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 맨홀 뚜껑
임병식
밖으로 나가니 도로 가장자리를 따라 작업자들이 줄지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장마철을 앞두고 배수시설을 점검하는 모양이었다. 가까이 가 보니 일정한 간격으로 놓인 우수 맨홀 뚜껑을 하나씩 열어, 배수구에 엉겨 붙은 낙엽과 비닐, 흙더미를 걷어내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노란 작업복을 입은 인부들이 맨홀 속을 깊숙이 들여다보고 있었다. 뚜껑을 열고 몸을 굽힌 채 막힌 곳을 살피는 모습이 깊은 곳의 막힘을 찾아내는 사람들처럼 신중했다.
작업자들이 건져 올린 낙엽과 비닐, 오물은 어느새 한쪽에 수북이 쌓여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바라보다가 문득 생각했다.
저것들은 어디서 왔을까.
대부분은 누군가 일부러 버린 것이 아니라 바람에 날리고 빗물에 떠밀려 하나둘 모인 것들일 것이다. 처음에는 눈에 띄지 않을 만큼 하찮았던 것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쌓이고 엉키자 마침내 물길을 막는 장애가 된 것이다.
그 모습을 보다가 문득 사람 사는 일도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 사이에도 저마다의 물길이 있다. 생각이 오가고 마음이 통하며 서로를 이해하는 보이지 않는 흐름이다. 그 흐름을 막는 것은 반드시 거창한 악의만은 아니다. 사소한 이기심과 무관심, 작은 불신과 편견도 하나둘 쌓이면 어느새 마음의 물길을 막아 버린다.
어쩌면 사람 사이의 막힘도 맨홀 속의 낙엽과 비닐처럼 어느 날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닐 것이다. 대수롭지 않게 넘긴 한마디, 무심코 외면한 표정, 풀지 않고 묵혀 둔 서운함이 조금씩 쌓인 결과일지 모른다.
그래서 관계에도 때때로 청소가 필요한지 모른다. 마음에 쌓인 것을 털어내고, 막힌 곳을 들여다보고, 다시 물이 흐르게 하는 일이다.
나는 한참 동안 작업자들의 손길을 바라보았다. 그들이 지나간 자리마다 막혔던 물길이 하나씩 열리고 있었다.
문득 사람의 마음에도 이런 손길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누군가의 물길을 막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며 조용히 발걸음을 옮겼다.
(2026)
첫댓글 장마철을 앞두고 흔히 볼 수 있는 '우수관 청소'라는 일상적 소재에서 시작해, 이를 '사람 사이의 소통과 관계'라는 본질적인 주제로 확장해 나가는 흐름이 매우 자연스럽습니다.
물길을 막는 쓰레기가 거창한 오물이 아니라 '바람에 날려 온 하찮은 낙엽과 비닐'이라는 점에 주목한 부분이 인상적입니다. 관계를 망치는 것이 거창한 악의가 아니라 '사소한 이기심과 무관심, 작은 불신'이라는 통찰은 깊은 울림과 자기반성을 주기에 충분합니다.
누군가를 가르치려 들거나 억지로 감동을 쥐어짜지 않습니다. "비닐 한 장과 무엇이 다르겠는가"라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방식을 통해, 자신의 언행을 조용히 돌아보게 만듭니다. 주변의 작은 변화를 놓치지 않는 따뜻한 시선과, 그것을 내면의 성찰로 연결해 내 맑고 묵직한 여운을 남깁니다.^^
빗물이 모이는 맨홀 뚜껑에서 인간관계의 소통과 단절을 포착해 내는 선생님의 통찰력이 정말 놀랍습니다. 글의 흐름이 막힘없이 흘러가는 우수관처럼 매끄럽고 단단해서 읽는 내내 몰입했습니다. 메마른 일상에 맑은 물길을 열어주는 듯한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장마철에 건강 관리 잘하세요.
이 작품으로 사유수필 80편을 묶어내게 되었습니다.
하나의 메시지를 전하는데 주안점을 두었습니다.
애정어린 따뜻한 댓글 고맙습니다.
책 제목은 <일어버린손, 남은 물질>로 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