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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 장 꾸르실료 이후
1. 서론
443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그들이 바로 교회의 지체이기 때문에 거룩하게 될 공동소명을 받고 있고 또 거기에 동참하고 있다.”
“교회의 모든 구성원들을 위한 평등성의 원천인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존엄성은 친교와 형제애의 정신을 보증해 주고 북돋아주며, 동시에 평신도의 사도직과 사면의 숨은 활력소가 된다.”
444 친교가 선교의 원천이요. 결실이 될 만큼 친교와 선교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서로 교호작용을 하며 서로를 함축하고 있다. 친교는 선교를 일으키고 선교는 친교 속에서 완성된다. “그리고 교회의 모든 사명은 복음화에 집중되고 복음화 속에서 드러난다.”
445 꾸르실료 운동은 꾸르실료 이후의 조직과 역동적인 과정을 통해 교회의 구성원인 평신도들에게 요구되는 다음과 같은 것을 수행하는데 필요한 수단을 제공해 준다.
- 그들이 지닌 성화의 소명을 완수하고
- 공동체에 참여하며
- 복음을 전하는 일
446 꾸르실료 운동의 방법은 꾸르실료 이후 단계에서 꾸르실료 운동의 궁극적인 목적 즉 “복음을 누룩으로 하여 환경을 발효시킬 핵심적인 크리스찬 그룹을 조성하는 일”을 성취하기 위한 노력을 통해 평신도들이 위에서 서술한 요청을 완수하도록 도와주게 되어 있다.
2. 정의
447 「꾸르실료 이후」는 3박 4일의 꾸르실료에서 시작된 회개와 크리스찬 생활을 강화시키고 도와줌으로써 3박 4일 동안에 일깨워진 개인 및 단체의 활동력이 궁극적으로 교회와 인간 공동체 및 일반 세속사회의 구조 전체를 복음정신으로 발효시키도록 고안된 공동체적 수단들(그룹, 울뜨레야 등)이다.
「꾸르실료 이후」공동체에게 바라는 것은 교회 내에 있는 다른 평신도들에게 기대하는 것과 똑같은 것이다. 즉 그것은 세상 속에 교회를 세우는 것이다.
448 꾸르실료를 받은 후에는 자기를 발전시켜 누룩이 되도록 도와 줄 교회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한 공동체가 꾸르실료 운동의 공동체에 국한되지 않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꾸르실료 이후」가 명백히 교회를 지향하고 누룩이 되는 회개를 지향하는 이상, 「꾸르실료 이후」가 꾸르실리스따에게 그러한 발전을 위한 가장 좋은 수단들을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한 조직화의 최종적인 결실은 교회의 활기찬 구성원이면서 동시에 세상 속에 능동적으로 참여해 있는 평신도 크리스찬이다.
449 꾸르실료 운동이 발전해 나가는 과정에서는 우리가 지금도 알고 있는 기본 요소들 중 「꾸르실료 이후」가 「꾸르실료」나 「꾸르실료 이전」보다 제일 먼저 부닥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이 점에 관하여 창시자들의 경험을 자세히 살펴보아야 한다. 그들의 경험과 그리고 꾸르실료 방법을 실시해 온 다른 모든 사람들의 경험은 세 가지 단계 모두가 함께 작용하는 것이 꾸르실료 운동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효과적이고 타당한 방법이 된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450 「꾸르실료 이후」의 기본적인 구성요소에는 두 가지 측면 즉 개인적인 측면과 공동체적인 측면이 있다. 개인적인 측면이 지닌 기본적인 목적은 더 많이 「알거나」더 많이 「하려고」노력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더 많이 「되려고」노력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사람자체가 자신의 천부적인 재능에 따라 매일같이 그를 둘러싸고 있는 사도직의 기회들과 더불어 하루하루 더욱 더 내적으로 쇄신돼는 것이다.
451 「꾸르실료 이후」의 공동체적 측면은 한 사람의 삶과 성장은 고립된 가운데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정의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질 것을 보증한다. 크리스찬 공동체는 공동체 안에서 세상과 더불어 너그러이 나누는 사랑 속에서 이루어진 특수한 사명수행을 통해 현실성을 지니게 된다.
3. 꾸르실료 이후 : 역동적인 과정
452 꾸르실료 운동에서 전체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꾸르실료 방법으로 하는 모든 것은 「꾸르실료 이후」를 최종 목적으로 하고 있다. 3박 4일의 꾸르실료가 지닌 목적은 사람들을 「꾸르실료 이전」으로부터 「꾸르실료 이후」단계로 인도하는 것이다. 인생만사에 너무나 흔한 일이지만 여기에도 하나의 과정이 있다. 이 단계를 다루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은 어떤 종류의 만병통치약을 제공하려 하지 말고 그 정신과 목적을 설명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결국 성령의 바람은 제가 불고 싶은 대로 불며(요한 3,8) 우리는 그 성령을 어느 분명한 공식으로 속박할 수 없다. 「꾸르실료 이후」는 바로 본질상 하나의 과정을 내포하고 있으므로 그것은 상당히 많은 역동성과 융통성을 가질 필요가 있다.
「꾸르실료 이후」는 주말의 꾸르실료 기간 동안에 시작된 그 과정 즉 회개하고, 참된 크리스찬이 되기 위한 기본적인 것을 생활해 나가는 과정을 계속하도록 되어 있다. 「꾸르실료 이후」의 체제 속에서 주말의 꾸르실료를 체험함으로써 일깨워진 개인 및 그룹의 활동성이 생생하게 유지된다. 그래서 이 개인들과 그룹들이 같이 관여하고 있는 교회와 공동체들은 복음의 정신으로 끊임없이 발효되고 있다.
453 꾸르실료 운동의 목적은 세 가지 주요 과업을 필요로 한다. 그것은 가능성 있는 복음 선교자를 찾아내고 그들이 스스로 회개하도록 인도하고, 그들에게 활력을 주어 세상을 복음화 하는 과업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 세 가지 과업 중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이 마지막 과업이다. 꾸르실료 운동은 처음부터 꾸르실료를 받은 사람들을 위해 하나의 공동체를 제공할 책임을 스스로 져왔다. 그 공동체는 그들이 서로 이해하고 도와주고 자극해 줌으로써 크리스찬 생활을 해 나가면서 계속 성장하고 더욱더 단란함을 누리도록 할 공동체이다. 꾸르실료 운동이 제공하는 특수한 수단들은 – 그룹 재회와 울뜨레야 – 자체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개인적으로든 단체적으로든 오직 사람들에게 봉사하기 위해서 존재한다. 그것들은 그들의 사도적 태도와 활동을 꾸준히 해 나가도록 도와주게 되어있다. 이러한 조직들은 결코 교회의 조직들을 대신하려는 의도가 없었으며, 그것들이 공동체적인 보전을 위해 이용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주장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것들은 교회공동체와 관련하여 볼 때 추가적이고 보충적인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4. 꾸르실료 이후의 목적
454 교회의 사명은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책임이다. “성덕에도 부름을 받은 평신도의 소명은 성령에 따라 사는 그들의 삶이 현세적인 일에의 관여와 지상 동에의 참여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야 한다는 것을 함축하고 있다. 그러므로 성덕은 모든 사람이 교회 안에 있는 구원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한 기본적인 전제이며 필수적인 조건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교회의 거룩함은 사도직 활동과 선교 노력의 감추어진 원천이요 그르침이 없는 척도이다.”
455 그러므로 「꾸르실료 이후」는 꾸르실리스따들이 져야 할 어떤 부가적인 책임이거나 교회가 이미 그들에게 요구하고 있는 것을 초월하는 어떤 것이라는 인상을 주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세례성사로써 그리고 교회이 일원이 됨으로써 받은 임무를 수행할 수 있게 하는 도구요 효과적인 방법이며 – 이미 그들에게 기대하고 있는 것들을 성취케 하는 수단이다.
456 「꾸르실료 이후」는 주말의 꾸르실료 기간 동안에 발견되고 시작되거나 깊어진 그 관계를 더욱 깊이 추구할 기회를 제공한다. 이들 관계는 네 가지 만남 즉 자기 자신·하느님·공동체 및 세상과 만나는 것을 말한다.
꾸르실료 운동의 맥락 속에서 하는 일이 무엇이든 그것은 이들 네 가지 만남을 더욱 강화하게 되어 있다. 주님의 이름으로 교회는 교회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성화될 것과 세상을 복음화 하는 교회의 사명에 참여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신분과 계급의 여하를 막론하고 모든 크리스찬들이 크리스찬 생활의 완성과 사랑의 완덕을 실현하도록 불림을 받았다.”
457 우리 모두가 하나 되어 함께 사는 바로 그 순간에 우리는 모두 교회의 공동사명에 함께 참여하게 될 것이다.
개별적인 사명이 교회의 구성원들을 위한 것이냐, 아니면 교회 밖의 사람들을 위한 것이냐에 따라 가지 각색의 양상을 띠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도직 활동의 형태는 여러 가지 다른 것이 많더라도 교회가 지닌 사명의 기본적인 과업은 언제나 똑같다. 그것은 바로 복음화의 과업이다. 그리고 이 과업은 “복음 선교를 위한 우리의 열성이 진정으로 거룩한 생활 속에서 솟아 나오기를”요구하고 있다.
458 끊임없이 회개하는 태도로 사는 것. 공동체 안에서 사는 것. 복음 선교를 하는 것. 우리의 생활방식을 더 훌륭하게 개선하는 것. 이 모두가 세례성사에 의해 주어진 의무이다. 교회 안에 있는 우리 모두가 이 의무들을 기쁜 마음으로 수행한다면 그 과정에서 우리는 교회가 요구하고 있는 저 새로운 복음화에 참여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것은 너무나 널리 퍼져 있는 하느님에 대한 무관심과 개인적인 차원에서 싸우는 것이며, 종교와 생활사이의 모든 분리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고, 너무나 많은 가톨릭신자들이 교회생활의 활성화에 불참하고 있는 것을 고치기 위해 애쓰는 것이며 교회공동체가 전혀 없는 문화를 가진 민족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459 꾸르실료 운동은 「꾸르실료 이후」에서 이러한 모든 목적을 달성하는데 가장 적절한 수단들을 제공한다. 꾸르실료 운동 전체의 목적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며 복음이 환경 속에 스며들게 하는 것이다.
460 「꾸르실료 이후」의 환경에 관한 취지를 이렇게 이해하는 것은 회개가 결코 끝이 없는 하나의 계속되는 과정이라는 사실과 환경은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이 변화하는 정도에 따라 변화될 수 있다는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다. 좋은 「꾸르실료 이후」프로그램은 꾸르실리스따들이 교회(교회 공동체)안에서 또한 세상(그들의 환경)속에서 그들의 위치를 찾고 받아들이고 책임감 있게 차지하도록 도와준다.
461 「꾸르실료 이후」의 기본목적은 꾸르실료를 생활로 경험한 각 개인의 회개를 새롭게 하고 촉진시키고 완성하는 것이다. 이것은 이러한 사람들이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는 여러 가지 환경 즉 그들의 가정과 이웃, 직장, 클립 및 다른 세속적 주위 환경을 점진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점진적이고 지속적인 어떤 과정에 의하여 이루어지게 되어 있다. 그 목적은 이 환경들을 각각 내부로부터 변화시키는 것이므로 「꾸르실료 이후」는 꾸르실료를 받은 사람들을 위한 새로운 환경이나 사도직을 찾아내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사도적 정신과 태도를 발전시켜 나가도록 도와주고 그들이 이미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을 – 그들의 환경을 – 복음화 하는데 필요한 수단들을 제공하도록 짜여 있다.
462 「꾸르실료 이후」의 목적은 꾸르실료 운동을 꾸르실료를 받은 사람들을 위한 하나의 조직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또한 비록 훌륭하고 보람 있는 일일는지 모르지만 여러 가지 교회사업과 인도주의적인 사업을 위한 일꾼들을 공급하는 것도 그 기능이 아니다. 그 주요 목적은 각 꾸르실리스따들이 교회와 세상 속에서 그들 자신의 독특한 위치를 찾도록 하는 것이며 「꾸르실료 이후」가 그들에게 그들의 환경 속에서 크리스찬 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수단들을 제공하는 것이다.
5. 꾸르실료 이후의 전략
463 “크리스찬이 되기 위한 기본적인 것과 공동체 안에서 삶을 함께 나누는 것으로 꾸르실료 운동이 조직화되지는 않는다. 사명감 있는 크리스찬들에게는 성덕에로 부름을 받은 그들의 소명을 수행하고, 크리스찬적인 우정을 함께 나누거나 「꾸르실료 이후」의 맥락 속에서 복음화 하는 일을 하는데 법적인 계약이 필요 없다. 「꾸르실료 이후」에 중요한 것은 그것이 각자가 받은 은총에 따라 한 사람의 성인이 되고, 사도가 될 잠재력을 충분히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어떤 분위기와 형태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꾸르실리스따들은 각자 하느님이 원하시는 위치에서 자신의 세속적인 사명을 수행하는데 헌신해야 한다.”
6. 꾸르실료 이후의 구조
464 「꾸르실료 이후」의 수단들과 구조는 앞에서 말한 목적을 달성하도록 되어 있다. 이것은 앞에서 말한 「꾸르실료 이후」의 목적에 대한 정의에 맞게 되어 있다. 「꾸르실료 이후」를 「왜」하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것의 체계를 좀 더 자세히 살펴봄으로써 그것을 「어떻게」하는지 연구할 필요가 있다.
465 「꾸르실료 이후」에는 크리스찬생활을 꾸준히 하면서 성장하기 위한 두 가지 기본적인 수단이 있다. 그것은 개인을 위한 「그룹재회」와 공동체를 위한 「울뜨레야」이다. 이 둘 모두 공동체 구조이지만 하나는 주로 개인에게 유익한 것을 지향하고 있고 다른 하나는 공동체 그 자체에 유익한 것을 지향하고 있다. 방법 면에서 볼 때 그것들은 둘 모두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그것들은 우리의 모든 삶을 복음의 빛에 따라 초점을 맞추도록 하고 우리의 삶을 다른 사도들의 삶과 함께 나눌 기회를 갖도록 하는데 중요한 것이다. 고립된 크리스찬은 마비된 크리스찬이다. 다른 그룹들과 연결되어 있지 않은 그들도 역시 이와 마찬가지이다.
7. 그룹재회
정의
466 「그룹재회」의 전체적인 실체를 이루고 있는 두 가지 요소와 관련하여 우리는 이 실체를 이렇게 정의할 수 있다. 「그룹재회」는 친구이며 크리스찬인 사람들 혹은 적어도 그렇게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의 그룹이고, 더 좋은 친구와 더 훌륭한 크리스찬이 되기 위해 함께 모이는 사람들의 그룹이다.
꾸르실료 운동의 목적과 관련하여 우리는 「그룹재회」를 초자연적 영역에 속하는 우정으로 승화시키고, 실제적인 은총들을 성화시켜 주는 상황과 영구적인 통로를 만들어 크리스찬으로서의 기본을 확실하고 계속적이며 점진적으로 살아 나갈 수 있도록 하고, 그것이 파급효과를 일으켜 환경을 역동적으로 복음화하게 하는 것이다.
본질과 목적
467 그룹은 인간이 필요로 한다. 본래 사회적인 인간들은 그들의 상호 완성을 이루기 위해서 언제나 가족, 사회 등과 같은 그룹을 형성해 왔다. 크리스찬생활은 그룹을 필요로 한다. 교회의 본질이 바로 공동체적인 것이다. 다른 모든 구성원들과 긴밀하게 연결되지 않고는 아무도 교회의 구성원이 될 수 없다. 이러한 것의 근원은 인간에서 기원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인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과 「모든 성인의 통공」으로부터 나온다.
468 모든 크리스찬 그룹은 (그리스도의 성사요 표지이며 도구인)작은 교회의 모습을 지니고 있어야 하며, 세계교회를 매일매일 보고 듣는 차원의 교회가 되도록 해야 한다. 근본적으로 그것은 우리에게 인간적인 우정을 지향하는 천성을 이용하여 우선 우리의 형제자매들과 그리스도의 사랑 속에서 (단순히 재회만 하는 것이 아니라) 결합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추상적인 사랑을 볼 수 있고 감지할 수 있으며, 동적인 사랑이 되도록 하는 하나의 실제적인 절차에 불과한 것이다. 이것이 교회가 움직이는 방식이다. 이것은 우리가 구체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규모로 현실화된 크리스찬 신앙의 본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469 주말의 꾸르실료에서 우리는 세상에서 최상의 수준 높은 크리스찬으로 살 수 있는 방법은 우리 각자가 크리스찬으로서 살고 있는 생활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작은 친구들 그룹의 일원이 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므로 꾸르실료를 받은 사람이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은 이러한 친구들의 그룹을 찾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그룹재회”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를 정의해야 한다.
470 재회는 우정을 돈독히 할 수 있다. 「꾸르실료 이후」의 재회 과정이 그룹 속에서 우정을 발견하고, 이루고, 다지고, 깊게 하고, 유지하는 주요 요소라는 것은 확실하다. 「The Structure of Ideas」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모든 생활은 함께 사는 것이다. 함께 사는 것이 아니면 생활이 아니다. 가장 깊이 함께 사는 형태는 우정이다. 은총에 의해 성화되는 수준까지 올라간 우정은 크리스찬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471 꾸르실료를 받는 거의 모든 사람이 꾸르실료라는 신앙 공동체 안에서 회개를 체험한다. 이 같은 공동체의 체험은 하나의 모델이 되거나 모델이 되어야 하며 꾸르실리스따들이 「꾸르실료 이후」에 이것을 이루기 위해 개인적으로 또한 집단적으로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꾸르실료 운동은 이러한 목적에 가장 알맞은 그 자체의 수단들을 꾸르실리스따들에게 제시해야 한다.
472 “「그룹재회」는 다른 사람들과 우정 안에서 크리스찬 생활을 하도록 촉진한다.” 여기에는 각 그룹 회원이 자기의 사도직 의무를 완수하는데 필요한 것들이 포함된다. 「그룹재회」는 이러한 성장과정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룹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변화될 수 있도록 서로 헌신하는 사람들이다. 모든 재회는 일시적으로 잠깐 동안 하는 행사이다. 꾸르실료운동은 이러한 재회들을 하기 위한 우정의 그룹을 조성하거나 형성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주말의 꾸르실료를 영속시켜 그것을 크리스찬으로서의 기본을 살아야 하고 또한 함께 생활에 나가기 위한 영원한 체험으로 만들려고 한다.
8. 그룹재회의 요소
473 우리가 「그룹재회」라고 하는 것은 두 가지 뚜렷한 요소를 지니고 있다. 우선 「그룹」이 있는데 그것은 사람들이 상호 합의에 의해 스스로 구성한 하나의 공동체이다. 그것은 구체적인 것이며 단순히 하나의 형식적인 것이 아닌 그 이상의 것이다.
474 다른 요소는 「재회」인데 그것은 그룹의 구성원들이 한데 모여 그들의 우정을 깊게 하는 순간이나 행위이다. 이것은 잠깐 동안 일시적으로 하는 행사이다.
이러한 요소는 다른 한 가지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을 정도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룹」은 때때로 만나지 않으면 형성될 수도 없고 유지될 수도 없다. 그리고 「그룹」의 모임이 「꾸르실료 이후」에 대한 정의에서 말하는 목적을 달성할 의향이 없다면 「재회」가 될 수 없다.
475 「재회」는 「그룹」이 다음과 같은 것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1) 그 자체로 「그룹」을 형성하도록 하고
2) 계속 하나의 「그룹」이 되도록 하며
3) 사도적 열정으로 충만한 크리스찬 공동체들이 근원이요 씨앗이 되도록 하고 계속 그렇게 되도록 한다.
「그룹재회」라는 하나의 실체 속에 두 가지 요서가 이루는 조화이므로 이 실체가 살아 움직이게 될 때 그 그룹은 크리스찬 공동체의 발생지가 되고 원천이 된다고 할 수 있다.
9. 목적달성 방법
476 「재회」는 「그룹」구성원들이 다음과 같은 것을 통해 크리스찬으로서의 기본을 확실하고 계속적이며 점진적인 방식으로 생활해 나갈 수 있도록 한다.
- 함께 나눔으로써
- 반성해 봄으로써
- 크리스찬으로서의 기본을 그들의 삶 속에서 생활해 나가도록 서로 격려함으로써 그리고
- 서로 이것을 실현하는데 필요한 도움을 줌으로써
477 「그룹재회」는 크리스찬으로서의 기본을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 다음과 같이 보장되도록 하는데 도움을 준다.
1) 진정한 것 사랑과 상호협력은 우리의 크리스찬 신앙을 가장 진정하게 만드는 것이다. “서로 남의 짐을 져 주십시오. 그것이 그리스도의 법을 지키는 것입니다.” 바오로 성인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룹재회에서 꾸르실리스따들은 그들이 부름을 받은 크리스찬으로서의 기본을 살아야 하는 삶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478 2) 계속적인 것 상호 협력할 필요성과 크리스찬으로서의 기본적인 것에 비추어 자신의 생활을 반성하고 진단할 필요성은 이것을 계속적인 관심사가 되도록 한다. 어떤 공식적인 기교를 쓰는 것이 아니라 행위의 저변에 깔려 있는 자세를 발견하고 함께 나눔으로써 자신의 생활을 진단해 보는 것은 그 생활의 방향을 계속 수정해 나가도록 한다. 상호 협력은 우리를 격려해 주고, 모두가 도움의 손길을 뻗치도록 해 준다. “혼자서 애를 쓰는 것보다 둘이서 함께 하는 것이 낫다. 그들의 수고가 좋은 보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넘어지면 일으켜 줄 사람이 있어 좋다. 외톨이는 넘어져도 일으켜 줄 사람이 없어 보기에도 딱하다,”(전도 4,9~10) “의좋은 형제는 요새와 같으나 다투게 되면 그 앙심이 성문 빗장 같아 꺾이지 않는다.”(잠언 18,19)
479 3) 점진적인 것 자신의 인생을 계획하고 그 계획을 서로 나눔으로써 얻는 풍요로움은 그룹재회로 점진적인 성격을 지니도록 한다. 이것은 인생의 모든 영역에서 진실로 통하는 것이며 크리스찬 생활도 예외가 아니다. 반성하고 계획하고 함께 나누는 것은 우리를 더 좋은 사람 – 더 훌륭한 판매원. 더 훌륭한 근로자. 더 훌륭한 제조업 자. 더 훌륭한 크리스찬 – 모든 면에서 더 훌륭한 사람이 되도록 한다.
480 4) 나누는 것 나누는 것은 단순히 서로 얘기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나누는 것은 대화에 참가하고 참여하는 것이며, 자기 자신을 대화의 일부가 되게 하고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주는 것이며, 자신의 영적 물적 재산까지 주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됨됨이와 우리가 가진 것을 서로 나눈다. 진정으로 인간적이고 크리스찬적인 공동체가 있는 곳에는 어디서나 그 구성원들 사이에 영적 및 물적 나눔을 포함한 어떤 발전적인 친교가 되어 있다.
그룹재회의 특성
481 1) 진지성 이것은 엄격하거나 딱딱한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룹재회」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지닌 가치와 유용성을 항상 크리스찬의 개성을 특징 지워 주는 그 자연스러운 기쁨과 더불어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482 2) 성실성 성실성이 없으면 신뢰가 있을 수 없다. 성실성이 부족하면 우정을 돈독하게 하고 발전시켜 나가는데 장애가 된다. 그것은 그룹을 인위적이고 위선적인 것이 되도록 하여 결국 와해시켜 버린다. 성실성의 열매들이 – 신뢰, 정직, 상호 존중 – 가득 차 있어야 한다.
483 3) 분별력 「그룹재회」의 분위기는 항상 친밀하고 신뢰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속사정을 터놓을 수 있는 분위기가 되어야 한다. 모든 모임은 우정과 사랑 및 사도직 열정에 도움이 되는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484 4) 규칙성 정상적으로 1주일에 한 번씩 갖게 되는 모임에 일관성 있게 꾸준히 참석하는 것은 언제나 「그룹」을 안정시켜 주는 요인이 된다. 규칙성은 「그룹」을 유지시키고 그 영성과 우정 어린 분위기를 유지시키기 위해서 절대로 필요한 조건이다.
485 「그룹재회」는 엑스트라로 하는 행사가 아니라 생활 그 자체의 한 가지 형태이다. 그것은 우리가 덤으로 져야 하는 어떤 의무가 아니라 궁극적인 구원을 위한 도움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하나의 방법이 아니라 모든 성인의 통공에 대한 교리를 실제로 구현하는 것이다. 특히 우리가 「그룹재회」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우리의 생활 속에 있는 모든 것에 영적인 차원을 –결국 우리에게 가장 우선적인 것이고 가장 기쁨인 것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이해한다면 모임에 빠지는 것을 정당화할 이유를 찾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다.
10. 순 서
486 그러므로 「그룹재회」는 크리스찬 공동체생활을 시작하게 하고 재확인하게 하며, 회개를 계속하게 하고 환경을 복음으로 발효시키기 위해 꾸르실료운동이 제공하는 하나의 도구라고 할 수 있다.
이를 달성하는 방식은 다음과 같이 발전해 나가게 되어 있다.
- 만남을 통해 관계로
- 관계를 통해 우정으로
- 우정을 통해 하나의 「그룹」을 이루게 되며 그리고
- 「그룹」그 구성원 각자의 성화를 통해 환경을 그리스도화해 나가는 것이다.
487 어느 크리스찬 그룹이든 모든 관계가 인간 대 인간이란 기초위에서 형성되어야지, 함께 하는 어떤 과업을 기초로 하여 형성되어서는 안 된다. 「그룹」은 공통적인 가치관을 갖고 있다. 이 가치관들은 같은 시각에서 즉 회개에 대한 동일한 시각에서 함께 갖고 있는 가치관들이다. 이처럼 공유하는 가치관은 「그룹」의 구성원들을 그들의 신앙 안에서 서로가 동일하고 함께 결합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만들고 –서로의 개성을 언제나 의식하고 존중하는 가운데 하나의 완성체를 형성하도록 한다.
488 우정이 우리를 몇 사람과 결합시킨다면 크리스찬의 가치관은 우리를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마음의 문을 열도록 한다. 그러므로 「그룹」은 친밀하면서도 개방적이고 개인적이면서도 교회적이며 크리스찬 생활의 수용체이면서도 전도체이다. 우정에서 우러나는 나눔 속에서만 근본적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인 어떤 관계, 사람 그 자체에 기초를 둔 어떤 관계가 있을 수 있다. 우정 속에서는 모든 것을 즉 우리의 모든 것, 우리가 하는 모든 것.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나눌 수 있다.
489 이 같은 종류의 나눔 속에서는 부하나 동반자가 없다. 크리스찬이 되기 위한 기본적인 것을 생활하는 모든 사람이 같은 모험 속의 주인공이다. 우정에서 우러나오는 나눔 속에서만 (내게 그것을 강요하기 때문이 아니라 사물의 밑바닥까지 내려가기 때문에) 깊은 나눔이 있을 수 있다. 이 나눔은 신선하고 진심에서 나오는 것이라야 하고 「그룹」의 모든 구성원들이 그것을 기대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자주 규칙적으로 있어야 한다. 친구들이 서로 크리스찬 생활을 함께 나눌 때 이 나눔은 또한 더 훌륭한 크리스찬 생활을 위한 하나의 통로가 되고 자극이 되며 보증이 되기도 한다.
「그룹」의 기초가 되는 이 우정에 비추어 볼 때 우리는 하나의 「그룹」속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들어갈 수 있다거나 어떤 유형의 사람들이 「그룹」에 속할 수 있다고 규정하는 엄격한 규칙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무도 우리에게 친구를 선택해 줄 권리가 없으며, 아무도 우리를 어떤 우정으로부터 떼어 놓거나 강요할 수 없다. 「꾸르실료 그룹」은 언제나 자기가 원하지 않는 사람과 어울리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자기가 원하는 사람과 어울리는 것이다.
이것은 혼성(남자와 여자)「그룹」이 생길 가능성을 낳게 하고 결혼한 부부를 어떻게 처리하며 꾸르실료를 받지 않은 사람이 「그룹」에 참여할 수 있는지 없는지 「그룹」을 지리적·환경적 혹은 직업적인 것을 바탕으로 해서 구성할 것인지 안할 것인지 등에 관한 문제들을 제기하게 된다. 「그룹」들을 위한 수많은 가능성이 순전히 그들 안에서 우정과 크리스찬적 나눔을 할 수 있는 잠재력에서 생겨난다.
490 그룹재회라는 말은 무분별하게 사용하면 혼란과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모임을 가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우정을 바탕으로 한 크리스찬 그룹을 이루는 것이다. 모임은 그 목적을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다. 「그룹 재회」는 사람들이 공동체 정신을 가지고, 함께 나누는 삶에 대해 실존적 필요성을 의식하면서 찾기 위해 모이지 않거나 절실한 크리스찬정신으로 모이지 않는다면 무의미한 모임이 될 것이다. 유효한 요소는 모임이 아니라 「그룹」자체이다. 모든 구성원들이 그들의 세례성사를 철저하게 살아나가려는 열성과 더불어 스스로 개선하려는 소망과 함께 나누려는 그들의 욕구와 함께 모든 차원에서 인간적이고 크리스찬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모든 사람을 포용하는 공동체정신으로 그들을 한데 묶어 주는 모든 인간관계와 더불어 「그룹」은 신심과 사랑과 일치의 표지가 된다.
491 우리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주말의 꾸르실료가 우정을 형성하는데 가장 좋은 상황이기 때문에 그때 그 자리에서 「그룹」형성이 시작되어야 한다고 느끼고 있다. 「그룹 재회」는 꾸르실료가 끝난 후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우선 친구를 찾는다는 기본 목적 때문에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다른 사람들이 울뜨레야에서 서로 만나게 하는데 역점을 두어야 한다. 그리고 누구나 사람들 사이에 우정이 자발적으로 꽃피울 수 있는 분위기와 상황을 조성해 주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꾸르실료 이전」이나 주말의 꾸르실료 중에 혹은 「꾸르실료 이후」어느 때든지 우정을 발견할 수 있고 뿌리를 내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이상적인 것은 어떤 「그룹」의 지원을 받는 사람이 주말의 꾸르실료를 끝마쳤을 때 같은 그 우정의 「그룹」이 그를 영입할 준비를 가주고 기다리고 있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기존의 친구 그룹이 없는 상황에서는 「그룹」을 형성하게 해 줄 분위기를 조성해야 하고 계획을 세워야 한다. 그러므로 돌아갈 기존 「그룹」이 없는 새 꾸르실리스따들을 울뜨레야에 참석하도록 해서 친구를 찾고 어떤 「그룹」의 일원이 되게 해 주어야 한다.
492 모든 종류의 생명에는 필연적으로 성장이 수반된다. 마찬가지로 성장은 「재회」에 절대로 필요한 양상임에 틀림없다. 이 성장은 무엇보다도 우선 은총으로부터 오지만 그러나 반성과 계획 및 사명을 함께 나누는 데서도 온다. 「재회」의 과정은 「그룹」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더 좋은 친구, 더 좋은 크리스찬, 더 좋은 부모, 배우자, 노동자 및 시민이 되도록 도와준다.
「그룹 재회」는 꾸르실료 운동에 특유한 특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 의도는 사람들을 꾸르실료 생활방식대로만 살도록 하려는 것이 아니다. 「재회」는 크리스찬이 됨으로써 궁극적인 구원을 얻기 위해 이용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도구들 중의 하나이며, 교회의 공동체생활을 시작하고 설계하기 위한 하나의 효과적인 수단이 될 뿐이다. 「그룹 재회」에는 특유한 순서가 있으며 “실천표”와 “재회의 순서”를 활용한다. 그러나 이 형식이 의도하는 바는 어떤 일정한 형태의 크리스찬 생활을 하도록 유도하려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와 교회내의 다른 기성 그룹들을 보충해 줌으로써 정당한 형태의 크리스찬 공동체가 된다.
493 꾸르실료 운동의 목표는 「그룹」의 구성원들이 그들의 삶을 우정 속에서 서로 나누며 사는 생활방식의 결과로써 달성된다. 오직 이러한 나눔을 통해서 그들 각자는 자기가 되고 싶은 사람이 될 자유를 얻는다. 깊은 나눔이 자주 그리고 성심성의껏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은 일정하고 분명한 간격을 두고 이루어져야 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그룹」의 구성원들이 그들의 생활 속에 그것을 어떤 견실한 힘으로 의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각자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그들의 크리스찬 생활을 위한 어떤 지침과 동기를 얻어야한다. 그리고 그들 각자가 이러한 크리스찬 공동체에 참여함으로써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그들도 역시 그리스도 안에서 살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줄 수 있어야 한다.
494 「그룹」은 소규모를 유지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것이 친밀해지도록 하는 우정에 바탕을 둘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 친밀함은 「그룹」의 모든 구성원들이 계속적인 「재회」에 의해서 풍요로워지고 「재회」를 할 때마다 더 깊어질 것이다.
495 「그룹재회」는 기법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그 효과가 감소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각 구성원들이 개인적 및 사도적 생활에서 하고 있는 것을 나누는 것이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그룹」은 본질적인 것에 –영적생활과 공부 및 「그룹」의 구성원들이 특히 그들의 여러 가지 환경과 관련하여 하는 활동 속에서 기본적으로 하고 있는 것을 나누는데 집중해야 한다.
496 「재회」를 하는 방법에 관해서 언제나 새로운 형식이나 기법을 찾고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그것의 정신과 의도를 더욱 분명하게 이해하고 해석하는데 우선 관심을 가져야 한다. “진정한 「그룹재회」는 세 가지 기본적인 차원, 즉 영적생활과 증대된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 및 사회의 구조 속에 크리스찬 정신을 통합시키는 것 등에 대한 나눔이 포함된 것이다.”(제1차 라틴아메리카대회)
11. 교회공동체로서의 그룹
497 꾸르실료 운동에서 「그룹재회」는 그것이 조금이라도 교회를 건설하고 크리스찬 공동체 속에 교회를 견고케 한다면 정통성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룹」들은 진실로 교회와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성직자와의 일치, 말씀에 대한 사랑, 성체에 대한 신심을 통해 그들은 교회의 볼 수 있는 표지가 되어야 한다. 모든 꾸르실료가 말하자면 크리스찬 공동체의 씨가 될 수 있는 여러 가지 「그룹」을 만들어 내는데 성공하고 있다면 꾸르실료 운동은 교회를 세우는 그 목적을 달성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꾸르실료 「그룹」은 단순히 공동체의 선봉이 아닌 그 이상의 것이 되어야 한다. 그것은 자연히 진정한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12. 울뜨레야
정 의
498 울뜨레야는 꾸르실료 공동체의 모임이며 재회를 통해 그 자신을 공동체로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그것은 계속 회개하는 태도를 가지고 하나의 주님, 하나의 신앙, 하나의 세례성사로 결합되어 있음을 느끼며, 따라서 그들의 삶을 나누기 위해 함께 모일 필요성을 느끼는 사람들의 공동체이다. 이런 방법을 통해 그들은 그들의 결의와 능력을 서로 강화해 줌으로써 크리스찬으로서의 기본을 살아야 하고, 각자의 소명에 따라 자기가 살아야 할 장소와 방법을 매우 구체적인 조건 속에서 찾는다.
499 울뜨레야는 얼마든지 다른 우정의 「그룹」들이 한데 모여 하나의 공동체를 이룰 수 있는 공동체이며, 얼마든지 새로운 회원을 끌어들일 수 있고 또 기꺼이 끌어들여 그 공동체의 생기와 화해를 유지시키는 공동체이다. 그것은 모든 「그룹」들의 합동 「재회」와 같은 것이다.
500 울뜨레야는 「그룹」들에 박차를 가하여 그들의 여러 가지 환경을 복음화 하도록 한다. 반면에 각 그룹은 그것에 속해 있는 개인들에게 박차를 가한다. 울뜨레야와 「그룹재회」는 둘 모두 세상을 복음화 하는 일을 할 계기를 부여한다. 「그룹」은 성장 발전과 공동체에 대한 개인의 기본적인 욕구를 만족시키며, 울뜨레야는 공동체 발전에 기여한다. 그것이 세상 안에 있는 교회이기 때문에 그 공동체는 한층 더 차원 높은 것으로 계속 성장 발전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개인을 위해서는 「그룹재회」가 더 중요한 프로그램이다. 반면에 울뜨레야는 대체로 공동체를 위해 더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둘 모두 세상의 환경을 복음화 하는 일을 계속하는데 필요한 것이다.
501 울뜨레야는 크리스찬들 자신이 크리스찬생활을 꾸준하고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미치도록 하기 위한 하나의 조직화된 지원 수단과 같은 역할을 한다. 울뜨레야는 그룹들 내부에서 교회자체에 대한 자각을 하도록 만들고, 환경 사도직의 필요성에 대한 그들의 시각을 제시해 준다. 울뜨레야는 그들이 크리스찬으로 계속해서 양성되도록 하는데 기여한다. 그러므로 울뜨레야는 비록 그것이 꾸르실료 운동의 한 가지 기능이기는 하지만 사람들을 꾸르실료운동 그 자체 쪽으로 끌어당기기보다는 교회와 세상 쪽으로 끌어당겨야 한다.
목 적
502 울뜨레야의 목적은 꾸르실료운동 전체 목적과 관련지어서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그 목적은 복음 전파자들의 그룹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 그 그룹들은 크리스찬으로서의 기본을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 나갈 수 있는 사람들로 구성된다.
503 이것을 염두에 두고 우리는 울뜨레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울뜨랴야는
a) 나눔을 위한 분위기를 조성함으로써 크리스찬으로서의 기본을 살아야 하고 나누는 것을 촉진한다. 개인을 위해서는 「재회 모임」이 있고 공동체 전체를 위해서는 담화 자들이 하는 증언이 있다.
b) 모든 참석자들이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세상을 사랑한 자신의 생생한 체험을 증언할 수 있는 열성적인 분위기를 조성한다.
c) 참석자들에게 영적지도를 받을 기회를 주고 임원들이 그들에게 개인적인 도움을 주며, 그들 각자가 다른 사람들의 증언에서 들은 것을 그들 자신의 생활 속에 반영시킬 것을 요구하고, 그들 각자의 소명을 분간하도록 도와줌으로써 그들의 계속적인 회개를 촉진시킨다. 그리고
d) 다음과 같이 함으로써 환경을 복음화할 수 있도록 한다.
- 증거하는 공동체가 됨으로써
- 우정의 그룹을 형성하고 육성하며 개인 및 공동체적 복음화를 권장하는 개인적인 접촉을 마련함으로써
- 성덕과 회심(METANOIA). 화해, 크리스찬 공동체, 사명의식 등을 증진시킴으로써
사 명
504 울뜨레야의 환경 복음화에 대한 관계는 육체에 대한 심장의 관계와 같다. 심장은 피를 모으고, 맑게 하고, 산소를 공급함으로써 생명을 준다. 심장 그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육체 곳곳에 건전한 피를 바로 순환시킬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울뜨레야의 진정한 사명은 그 행사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가족 모든 환경과 모든 사회구조를 하나의 작은 울뜨레야 즉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공동체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505 그룹재회에 들어맞는 것은 울뜨레야에도 들어맞는다는 것이 주목할 만하다. 즉 울뜨레야가 생명력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양분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울뜨레야를 교회의 사도적 분위기 속에서 하는 것이다.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언제나 그 울뜨레야는 자체 속에 폐쇄되고 사도적 목적이 전혀 없는 공동체인 하나의 게토로 변해 버릴 위험이 있다.
울뜨레야와 성체성사
506 성체성사는 모든 복음전파와 모든 공동체의 근원이요 정점이며 꾸르실료운동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므로 크리스찬들이 미사에 참석할 때마다 성체성사의 신비에 더욱 충분히 또한 더욱 깊이 들어가도록 고취하는 것이 바로 울뜨레야의 진수이다. 그러나 이것이 울뜨레야 때마다 성체성사가 반드시 집전되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울뜨레야와 하느님의 말씀
507 주님은 성서를 통해 당신 자신이 알려지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울뜨레야는 크리스찬들에게 성서가 그들의 삶과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 깊이 이해해 나갈 기회를 주어야 한다.
방 법
508 울뜨레야에 절대 필요한 어떤 구체적인 방법은 없다.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이든 사람들을 주말의 꾸르실료에서 불이 붙은 그 정신 속에서 살고, 나누고, 성장하도록 하는 것이다.
509 울뜨레야를 위해 정해진 형식은 없지만 다음과 같은 순서로 진행하는 것이 유익하다고 알려져 있다.
- 재회모임(팀회합~역자 註)
- 증거하는 담화
- 담화에 대한 의견 제시
- 담화의 영적 내용에 대한 해명과 요약
- 기도
510 울뜨레야는 1주일 단위로 개회하는 것이 이상적일 것이다. 그러나 지방의 사정에 따라 얼마나 자주 개최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은 각 사무국의 책임이다.
511 담화를 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그리스도 및 다른 사람들과 일치하여 성장했음을 보여 주는 생활체험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경청하는 사람 모두가 격려 받는 기분을 느끼게 될 것이다. 꾸르실리스따들은 여러 가지 많은 증언을 들음으로써 크리스찬으로서 성장하고 활동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광범위한 것들을 전달받게 된다. 담화 자는 여러 가지 환경 속 – 그 사람의 가족, 이웃, 직장, 교우관계 등등 에서 크리스찬으로서의 기본을 살아 나가는 방법에 대한 구체적인 실례를 제시해야 한다.
13. 꾸르실료이후의 임원
512 복음 전파자 양성이 꾸르실료운동의 주요 과업이라면 「꾸르실료이전」이나 「꾸르실료」에서 보다도 「꾸르실료이후」에 훨씬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 사리에 맞는다.
513 주말의 꾸르실료를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하나의 팀인 것과 마찬가지로 「꾸르실료이후」를 가능하게 만드는 것도 역시 하나의 팀이다. 「꾸르실료이후」에 지도자들의 당면 목표를 새 꾸르실리스따들이 그들이 참여할 수 있는 친구들의 그룹을 찾아 크리스찬 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 있도록 하는 동기를 주고 도움을 주는 것이다. 이러한 공동체에 참여함으로써 그들은 그들의 생활환경에 대한 사도적 책임을 질 수 있을 것이다.
514 「꾸르실료이후」의 지도자가 할 두 가지 역할은
a) 개인적으로는 각 꾸르실리스따들과의 개인적인 접촉을 하는 것이고
b) 팀의 일원으로서는 학교와 울뜨레야에 참여하는 것이다.
515 가만히 있지 못하는 복음정신으로 활기를 얻고 그리스도의 사랑에 의해 재촉을 받으며, 성령을 향해 마음을 열어놓고 있는 지도자들은 교회의 사명과 일치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들은 각자 자기의 생활환경 속에서 복음 선교를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알아보려 하고 실천해 보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그들은 더욱더 그리스도를 따르게 되려고 노력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도 역시 그리스도의 모습이 형성될 수 있도록 한다.
꾸르실료이후의 삶은 하느님과 우정을 나누고 형제자매들과 우정을 나누는 삶을 사는 것이다. 강렬한 꾸르실료체험은 체험 그 자체를 목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것은 우리에게 교회가 되는 법, 영적이고 인격적인 공동체가 되는 법을 가르쳐 주는 하나의 방법이다. 꾸르실료운동에서는 교회를 언제나 새로운 그리고 역동적인 실체라고 설명한다.
516 종교적 체험은 철저히 개인적인 것이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그러한 체험으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다. 또 임원들의 중요한 역할 중의 하나는 개인적인 대화를 기꺼이 하고 꾸르실리스따들과 어울려 서로 영향을 주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꾸르실리스따들 역시 쇄신을 위한 누룩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한다.
이러한 대화는 어떤 도덕적인 차원에서 개인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려는 것이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것은 효과적이고 알맞은 수준의 대화를 통해 그 사람의 인생을 위한 그리스도교 신앙의 틀을 잡아 주려는 것이다. 이것은 단 한 번만 하는 주말의 꾸르실료보다도 달성하는데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517 봉사임원들과 꾸르실리스따들 사이의 이 같은 대화와 상호작용은 우정과 성실성에 기초를 둔 개인적인 접촉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 봉사임원들은 꾸르실리스따와 친구 관계를 만들기 위해 마음을 열어 놓고 있으며,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어떤 사람의 영적 상태를 알아보려고 애쓰지는 않는다. 참다운 우정은 진실로 마음을 터놓는 대화로 통하는 유일한 것이다. 기법은 기회, 친절, 재치, 사도적 정신이 복합된 것이다. 봉사임원은 모든 사람과 친구가 됨으로써 각자가 다른 모든 사람들과 친구가 되고, 그들 모두가 주님과 벗이 되도록 한다. 어떤 것을 말할 때 실제로 무슨 말을 하든 그 내용보다는 그것을 말하는 사람이나 말하는 방법이 듣는 사람에게 더 큰 감명을 준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518 크리스찬의 공동사면을 위해 봉사정신으로 서로 서로 헌신한 봉사임원들이 「꾸르실료이후」의 방법을 충분히 이해하고 실천하게 될 때 꾸르실료운동은 복음전파를 위한 강력한 도구가 된다.
꾸르실료운동에 대한 진정한 이해는 주님을 그 사람 자신과 그리고 함께 살며, 함께 일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생활의 중심이 되도록 하는 결의와 헌신적인 정신이 생겨나게 한다. 우선 맨 먼저 복음화 되어야 하는 것은 사람들 개개인이다. 사회적인 조직과 구조는 그 자체로서는 생명이 없다.
「꾸르실료이후」프로그램에서 임원들이 할 역할은 그룹재회와 울뜨레야를 활성화시키는 깃이며 또한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우정을 돈독하게 하는 것이다.
519 울뜨레야의 성공은 거기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의 나눔과 증거에 달려 있을 뿐만 아니라 울뜨레야 임원들의 태도에도 달려있다. 그들은 주말의 꾸르실료에서 하는 것처럼 순수하고 겸손한 자세로 모든 사람에게 봉사해야 하고, 개인적은 관심을 가져 주며 사랑으로 이루어진 복음을 전파하는 공동체를 조성하고 유지시키기 위해 협력해야 한다.
520 임원들은 울뜨레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연대성과 사도직 활동을 증진시키기 위해 그들은
- 모든 사람이 서로 나누도록 함으로써 나눔의 정신과 분위기를 조성한다.
- 꾸르실료 동기생들 사이에 개인적인 접촉이 이루어지도록 하고 새 꾸르실리스따들이 따뜻한 환영을 받도록 보장함으로써 아무도 이방인 같은 느낌을 받지 않도록 한다.
- 아직 들어갈 만한 그룹을 갖지 못한 사람들에게 자극을 줌으로써 압력을 받는다는 느낌을 전혀 받지 않고 그들이 들어갈 수 있는 그룹을 찾도록 한다.
- 이미 그룹 활동을 시작한 사람들을 격려하여 그들의 우정을 끈기 있게 유지해 나가도록 한다.
- 울뜨레야 중에 하는 개인적인 접촉을 울뜨레야 밖에서도 계속할 것을, 특히 소외되고 불안감을 느끼거나 불만을 품고 있는 사람들과 접촉할 것을 확약한다.
- 모든 상황에서 은총에 의해 부여된 솔선할 책임을 받아들인다.
- 모든 사람의 종으로 활동함으로써 하느님의 은총을 기쁘게 전한다.
521 지도자들은 각 울뜨레야의 정신과 분위기를 될 수 있는 대로 최고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그들의 타고난 재능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그들의 역할은 가루반죽의 누룩이 되는 것이다. 모든 그룹재회 모임은 봉사임원들이 갖는 관심 여하에 따라 성패가 달려있다. 또 모든 구성원들은 봉사임원과의 개인적인 접촉으로 힘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임원들은 참석자들을 돕기 위해 함께 활동함으로써 꾸르실료 일을 계속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의 환경과 그룹재회에도 유익하도록 해야 한다.
14. 결 론
522 중요한 것은 꾸르실료운동을 꾸준히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굳건하게 세우고 더 좋은 세상을 건설하기 위해서 진정한 크리스찬 생활을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꾸르실료를 받은 많은 사람들이 지금 「꾸르실료이후」의 특수한 방법들을 활용하지 않고 있지만 진정한 크리스찬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리스찬으로서의 기본을 살아나가는 사람들에 의해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이 「꾸르실료이후」의 명백한 목적이므로 꾸르실료운동은 신앙생활을 꾸준히 하게하고 신앙 속에 성숙하게 하는 특수한 방법들을 꾸르실료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하나의 탁월하고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 장려한다.
523 “크리스찬으로서의 기본을 살아야 하고 나누는 것”이라는 꾸르실료운동에 대한 정의는 주말의 꾸르실료 3박 4일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 「꾸르실료이후」에 적용되는 것이다. 「꾸르실료이후」의 생활은 영구히 크리스찬으로서의 기본을 살아야 하는 것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꾸르실료이후」프로그램은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524 그러나 이 크리스찬 생활과 나눔은 그 자체만을 위해서나 개인적인 성덕에 제한시켜 추구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역동적인 사회전체의 그리스도 화를 목표로 추구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꾸르실료이후」가 환경 속에 복음이 배어들게 하려면 그것은 크리스찬으로서의 기본을 살아야 하고 나누는 것이어야 한다.
525 「꾸르실료이후」는 교회가 평신도들에게 갖고 있는 기대를 충족시킨다. 평신도들은 그들의 특수한 소명과 사명을 깨달아 수행하기 위해서 교회의 구성원이 되는 것과 세상의 시민이 되는 것이 서로 조화를 이루도록 해야 한다.
526 크리스찬 생활은 평행선을 긋는 두 가지 삶
- 하나는 “영성적인 생활”이라는 것으로 그 자체의 가치관과 요구조건을 갖고 있는 것.
- 다른 하나는 “세속적인 생활”이란 이름으로 통하며 가정생활, 직업, 사회적 관계, 정치적·문화적 사업 등을 포함하는 것으로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 이 두 가지를 하나가 되도록 하여 생활 속의 신앙, 신앙 속의 생활이 되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