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진연숙
오늘도 꿈을 꾸었다.
여섯 줄로 된 문장들, 1, 2, 3, 4, 5, 6번까지. 빈센트 반 고흐의 일대기를 쓴 글이었다. 글씨라는 형체는 알겠으나, 내용을 읽지는 못했다. 그래도 “이해했다”라고 내 꿈 자아가 말을 한다.
과학적으로는 하룻밤에 5~7회 렘수면에 들고, 그때 눈동자의 움직임과 함께 꿈을 꾼다고 한다. 새벽녘 즈음은 더 선명한 렘수면 주기라서 꿈을 더 기억하기가 쉽다. 꿈은 꿈꾸는 이를 위로하고 성장시키며 건강 상태를 알려주기도 하고, 미래의 희망을 꿈꾸게도 해 준다.
이순신 장군이 꿈속에 망망대해에서 불을 뿜는 거북이를 보고 거북선을 만들었다. 나라를 구한 위대한 창조물의 탄생이다. 비틀스의 폴 매카트니가 부른 <예스터데이>란 노래도 꿈속의 아름다운 선율을 기억하고 만들었고, 20세기 최고의 노래 중 하나로 칭송받고 있다.
그런 꿈은 다행스럽게 영웅들에게만 오는 무의식의 신호가 아니다.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균등함이다. 어쩌면 꿈은 매일 밤 모두에게 러버레터를 보내고 있는데, 그 편지를 뜯어 보지 않고 흘려보내고 있어 안타까운 일일 수도 있겠다. 새벽에 만난 빈센트의 이야기는 내 삶의 발자취에 또 하나의 새로운 시작을 알려준 ‘꿈의 언어’이다.
나는 빈센트를 좋아한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작품은 자신을 대변하는 듯 하다. 빈센트도 어려운 처지에 있음에도, 상처 입고 쓰러져 위기를 맞은 사람을 구하는 인간의 위대한 모습을 그려냈다. 그는 위대한 사랑의 전도사이다. 외로움에 발버둥 치며 그림에 집착한 화가. 고통속에서도 빛이 되고 싶은 희망을 놓지 않고, 결국 모두의 빛으로 짧고 강렬하게 살다간 그를.
며칠 전 용산의 한 호텔에서 빈센트의 모작을 손으로 직접 만지며 감상하는 전시를 보고 왔다. 특이한 점묘법과 화면 위에 튜브째로 짜 바르는 임파스토 기법으로 붓자루로 긁어내는 거친 흔적을 따라 쓰다듬어 봤다. <별이 빛나는 밤에>, <해바라기> 등등. 빈센트는 눈 으로 들어오는 대상을 그리기보다는, 자신 안의 심정과 심리를 그림을 통해 외부 세계로 표출시키면서 이해를 구하는 구도자 같았다. 잠시나마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고독과 희망, 공기를 함께 나눈 시간이었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전시를 보며 느꼈던 손바닥의 감촉이 잊히지 않았다.
꿈은 일상의 감정과 상황을 은유와 상징으로 보여주고, 힘과 용기를 준다. 오늘 새벽 여섯 줄로 남은 그의 일생을 꿈에서 만났다. 여전히 그를 다 알지 못한다. 그러나 조금은 삶의 방식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꿈에서 만난 빈센트는 힘에 부쳐하는 현실을 ‘파이팅!’ 하라며, 지쳐있던 나를 따뜻하게 안아 주고 갔다. 또 휘청이는 발걸음에 삶의 방향성을 되돌아보고 나아가도록 환히 비춰준다. 그의 강렬한 삶, 그 자체가 나에게는 위로다. 빈센트의 별은 나에게 내려와 꿈의 빛으로 빛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