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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정보
영원한 사랑, 위대한 사랑
 
 
 
카페 게시글
사진속 세상 스크랩 소록도
부싯돌 추천 0 조회 56 15.02.28 08:3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보리 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

피 ㅡ ㄹ 닐니리.

 

보리 피리 불며

꽃 청산

어린 때 그리워

피 ㅡ ㄹ 닐니리.

 

보리 피리 불며

인환의 거리

인간사 그리워

피 ㅡ ㄹ 닐니리.

 

보리 피리 불며

방랑의 기산하(幾山河)

눈물의 언덕을 지나

피 ㅡ ㄹ 닐니리.

                      (보리 피리 / 한하운)  

 

전남 고흥의 소록도에서 이 시를 읽노라면 가슴이 멍해집니다.

뿐만 아니라 하늘 한 번 땅 한 번 쳐다보는 사이 눈 가에는 이슬이 맺히기도 합니다. 문둥이라는 별칭으로 천대아닌 천대를 받던 한센병 환자들의 긴 사연이 피리소리로 승화되어 내 마음을 울리는 것 같아섭니다.

 

꼭 20년 만에 소록도를 다녀 왔습니다.

전에는 녹동항에서 배를 타고 들어 갔었지만 지금은 연륙교(소록대교)를 통해 승용차로 그곳에 갔습니다. 사슴을 닮아 순전한 모습을 간직했다는 소록도에 다리가 생기면서 이젠 한하운 선생의 피멍 자욱이나 진배없었던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뿐’이더라고 일설한 ‘전라도길 - 소록도 가는 길’이라는 시도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돼 버렸습니다.

 

 

 

 

 

 

 

가도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천안 삼거리를 지나도

쑤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 속으로 쩔름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리, 먼 전라도길

 

한 때 문딩이? 시인으로도 회자됐던 한하운님은 소록도에 강제 유배돼 생활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이 세상을 뜬 뒤에 보리피리라는 시비가 그곳에 남아 ‘소리없는 소리’로 영혼이 담긴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외롭고 힘들었던 환자들의 울부짖음을 말입니다.

 

 

 

 

 

 

이십년 전 초딩 1년짜리 아들을 데리고 이곳을 찾았을 때의 기억이 새롭습니다.

당시 녹동항에서 배를 타고 10분 남짓한 항해? 끝에 도착한 소록도는 항구와 마을까지는 짧지 않은 거리였습니다. 일반 교통편도 없던 터라 터벅터벅 걷고 있었는데, 마침 우리 일행을 보고 봉고차 한 대가 멈춰 섰습니다.

마을까지 태워다 주겠다는 호의와 함께 말입니다.

 

제일 기뻐했던 게 아들이었습니다. 아내와 나 역시 반갑게 차 안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고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는 순간 앞 사람의 얼굴을 보곤 모두 ‘얼음’이 돼 버렸습니다. 안에 타 있던 사람들이 다 문둥병(한센병)을 앓았던 이들였기 때문입니다.

코나 귀가 없는 이, 손가락이 떨어져 나간 손바닥으로 잡고 있는 이, 아예 눈 한쪽이 없는 사람 등등.

 

순간 아들녀석 표정이 가관이었습니다. 공포 영화를 볼 때 그 놀란 모습 그대로 였기 때문입니다. 나 역시 말은 꺼낼 수 없었지만 속으로 ‘이크-’ 했었으니까 말입니다. 그렇다고 이들의 호의를 거절하고 하차 할수도 없는터라 목적지 까지 가야만 했는데- 아들 녀석은 거의 울상이 돼 버렸습니다.

 

여기서 겁을 잔뜩 먹었던 녀석은 감금실과 검시실 소록도 자료관등을 둘러 보면서는 이곳이 여느 관광지가 아닌 한센병 환자들의 고행터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나서부터는 아예 병을 얻어 버렸습니다.

이 날 밤 열이 펄펄 나더니 끙끙 앓는 것이었습니다. 자기도 문둥병에 걸린 것 같다면서 말입니다. 고된 일정에 몸살 감기가 걸린 것을 어린 녀석은 그렇게 걱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경험이 있었던 소록도를 20년 만에 다시 방문하고 보니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주차장에서부터 이들의 관사와 병원이 있는 마을까지 걸어가는 길은 풍광이 수려했고 시설역시 육지의 어느 복지센터와 비교해도 절대 뒤지지 않을 만큼이었습니다.

중앙공원과 각종 유적들을 돌아 보면서 이들을 환자가 아닌 범죄자 처럼 대했을 당시의 일본 관리자들을 생각하면 분노가 치밀기도 했습니다.

 

병마에서 회복된 소록도 주민들은 아직 불편한 몸을 목발이나 지팡이에 의지 않고 전동 휠체어로 대신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세월의 변화, 아니 신천지가 열린 것 같았습니다. 이젠 수시로 드나드는 자동차로 원거리 이동까지 자유로워 진 모습이 정말 보기 좋았습니다.

더불어 외지인들의 방문도 자유로워져 이제 소록도는 새로운 관광지로 자리메김이 돼 버린 느낌이 듭니다.

 

다만 방문 시간이 정해져 있고 아직도 일반인이 출입할 수 없는 지역이 남아 있는 아쉬움도 있지만 소록도는 이제 사슴을 닮은 섬에서 우리의 이웃이 사는 정 묻어 나는 그런 섬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록도 주차장에서 병원쪽으로 가다보면 매점 바로 앞에서 수탄장(愁嘆場)이라고 써 있는 안내문을 볼 수 있습니다. 단어상 혹은 어감으로도 언뜻 이해하기 힘든 수탄장은 그 내용을 읽고 나서야 고개가 끄덕여 집니다. 가슴 짠한 사연 때문입니다.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병원에서는 전염병을 우려해 미감아 자녀들을 별도 지역에서 관리했다고 합니다. 이들은 한달에 한 번 환자 부모를 만날 수 있었는데- 그것도 평범한 만남은 가질수가 없었습니다. 병이 옮길까봐 철책을 친 도로 사이로 자녀와 부모 눈으로만 상봉케했다니 말입니다. 그래서 이곳을 탄식의 장소라는 뜻으로 ‘수탄장’이라 부르게 됐다고 합니다.

 

 

 

 

 

 

 

이 안내문을 읽고 나면 소록도가 한 많은 섬이었음을 미뤄 짐작케 합니다. 그래선지 노천명 시인이 쓴 ‘고독한 사슴의 여인’에 나오는 글귀가 아련히 떠 오릅니다.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

관이 향기로운 너는

무척 높은 족속이었나 보다.

 

물 속의 제 그림자를 들여다보고

잃었던 전설을 생각해 내고는

어찌할 수 없는 향수에

슬픈 모가지를 하고 먼 데 산을 바라본다

 

흥에 내려갔다가 20년 전 생각이 나 무턱대고 다시 찾았던 소록도.

내 나이 탓인지 눈으로 본 것 보다 가슴으로 느낀 것이 더 많았던 짧은 여행이 됐습니다. 언제 시간이되면 이제 성인이 된 아들녀석과 함께 다시 그곳을 찾고 싶습니다. 녀석의 표정이 궁금 해 집니다^^

 

- tip 전남 고흥에서 녹동항 방면으로 내려가다 녹동 초입서 소록대교 방향으로 나가면 됩니다. 소록대교를 지나 작은 터널을 빠지면서 우회전. 그러면 바로 소록도 주차장이 나옵니다. 주의사항은 소록도 진입은 오전 9시부터 가능하고 오후 5시 전에 빠져 나와야 한다는 겁니다. 입장료 주차료도 없으며 음식과 음료등은 매점에서 이용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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