럼 어지러이 뿌리고 쓸데없는 공론이 구름처럼 흩어졌다.
어떤 사람은 내가 옳다하고 다른 사람은 그르다 한다.
서로가 자신의 주장만을 내세운다. 말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이 없다.
원효(元曉) 대사는 이런 일들을 안타깝게 여기고
다툼을 화해하고자 필을 들어 서술했다.
그 글은 산을 바라보고 깊은 골짜기로 돌아간 것 같고,
나무를 버리고 큰 숲을 보게 한 것과 같다.
비유하자면 청색과 쪽풀은 본체가 같고, 얼음과 물은 그 근원이 같으며,
거울이 수많은 형상을 받아들이고, 물이 천 갈래로 갈라지는 것과 같다.
갖가지 비유를 들어 다툼을 화해하고 융통하게 서술해 그 이름을
<십문화쟁론(十門和諍論)>이라 했다. 그러자 사람들이 칭찬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십문화쟁론은 아래와 같이 10문으로 구성됐다.
1. 삼승일승화쟁문 (三乘一乘和諍門)
2. 공유이집화쟁문 (空有異執和諍門)
3. 불성유무화쟁문 (佛性有無和諍門)
4. 인법이집화쟁문 (人法異執和諍門)
5. 삼성이의화쟁문 (三性異義和諍門)
6. 오성성불의화쟁문 (五性成佛義和諍門)
7. 이장이의화쟁문 (二障異義和諍門)
8. 열반이의화쟁문 (涅槃異義和諍門)
9. 불신이의화쟁문 (佛身異義和諍門)
10. 불성이의화쟁문 (佛性異義和諍門)
십문화쟁론은 대립과 모순이 있는 현실에서 모든 대립과 모순과
쟁론(爭論)을 하나의 진리로 조화시키고 극복하려는 사상이다.
일경일론(一經一論)으로써 소의경전(所依經典)을 삼지 않고,
여러 종파의 상쟁을 보다 높은 차원에서 융화, 통일시키려는 사상이다.
원효 대사의 사상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화쟁사상이다.
12세기에 들어와서 고려 숙종은 원효 대사를 기려
화쟁국사비(和諍國師碑)를 세우도록 왕명을 내렸다고 한다.
원효 대사의 사상을 이미 고려시대부터 화쟁으로 대변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쟁론은 집착에서 생긴다. 유견(有見)과 공견(空見)은 다르고,
공집(空執)과 유집(有執)은 다르다. 이리하여 논쟁은 더욱 심해진다.
그렇다고 해서 동(同)과 이(異)를 같다고 하면 오히려 자기 속에서 상쟁(相諍)할 것이고,
다르다고 하면 둘과 더불어 상쟁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異)도 아니요 동(同)도 아니라고 설(說)한다.
즉, 염정(染諍)과 진속(眞俗)이 둘이 아님을 강조하면서
성속을 품고 넘어서는 전체상에 대한 이해를 강조한 것이 화쟁사상이다.
즉, 어떤 이견의 논쟁이 생겼을 때, 모순과 대립을 하나의 체계 속에서 다루므로 화쟁이라 했다.
원효 대사는 이론과 실천을 겸했던 분이다.
그는 지행합일의 삶을 추구했고, 이입(理入)과 행입(行入)을
온전히 하고자 했다.
그리하여 모순의 극복을 위해 진과 속이 원융무애함을 강조했다.
그러한 바탕에서 불교 안의 모든 사상을 조화시키고 통일함으로써
부처님의 참 정신을 구현하려 한 것이다.
이사무애법계(理事無礙法界), 나아가서
사사무애법계(事事無礙法界)를 지향한 것이다.
그런데 화쟁론에 대한 비판의 소리도 있다. 다음은 지현 스님의 주장이다.
“화쟁사상이 이치적으로는 맞지만, 현실적으로는 언제나 뚜렷하지 않고
답답할 따름이다. 치열한 현실정치나 세계적인 기업들이 펼치는
사활을 건 치킨게임에서, 화쟁의 논리가 얼마나 작동할 수 있을까?
이것은 그저 깨침에 덧씌워진 허울 좋은 방어기제일 뿐이다.
법상종(法相宗)에서는 이불성(理佛性)과 행불성(行佛性)의
두 가지 불성을 말한다. 본질에서는 같지만 현상적으로는
엄연한 차이가 존재한다는 의미다.
현실을 도외시한 채 유심주의에 입각해서 무턱대고 현실과 본질을 일체화시키면,
원효처럼 이율배반적인 비윤리의 광기가 나타나게 마련이다.
원효가 보여주는 일탈과 걸림 없는 모습이 멋있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삶의 태도는 결코 한 사회나 단체의 기준이나 사표가 될 수 없다.
서구를 압도하던 동아시아가 몰락하며
서구의 문화적인 식민지로 전락한 것은
‘명료한 현실판단이 결여된 두루뭉술한 화쟁적 사고’와
‘어쭙잖은 유심주의’가 시너지를 일으킨 결과이다.
다종교가 경쟁하는 현대사회에서,
종교의 제1 덕목은 깨침보다도 윤리다.
깨침이라 하더라도 윤리를 넘어서면
내로남불의 위험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런 종교를 현대인은 결코 신뢰하지 않는다.
또 사회의 기본 윤리조차 포함할 수 없는 것이
어떻게 정당한 깨달음이란 말인가?
부처님께서는 위없는 깨침을 얻으신 분인 동시에,
올바른 윤리적 삶을 사신 분임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
이런 점에서 한국불교 안에 존재하는
원효의 망령은 반드시 걷어내져야만 한다.
불교의 기준은 언제나 부처님이다.
관세음보살이 아미타불을 정대하듯,
우리 삶의 좌표 역시 오직 부처님일 뿐이다.
이런 점에서 원효의 광기는 한국불교를 휘감고 있는 짙은 안개이며,
화쟁 역시 현실성을 상실한 범범한 이상(理想)의 외침에 불과하다.
철저한 분석을 거치지 않은 화쟁은 무기력이며,
발전을 잃게 만드는 악덕에 지나지 않는다.”
[출처] 블로그 아미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