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과 감성 / 제인 오스틴 / 윤지관 / 민음사
"소유냐 존재냐"처럼 하나를 고르라는 질문의 형식이 아니어서 참 다행이다. "이성이냐 감성이냐"라고 질문이 오면 고를 수 없을 것 같다. 이성도 감성도 모두 필요한 요소이다. 서로 채워 주고 보완해 주는 요소이다. 소설도 그것을 바라는 것 같아서 이성과 감성을 대변하는 두 자매는 결혼하고 가까이 산다.
큰딸 엘리너 Elinor는 이성을 메리앤 Marianne은 감성을 대변하는데, 작가가 처음 작품을 썼을 때의 제목이 [엘리너와 메리앤] 이라고 한다. 세 자매가 등장하는데 막내의 존재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제목을 그냥 이름으로 밀고 나갔으면 어떠했을까.
고전의 반열에 들어가는지 책이 이런 거구나 느낄 수 있다. 마치 주인공의 마음을 관심법으로 들여다보는 것 같고, 그 시대 상황을 이해하기 쉽도록 묘사한다.
나에게는 아들이 둘 있는데, 두 자매와 비슷하다는 생각이다. 큰 아이는 '이성'이고 작은 아이는 '감성'이다. 작품을 읽으면서 형제와 자매가 성별이 다를지라도 겹쳐서 읽게 된다.
개개인의 능력보다는 세습에 의해 경제력이 결정되기에, 결혼도 그 경제력을 지키기 위한 즉, 현재의 계급에 머무르기 위한 방편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연유로 사랑과 동떨어진 가정이 있을 수 있으나, 이성이라고 번역된 분별력과 사리 그리고 감성으로 번역된 감수성과 다정다감을 기반으로 하기에 그 사회와 가족이 지켜지는 것이겠구나 생각해본다.
재미있는 것은 이성의 표상인 엘리너는 동생에게 다정다감하게 접근하며, 메리앤은 언니의 간섭을 분별력 있게 받아들인다. 그런 조화가 아름답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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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의 편견에는 무언가 사랑스러운 곳이 있어서 그걸 포기해 버리고 좀더 일반적인 생각을 받아 들이는 것을 보면 언타깝기는 합니다." 77
결혼을 약속한 사이가 아니면 젊은 남녀가 서신을 주고받지 않는다. 108 (편집자 주)
"대부분의 세상 사람들이 다 그렇지요. 저도 다른 사람들처럼 완벽하게 행복해지고 싶답니다. 그렇지만 다들 그런 것처럼 제 방식으로 그렇게 되어야겠지요. 큰 인물이 되는 것으로는 저는 행복해지지 못할 겁니다." 121, 에드워드 페라스
"사람들은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아니 거의 없다고 봐야지." 299
엘리너와 메리앤의 대화 347 - 350
"넉 달이나! 그렇지만 언닌 그일 사랑했잖아!”
"그래. 그러나 내가 그분만 사랑한 것은 아니지. 다른 사람들의 안녕도 나한텐 소중했으니까, 내가 얼마나 힘든지 다 알리지 않고 지냈던 거야. 그게 나한텐 좋았고, 이젠, 별 감정 없이 거기 대해서 생각도 하고 말도 할 수 있어. 나 때문에 네가 힘들어하지는 말았으면 해. 내가 말하잖니, 나부터가 더 이상 별로 고통스럽지 않다고 말이야. 날 지탱해 주는 건 많이 있어. 나 자신이 신중치 못하게 처신해서 실연을 당한 것은 아닌 셈이고, 실망감을 더 키우지 않고 버틸 만큼 버틴 거지. 에드워드가 본질적으로 그릇된 처신을 한 건 아니야. 나는 그이가 아주 행복하길 마라. 그리고 그이는 의무에 충실한 사람이니까 지금으로서야 회한도 없지 않겠지만 결국에는 잘될 것이 틀림없어.. 루시도 분별이 없지 않으니까 그걸 바탕으로 해서 만사가 형통할 거라고 본다. 그리고 메리앤, 사랑은 일편단심이라는 생각이 매력적이긴 해도, 행복이 어떤 특정한 사람한테 전적으로 달려 있다는 말은 일리가 있긴 해도, 꼭 그래야 만 한다는 건, 글쎄, 맞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아. 에드워드는 루시하고 결혼할 거야. 그인 인물로나 이해력에서나 그래도 절반 수준은 넘는 여성하고 결혼하는 셈인데, 세월이 가고 그럭저럭 살다 보면 그 여자보다 뛰어난 사람 을 좋아했다는 것도 슬슬 잊어버리게 되겠지.”
“언니가 그런 식으로 생각한다면” 하고 메리앤이 말했다. “정말 소중한 걸 상실하고서도 쉽게 다른 무엇으로 메워버린다면, 언니의 결단이라든가 자제는 어쩌면 그렇게 놀라운 것이 아닐지 몰라. 그 정도라면 나라도 더 납득이 갈 만한 거니까.”
“무슨 말인지 알고 있어. 내가 그리 괴로워한 적도 없다고 생각하는 거지. 넉 달 동안을, 메리앤, 내 마음속에 이걸 담아두고 어느 누구한테도 털어놓지 못했어. 일단 이야기해 버리면 너나 어머니가 너무나 불행해질 것을 알지만, 그렇다고 사전에 무슨 마음의 준비를 시킬 수도 없고, 내가 그 이야길 들었던 건 바로 장본인한테서야. 먼저 약혼을 해서 내 장래를 온통 망쳐버린 그 장본인이 윽박지르듯이 억지로 듣게 한 거지. 의기양양한 말투더구나. 그러니 이런 사람한테 의심을 살까 봐 나한테 정말 중요한 일에 무관심한 척 보이려고 애썼던 거야. 그런 일이 한 번에 그친 것이 아니었어. 그녀의 희망과 환희를 듣고 또 듣고 할 수밖에 없었어. 이제 에드워드와 영원히 헤어지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 그이와의 결합을 아예 포기해 버릴 수 있게 해줄 무슨 정황이라도 들었으면 했지만, 그런 것 하나 없이 말이야. 그이가 형편없는 인간이란 증거도 전혀 없었고, 그이가 나한테 무관심하다는 것이 분명히 드러난 적도 전혀 없었어. 난 그이 누나의 냉담함에, 그리고 그이 모친의 무례에 맞서야 했어. 애정의 이점은 못 누리고 징벌만 받았던 거야. 그리고 너도 잘 알다시피 그것이 나만의 불행이 아니었던 그런 시기에 이 모든 일이 진행되고 있었고, 내가 아픔을 느낄 수 있다고 네가 생각한다면, 지금까지 그걸 겪어온 거라고 생각하면 돼. 그 일을 생각하면서도 차분할 수가 있고 또 마음도 편하다고 선뜻 인정할 수 있게 된 것도 꾸준히 힘들게 노력해 온 결과였어. 절로 솟아나온 것이 아니었다고, 처음부터 생겨나서 내 마음을 달래준 것은 아니었어....... 아냐, 메리앤, 그땐, 입을 다물겠다는 약속만 하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나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을 거야. 내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아무리 빚진 게 많았어도 내가 너무 불행하다는 걸 털 어놓고야 말았을 거야.”
메리앤은 압도되고 말았다.
"아아! 엘리너,” 그녀는 소리쳤다. “언니 말을 들으니 나 자신이 한없이 미워져. 언니한테 그렇게 못되게 굴었다니! 언니가 누군데! 나한테 유일한 위안이었고, 내가 비참 할 때엔 늘 옆에 있어주었고, 나 때문에 힘들게만 보였던 언니한테! 이게 내가 보여준 감사라니! 언니한테 한 유일한 보답이 고작 이거야? 언니의 미덕이 마구 덮쳐 오니까, 벗어나보려고 용을 써온 거야.”
이 고백에 이어 뜨겁디뜨거운 포옹이 있었다.
월러비에 대한 엘리너의 정의 439 - 440
엘리너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 인물과 재능을 겸비한 위에 활달하고 정직한 성품까지 타고났고 다정다감한 기질을 가지고 있던 한 남자가 너무 이른 독립과 뒤따른 게으름, 방탕, 사치의 습관으로 말미암아 그 정신, 성격, 행복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게 된 것이다. 세상이 그를 무절제에 빠뜨리고 허영에 물들게 하였으며, 무절제와 허영이 그를 냉혹하고 이기적으로 만들었다. 허영심이 무절제를 제치고 죄스러운 승리를 구가하는 와중에 진정한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면, 무절제 혹은 그 소산인 궁핍이 나서서 그 사랑을 희생하라고 요구하였던 것이다. 그를 악으로 이끈 그 각각의 그릇된 성향이 마찬가지로 그를 벌로 이끌어갔다. 그는 명예에 맞서, 감정에 맞서, 모든 더 나은 이해관계에 맞서 외적으로는 그 사랑을 떨쳐냈지만, 이제 더 이상 허용될 수 없는 상황이 되어서 그 사랑이 그의 모든 생각을 지배하게 되었다. 그리고 거의 아무런 가책도 없이 자기 동생을 비참한 상태에 빠트리고 떠나 얻어낸 그 관계가 이제는 도저히 치유할 수 없는 불행의 근원이 되어버리고 만 꼴이었다.
첫댓글 나도 소설은 물론이고 영화 디비디가 있어서 10여회 즐겨 보았죠
영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애정물로
10년에 한번씩 새로운 영화로 새 캐스트로 제작합니다
제인역의 여배우 나이틀리의 매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