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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 찬미
전례력으로 연중 시기의 마지막 주일인 오늘은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입니다. 축일명대로, 인간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임금)이심을 기리는
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정치권력을 장악하여 백성을 억누르는 임금이 아니라, 당신의
목숨까지도 희생하시며 백성을 섬기시는 메시아의 모습을 실현하셨습니다. 스스로 낮추심으로
높아지신 것입니다. 1925년 비오 11세 교황이 연중 시기의 마지막 주일을 '그리스도왕 대축일'로
정하였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으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왕이심을 기리는 날입니다.
그분의 다스림은 절대 권력의 행사가 아니라 바로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이웃을 섬기는 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를 왕으로 세우시고 그분의 십자가를 통하여 만물을 화해시켜 우리가
하늘나라에서 당신의 영광을 누릴 수 있게 하십니다. - 매일 미사 -
오늘은 한 해를 마무리하는 연중 주일의 마지막 주일인 연중 제34주입니다. 오늘 교회에서는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로 지냅니다. 인류 역사 이래 가장 큰
희생자를 낸 세계 제1차 대전을 경험하며 인류는 전례 없던 인간의 잔혹성을 목격하게 되었고,
그 참혹함 안에서 "인간은 누구인가?", "인간은 어디에 희망을 두어야 하는가?", "과연 인류에게
희망은 있는 것인가?" 등 깊은 회의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때 교회는 인류의 구원자이신,
오로지 그리스도께만 희망을 두어야 하며, 오직 그리스도 만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왕이 되어
오시길 희망하며, 교회가 이기주의와 세속주의의 물결을 넘어서 왕이신 그리스도의 사랑이
다스리시는 왕권을 강조하기 위해서 오늘을 대축일로 제정하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하느님 영광을 높이 드러내고(현양),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므로 영원한 목자인 그리스도께서는 이 구속 사업을 영구히 계속하기
위하여 당신의 교회를 세우기로 결정하셨습니다. 교회를 세우시면서 당신께서 진정으로 원하신
것은 자신이 성부께로부터 받은 사명과 임무를 교회가 계속해서 이어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께서 원하신 교회의 직무는 당신께서 성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직무를
이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속한 각자,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직무를 이어나가야 하는
의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직무를 가지고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께서는 이중적 의미에서 왕이십니다. 우선 당신께서는
계시는 그 자체로, 즉 본성상 왕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아들로서 모든 것의 상속자이시며 또한
창조주 하느님과 같은 분이시기에 모든 피조물 위에 지배권을 가지십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신이며 동시에 인간이시기에,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유일한 중개자가 되기 때문에 직무상
왕이십니다.
따라서 그리스도께서는 이중적 왕국을 갖는데, 본성상 왕으로서의 왕국은 보편적이며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창조된 모든 실재를 포함합니다. 이 왕국의 왕권은 삼위의 하느님 모두에게
공통됩니다.
그리고 직무상 왕으로서의 왕국은 특별하고 제한적인데, 이것은 오직 하느님께 뽑힌 자들에게만
관련이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이에게만 해당하는 것이죠. 이 왕국은 성부에
의해 그리스도에게 주어졌으며, 그리스도는 성부로부터 발휘될 권위를 받았고 그 권위를 성부께
의지합니다. 그리고 선택된 자들, 즉 우리 신자들이 그 소명을 효과적으로 완수할 때, 그리스도는
그 왕국을 성부께 돌려드릴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왕직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별의 인도로 아기 예수를 방문하게 된 동방 박사들이 아기를 왕으로 이해했듯이
사람으로 태어날 때 왕으로 태어나셨습니다. 어머니 마리아에게 그리스도의 잉태를 전달한
가브리엘 천사도 그녀에게 당신의 아들을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 주 하느님께서 그분의 조상 다윗의 왕좌를 그분께 주시어, 그분께서
야곱 집안을 영원히 다스리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루카 1,32-33)라고
일러주었습니다. 이사야의 예언대로 태어난 그 아기는 자신의 어깨에 주권을 얹게 될 것이며,
평화의 왕이 될 것입니다. 이제 자라서 공생활을 시작한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습니다."라는 말로 공적 삶을 시작하셨는데, 이는 장차 생겨날 당신의 왕국을 의미하는
것이죠. 또한 그리스도 예수님은 많은 사람은 아니지만 일부 사람들에게는 왕으로 알려졌는데,
나타나엘은 그리스도께서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이라는 확신에서 다음과 같은 신앙 고백을
합니다.
"스승님, 스승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의 임금이십니다."
늘 언제가 오실 메시아에 대해 깊이 묵상하고 , 율법에 대해 고민하고, 동족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던 나타나엘에게 나타난 예수님이 그가 애타게 기다리던 이스라엘의 왕, 메시아 그리스도이신
것을 알아본 것이죠. 드디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왕족성과 위엄을 소리 높여 외칩니다.
"다윗의 자손께 호산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어라. 지극히 높은 곳에 호산나!"(마태 21,9; 루카 19,38).
더구나 그리스도께서는 지상에서의 삶 동안 성부로부터 심판을 행할 권리, 즉 정의로 왕권을
발휘할 권리를 받았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아무도 심판하지 않으시고, 심판하는 일을 모두 아들에게 넘겼다."(요한 5,22)
그리고 부활하시어 승천하시기 전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라고 선포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세례를 베풀 권한을 부여하시고 그들의 임무를 새롭게 하며 세상 끝 날까지 그들과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마태 28,18-20),
하늘에 오르신 예수께서 "주님과 메시아로 삼으셨습니다."(사도 2,36)라는는 사도들의 고백은
예수께서 그전에는 주님도, 그리스도도 아니셨다는 것이 아니라, 왕으로 높이 들어 올려지셨고,
모든 천사와 권능과 세력이 예수 그리스도께 굴복하게 되었으며, 성령을 사도들에게 풍성히 내려
주시어 그리스도의 복음이 세상 곳곳에 번져가 당신의 왕국을 키우셨다는 고백인 것이지요.
이 왕국은 보잘것없이 시작하지만 겨자씨처럼 커져감으로써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서 당신의
왕직을 수행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이스라엘 가문의 잃어버린 양 떼를 찾아 다스리고 돌보시기 위해 오셨지만, 유다인,
이방인 모두로 이루어진 영적인 이스라엘 가문의 잃어버린 양 떼를 찾아 다스리고 돌보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하느님은 모든 민족들 가운데 특별히 이스라엘을 선택하셨고, 당신의 피로 구속하시고
당신의 영으로 부르시며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은 영원히 구원받습니다. 그리스도의 영과 은총으로
신앙을 고백한 모든 이들은 눈에 보이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자발적으로
그리스도의 백성이 되어 "민족들의 임금님 주님의 길은 의롭고 참되십니다."(묵시 15,3)라고
노래합니다. 하느님의 교회는 그리스도의 왕국이며, 그 구성원이 그리스도의 백성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왕직(목자직)을 십자가에서 완성하셨습니다. 십자가는 이스라엘의 현세적
메시아 대망을 완전히 무산시키면서 그의 통치의 본질이 세상의 것과 다른 것임을 분명하게
해주었습니다. 예수님의 통치는 주종 관계의 바탕에서 이루어지는 강압이 아니라, 상호 위격적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봉사였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양들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분이며, 자기
양들을 아는 분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십자가에서의 왕이십니다(마르 15,2.9.12.18.26).
빌라도의 재판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왕국에 대해, "이 세상 것이 아니라는 것"과 "진리를
증언하는 것"으로 특징지으셨습니다(요한 18,33-37). 예수님의 통치는 제자들이 예수님에 대한
신앙에 의거해 성사를 주면서 그를 뒤따르는 가운데 이루어집니다(마태 28,19). 바로 그리스도
왕권의 특징은 하느님께로의 헌신과 다른 사람들을 위한 봉사에 있다는 것입니다.
- 한국 가톨릭 대사전 -
지난해에도 묵상했습니다만 성경에서 말하는 왕은 백성들로부터 노동력을 착취하고, 병사로
만들어 전쟁터로 내몰며, 자신의 부를 위해 백성들을 부리고, 백성들을 자신의 향락과 사치에
이용하고, 재산을 빼앗고, 과한 세금으로 억누르고, 백성들은 비탄에 젖어 원성을 지르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1사무 8,11-18 참조).
그렇습니다. 역사에 기록된 많은 왕들은 성경에 기록된 바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왕으로 모신 예수 그리스도는 전혀 다른 왕이십니다.
1888년 오스카 와일드는 '행복한 왕자'라는 동화를 썼습니다.
어느 마을 광장에 높은 탑이 있었는데, 그 위에는 금과 온갖 보석으로 장식된 행복한 왕자의
동상이 있었습니다. 이 왕자는 생전에 부유하게만 살아서 세상사를 전혀 몰랐는데, 동상이 되어
높은 곳에 서게 되면서 세상에 너무나도 많은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눈물을 흘립니다.
그리고 제비 한 마리가 있습니다. 제비는 갈대와 사랑에 빠진 나머지 남쪽 나라로 갈 때를 놓쳐
정신없이 남쪽을 향해 가던 중 행복한 왕자 동상과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왕자가
제비에게 부탁해 아픈 아이가 있는 재단사, 어머니가 병든 소년, 성냥팔이, 곤란에 빠진
할아버지, 병원비를 낼 형편이 못 되는 가난한 아이 등에게 자신의 몸에 장식된 금과 보석,
게다가 사파이어로 만들어진 자신의 눈까지 모두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줍니다. 그러는
사이 제비는 남쪽으로 갈 기회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렇지만 왕자의 마음이 너무 아름다워
그의 곁을 지키다 결국 추위에 얼어 죽습니다. 게다가 모든 금과 보석을 잃어버려 보잘것
없어진 왕자의 동상은 사람들에 의해 땅으로 내려졌습니다. 사람들은 그 동상을 불속에 넣어
녹여버립니다. 하지만 왕자의 심장은 녹지 않아 제비의 시체가 버려진 쓰레기통에 던져집니다.
그때 천국에서 신이 천사에게 "지상의 저 도시에서 가장 존귀한 것을 두 개만 가져오라."라고
명령합니다. 천사가 가져온 것은 행복한 왕자의 녹슨 심장과 제비의 시체였습니다. 이를 본 신은
'제비는 천국을 날아다니며 영원히 노래 부를 것이고, 왕자는 영원히 그 노래를 들을
것이다.'라고 축복하며 이야기는 마무리됩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행복한 왕이십니다. 그분께서 행복한 왕이신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필리 2,6-8)."
오늘 제2독서에 이 십자가 죽음에 대해
"그분 십자가의 피를 통하여 평화를 이룩하시어 땅에 있는 것이든 하늘에 있는 것이든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만물을 기꺼이 화해시키셨습니다. (콜로 1,20)"라고 선포합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화해의 왕이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분이시기에 우리는 자신의 길을 가지 못하고 죽은 제비가 되기를 망설이지
않습니다. 이 세상 그 어떤 길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길이 올바른 길이기에 우리는
예레미야 예언자처럼 신음하며 고백합니다.
"주님, 당신께서 저를 꾀시어 저는 그 꾐에 넘어갔습니다. 당신께서 저를 압도하시고 저보다
우세하시니 제가 날마다 놀림감이 되어 모든 이에게 조롱만 받습니다.
'그분을 기억하지 않고 더 이상 그분의 이름으로 말하지 않으리라.' 작정하여도 뼛속에
가두어 둔 주님 말씀이 심장 속에서 불처럼 타오르니 제가 그것을 간직하기에 지쳐 더 이상
견뎌 내지 못하겠습니다."(예레 20,7.9)
한해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과연 우리는 올 한 해 예수님과 어떤 관계를 맺으며 살았을까요?
우리에게 한 없이 복을 주셔야 하는 분?
우리의 자존심을 한껏 높여 주셔야 하는 분?
성공의 통로?
평화의 자판기?
올 한 해 저 자신을 돌아보면 왜 이렇게 죄송스러운지..
그래서 우리는 우리 주 예수님께 오늘 복음의 우도와 같이 청하며 매달려야 하겠습니다.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주님! 한 해를 보내고 이제 새해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저희 모두가 올 한 해를
마무리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하느님과 화해하고, 부모님과 화해하고
배우자와 화해하며, 자녀들과 화해하고, 이웃과 화해하며, 마지막으로 자기 자신과
화해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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