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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중이 신뢰하는 설교자
기사승인 2025.01.11 03:34:59
원형수 paul9524@daum.net
“Rainbow 7색에 따른 설교자의 설교 준칙” 제11회
청중이 신뢰하는 설교자
무지개의 여섯 번째 색은 남색(Deep Blue/Navy Blue)입니다.
남색(藍色)은 파란색과 보라색의 중간 색깔로써, 세련되고 지성적이며 권위를 상징하는 색입니다.
물과 하늘의 맑은 이미지를 가진 남색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청량감을 주는데, 젊음, 자연, 신뢰를 상징하는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남색을 대표적인 브랜드 로고로 사용하는 기업은 대우건설과 삼성입니다.
대우건설은 신뢰와 안정과 첨단을, 삼성은 안정감, 신뢰감을 주려는 의도에서 택한 기업의 로고로 익힐 수 있습니다.
저에게 다가온 이미지 역시 신뢰와 안정감이였습니다.
청중이 믿을 수 있는 설교자,
든든한 안정감을 줄 수 있는 목회자가 되라는 이미지로 다가왔습니다. .
저는 어떻게 설교자로서 청중(성도)이 신뢰할 수 있고, 믿을 수 있는 설교자가 될 것인가에 대해 묵상했습니다.
목회자로서 보다, 설교자로서 어떻게 설교를 준비하고, 어떻게 선포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였습니다.
그때 제게 떠 오른 것은 고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청중으로 하여금 귀를 기우리게 하기 위해서는 3가지 설득의 원리가 필요하다”고 한 말이 생각났습니다.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근거를 제시하는 로고스.
상대방의 감정에 호소하는 파토스.
청중이 화자에게 호감을 가지고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에토스가 청중으로 하여금 귀를 기울이게 하고, 설득할 수 있는 원리란 뜻입니다.
설교자 역시, 청중으로 하여금 설교자가 전하는 복음을 수용하고 이에 화답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설득의 세가지 요소’를 담아낼 수 있어야 할 것 아닌가를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내게 부족한 것은 무엇인가를 살폈습니다.
두서없이 적어 봅니다.
1) 로고스(logos)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설득의 3요소’ 중의 첫 번째 원리는 ‘로고스(logos)’입니다. ‘로고스’(logos)란 단어는 논리와 논증을 가리키는데,
본래는 ‘통나무’를 가리키는 ‘log’이란 단어에서 유래했습니다.
‘log’이란 단어는 옛날 고대인들이 종이가 없던 시대에 통나무에 글자를 새겨 넣은 데서 유래하여,
‘log’이란 단어가 ‘로고스’(logos)로 변형이 되어,
상대방에게 명확한 증거를 제공하기 위한 논리,
합리적인 이치에 근거한 논리적 설명,
이성적인 논리로 말하는 것 등을 의미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로고스(logos)란 단어의 의미는 ‘상대방에게 명확한 증거를 제공하기 위한 논리’를 일컫는 말로서, 논리적, 객관적, 분석력, 판단력, 종합비판능력 등을 포함하는 단어입니다.
아리스트텔레스가 설득의 3요소 가운데 ‘로고스’를 가장 처음에 둔 것은
인간이란 이성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무언가를 결정할 때
반드시 논리와 증거를 갖추지 못하면 설득은 애초에 불가능 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라 봅니다.
말에는 질서와 논리가 있어야 하고, 말이 되지 않는 궤변이나, 거짓말이나, 사실을 왜곡하는 비합리적 표현은 궁극적으로 설득에 방해만 될 뿐이라고 본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을 설득하기 위한 논리적인 방법으로 3단 논법을 제시했습니다.
3단 논법(syllogism)이란
잘 알려진 2개의 전제에서 다른 하나의 새로운 판단을 이끌어 내는 추론 방법인데, 두 개의 전제와 하나의 결론,
곧 형식상 3단식1) 으로 이루어졌다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삼단논법은 수세기를 지나는 동안
영국의 베이컨에 의한 ‘귀납법’,
독일의 철학자 헤겔에 의한 ‘변증법’ 등으로 발전 보완되면서,
2,000년 이상 서구 문화권의 사고를 지배해 왔는데 현재 7단 논법까지 발전해왔습니다.2)
2) 파토스(pathos)
두 번째로 설교자가 숙지해야 할 것은 ‘파토스’(pathos)라 봅니다.
‘파토스’(pathos)란
헬라어에서 '고통', '경험'을 뜻하는 말인데,
연민의 정을 느낄 만큼 청중의 감성에 호소하라는 것입니다.
‘파토스’(pathos)는 로고스(logos)와 상반되는 것으로서,
로고스(logos)가 이지적 곧 “이성과 지혜로써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파토스’(pathos)는 ‘감성적’ 곧 “어떠한 자극에 대하여 느낌이 일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아리스토텔레스가 설득의 원리로 제시한 파토스(pathos)란 개념은
감성적접근을 시도하라는 뜻이라 봅니다.
다시 말하면 설득의 내용이 청중의 관계, 청중의 욕구에 공감이 되고 부합이 되도록 청중의 상태를 파악하여 청중의 감정에 호소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파토스가 에토스보다는 그 영향이 낮지만 로고스 보다는 더 중요하여 로고스가 파토스를 이길 수 없다”라고 까지 주장한 것입니다.
인간이란 합리적인 존재라기 보다는 합리화하는 존재로 보고, 감정이 이성보다 강하다고 본 것입니다.
인간이란 입증된 사실보다, 믿고 싶어 하는 사실에 더 이끌린다는 뜻입니다.
이와 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3가지 설득의 원리는 2천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장 중요한 설득의 원리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2020.6.17.일 미래통합당 윤희숙 의원의 국회 5분 발언은
아리스토텔레스 ‘설득의 3요소’를 구체적으로 표현한 사례라는 평가를 받는 명연설이였습니다.
짧은 연설속에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객관적 논리와 근거를 갖춘 로고스(이성).
청중에게 감성과 감동을 자극한 파토스(감성).
말하는 사람에 대한 신뢰를 한껏 높인 에토스(인격)를 모두 갖췄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역사적 인물가운데 사람의 감정을 가장 잘 이용한 웅변가로는 나찌 독일의 히틀러를 꼽습니다.
히틀러는 당시 독일인의 절대적 지지를 받은 탁월한 웅변가였다고 합니다.
본능적으로 대중의 감정을 만질 줄 아는 사람이었다는 뜻입니다.
그는 알아듣기 쉬운 언어를 사용하여 대중의 감정을 부추기고,
그들을 도취 상태로 몰아간 인물이라고 합니다.
예를들면 그의 연설 중에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선전은 누구를 향한 것이어야 하는가? 학식 있는 지성인을 향한 것인가, 아니면 교육수준이 낮은 대중을 향한 것인가? 선전은 영원히 오직 대중을 향한 것이어야 한다. 개개의 선전은 모두 민중적이어야 하며, 그 정신적 수준은 청중 가운데에서 가장 우매한 사람이라도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조정되어야 한다, 선전의 기술은 바로 광범위한 대중의 마음을 얻는 데 있다.”(히틀러의 ‘나의 투쟁’중)
히틀러는 독일 대중의 고민과 아픔을 자극하고 흥분시켜서 불안한 감정에 빠지게 하였고,
그가 정한 공격 대상인 바이마르 공화국 체제나, 유대인을 증오하고, 혐오하도록 만들었든 것입니다. 그의 연설은 직설적이었습니다.
“모든 문제는 저들(바이마르 정권과 유대인) 때문이다!”라고 그의 연설이 고조되면서 히틀러는 투쟁을 선언하고, 자기의 정당성과 도덕성을 나타내고, 적들을 무찔러야 할 필요성을 강조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히틀러는 적들을 비방하고, 공격만 한 것이 아닙니다.
청중에게 더 나은 미래의 희망을 품도록 이끌었다는 평가입니다.
그는 분명 독일 국민을 잘못된 길로 이끌었지만, 당시 독일의 대중은 히틀러의 연설 속에서 희망과 비전을 보고, 흥분하고 열광했든 것입니다.
이처럼 히틀러가 타고난 선동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대중의 감정을 읽고 그 감정을 만질줄 알았기 때문이라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청중 파토스(pathos) 곧 감성적으로 접근한 것입니다.
이에 대해 히틀러의 연설 기법을 연구한 김종영교수는 ‘히틀러의 레토릭’이란 글에서, “히틀러는 당시 총체적 위기의 독일사회를 꿰뚫어 보고,
본능적으로 대중의 동경과 욕구를 파악해 내었을 뿐만 아니라,
이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용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라고 전제한 후,
‘수사학적 관점에서 바라본 히틀러의 연설’은
“히틀러는 연설에서 특별히 감정의 흐름을 주목한다. 그는 자신의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모습을 부각시키고, 아울러 청중의 정념에 호소한다. 말하자면 에토스와 파토스의 조화를 추구하였던 것이다.
그는 사태에 관한 특별한 지식 없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낱말과 표현을 사용하였고, 청중에게 이해를 강요하지 않았으며,
다만 그들이 몰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내기 위하여 무단히 노력하였다.
그의 연설은 대중의 감성을 부추기고 그들의 이성을 마비시켜나간다고 할 수 있다.”3) 라고 평한 것입니다.
이처럼 파토스(pathos)란 감정에 호소하는 것으로서,
상대방의 입장에서 그 사람의 욕구나 정서 등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대화를 이끌어 설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말하는 사람이 그 말을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 그와의 감정을 공유할 때 공감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설교자 역시 이러한 훈련이 매우 중요합니다.
혼자 자신의 감정에 도취되어 열광할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감정이나 욕구와 심리상태 등을 고려하여 함께 공감할 수 있도록 감성에 호소해야 설득에 성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현재 한국교회에서 각광받는 설교자들을 주목해 보면
대부분 논리적인 이성보다는 청중의 감성에 호소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청중의 욕구와 감정 또는 본능과 동떨어진 설득이란 결코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파토스’를 ‘로고스’보다 더 중요한 요소로 여긴 것입니다.
논리적인 설명보다 감정을 자극하는 표현이 더 중요하다고 본 것입니다.
즉 로고스보다는 파토스, 파토스보다는 에토스가 더 중요하다고 본 것입니다.
3) 에토스(Ethos)
청중을 설득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에토스’입니다.
에토스(Ethos, 인격)는 설득하려는 사람의 성품을 포함해서 매력, 진실성, 카리스마 같은 그 사람의 고유한 인물됨을 말하는데.
청중은 기본적으로 화자(話者)의 인격 또는 품성에 호감을 갖지 않으면 결코 설득당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설득의 3대 원리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에토스’인 것입니다.
‘에토스’(Ethos)란 말의 의미는 사람의 성품, 인격, 신뢰, 명성, 전문성 등을 일컫는데, 이러한 것들 외에도 언어적인 것과 비언어적인 것 즉 행동, 외모, 명성, 표정, 제스처 등을 모두 포함하는 단어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설득이 가능하려면
화자는 청중들로부터 호감을 가지고 신뢰할 수 있도록 인격과 품성을 갖추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청중은 ‘화자’ 곧 설교자의 말이나 내용보다는
‘화자’의 행동, 외모, 명성, 표정, 제스처 등에 더 관심을 갖는 것이 혅실입니다.
그러기에 아리스토텔레스는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기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말하는 사람에 대한 신뢰”가 가장 기본이라는 것입니다.
즉 남을 설득하는 기술이란
설득하는 사람의 고유한 성품, 매력, 카리스마, 진실성 등을 의미하며,
이와 같은 기본이 갖추어져야 ‘화자’(설교자)에 대한 신뢰가 형성되어 설득이 가능하다고 본 것입니다.
어느 누구를 불문하고, 청중은 누군가를 좋아하고 신뢰한다면,
그 사람이 비록 설득력이 떨어지고(로고스부족), 예민하게 내 상황을 파악하지 못할지라도(파토스의 부족) 그 사람에게 설득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대체적으로
그 사람의 말이 논리적이고 훌륭해서라기 보다는
그 사람이 좋고, 훌륭하면,
그 사람의 말에 설득 당하는 경우가 다반사인 것입니다.
인간의 본능이란 이성적인 존재이면서도 감정이 앞서는 존재이기에,
말하는 사람의 영향력과 성품이 큰 영향력을 미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사람의 인격을 들어내는 에토스가 설득의 세 가지 요소중에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청중이란 자신이 신뢰하는 사람이 어떤 말을 할 때,
다소 로고스나 파토스가 떨어지더라도 에토스가 충만하면 설득이 된다고 본 것입니다.
똑 같은 말이라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것 또한 우리 모두가 직접 경험하고 있는 사실입니다.
우리 역시 사람의 성품과 평판이 상대방에게 결정적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상대로 하여금 신뢰감을 주고,
그 신뢰감으로 인해 설득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흔히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설교자들은 훌륭한 설교자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설교자의 인격과 품성 및 교양과 삶의 스타일 곧 에토스가 절대적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뜻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세상 사람들로부터 가장 비난받는 이유가
목회자의 불신이란 점에서
이에 대한 각성과 회복없이는 설교의 권위, 교회의 권위는 물론,
설교를 통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를 설파하는 일은 결코 기대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훌륭한 설교자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설교자 자신에 대한 훈련이 필요합니다.
지식을 쌓고 논리력을 키우려 하기 전에 먼저 인간다운 모습을 갖춘 훌륭한 인격을 갖추는 일에 한 순간도 놓쳐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에토스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두말할 것없이 자기성찰입니다.
설교자가 전하는 복음을 자신이 먼저 은혜를 받고 감동이 되어야 남에게 자신있게 전할 수 있으며,
그런 모습이 자신의 모든 행동에서 비추어지고 있기에, 자기성찰과 자기반성이란 설교자의 가장 기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설교자가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사실은
‘에토스’란 앞서 말한바와 같이 인격뿐만 아니라,
언어적인 것과 비언어적인 것까지도 모두 포함한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하면 설교자의 외모라든가, 표정이라든가, 제스쳐는 물론이거니와
설교자의 체형, 자세, 옷차림, 목소리, 단어선택, 시선 등까지도 모두 포함되는 것이 에토스(Ethos)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자신의 외모, 표정, 제스쳐 등은 물론 자세, 옷차림, 목소리, 단어선택, 시선 등에 까지도 호감을 가질 수 있도록 평소부터 훈련을 쌓고 준비해야 하겠지요.
ㅁ불론 이러한 준비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주목하고, 긴 시간을 두고 준비와 훈련을 쌓아야 하겠지요.
평소부터 훈련을 쌓지 않고는 결코 형성될 수 없는 것이 에토스(Ethos)인 것입니다.
이처럼 아리스토텔레스는 설득의 원리 3가지 가운데 무엇보다도 에토스를 가장 높이 평가했습니다.
앞서 언급한 로고스와 파토스보다도 에토스가 보다 더 중요하다고 보고,
심지어 에토스만으로도 충분히 설득이 가능하다고까지 주장한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인간이란 이성적인 존재이기도 하지만, 이보다도 더 감성적이고 충동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화자(話者)를 신뢰해야만 설득이 가능한 것이며,
설득하는 사람의 고유한 성품이나, 매력이나, 카리스마. 진실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행여 굉장히 매력적인 인물이 주장을 하면 그에 대한 반론이 아무리 논리적이거나 심리를 자극하는 것이라도 이길 수 없다는 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설득을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가 에토스(Ethos)이고,
그 다음이 파토스(pathos)이고,
그 세 번째가 로고스(logos)라고 한 것입니다.
이를 100분율로 구분한다면 에토스(Ethos)가 60%이고,
파토스(pathos)는 30%이고,
로고스(logos)는 10%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3가지 설득의 기술은 2천년이 흐르는 동안 지금까지도 가장 권위있는 수사학의 지침서로 인정받고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이처럼 설득력을 높이는데 가장 중요한 에토스는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능력이 있을 때 형성될 수 있습니다.
말과 행동이 다르고,
자신은 못하면서 다른 사람에게만 강요하는 사람을 존경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지행일치(知行一致)가 되는지, 하지 못하는 일을 남에게 강요하고 있지 않은가를 돌아보려는 성찰이 필수적인 것입니다.
결국 성찰은 에토스를 높여주고 사회적 영향력을 강화시키는 훌륭한 공부인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를 설득하려 할 때는 신뢰와 믿음으로 관계를 돈독히 한 다음(에토스), 감정을 헤아려서(파토스), 논리적(로고스)으로 뒷받침 되어야 남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첫인상’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솔로몬 에시(Solomon Asch)는
'첫인상의 초두효과'라는 말을 낳았는데,
사람을 처음 만나 상대를 보고 평가하는 데 2초가 걸리고,
상대방의 행동이나 표정,
옷차림이나 액세서리까지 살펴보고 평가하는 데는 5초,
자기 소개를 곁들인 인사까지 종합해서 스토리로 평가하는 데는 약 20초가 걸린다고 합니다.
즉 사람의 첫인상은 20초 안에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말을 어떻게 어떤 표정으로 시작하느냐가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적절한 씨즐4) 사용은 금상첨화일 것입니다.
또 하나 덧붙인다면
선물은 포장에 달렸고,
음식은 그릇에 달렸고,
설교는 인격에 달렸다는 점, 주목해야 합니다.
즉 선물은 포장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고,
“음식은 깨끗한 그릇에 담아야 맛이 나고,
복음은 설교자의 인격과 품성에 담아 전달되어야 반응이 나타납니다.
할 수만 있다면 설교자는 청중들과 존경과 신뢰가 깨어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설교자의 가장 중요한 철칙이란 점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저의 경험상 이보다 더 중요한 철칙은 없다는 깨달음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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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주
1) 삼단논법의 예: "모든 사람은 죽는다. 어떤 신도 죽지 않는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도 신이 아니다"와 같은 추론
2) 아리스토텔레스의 3단 논법은 서론, 본론, 결론부분 중 본론에서 둘로 나누어, 문제의 원인과 결과를 제시하면서 자신의 의견을 밝히는 4단 논법으로 변형하여 사용하기도 하고, “서론, 본론, 결론”이라는 3단 논법의 기본구조에, 자신의 주장에 대한 반론을 추가하여, “머리말, 진술부, 반론부, 논증부, 맺음말”의 순서로 논증하는 5단 논법, 그리고 이를 다시 여섯 가지로 나누는 6단 논법으로 변형하여 사용되기도 한다.
3) ‘히틀러의 대중연설’ 김종영, 커뮤니케이션북스, 2015.
4) ‘씨즐’이란 앞항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후라이팬으로 고기를 구울 때 지글지글 익는 소리를 뜻하는 의성어로서, 광고 분야에서는 이를 가리켜 “잠재 소비자의 구매 의욕을 돋구기 위해 관능을 자극하는 표현기법”이라고 설명합니다. 예를 들어 식료품 광고 사제품의 각종 모습을 최대한 먹음직스럽고, 싱싱하게 표현하여, 시각과·청각적으로 자극을 주는 것 등을 표현하는 단어인데, 이것은 식품광고 뿐만이 아닙니다. 화장품 광고라든가, 패션광고라든가 모든 분야에서 활용되는 표현 방식을 가리켜 ‘씨즐’(sizzle)이라 하는 것입니다.
원형수 paul952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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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도와주신 분들께 박경옥 전도사가 하루 두번
기도해드리고 있습니다 다 잘되셔야 카페 후원이
되기 때문입니다 중보기도를 원하시면 문자주세요...
먹을것도 없습니다 한 분이라도 도와주셔서...
용기릏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후원이 없다 보니 공과금도 못내고 먹을것도 못삽니다
1만원 이라도 도와주시면 카페지기는 큰힘을 얻습니다
건강문제로 박스나 고물도 줍지 못합니다
앿값이 없는데 먹을것을 사야합니다 오늘은 도와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용기를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먹을것도 못사고 공과금도 밀리고 치료비도 없습니다
공지글에 수급자에서 탈락되는 이유를 올렸습니다
요즘은 건강문제로 병원에 다니고 있어 카페일을 많이 못합니다
지병으로 투병하며 카페일로 소일하며 지냅니다 수입이 전혀 없이 살고 있습니다
예수 코리아 카페를 도와주실분을 기다리고 작정기도합니다 매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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