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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40:1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2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 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
3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리로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너로 광야에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신 8:2)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신 8:3)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도를 행하며
그를 경외할찌니라
(신 8:6)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하게 되며
(신 8:12)
또 네 우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신 8:13)
두렵건데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넥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
여호와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신 8:14)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신 8:7)
광야를 반드시 거쳐야만
가나안에 들어갑니다.
가나안에 들어가면 일곱족속 곧
우리안에 있는 우상들을 제거해야 합니다.
복은 그 연단을 지난 후에 받는 것입니다.
아무에게난 그 복을 허락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 받고 있는 연단도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시험관문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열으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 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로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
(신 28: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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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은 인생의 본질을 영광으로 보십니까?
아니면 고난으로 보십니까?
우리는 인생의 본질을 영광으로 보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의 희망사항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인생의 본질은 고난입니다.
그런데 원래부터 우리 인생의 본질은 고난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영광스럽게 살기위해서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범죄 한 후 이 땅에서의 삶이란 수고와 슬픔과 고난의 연속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롬5장에 보면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해서 영광과 고난 두 가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 영광이란 어떤 것입니까?
이 고난의 삶 가운데서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을 영광이라고 합니다.
또 장차 영원한 하나님나라에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영광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 땅에서의 삶이란 고난과 환난 그 자체입니다.
또 성경에서 말씀하는 기쁨이란 항상 그 고난가운데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시고,
이겨나가게 해주심으로는 누리는 기쁨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너희가 세상에서는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절대 우리로 하여금 비관주의에 빠져서 인생을 슬퍼하며 살라고 주신 말씀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 말씀은 우리에게 더 큰 위로와 용기를 줍니다.
왜 그렇습니까?
만일 인생의 본질 영광이라면 조금이라도 고난이 닥치면 왜 영광인데 고난이냐 하며 슬퍼하며 낙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인생의 본질을 고난으로 생각하면 고난당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고난가운데도 위로가 됩니다.
또 우리의 삶이 잘 되고 영광스러울 때 “아 이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구나”라고 하면서 절대 교만하지 않고 감사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잘 될 때도 언제든지 고난을 준비하는 지혜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그래서 베드로 전서에 보면 “너희가 당하는 고난을 이상하게 여기지 말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벧전4:12).
여기서 즐거워하라는 말은 명절 때 자녀들이 올 때 부모님들이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고난을 명절 때 부모님들이 자녀를 반기듯이 즐거워하고 기뻐해야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해야 합니다. “반갑다 내 아들아 반갑다 내 친구야” 하듯이 “반갑다 고난아” 라고 하며 고난을 당연한 것으로 반기고 즐길 줄 알아야합니다.
이와 같이 성경에서는 말씀하는 인생의 본질은 고난입니다.
이렇게 인생의 본질이 영광과 즐거움이 아니라 고난이기에 우리에게 요구하는 덕목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 어떤 고난가운데서도 “인내하며 기다릴 줄 아는 삶”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다윗은 인내를 기다림이란 말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1절에 보면 다윗은 인생의 고난가운데서 “(인내하며)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고 합니다.
그리고 인내와 기다림의 결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건짐을 받아 이제 안전한 반석 위에 서 있는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지금 여러분들의 삶 가운데 참기 힘든 고난이 있습니까?
오랫동안 응답되지 않는 기도의 제목이 있습니까?
오랫동안 낫지 않는 질병가운데서 인생의 고난을 느끼고 계십니까?
자녀의 문제로, 배우자의 문제로 가슴앓이를 하고 계시는 분이 계십니까?
계속되는 가정의 문제와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힘들어 하십니까?
아니면 내적이고, 영적인 문제 때문에 힘들어 하고 괴로워하십니다.
아니면 이 땅에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되지 않기 때문에 그것 때문에 아파하시고 괴로워하십니까?
또 하나님의 영광이 이 땅의 교회에 실현되지 않기에 그것 때문에 아파시고 괴로워하십니까?
그러면 무엇보다 인내하시고 또 인내하시며, 또 기다리시고 기다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건짐 받는 은혜와 체험이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고난가운데서 승리하여 새 노래로 하나님께 찬양을 드릴 수 있는 영광스러운 삶이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다윗이 60살 쯤 되었을 때 인생의 말년에 과거를 회상하면서 쓴 시입니다.
1절에서 10절까지는 과거에 극심한 고난가운데서 하나님께서 그를 건져주신 것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15세 때 이스라엘의 왕이 되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때부터 다윗은 30세에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까지 15년간 사울 왕에게 쫓기는 고난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 뿐 아니라 왕이 되고 난 다음에도 자신의 아들 압살롬의 반역 때문에 쫓기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때도 다윗은 끝까지 인내하고 참고 기다렸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그를 건져주셔서 영광의 반석위에 서게 하셨습니다. 이것을 10절까지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11절부터 이제 60살이 된 다윗에게 또 고난이 있습니다.
그래서 11-17까지 과거에 하나님께서 그를 고난가운데서 건져주신 것을 회상하면서 지금도 건져주실 것을 바라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편의 주제는 기다림 즉 인내라고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인생의 고난가운데서 참고 기다리며 인내하며 살 수 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또 무엇이 참된 인내며 기다림인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첫째로, 인내란 무엇입니까?
인내란 말은 원래의 뜻이 “그 아래 가만히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인내란 그 참기 어려운 고난의 상황 속에 그대로 가만히 있는 것을 말합니다.
예전에 탈렌트 안재환씨가 자살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놀란 것은 그가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40억 가량의 사채 빚에 시달려서 그 고통을 이기지 못하여 자살을 했다고 합니다.
사채 빚 때문에 노숙자신세가 되려고 까지 생각했는데, 얼굴이 알려져서 그것도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사람들은 감당하기 어려운 고난을 당하면 자꾸만 그 고난을 피해가려고 합니다.
그래서 극단적인 방법을 택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십니까?
“너에게 그 어떤 극심한 고난이 있느냐, 절대 그 고난의 상황을 피하려고 하지 말라.
그 고난의 상황이 아무리 힘들어도 그 아래 끝까지 머물러 있으라”고 말씀하십니다.
2)또 그 다음 오늘 말씀에서 보여주는 참된 인내란 무엇입니까?
오늘 말씀 1절에 보면 다윗은 기다리고 기다리는 가운데 그냥 기다리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계속해서 부르짖으면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무엇이 성경적 인내며 기다림입니까? 그것은 그냥 가만히 참고 인내하며 가만히 있는 것만 아닙니다. 가만히 참고 인내하며 기다리는 가운데 하나님께 기도하고 간구하는 자리로 나가야합니다. 만일 우리가 참기만 하고 기도하지 않으면 그것은 성경적 인내가 아닙니다. “기도가 없는 인내는 그 자체가 교만이며 아집입니다"(스펄전).
우리는 이것을 항상 기억해야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신 것은 그 고난의 분량만큼 기도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참고 인내하며 기다리는 가운데 무엇보다 기도를 포기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기도에 있어서 낙망치 마시기 바랍니다.
-베드로 후서1장 6절에 보면 너희가 인내에 경건(즉 기도)를 더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인내하기까지는 하는데, 기도하지는 않습니다.
베드로후서1장의 말씀을 나누는 가운데 어떤 학생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학생은 목회자의 자녀인데, 목사님이 목회를 하시다가 일찍 소천 하셨습니다. 그래서 어느 교회 학사에서 생활하는 학생이었습니다. 그래서 얼마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삶을 살았는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들고 난후 그 학생이 저에게 찾아와 자신은 그동안 인내는 했는데 기도는 하지 못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안재환과 같은 고난을 격으면서도 그 고난가운데 인내하면 끝까지 기도했던 그의 아내였던 개그우먼 정선희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같은 고난을 격었습니다. 그런데 정선희는 매일 새벽마다 나와서 하나님께 울부짖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예배시간마다 눈물로 예배를 드렸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아무 일이 없는 듯이 방송을 했습니다. 남편이 어랴려울 때 왜 그렇게 방송에 나왔는가 라고 사람들이 조소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알게 된 것은 그 사채 빚을 갚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참기 어려운 고난이 있습니까?
그 고난가운데서 하나님께 울부짖고 기도하는 성도님들 되시기 바랍니다.
3)또 무엇이 참된 성경적 인내며 기다림입니까?
어떤 사람들은 인내라고 하니까 이빨을 갈면서 비탄과 비장함으로 참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적 인내가 아닙니다. 성경적 인내는 그냥 참고 기다는 것만이 아니라 믿음과 소망을 가지고 기다리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 말씀 1절에서 기다림이라는 단어(“카바”)는 맹목적이거나 막연한 기다림이 아니라 어떤 일이 이루어질 것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기다리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고난가운데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그 어떤 고난에서라도 반드시 건져주실 것을 믿고 기다려야합니다.
한나가 자녀를 낳지 못하는 문제로 신음하며 고통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고통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한나는 막연하게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기도하는 가운데서 “너의 기도하여 구한 것이 응답될 것이라” 는 말씀을 들었을 때 “그 말씀이 이룰 줄을 믿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의 그림자가 없었더라”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막연한 근심과 두려움 속에서 기다려서는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실 것일 믿고, 믿음과 소망과 큰 확신의 기쁨을 가지고 기다리며 인내하시기 바랍니다(아멘 믿습니다/하나님의 영광이 나타 날 줄 믿습니다).
(히브리서 11장)
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4)또 오늘 본문에서 다윗은 어떻게 인내하며 기다리고 있습니까?
4. 다윗은 인내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6-8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6절에 보면 다윗은 고난 가운데 어떤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까?
“6. 주께서 내 귀를 통하여 내게 들려 주시기를 제사와 예물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번제와 속죄제를 요구하지 아니하신다 하신지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제 고난 가운데서는 “형식적인 제사와 예배를 하나님이 원치 아니 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7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형식적인 제사와 예배보다는 두루마리 책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며 순종하는 삶입니다.
그래서 8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
-다윗은 하나님을 기다리고 기다리며, 또 부르짖고 기도하는가운데 또 무엇을 하였습니까?
그는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인내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들을 적극적으로 행했습니다.
이것을 통해서 본 성경적 인내가 무엇입니까?
그냥 가만히 있고, 또 기도만 하는 것이 아니라 더 적극적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면서 기다리는 것이 성경적 인내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에서는 “인내로서 경주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히12:1).
성경적 인내는 가만히 있기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참기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 기도만 하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고난 가운데서도 인내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면서 기다려야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인내까지만 합니다. 그리고 기도까지만 합니다.
그런데 참기는 하는데 낙심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일들을 포기할 때가 많습니다.
이것은 참된 인내가 아닙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쫓기는 가운데 가만있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쫓기는 가운데 아둘람 동굴에서 약한 자, 슬픔에 당한 자, 어려움이 있는 자를 돌아보는 삶을 살았습니다.
예수님도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일 때문에 바리새인들의 많은 핍박과 박해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모든 고난을 참았습니다. 그러면서 안식일에 그에게 오는 모든 병자를 끝까지 고쳐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때리는 자에게 그의 등을 맡기며,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그의 빰을 맡기며, 수욕과 침 밷음을 피하려고 그의 얼굴을 가리지 않았습니다(스펄전). 그러면서 끝까지 십자가 지시는 일을 하셨습니다.
여러분에게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난이 있습니까?
인내하시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서 가만히 있지 마시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더 적극적으로 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끝까지 인내하시며 기다리시고 또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다윗이 인내하면 기다린 결과가 무엇입니까?
2절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건지시고 내 발을 반석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케 하셨도다”. 여기서 기가 막힐 웅덩이란 “사람을 큰 웅덩이에 빠뜨려놓고 그 위에 흙을 덮어서 조금도 햇빛이나 공기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곳”입니다. 또 수렁이란 늪과 같아서 한 번 빠지면 계속해서 빠져 들어가는 곳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이란 인간적인 힘으로서는 힘으로는 도무지 헤어 나올 수 없는 절망의 장소입니다.
아무리 우리 인생이 기가 막힐 것 같은 웅덩이와 수렁에 있어도 끝까지 인내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고 기다리고 있으면-------하나님은 그 어떤 절망의 상황에서라도 우리는 끌어 올려주십니다. 그레서 이제 이상 꺼지지 않고, 더 이상 미끄러지지 않는 안전한 하나님의 반석위에 우리를 세워주실 줄 믿습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로 하여금 이제 새 노래로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실 것입니다.
3절상반절을 보시면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라고 합니다. 이렇게 새 노래로 찬송하는 우리를 보고 3절 하반 절에서는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리로다” 고 합니다.
이렇게 우리를 깊은 수렁에서 건지시고, 또 반석위에 세우시고, 또 찬송하게 하시고,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더 믿고 의지하게 된 것을 오늘 말씀에서 기적이라고 합니다.
5절입니다.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의 행하신 기적이 많고 우리를 향하신 주의 생각도 많도소이다 내가 들어 말하고자 하나 주의 앞에 베풀 수도 없고 그 수를 셀 수도 없나이다”.여러분 기적을 믿으십니까?
그러면 기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고난의 문제에 들어오셔서 개입해주시어 우리가 인간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것도 하나님의 기가 막힐 방법으로 해결해주시는 것입니다.
이런 기적의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여기서 기적이라는 것이 단순히 문제의 해결만 아닙니다.
우리에게 고난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도-----
그 어떤 상황 속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을 가지고--------항상 소망가운데서 기뻐하며 감사하며 찬송하며 살아가는 삶이 기적의 삶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화상의 고통과 절망가운데서 건짐을 받았던 이지선씨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저는 가장 크게 받은 은사가 '감사'에요. 옛날에는 감사가 없는 삶을 살았는데 지금 제게 주어진 행복은 감사 때문인 거 같아요. 사는 게 쉽지 않잖아요. 어느 한 사람 평범한 인생이 없는데 어쩔 수 없이 겪게 되는 일들 앞에 조악한 의미로 빠져나가려 할 때 마음이 아파요. 감사할 수 있다면 다른 걸로는 채울 수 없는 채워짐이 있을 것인데 말이죠. 감사는 육체적 고통도 이겨내게 하죠. 감사하는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어요."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낙담과 절망의 수렁에서 건져주시는 놀라운 기적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노래하는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이제 마지막으로 11절부터 보시기 바랍니다.
10절까지는 과거에 그를 건져 주신 하나님께 대한 회상이었는데. 이제 노년이 된 현재는 어떠합니까?
노년이 된 다윗에게도 여전히 고난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또 그 고난들로 인한 낙담과 좌절이 있습니까? 예 여전히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말합니까?
11절“(젊은 시절에 베푸셨던) 여호와여 주의 긍휼을 내게 그치지 마시고 주의 인자와 진리로 나를 (노년의 고난에서도) 항상 보호하소서/12 (노년의 현재에도) 무수한 재앙이 나를 둘러싸고 나의 죄악이 내게 미치므로 우러러 볼 수도 없으며 죄가 나의 머리털보다 많음으로 내 마음이 사라졌음이니다”
이제 고난이 다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무수한 재앙이 그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또 그것 때문에 그의 마음이 사라졌다다고 합니다.
즉 다윗은 또 마음이 낙심한 상태에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다윗은 그 고난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과거에도 그랬듯이 하나님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건져주실 것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기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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