杜門不出(두문불출)
집 속에만 박혀 있어 세상 밖에 나가지 않음. 문을 닫고 밖에 나아가지 않음을 이름.
朝鮮時代(조선시대) 黃喜(황희) 政丞(정승) 杜門不出(두문불출)의 이야기에서는, 지금의 경기도 개풍군 광덕면 光德山(광덕산) 서쪽과 萬壽山(만수산) 남쪽에 위치한 지역으로, 조선 건국을 반대한 高麗(고려)의 신하로 남기를 맹세한 고려의 충신들이 모여 살던 곳이다.
太祖(태조) 李成桂(이성계)가 등극하면서 고려의 신하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科擧場(과거장)을 설치해 주었으나, 그들은 절개를 지키고 과거장에 나가지 않고, 개성의 북쪽 고개 마루에 朝衣(조의)와 朝冠(조관)을 걸어놓고 만수산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이곳에서 세상 밖으로 나가지 않고, 문을 닫고 밖에도 나아가지 않으며 고려에 대한 忠貞(충정)으로 節義(절의)를 지켰다.
그래서 그들이 넘던 고개를 不朝峴(부조현)이며 朝衣冠(조의관)을 걸어 둔 곳을 掛冠峴(괘관현)이며 함께 은둔하였던 곳을 杜門洞(두문동)이라 한다.
절의를 지키는 73명이 모두 두문동에 들어와 마을의 동, 서쪽에 문을 세우고서는 빗장을 걸고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杜門不出 : 두문불출).
이성계는 이들을 끌어내기 위하여 두문동에 불을 질렀으나 단 한 사람 황희만이 나오고 모두 죽음을 맞이하였다.
高麗朝(고려조)에 출사한 황희이지만 그의 인물됨과 창창한 앞날을 생각한 두문동 사람들은, 자네는 백성들을 위해 꼭 필요한 사람이다.
그들은 황희만을 내 보냈다고 한다. 황희는 고려의 절사들의 간곡한 말에 눈물을 흘리며 두문동을 나왔다고 한다.
황희를 뺀 죽은 사람은 72명이 되었고 이때부터 한 곳에 오래 머무르며 문밖출입을 하지 않는 것을 가리켜, 사람들이 두문동에서 나오지 않고 세상에서의 왕래를 끊었다고 한 말이 되었다(杜門不出 : 두문불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