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봉산 둘레길/靑石 전성훈
예나 지금이나 정겨운 그 모습 그대로 여전한 것은 산뿐만 아니라 하천이나 강도 마찬가지다. 산천을 바라보는 사람의 입장이나 처지에 따라 시선과 생각이 변하면 옛날과 다르게 느낀다. 망국의 한을 품고 잡초가 무성한 개경을 돌며, “오백 년 도읍지를 필마(匹馬)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依舊)하되 인걸은 간데없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라고, 씁쓸한 회고가(懷古歌)를 읊조린 야은 길재(吉再) 선생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반년 만에 아니, 거의 8개월 만에 다시 찾은 도봉산 둘레길이다. 도봉산역에 내려 의정부 호원동 다락원에서 시작하여 도봉 옛길을 통하여 무수골을 지나 정의공주묘까지 7km 가량 되어 두 시간 조금 더 걸리는 여정이다. 계절이 4월의 끝자락인 탓에, 찾아온 봄을 반기며 온갖 아름다운 자태를 보여주었던 그 많던 봄꽃들은 어디로 갔는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하늘에서 녹색 물감이 쏟아졌는지 숲은 온통 연둣빛 세계이다. 떠날 준비를 하는 늦봄이 조금 더 화려하게 치장을 하고 농염한 모습을 띠면 숲도 덩달아 짙은 녹음에 빠지게 된다. 이렇듯 자연은 계절의 변화에 따라 그 모습이 바뀌면서도 바뀌지 않은 듯 말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숲에는 거의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주말에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에 따라 모처럼 평일 오후에 둘레길을 찾았더니 인적이 드문 것 같다. 어쩌다 한두 사람이 지나가면 반가워 먼저 인사를 건넨다. 30분 이상 걸으며 도봉산 산악구조대 본부 건물로 내려오니 사람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대부분 나이가 지긋하다. 평일에 둘레길이나 산을 찾는 젊은이가 보이면 왜 지금 이 시각 여기에 있을까?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주위 경치를 구경하며 천천히 걸어 천년 고찰 도봉사 부근에 이르니 어디선가 자연의 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텃밭을 가꾸는 이가 보이길래 흙에 영양분을 주려고 부식토를 뿌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옛날 같았으면 아침부터 지게에 귀한 거름을 가득 지어다가 부리는 모습을 자주 봤는데 이제는 그야말로 ‘아, 옛날이여’하는 노랫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북한산 국립공원 도봉사무소에서는 둘레길 곳곳에 알림판을 만들어 놓고, 지나가는 이에게 좋은 정보와 이야깃거리를 들려준다. 첫 번째로 눈에 들어온 게, 봄을 제일 먼저 알려주는 나무는? “이른 봄 산에서 제일 먼저 만나는 노란 꽃, 언뜻 산수유를 떠올리게 하는 이 나무는 생강 냄새가 난다고 하여 이름이 ‘생강나무’이다. 생강나무 꽃은 동백꽃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에서도 그렇게 불렀다. 동백나무에서는 빨간색 꽃이 피는 데 소설 ‘동백꽃’에서는 ‘노란 동백꽃’이라고 되어 있고, 알싸한 내음새가 난다는 데서도 생강나무임을 알 수 있다. 실제로 강원도 지방에서는 생강나무를 동백나무라고 불렀다.”
그다음 눈에 띈 게, 왜 우리나라 산에는 절이 많을까? “삼국시대에서 고려 시대까지는 절을 도읍지를 중심으로 평지에 많이 지었다. 그러나 신라말부터 유행한 선종(禪宗)에서는 참선을 강조하여 절을 조용한 산속에 짓는 것이 적합하다고 여겼다. 그 이후에도 크고 작은 전란을 겪으면서 평지의 절들은 크게 훼손되었지만, 산속의 절은 온전히 보전되었다. 또 조선 시대의 숭유억불(崇儒抑佛) 정책에 따라 탄압을 피해 절을 산속으로 옮기게 되었다.”라고 친절하게 알려준다. 그동안 도봉문화원 인문학 기행을 다니며 우리나라 산사는 많이 둘러보았지만, 평지 사찰은 몇 군데 없는 것 같다. 남원 실상사, 완주 송광사, 여주 신륵사 정도가 기억이 난다.
무수골 쉼터까지 느릿느릿하게 걸으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나고 숲속 바람도 잠잠해진다. 햇볕이 숨어있다가 나오고 들어갔다가 삐죽이 얼굴을 내밀기를 되풀이한다. 혼자 걷는 내가 심심하지 않도록 숨바꼭질을 해주는 것 같아서 고마운 생각이 든다. 무수골을 지나 가파른 언덕을 올라가 쌍둥이 전망대를 향해 걷는다. 오랜만에 둘레길을 걸으니 숨이 가쁘고 힘에 부치는 느낌이 든다. 예전 같지 않은 몸 상태라는 것을 몸이 자연스럽게 알려준다. 정말 고마운 일이다. 갑자기 뒤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 듯하더니 웬 사람이 내 앞을 성큼성큼 뛰어간다. 나보다는 훨씬 젊어 보이는 중년이다. 그 청춘을 보는 순간 옛날 생각이 난다. 40대 중반 나이에, 회사 일이 끝나고 토요일 오후 수락산에 오르고 내려갈 때는 뛰면서 다녔던 시절이 떠오른다. 그런 행동이 훗날 무릎 연골판 손상을 가져와 몇 년 동안 산행을 하지 못한 원인이 된 것이다. 젊어서는 훗날 몸에서 일어날 비극을 도저히 알 수 없다. 설령 막연히 느끼거나 안다고 할지라도 나와는 전혀 관계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천천히 걸어도 땀이 흥건히 나서 속옷까지 축축하고 끈적끈적하다. 무리하지 않고 잘 걸어서 내려가야겠다. 이제 조금만 더 걸으면 정의공주묘가 눈앞에 내려다보이는 앞이 확 터진 장소이다.
시간이 더 지나면 함께 어울리던 인연도 떠나고 홀로 남을 순간이 다가오겠지. 때가 무르익어 나 역시 먼 길을 떠나야 할 때가 오리라. 지금, 이 순간 살아 있는 기쁨과 환희를 맛볼 수 있게 해주는 4월의 봄날이 더없이 고맙고 감사하다. (2023년 5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