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8년 안젤리타는 세비야에 있는 애덕의 수녀회에 다시 한 번 입회를 신청했고, 여전히 건강이 좋지는 않았지만 허락을 받았다. 애덕의 수녀회 수녀들은 그녀의 건강을 위해 그녀를 쿠엥카(Cuenca)와 발렌시아(Valencia)로 보내기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그녀는 수련기간 중에 다시 애덕의 수녀회를 나와야 했고, 집으로 돌아가 신발가게에서 계속 일을 했다.
토레스 신부는 안젤리타를 위한 하느님의 계획이 따로 있음을 믿고 있었지만 그 계획은 여전히 신비에 싸여 있었다. 안젤리타는 1871년 11월 1일 십자가 아래서 복음 전도자로서 일생을 살겠다는 개인적인 허원을 발했다. 그리고 1873년 환시를 통해 새로운 사명을 시작하라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녀는 기도 중에 예수님이 매달려 있어야 할 자리가 비어 있는 십자가가 똑바로 서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고, 즉시 하느님께서 그 빈 십자가에 자신이 매달리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가난한 이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기 위해 자신 또한 그들과 함께 가난하게 되기를 요구하고 계심을 이해하게 되었다.
안젤리타는 토레스 신부의 뜻에 순명하며 신발가게에서 계속 일하면서 자유 시간에는 상세한 영적 일기를 쓰는데 시간을 쏟아 부었다. 이는 하느님의 부르심대로 장차 그녀가 살아야 할 삶의 방법과 이념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1875년 8월 2일 세 명의 다른 여성들이 안젤리타와 합류했다. 그들은 세비야에 집을 하나 빌려 함께 공동생활을 시작했다.
그날부터 그들은 밤낮으로 가난한 이들을 방문하고 돕기 시작했다. 십자가의 안젤라라는 수도명을 얻은 안젤리타 원장수녀의 지도하에 십자가의 수녀회(the Sisters of the Company of the Cross) 수녀들은 가난한 이들 가운데 있지 않을 때는 확실히 세상을 떠나 관상 생활에 전념했다. 그들은 집에 돌아와서도 기도와 침묵을 엄격히 지켰다. 그러나 그들은 밖으로 나갈 필요성이 있거나 가난하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돌봐야 할 때는 항상 준비가 되어 있었다. 십자가의 안젤라 원장수녀는 다른 수녀들을 가난하고 병든 이들을 돕고 사랑하기 위해 온 천사처럼 보았다.

1877년 두 번째 십자가의 수녀회 공동체가 세비야 주(洲)의 우트레라(Utrera)에 설립되었고, 다음해에 야야몬테(Ayamonte)에도 하나 더 설립되었다. 하지만 그 해에 토레스 신부가 선종하면서 호세 마리아 알바레스(Jose Maira Alvarez) 신부가 수녀회의 두 번째 영적 지도신부로 임명되었다. 십자가의 안젤라 원장수녀가 살아있는 동안 다른 23개의 수녀회 공동체가 설립되었고, 수녀들은 애덕과 가난과 겸손의 모범으로 모든 사람들 돌보고 감화시켜 나갔다. 사실 십자가의 안젤라 수녀는 모든 이들에게 ‘가난한 이들의 어머니’로 알려졌다.
십자가의 안젤라 원장수녀는 1932년 3월 2일 세비야에서 선종하였다. 그녀는 1982년 11월 5일 세비야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복되었고, 2003년 5월 4일 마드리드의 콜론(Colon) 광장에서 100만여 명의 신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다른 네 명의 복자들과 함께 같은 교황에 의해 시성식을 갖고 성인으로 선포되었다. 그녀는 안젤라 데 라 크루스(Angela de la Cruz) 또는 마리아 데 로스 안젤레스 게레로 곤잘레스(Maria de los Angeles Guerrero Gonzzlez)로도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