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종우 야고보 신부님
연중 제 29주간 화요일
루카 12,35-38
언제나 핑계가 준비되어 있지만
+찬미예수님
어린 시절, 아니 어쩌면 성인이 되고 나서도 제가 어머니께 가장 많이 들었던 잔소리는,
“너는 왜 미리미리 준비하지 않느냐”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많은 부모님들이 자녀들에게 공통적으로 하는 잔소리가 바로 이것일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어디를 외출할 때 마다, 혹은 무언가를 시간에 맞춰 할 때마다
어머니에게 이러한 잔소리를 들었습니다.
저는 확실히 부지런한 성격이 아니고 심지어 마감이 코앞에 닥쳐야
능률이 오른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요즘 하루하루도 그렇습니다.
이번 달은 유난히 외부 강의가 많은 날인데 절대 미리 준비를 끝내놓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저의 성격이 우유부단한 것도 아닙니다.
은근히 완벽주의적자인 면모가 있어서 무슨 일을 하던지 대충 끝내는 편도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하루 전날 새벽이 돼서야 가까스로 강의 준비를 하고 몇 시간 자지 못하는
날이 허다합니다. 결국 이러한 제 생활 사이클의 손해는 저에게 온전히 돌아옵니다.
다음 날 말할 수 없이 피곤한 것도 제 손해고 조금 더 준비하지 못해 아쉬운 것도 그렇습니다.
사실 미리미리 준비하기만 하면 전부 해결되는 일인데
매번 같은 일이 반복되니 참으로 난감한 일입니다.
물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미루고 미루는 데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전날 피곤하게 일을 했으니 좀 더 쉬고 싶고, 빡빡하게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합니다.
지금 쉬면 능률이 더 오를 것 같고 아직 준비를 시작하기에는 시간이 충분한 것 같기도 합니다.
소설책을 보거나 인터넷을 하는 사소한 휴식이 강의를 하거나 강론을 하는데
좋은 소재가 될 것 같기도 합니다.
그렇게 이런 저런 핑계를 대다 결국 또 후회하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한 제 모습을 생각해보면 참으로 어리석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하느님 나라를 목적으로 걸어가고 있는 제 삶 역시 혹시라도
이렇게 흘러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긴장 됩니다.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나도 모르게 선행을 미루고 있지는 않은지,
누군가를 마음껏 미워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러다 나중에 후회하게 되지는 않을지 돌아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등불을 켜놓고 주인을 기다리는 종들의 비유를 통해
이러한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끔 하십니다.
이 비유에서 주인은 하느님을, 종들은 우리 그리스도인을 의미합니다.
이 중에서도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주인을 맞이하기 위해 깨어 있는 종은
하느님을 만날 준비가 미리 되어 있는 신앙인을 뜻합니다. 즉, 하느님께 시선을 두고
선을 실천하며 악의 기회를 최대한 줄이고자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반면 깨어있지 않고 잠들어 버린 종은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은 신앙인입니다.
선을 실천하기 보다는 의식의 흐름에 맞추어,
혹은 당장의 감정에 따라 이런저런 자기 정당화와 함께 악을 저지르는 사람입니다.
주인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 종들은 행복한 종들입니다.
그들을 주인이 보게 되면 그만큼 더욱 큰 신뢰와 인정을 받을 것이며
그에 따르는 상급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그 시간이 언제일지 모른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준비를 조금
천천히 해도 될 것 같고 조금 더 쉬면 능률이 더 오를 것 같고.
아직 준비를 시작하기에는 시간이 충분한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주인을 맞이하기 위해 깨어있기만 하면 될 간단한 일을
수행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준비하지 않음으로 인해 벌을 받게 될 이 어리석은 종의 죄목은,
“악행”도 “불신”도 아닙니다. 이 종의 죄목은 다름 아닌 “태만”입니다.
실제로 우리 역시 바쁜 일상생활 안에서, 우리의 주인이신 하느님께 태만하곤 합니다.
기쁠 때보다는 필요에 따라서만 하느님께 기도하게 되고,
사랑과 희생이 필요한 순간에는 나 자신에게만 집중하느라
하느님의 가르침을 떠올리는 일을 잊어버립니다.
이에 여러 가지 핑계가 있을 수 있습니다.
먹고 살기 바빠서, 자녀들을 돌보느라, 저 사람이 잘못해서 등등
우리가 게으를 수 있는 이유는 너무나도 많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핑계는 결코 합리화 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며 그 때가 언제일지는 몰라도
충분히 주어져 있어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복음을 묵상하며 우리도 각자 자신에게 질문을 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과연 하느님 앞에서 나 자신은 얼마나 깨어있습니까?
지금 당장이라도 하느님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그저 막연한 생각으로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용서할 기회를 뒤로 미루고 있지는 않은지요.
언젠가 해결되겠지 생각하며 사랑할 수 있는 많은 기회를 그냥 흘려보내고 있지는 않은지요.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일어나 마음을 다시 잡고 분주하게 움직여야 할 것 같습니다.
분명한 것은, 비록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세상의 주인이신 하느님 앞에 서게 될 날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깨어있었을 때, 하느님께서는 그 사실을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으시고
그에 합당한 은혜를 베푸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있는 종들!
그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 아멘.”
서울대교구 방종우 야고보 신부님
가톨릭사랑방 catholicsb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