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식
모과 외
어떤 설움이기에 속으로 쌓여서 저리 굳어버린 걸까
세상의 모든 고독을 혼자 앓는 사람처럼 표정마다 눈물이 고여서 만지면 내가 아파온다
설움은 이렇듯 향이 깊고 전염이 빠르다
머리맡에 오래 모셔둔 모과 몇 알의 향이 방안을 가득 채울 때쯤 나는 비로소 병상에서처럼 깨어났지만 다시 눕고 말았다
내 몸이 모과가 되었는지 모과가 나의 설움을 죄다 가져가버렸는지
하루 지나 눈을 떴을 때 모과는 돌처럼 까맣게 굳어서 표정을 잃어버렸다
방안이 통째 모과의 무덤이 되었다
사랑을 잃고 애가 탔다던 한 사내가 떠올랐지만, 그가 나였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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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밤의 별들은 모두 눈물을 흘리지
여름이 오는 건 생이 쓸쓸하기 때문이야
가슴을 부풀려서 별을 노래한들 이승의 감정은 별을 따라갈 수 없지
잠 못 이룰 때 밖으로 나와 봐 밤하늘은 우울의 근본이야
반짝이는 모든 것은 자기의 전부를 불사르기 때문, 얼음 같은 생은 없어
누군가 간절히 자기 노래를 부를 때 그 가슴에는 꼭 구름 같은 허무만 남지
돌이켜서 아픔을 쌓아두는 건 한낮의 별들을 떠올리는 것과 같아
잊어봐
서로가 치명적이라 느껴질 때 진실은 이미 눈물 속에서 꽃을 피우지
여름이 다가오는 것은 설움의 꽃이 문득 우리를 기억하기 때문이야
구름 없는 푸른 하늘을 보고 싶네
그대가 먼저 발길을 돌렸다면 나는 이제 사랑의 그늘을 막 벗어나려 하지
아침이 오듯 고통은 또 나를 찾겠지만 이별의 문장이 흘러가듯 기억의 시간들도 그만큼 빠르게 지나갈 거야
그대로부터 나의 쓸쓸함은 시작되었으므로 여름밤의 별들은 모두 눈물을 흘리지
박노식|2015년 《유심》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고개 숙인 모든 것』, 『시인은 외톨이처럼』, 『마음 밖의 풍경』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