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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거산(579m)은 천안에서 두 번째 높은 산으로 위례산과 태조산, 흑성산을 이어주고 있어 어느 쪽에서든 진입이 용이하다.
성거산 역시 태조산과 마찬가지로 고려 태조 왕건의 전설이 전해온다.
오색이 맑고 아름다워 ‘성거산(聖居 성인이 산다)’이라 명했다고 한다.
들머리는 성불사를 택했다.
이는 지난 ☞ '흑성산-독립기념관’ 산행 때 각원사를 들머리로 했기 때문에 지난 산행과 연계하면 호서정맥을 나누어 걷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성불사는 고려 초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창건하였다고 전하나 태조산 주변의 다른 사찰과 함께 이미 고려시대에 세워져 조선 초기까지 맥이 이어져온 것으로
짐작된다.
성불사 대웅전엔 본존불이 없이 창만 휑하니 뚫려있다.
이는 창밖에 마애 석가삼존불과 16나한상, 그리고 희미한 불상들이 있기 때문이다.
만일사 또한 성불사와 창건연대가 비슷해 보이며, 아담하지만 고찰의 품격이 느껴진다.
창건당시에는 萬日寺(만일사)라 불렀으나 오늘날 晩日寺로 바뀌었다.
만일사엔 오층석탑, 마애불 등 문화재가 있고, 또 산자락에는 고려시대 이전에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천흥사 터가 있으며 거기에 오층석탑과 당간지주
두 점의 보물이 있다.
두 문화재가 서로 300m 떨어져 있어 당시 사찰의 규모가 매우 컸음을 짐작케 해 준다.
성거산 정상엔 군사기지가 세워져있어 정상을 대신한 인근 봉우리에 정상석이 세워져 있다.
가파른 비탈을 내려가면 굴향골(구량골)을 만난다..
높은 기온 오랜 가뭄으로 구량골 골짜기 상류에는 수량이 적다.
포장임도를 만나고 천흥저수지에 도착하니 내리쬐는 햇볕이 강렬하다.
산행은 여기서 끝내야 했으나 준비부족으로 성거초교까지 아스팔트를 걸어갔으니 회원들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후미팀은 천흥2리에서 차량탑승)
◇ 날머리 천흥저수지 (천안시 서북구 성거읍 천흥리 산 31-2)
GPX
산행거리와 소요시간은 천흥저수지에서 마감을 했다면 30여분 단축이 됐을 터이고,거리도 10km남짓 됐을 것.
고도표
성거산 흑성산 지도
'ㅏ'자 갈림길에서 우측 성불사 방향으로 튼다.. 직진은 각원사 방향.
에구~ 버스는 여기까지네. 2차선 도로가 끝나면서 좁은 도로가 나타났으니...
일단 차에서 내렸다. 좌측으로 'e편한세상' 아파트가 보이고...
땡볕에 아무래도 4~500m는 걸어야만 할 것같다.
방범카메라 설치중이라는 바리케이트를 넘으니...
태조산성불사 일주문이 나온다.
일주문 앞엔 대형 버스를 돌릴 수 있는 공간이 있어 여기까지 버스가 올라올 수 있을 것.
일주문 편액은 천안을 기반으로 활약 중인 서예가 취묵헌(醉墨軒) 인영선(印永宣 1947~)이 썼다
일주문을 지나 오르막길을 오르니...
어라~~ 회차할 충분한 공간에 사찰 소유위 대형버스가 주차해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대형버스가 여기까지 올라올 수 있다는 이야기.
좌측 계단식 석축위로 범상치 않은 느티나무가 보인다.
수령이 800년 된다는 느티나무다.
곡각지점을 휘어도니 곡각지점 너른 공간 우측으로 주능선으로 붙는 산길(↑)이 숲속에 숨어 있다.
경내로 들어가면 보이는...
비석 3기는 '태조산성불사중건기념비'와 '태조산성불사대웅전단청시주공덕비' 등이다.
공사 중인 대웅전으로 올라...
열린 문을 통해 합장, 대웅전 내부를 담는다.
삼존불 중에서 관음보살과 지장보살 가운데에 본존불이 없고 창문으로 밖이 뚫려있다.
창밖에는 마애석가삼존불이 새겨져 있다.
성불사 뒤편 산자락에 마애 석가삼존불과 16나한상, 그리고 희미하게 보이는 일군의 불입상들로서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69호로 지정되었다.
이 마애상들의 조성 시기는 조각기법이나 신앙적 분위기, 사찰이 소재한 태조산 일대의 역사적 배경, 사찰 창건에 대한 후대의 기록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볼 때 11세기까지 올라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자료>
그 옆에 있는 16나한 주위로 오목하게 홈을 파서 마치 동굴이나 감실에 있는 것처럼 표현하였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형체를 알 수 없음은 물론 지나치기 십상이다.
고려 태조의 명을 받들고 도선국사가 이곳에 왔을 때 불상을 조성하던 백학이 그만 날아가 버려 미완성의 마애불로 남아있다.
그래서 처음엔 成不寺(성불사, 이루지 못함)라 하다가 成佛寺라 바뀌었다고 한다.
안내판
관음전 열린 문으로 합장,
석조보살좌상(문화재자료 제386호)을 배알한다.
이 불상은 조치원 대성천 준설작업 중에 발견된 것으로 1990년에 이곳으로 이관 보존되고 있다고 한다.
광배 윗부분이 깨어져 접착시켰고,오른쪽 무릎도 깨어진 상태이며 전체적으로 훼손이 심하다.
불상의 규모는 높이 67㎝, 어깨 너비 34.5㎝, 무릎 너비 54.5㎝이다.
좌상의 전체적인 형태는 거신 광배(擧身光背)를 갖추고 결가부좌로 앉아 있는 모습으로, 머리에는 관을 쓰고 연꽃 가지를 들고 있어 미륵불 또는 관음보살로
추정된다.
연꽃은 보통 관음이 드는 지물(持物)이지만 고려 시대에는 미륵불의 도상(圖像)으로 유행하기도 했으므로 불상의 정확한 존명은 알 수 없다.<자료>
안내판
계단 아래 주차공간인 곡각지점이 주능선으로 붙는 산길입구(화살표)
숲속에 숨은 산길을 따라...
비스듬히 산사면을 돌아...
지능에 일단 붙는다.
산길은 고속도로 수준의 넓은 길.
이 지점의 이정표
성불사 안내판엔 마애불의 전설과 800년 느티나무의 수령이 성불사의 역사를 말해준다고 한다.
잘 조성된 원목계단을 밟고...
룰루랄라 솔숲길을 걸어...
고도가 평이한 산길.
태조산 안내판엔 산의 모양이 왕(王)자를 닮았대서 왕자산, 또 태조산은 고려왕이 머물렀다고 유려왕산(留麗王山)이라고 했단다.
범상치 않은 바위위를 타고 올라보니...
WOW~ 예가 대머리바위인가?
미옥씨가 손으로 가리키는 곳으로 바라보니...
천안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데크로 돌아와 조금 더 위로 오르니...
사방이 트이면서 남쪽 멀리 고개를 내민 낯익은 봉우리를...
살짝 당겨보니 흑성산이다.
아하~ 요가 대머린갑다. 봉우리 마사토가 희멀건히 벗겨진 것 보니까 대머리가 확실하다.
대머리바위의 트인 조망을 알기쉽게 그려놨다.
왕자산,태조산,성거산 능선의 분기봉으로 정확한 지명유래는 모른다고...성거산까지 4km, 위례산까지 7.4km,서운산까지 10km란다.
지난 흑성산 산행 때 지나갔던 체육시설이 있는 봉우리. 지도에는 대머리봉이라고 나온다. 아마도 대머리바위가 있는 봉우리라고 이름지어진 듯.
이 지점의 이정표
각원사 갈림길을 지나며 각원사 안내판엔 남북통일을 기원하는 동양최대의 아미타불좌상이 있는 절로 불국사 이래로 최대사찰이라고 한다.
각원사갈림길 이정표
길이 넓으니 일행들의 모습이 전시 2열종대의 행군 모습이다.
사각정자가 있는 유왕골.
유왕골 안내판엔 고려태조 왕건이 머무른 골짜기라고 유왕골(留王谷)이라고 한단다.
유왕골의 이정표
상명대학교 갈림길 봉우리에서 식당자리를 잡으려다가 왠놈의 날파리떼가 극성을 부려 이동.
쭉쭉빵빵 편백을 닮은 곧은 소나무들이 운집을 이룬 이 지점이 밥자리를 펼 좋은 위치라서...
의사를 타진하니 OK. 실로 느긋한 식사시간이 즐겁다. 물론 아직 채 해동이 되지않은 생탁까지...
걸마고개엔 계성군과 그의 어머니 숙의하씨의 무덤이 있다.
계성군(桂城君, 1478∼1504)은 조선의 왕자이자 왕족으로 성종의 서자이며 숙의 하씨 소생이다.
이름은 순(恂), 자(字)는 수견(壽堅)이다. 전주 이씨의 시조 이한(李翰)의 27세손이다.
성종의 2남이며 어머니는 숙의 하씨로 영의정 하연(河漣)의 딸이다. 연산군의 이복 동생이자 중종의 이복 형이기도 하다.
다시 쉼터 평상이 있는 잘록한 안부인 만일고개. 성거산을 오르기 위해서는 계단을 밟고 올라야 한다.
만일사를 다녀오자고 하였지만 별로 관심없는 일행들을 뒤로하고 등네미님과 둘이서 만일사 1.0km를 향한다.
만일사 이정표의 1.0km는 일부러 오지마라고 표시해 놓은 것같다.
만일사는 불과 300여m의 거리로 고도차도 그리 나지않아 별로 힘들지 않다. 거기다 중간에 샛길 능선으로 질러 올라오면 거리와 시간은 훨씬 단축이 된다.
만일사 아래의 차량 회차지점(주차장)을 왼쪽으로 내려다 보고 우리는 비스듬히 사면을 돌아...
만일사 진입로로 나왔다.
만일사를 올려다 보며...
우리가 빠져나온 산길을 돌아보니...
성거산정상 푯말이 길을 안내하고 있다.
절마당을 들어서면 만일사(晩日寺)자연 표석과 유형문화재 안내판, 그리고 가람이 배치되어 있다.
만일사에는 관음전(觀音殿)을 비롯해 영산전, 산신각 등이 있고 관음전 뒤 자연동굴 속에는 높이 164cm의 석불좌상이 암벽에 새겨져 있다.
관음전 좌측엔 석굴이, 우측엔 마애불이 있다.
영산전(靈山殿) 앞에는 고려 전기에 세운 것으로 추정되는 5층 석탑이 만일사의 오랜 역사를 말하듯 서있고 백학이 새겼다는 마애불이 법당 뒤 암벽에 있는데...
심하게 닳아 형체는 알아보기 어렵지만 오래 바라보고 있자니 불상 조각의 단순미가 오히려 현대 작품처럼 멋지다.
만일사 마애불도 성불사의 그것처럼 비슷한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마애불을 조각하던 백학(白鶴)이 날(日)이 저물어(저물 晩) 날아가버려 미완성의 마애불상이 되었다지만, 돋을 새김으로 불상을 조각하던 석공이 양각으로
기초만 닦아놓고 그만 운명을 달리하는 바람에 미완의 마애불이 된 것은 아닐까하고 부질없는 생각을 해본다.
안내판
5층석탑(문화재자료)이 내려다 보이는 마애불 앞에서 관음전 앞을 돌아...
열린 법당문에서 합장.
현재의 관음전은 1876년에 지었던 것을 1970년 철거하고 새로 지었으며, 유형문화재 제168호인 '천안 성거산 천성사명 금동보살입상'이 모셔져 있다.
관음상 뒷부분 에‘통화20년 천성사(統和二十年天聖寺)’란 글이 새겨져 있어 고려 목종6년(1002년)에 조성된 불상임을 알 수 있다.
관음보살은 부처님의 자비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보살로 중생이 어려움을 만났을 때 그 이름을 외우기만 하면 중생의 성품에 따라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나서
구제해 준다는 보살이다.
머리에는 화불(化佛)이 있는 보관(寶冠)을 쓰고 얼굴은 미소를 짓고 있다.
가슴에는 목걸이가 가늘게 늘어져 있고, 가슴 아래로 늘어진 법의(法衣)는 발까지 부드럽게 늘어져 있다.
부드러운 몸매에 오른손에는 죽지 않음을 뜻하는 감로수(甘露水) 병을 들었고 왼손에는 보주(寶珠)를 들고 있다.<자료>
만일사 관음전 뒤편 축대 위의 작은 자연 동굴을 찾아 들었다.
석굴 안에 모셔진 '만일사 석불 좌상(晩日寺 石佛 坐像)'은 자연 동굴에 조각되어 있는 석가여래 좌상이다.
동굴 안은 매우 좁아 겨우 예불할 수 있는 정도이며, 천장은 편평하게 되어 있다.
석불 좌상의 불두(佛頭)는 시멘트로 새로 만든 것으로 충청남도 문화재 자료 제256호로 지정되었다.
절문 앞의 안내판
안내판
되돌아 나오면서 만일고개로 리턴하지 않고 중간에서 좌측 능선을 바로 질러 올라 주능에 붙었다.
마사토로 이루어진 산길내내 사금처럼 반짝이는 게 뭔지 궁금하여 작은 조각을 손에 들고 나무 이파리위에 올려봤다. 유리조각은 아닌데...
성거산 정상을 대신하여 마련된 삐딱한 성거산 정상석(556m 지점).
정상석 뒷면의 성거산 유래엔 오색의 구름이 떠있어 신이 계시는 산이라하고, 조선태조 이성계와 세종이 온천갈 때 들러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좌측 내리막을 타고 올라서니 군사시설 철조망이 쳐진 성거산이다.
여기까지 왔다면 길을 놓쳤으므로 빽하여 되돌아 내려가야 한다. 되돌아서서 100여m 돌아 내려서면 풀숲으로 숨어있는...
갈림길을 만난다. 중요지점이다. 오룩스맵에는 이곳을 만일고개라 했는데...
이곳의 이정표엔 만일사와 각원사 안내만이 있다.
그 사이 알바를 한 전영관씨가 돌아 온다. 영관씨 뒤 'Y'로에서 바로 올라가면 성거산 철조망이고, 우측(일행이 있는 방향)으로 가면 위례산이다.
영관씨는 위례산 방향으로 한참이나 알바하고 왔다고 한다.
빨간 화살표 방향이 천흥저수지 성거초교 방향.
처음엔 능선을 이어가는데, 가슴 뻥 뚫리는 조망처를 만난다. 오늘 A코스를 따라나선 총무와 갑석씨, 지팡이를 번쩍 든 향숙씨.
모처럼 모델이 된 박갑석씨.
좌우 산자락 등고선을 따라 삥삥 임도가 뚫려있고, 마주 보이는 골짜기가 우리가 내려설 구량골.
연이어 펼쳐지는 조망.
산하
우리가 내려설 천흥저수지 가 내려다 보이는 전망대.
돌아서 본 성거산의 철조망 쳐진 모습.
천흥저수지와 구량골
임도에 내려선다. 하산길은 빨간 화살표 방향으로 다시 산길을 바꿔탄다.
돌아본 모습.
임도 곡각지점에서...
임도를 벗어난다.
계곡에 내려서자 풀숲에 방치된 '여근바위와 정상 전망대' 이정표가 숨어 있다.
구량골 상류를 따라...
오랜 가뭄으로 겨우 쫄쫄 흐르는 물줄기
두꺼비 등짝을 닮은 두꺼비바위를 지나니...
사방댐 공사 안내판이 서있고...
엄대장 여기서 씻고가자했지만 여긴 너무 멀어서 조금 더 내려가자 하였고...
차량휀스를 넘어...
세멘트 포장도로를 걷는다.
돌아보면 'ㅏ'자 갈림길에 우측으로...
'등산가는 길'과 '사방댐 안내판'이 있다.
'동화마을펜션'을 지나지만 거북바위를 찾아볼 念은 하지 못했고...
계곡 씻을 곳으로 눈길을 돌려보지만 역시 가뭄으로 계곡은 말라있어...
동굴가든을 지나...
천흥저수지 아스팔트 도로에 내려섰다. 버스는 여기까지 올라와 적당한 곳에서 산행마감을 할 수 있었는데...
저수지를 좌측 겨드랑이에 끼고 조금 더 내려오니 '자연보호'표석이 있고 간이화장실이 있는 이 지점(GPX 지도에 주차장 표시)에 버스를 댈 수도 있었는데...
표석이 있는 주차장을 지나면서 보는 천흥저수지.
이제 씻을 기회도 놓쳐버리고 말았다. 버스가 충분히 올라올 수 있으며, 교통도 혼잡하지 않다.
그런 와중에도 '천안천흥사지오층석탑'과 '천안천흥사지당간지주를 찾아간다. 두 문화재는 서로 300m의 거리.
골목안 가까이에 먼저 찾은 당간지주와 오래된 고목.
천안 천흥사지 당간지주는 2단의 기단 위에 두 지주가 동서로 60cm의 간격을 두고 서있다.
당간 지주는 절에서 의식이 있을 때 깃발을 달아두는 장대를 지탱해주는 돌기둥을 말한다.
높이 3m. 보물 제99호. 동서로 마주보는 양 지주의 내측면에는 아무런 조각도 없으나 위의 끝부분에 장방형의 간구가 있는 것이 특이하다.
지금은 비록 당간지주가 남의 집 대문 앞에 서 있지만 보물 제99호답게 높이가 3m나 되는 훤칠한 키에 당당한 모습이다.
안내판
당간지주를 돌아나와 길 건너 오층석탑을 찾아간다.
마을 밖에 홀로 서 있는 석탑이 다소 외로워 보인다.
천안 천흥사지 5층 석탑(사진)은 보물 제354호로 2단의 기단 위에 5층의 탑신, 높이는 527cm, 너비가 180cm의 웅장하면서도 온화한 모습을 지녔다.
1966년 이 석탑을 해체·복원할 때 5층 옥개석을 올려놓아 완전한 형태를 갖추었으나, 현재 기단 일부가 파손되었으며 상륜부는 자연석 하나만 남아 있고
모두 결실된 상태이다.
넓은 지대석 위에 상층기단이 하층기단에 비해 유난히 높은 편이어서 전체적으로 다소 불안정한 비례를 보여준다.
석탑의 외관으로 보아 고려왕조 시작 직후 석탑의 규모가 커지던 당시의 흐름을 잘 보여주고 있다.
안내판
다소 여유가 묻어나던 일행들은 내리쬐는 땡볕에 모두 뿔뿔이 흩어져 갔다.
더위에도 꿋꿋이 견딘 능소화가 나그네를 맞은 바로 코앞에 아스팔트도로가 보이고 성거초교가 있다.
성거초교가 보이는 여긴 '혜원 어린이집.
흩어진 일행들의 전화를 받는다.
'천흥2리'에 후미 일행들이 열여명 모여 있단다.
시원한 그늘막에 쉬고 있으면 버스를 타고 올라 가겠다고 하였다.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
...
산은 날더러 들꽃이 되라 하고
강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산서리 맵차거든 풀 속에 얼굴 묻고
물여울 모질거든 바위 뒤에 붙으라네
...
하늘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고
산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신경림(1936~)의 '목계장터'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