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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천가 (北遷歌)
세상에 사람들아
이내거동 구경하소
과거를 하거들랑
청춘에 아니하고
오십에 등과하여 철종(哲宗) 1년 (1850) 50세에 급제
백수홍진 무사일고 백수홍진(白首紅塵)
공명이 늦으나마 공명(功名)
행세나 약바르지 행동이나 약삭 빠르지
무단히 내달라서
소인의 척이되어 배척을 받아
부월을 무릅쓰고 부월(斧鉞): 여기서는 형구로 쓰던 작은 도끼와 큰 도끼.
천문에 상소하니 천문(天門): 임금
이전으로 보게되면 당시 이조판서 서기순의 사욕을 홀로 탄핵
빛나고 올컷만은 상소문은 뒤에 수록
요요한 이세상에 요요: 뒤숭숭하고 어지러운
남다른 노릇이라
소한장 오르면서 소(疏): 상소
만조가 울컥한다 탄핵 상소로 온 조정이 시끄럽다
어와 황숑할사
천위가 진노할사 천위(天威): 임금
삭탈관직 하시면서 삭탈관직(削奪官職)
엄지하고 꾸중하니 엄지(嚴旨): 임금의 질책
운박중 일신명이 운박(運迫)
고향으로 돌아갈제 삭탈관직 후 지은 한시가 있다.
춘풍에 배를타고
강하로 향하다가 江河. 한강을 건너서 안동을 가던 중에
남수찬 상소 끝에 소북(小北) 수찬 남종순 (이조판서 서기순의 심복)
명천정배 놀랍구나 명천정배(明川定配).
척수로 치행하니 척수(隻手): 한쪽 손, 홀로, 풍도; 세상살이
한강풍도 고이하다 어려움. 한강을 건너면서 지은 시가 있다.
창망한 행색으로
동문에 대죄하니 귀양 명을 기다림. 창망(滄茫)
고향은 적막하고
명천이 천리로다
두루마기 흰띄띄고 두루마기 흰띠는 죄인의 복장
북천을 향해서니
사고무친 고독단신 四顧無親 孤獨單身
죽는줄 그뉘알리
사람마다 당케되면 당하게 되면
울음이 나련마는
군은을 갚을지라 군은(君恩)
쾌함도 쾌할시고 쾌(快)하다: 시원하게.
인신이 되었다가 인신(人臣): 신하
소인을 잡아먹고 인신(人臣), 소인(小人)
엄지를 봉승하고 嚴旨. 奉承
절세로 가는사람 絶塞: 변방
천고에 몇몇이며 千古
아죠에 그뉘런가 我朝: 우리나라
칼집고 이러셔서
술잡고 춤을추니
이천리 적객인은 이천리 적객인(二千里 謫客人: 귀양가는 사람)
장부도 다울시고 이천리 밖으로 귀양가는 사람은 丈夫답다
조흔다시 말을타니 기쁘게 말을 타고 귀양길에 오르니
명천이 이듸매냐
더위는 홍로갓고 홍로(紅爐) 달아오른 화로.
장마난 극악한데
나장을 뒤서우고 나장(羅將): 여기서는 의금부 나장,
청노랄 압서우고 청노(靑驢): 나귀
익명원 내달아서 益明院 지금의 수유리 근처에 있던 역참.
다락원 잠간쉬어 多樂院 경기도에 있는 역참 (지금의 의정부에 있었다)
츅성영 너머가니 축석령(祝石嶺). 양주에서 포천으로 가는 길에 있는 고개. (승람)
북궐이 머러진다 북궐(北闕): 임금이 계시는 곳 (본래는 경복궁). 이때는 창덕궁
슬푸다 이네몸이
영주각 신선으로 영주각(瀛洲閣): 삼신산에 있는 누각(옥당 교리)
나나리 책을끼고
천안을 뫼시다가 매일 같이 경연에서 임금을 모시다가
일조의 정을띄여
천의로 가짓고야 하루아침에 쫏겨나서 天涯로 가는구나
구중을 첨망하니 구중(九重): 대궐. 첨만(瞻望): 멀리서 바라봄.
운연이 아득하다 운연(雲煙): 구름과 연기를 아울러 이르는 말
종남은 암암하여 종남(終南). 암암(暗暗).
몽상이 망연하다 몽상(夢上). 망연(茫然)
밥먹으면 길을가고
물건너면 재을넘고
십리가고 백리가고
양주땅 지난후에 양주(陽州): 경기도 양주,
포천읍이 길가이요 포천(抱川) 경기도 포천
철원지경 발분후에 철원(鐵原)에서부터 강원도
영평읍 건너가서 영평(永平) 서울에서 140 리. 가평에서 연천 사이
김화김성 지난후난 김화(金化)서울에서 220리 . 김성(金城)서울에서 270리(철원)
회양읍 막죽이라 회양(淮陽)서울에서 380리. 강원도 경계
강원도 북관기리 강원도 북관(北關)
듯기보기 갓하고나
회양에 중화하고 회양에서 중화(中火): 길에서 먹는 점심.
철령을 넘어가니
천험지는 청산이요 철령을 넘으면 함경도
촉도난은 길이로다 촉도난(蜀道難). 중국 성도(촉)로 가는 험한 길
요란한 운무중에 요란(撓亂). 운무(雲霧)
일색이 그지나니 일색(日色)
남여를 잡아타고 남녀(藍輿): 의자와 비슷하고 뚜껑이 없는 작은 가마.
철령을 넘난고나
수목은 울밀하여 수목(樹木). 울밀(鬱密)
천일을 가리우고 천일(天日); 나무가 울창하여 하늘이 잘 보이지 않음
암석은 총총하여 총총(叢叢): 많이 모여 있는 모양
업더지락 잡바지락 엎어지듯 자빠지듯
중허리에 못올라서
황혼이 거의로다 황혼(黃昏).
상상봉을 올라서니 상상봉(上上峰): 산꼭대기
초경이 되었구나 초경(初更):저녁 7시에서 9시 사이.
일행이 허기저서 허기(虛飢)
기장떡 사먹으니 기장: 열매는 ‘황실’이라고도 하는데 엷은 누런색으로 떡, 술,
떡맛이 이상하여 엿, 빵을 만든다. 이상하다: 더없이 좋다.
향기잇고 아람답다 아름답다: 맛있다.
횟불을 신측하여 신칙(申飭): 다시 만들다
화광중 나려가니 화광(火光): 여기서는 횟불 빛
남북을 모르거든
산형을 어이아리 산형(山形).
삼경에 산을나려 삼경(三更): 밤 11~1시 사이
탄막에 잠을자고 탄막(炭幕): 숯 굽는 곳.
효두에 떠나셔니 효두(曉頭): 새벽
안변읍이 어듸메야 안변(安邊) 함경남도, 서울에서 5백 84리.
하릴업는 내신세야
북도적객 되단말가 북도적객(北道謫客); 함경북도로 귀양 가는 나그네.
함경도 초경이요 초경(初境): 경계
아태조 고토로다 아태조(我太祖): 태조 이성계
산천이 광활하고
수목이 만야하다 수목만야(樹木滿野): 나무가 온들에 가득함
안변읍 드러가니
본관이 나오면서 당시 안변부사는 임백수(任百秀)로 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
포진병장 신측하여 장막과 병풍을 새로 치고
음식을 공괴하니 공궤(供饋): 음식을 접대하다
시원하게 잠을자고
북향하여 떠나가니 북향(北向): 북쪽으로 향하여 떠나다
원산이 여기런가 원산(元山).
인가도 굉장하다 인가(人家). 굉장(宏壯)
바다소리 요란한대
물화도 싸릴시고 물가가 매우 싸다
덕원읍 중화하고 덕원(德源): 서울에서 7일 거리. 점심을 먹고
문천읍 숙소하고 문천(文川) 서울에서 7일 거리 잠을 자고
영흥읍 드러가니 영흥(永興) 서울에서 8일 반 거리
태조대왕 태지로서 태조 이성계가 태어난 고을
총총가기 뿐이로다. 총총가기(悤悤佳氣) 상서로운 기운이 뚜렷하다.
금수산천 그림중에 금수산천(錦繡山川)
바다같은 관사로다 관사(官舍): 관청의 객사(客舍)
본관이 즉시나와 당시 영흥부사 신태원(申泰元)은 경연에서 만난사이로 우의가
치하하고 환대하며 깊었다
점심상을 보낸후에
채병화연 등대하니 彩屛花筵等待 채색한 병풍을 치고 술자리를 마련하니
죄명이 몸에있어 죄인이 되어서
치사하고 환송한후 치사(致謝)환송(還送): 고맙다고 인사하고 돌아오다
고원읍 드러가니 고원(高原): 함경남도, 서울에서 8일 거리 (7백16 리)
본수의 오승지는 당시 고원군수로 있던 오긍진(吳肯鎭)은 승지로 있다가 왔다
세의가 자별키로 세의(世誼): 대대로 사귀어 온 정(情).
나를보고 반겨할제 자별(自別): 남다르고 특별하다.
천리객지 날반기리
이어른 뿐이로다
책방에 마자드려 책방(冊房): 고을 원의 비서 일을 맡아보던 사람. 여기서는 관청청사
음식을 공괴하며 공궤(供饋): 윗사람에게 음식을 드림. 극진히 대접하다.
위로하고 다정하여
복마주고 의복주며 복마(僕馬): 종과 말. 가는 도중에 수발들 종과 타고 갈 말
행자주고 사령주니 행자(行資): 여행 경비. 사령(使令): 관아에서 심부름하던 사람.
잔읍형세 생각하니 혹시나 귀양 가는 죄인이 말 타고 종 부리며 가다가 말이 나면
불안하기 그지업다 내가 다치는 것은 괜찮으나 도와준 사람이 다칠가 걱정이다.
능신하여 발행하니 능신(凌申) 이런걱정 때문에 호의를 받아들이지 않고 출발하다
우수도 고이하다 우수(雨水)도 괴이하다
갈길이 몃철리며
온길이 몃철리야
하날갓한 저천령은 하늘같이 높은 저 천령(天嶺): 하늘에 닿을 듯 높은 고개
향국을 막아섯고 향국(鄕國): 고향
저승갓한 귀문관은 귀문관(鬼門關)
오령에 썻겻구나 오령(五嶺)
표봉갓한 이내몸은 표봉(飄蓬): 회오리바람 앞에 있는 개망초(들꽃)
지향이 어듸뫼뇨 지향(至向)
초원역 중화하고 초원역(草原驛)에서 중화(中火): 길에서 먹는 점심 (화원역)
함흥감영 드러가니 함경감사 정기동(鄭基東)이 마중을 나왔다
만세교 긴다리난 만세교(萬歲橋): 고려말에 장안세(우리선조)가 함흥부윤으로
십리랄 버처잇고 있을 때 건립했다. 십리가 될 정도로 길다
무변대해 창망하여 무변대해(無邊大海) 창망(蒼茫)
대야에 둘러지고 대야(大野): 넓은 들판
장강은 도도하여 장강(長江). 도도(滔滔): 걷 잡을수 없는것
만고에 흘러잇다 만고(萬古)
구름갓흔 성첩보소 성첩(城堞):성 위에 낮게 쌓은 담. 숨어서 적을 공격하기 위함
낙민루 놉고 놉다 낙민루(樂民樓): 함흥에 있는 유명한 정자
만인가 석연기난 萬人家夕煙氣 많은 집에서 저녁 짓는 연기는
추강의 그림이요 추강(秋江)
서산에 지는해는
원객의 시름이라 멀리서온 나그네의 시름이라
술잡고 루에올라 술을 가지고 정자에 올라
칼만지고 노래하니 낙민루에서 판상운으로 시를 짓다. “豐南門外有高樓” 云云
무심한 저구름은 풍산문 밖에 높은 누각이 있으니....
고향으로 도라가고
유의한 강적소리 유의강적(有意江笛) 강가에서 들려오는 피리소리가
객회를 더처서라 객회(客懷) 나그네의 서러움을 더하게 하는 구나
사향한 이내눈물 사향(思鄕): 고향을 그리워함
장강에 던저두고 오언율시 를 짓다. “ 馬出東城路, 明川天一方” 云云
백척루 내려와서 백척루(百尺樓): 높은 누각. 여기서는 낙민루
성내에 잠을자니 성내(城內)
서울은 팔백리요
명천은 구백리라
비맛고 유삼쓰고
함가령을 넘어가니 함관령(咸關嶺):함흥에서 홍원으로 가는 길에 있는 높은 고개
영태도 높거니와
수목이 더욱장타
남녀는 나려오고 남녀(藍輿)
대로는 셔렷고나 대로(大路)
노방에 큰비석이 로방(路傍): 큰길 옆
비각단청 요조하다 비각단정(碑閣丹靑) 요조(窈窕). 비각의 단청이 아름답다
태조대왕 미하실제 미(微) 태조 이성계가 왕이 되기 전에
고려국 장수되어
말갈이 승전하고 말갈족과 싸워 이겨서
공덕비 어재갓다 이곳에 공덕비를 세웠다
역마를 잡아타고
홍원읍 드러가니 홍원(洪原): 함경북도. 고을원은 군수. 서울에서 11일 거리
무변대해 둘러진데 무변대해(無邊大海): 끝이 보이지 않는 넓은 바다
읍양이 절묘하다 고을의 생긴 모양 절묘하다.
중화하고 떠나가니 길가에서 점심을 먹고
평가역이 숙소로다 평포역(平浦驛): 홍원에서 동쪽으로 40리에 있다
내온길 생각하면
천리만 되었난야
실갓한 근력이요 실 같은 근력(筋力)이요
거무갓한 목숨이라 거미 같은 목숨이라
천천이 길을가서
살고볼 일이로되
엄지랄 뫼셧으니 임금의 명의로 가는 것이니. 엄지(嚴旨)
일시나 유체하랴 일시유체(一時 留滯): 잠시도 머물 수 없음
죽기를 가일삼고 죽기를 각오하고
수화랄 불분하니 수화불분(水火不分): 물불을 가리 않음
만신에 땀이로다
성종지경 도야잇고 성종(成腫): 상처가 곪아 부스럼이 됨
골수에든 더위난 더위가 골수에 까지 침범하니
자고나면 설사로다
나장이 하난말이 금부 나장이 하는 말이
나으리 거동보니 거동(擧動)
엄엄하신 신관이요 엄엄(嚴嚴): 매우 엄함. 신관(身關):얼굴’의 높임말
위태하신 근력이라 위태(危殆)
하루만 조리하와
북청읍 묵사이다 북청(北靑): 서울에서 12일 , 1천 83리. 북병사가 부사겸임.
무식도다 네말이야
엄지중 일신이라 嚴旨中 一身
생사를 생각하고
일시나 유체하랴
일신의 죽고살기
하날에 달렷스니
네말이 기특하다
가다가 보잣노라
북청읍 숙소하고
남송정 도라드니 남송정(南松亭)
무변해색 망망하여 無邊.海色: 끝이 없는 아름다운 바다경치. 茫茫; 끝이 없음
동천이 가이업다 동쪽하늘이 가없다
만산은 첩첩하여 만산첩첩(萬山疊疊)
남향이 아득하다 남향(南鄕); 고향
마옥역 중화하고 마곡역(麻谷驛; 함경남도 단천에 있는 역참)에서 점심을 먹고,
마천령 다다르니 마천령(磨天嶺):함남 단천과 함북 학성사이에 있는 높이는 725미터
안밧재 육십리는 시를 짓기를 踰磨天嶺 “ 君命至嚴此嶺高, 三旬行見一秋高,
하날에 마차잇고 臣何敢曰臣無0, 以罪看山山太高“
공중에 달린길은
참바가치 서려잇네
다래덩불 얼커스니 다래넝쿨 엉켰으니
천일이 밤중갓고 천일(天日). 숲이 울창하여 몹시 어두움.
층암은 위태하여 층암(層巖). 층층이 쌓인 바위가 위태로워 보여서
머리우히 떠러질듯 금방 머리위로 떨어 질것 같다
하날인가 땅이런가
저승인가 이승인가
상상봉 올라서니 상상봉(上上峰): 산꼭대기
보난것이 바다히요
든난것이 물소리라
멧날을 길에이셔 여러 날을
이재랄 넘난고나 이 고개를 넘는 구나
이재를 너문후난
고향생각 전혀업다
천일만 은근하여 천일(天日), 은근(慇懃)
두상에 빈젓고나 두상(頭上)
임연역 중화하고 임명역(臨溟驛: 질주에 있는 역참. 현의 남쪽 61리에 있다 )
길주읍 드러가니 길주(吉州): 서울에서 16일 거리. 1천 4백 64리
성곽도 장커니와 성곽(城郭)도 높고 크고
여염이 더욱장타 여염(閭閻): 민가가 상당이 많음 (큰 고을)
비오고 바람부니
떠날길이 아득하고
읍내에 묵자하니
본관페 불안하다 본관(本官): 고을 원에게 폐 끼치고 싶지 않다.
원나오고 책방오며 당시 길주목사는 신태선(申泰善)으로 마중을 나왔다.
초면이 친구로다 신태선은 뒷날 함경도 병마절도사가 되었다.
음식은 먹거니와
포진기생 불관코나 布陣妓生 不關. 기생을 데리고 나와 대접하려 하니 사양하다
엄지를 뫼셧스니 귀양 가는 죄인에게 과분하다
꼿자리 불관하고
죄명을 가저스니
기생이 호화롭다
운박한 신명보면 운박(運薄)
분상한 상주로다 분상상주(奔喪喪主); 상복을 입은 상주 즉 죄인
기생을 물이치고
금연을 거더내니 금연(錦筵): 비단 방석
본관이 하는마리 길주목사가 하는 말이
영남양반 고집도다
모우하고 떠나서니 모우(冒雨): 비를 무릅씀.
명천이 칠십리라
이땅을 생각하니
묵특의 고토로다 묵특(冒頓): 옛날 흉노의 선우(왕)로 북방을 통일하여 흉노제국을
황성에 일부토난 황성일부토(荒城 一抔土): 버려진 무덤. 세운 인물
왕소군의 청총인가 王召君 靑冢(무덤): 한나라 명제 때 궁녀로 절세미인이 였으나
팔십리 장연못은 화공이 못생기게 그려 올려 한나라의 공주 대신, 흉노로 시집 갔 다. 명제가 화공들을 모두 죽였다. 이백, 백낙천등 많은 문인들이
왕소군, 명비곡 등 .많은 시가 있다. (註)
소무의 간양도라 소무(蘇武)의 간양도(間羊島) 한무제 때 흉노에 사신으로 갔다가 억류되어 북해에 유배되었다가 19년 뒤에 돌아와 흉노의 지리와 정보로 한무제의 흉노 정벌에 기여하여 관내후에 봉해졌다.
휘흥총 이릉귀는 위흥총(渭興塚). 이릉귀(李陵鬼). 이릉: 한무제 때 장군으로 흉노
지금의 원억이요 와 전쟁에서 억울하게 죽음. 사마천이 구하려다가 궁형에 처해짐.
백룡퇴 귀문관은 백룡퇴(白龍堆: 감숙성과 옥문관 사이에 천리에 걸쳐 있는 사막).
귀문관(鬼門關) 중국의 최남단 海南島에 있으며 중국 관원들이 좌 천되어 가던 곳. 귀양을 뜻함
압재갓고 뒷뫼갓다 앞에 있는 고개 같고 뒷산 같다
고창역마 잡아타고 고참역(古站驛) 명천 남쪽 36리 에 있는 역참.
배소로 드러가니 귀양지에 도착. 시 한수를 짓다. “ 今到明川地, 孤臣能業全”
인민도 번성하고 인민(人民). 번성(繁盛)
성곽도 웅장하다
여막에 드러안자 여막(旅幕)
배문을 부친후에 배문(配文): 유배 공문서를 고을 원에게 보냄
맹동원의 집을무러 맹동원(孟東元)
본관드러 정하여라 유배지 수령. 명천부사
본관이 전갈하고
공형이 나오면셔 공형(工刑): 공방과 형방아전
병풍자리 주물상을 병풍을 치고 주안상을 차려서
주인으로 대령하고 손님 옆에 대령하고
육각소리 압서우고 육각(六角); 광대
주인으로 나와안자
처소에 전갈하며
뫼시라 분부하니
슬푸다 내일이야 슬프구나 나의 일이
꿈에나 드러던가
이고지 어디메뇨 떠나는 나장에게 시 두수를 지어주다.“ 千里復千里, 苦生共死來” 운운
주인의집 차자가니 고을 관아
놉흔대문 너른사랑
삼천석군 집이로다
본관과 초면이라 명천부사 이동섭(李東燮)은 무과출신으로 충무공 이순신의 후손.
서로인사 다한후에 뒤에 단양군수를 지냈다.
본관이 하난말이
김교리 이번정배
죄업시 오난줄은
북관수령 아는배요
만인이 우런나니 여러 사람들이 울었으니
조금도 스러말고 조금도 슬퍼하지 말고
나와함께 노사이다 나와 함께 귀양 왔다고 생각하지 말고, 유람 왔다 생각 하소
삼현기생 다불러라 삼현육각(三絃六角)의 준말.
오날부터 노잣고나
그르나 내일신이 그러나 내 일신이
거적하난 사람이라 귀양살이 하는 사람이라
화당빈객 꼿자리에 화당빈객(花堂賓客): 귀한 손님.
기악이 무어시냐 기생과 노래가 가당하냐
구구이 퇴송하고 극구사양하며 돌려보내고
혼자안자 소일하니
경내예 선비드려 근방에 있는 선비들이 (인근 삼 읍)
문풍하고 청학하며 문풍(聞風). 청학(請學) 소문을 듣고 배우고자 하니
하나오고 두셋오니 하나 둘이 오다보니 60명이 되었다.
뉵십명이 되난고나 우연히 오언율시 2두를 짓다
책끼고 청학하며 “ 北塞南州客, 金門玉署郞, 行裝猶尺劍, 身勢忽0荒” 云云
글제내어 고느시라 책을 들고 찿아와 가르쳐 주기를 청하다
북관에 수령관장 北關首領官長 함경도의 고을 원과 관원
무변만 보았다가 무변(武弁): 무과출신 수령들만 보다가
문관의 풍성듯고 풍성(風聲). 글 잘한다고 소문난 홍문관 김 교리를 보고
한사하고 달여드니 한사코 졸라데니
내일을 생각하면 나의 일을 생각하면. 귀양 온 사람으로 학식이 없다고
남가라칠 공부업어 사양해도 전혀 듣지를 않는구나.
아무리 사양해도
모면할길 전혀업셔 모면(謀免)
일야로 끼고안자 일야(日夜). 밤낮으로 가지 않고, 그들이 찿아 오니
세월이 그리로다 시간가는 줄을 모르겠다.
향사나면 풍월짓고 고향생각이 나서 시를 짓다 偶成四難歌一關以偶悲懷
“ 雲嶺難難難, 難蜀道之難, 不難雲嶺難, 難天嶺難難, 難難雲嶺難, 不難天嶺難,
亂世路難難, 難難天嶺難, 不難世路難, 難難又難難, 難難楓葉邊, 城蘭老花凋“
심심하면 글외우니
절새에 고종이나 절새(絶塞). 고종(孤宗).변방으로 귀양 온 외로운 사람
시주에 회포부쳐 시주(詩酒) 술과 시로 회포를 풀다.
불출문전 하오면셔 불출문전(不出門前): 문밖을 나가지 않음
편케편케 날보내니
추풍에 놀던 꿈이 추풍(秋風)
변산에 서리온듯 변산(邊山)
남천을 바라보면 남천(南天): 고향 쪽 하늘
긔러기 처량하고 고향 쪽으로 날아가는 기려기를 바라보니 처량하기 작이 없고
북막을 구버보니 북막(北漠):
오랑케 지경이라
개가죽 상하착은 상하착(上下着). 쌍놈들도 가죽옷을 입다.
상놈이 다이벗고
죠밥피밥 기장밥은
거민의 조석이라 백성들의 아침밥 저녁밥이라
본관의 성덕으로
실갓한 이내목숨
달반을 걸엿드니 한달 반 정도를 지나 고향에서 뜻밖에 소식이 오다
천만의외 가신오며 천만의외(千萬意外). 가신(家信)
명록이 왓단말가 뜻밖에 고향에서 명록이가 집에서 보낸 편지를 가지고 찾아왔다
놀랍고 반가우니 명록(命彔)이는 고향집에서 부리던 사람
미친몸이 도엿고나 고향을 그리워하는 미친 사람 되었구나
절새예 잇든사람 변방에 귀양 온 내가
향산에 도라온듯 고향에 돌아온 듯
나도나도 이를망정 나 같은 사람에게 고향이 있었던가
고향이 잇다던가 고향소식을 듣고 시 “家伻忽至” 를 짓다. 가팽은 집에서 부리는 사람
서봉을 찌저보니 편지 봉투를 찢어 보니
정찰이 맷장인고 정다운 편지 가 몇 장인가
폭폭이 친척이요
면면이 가향이라 하나하나가 모두 집안의 향기라
지면에 자자획획 紙面의 字字劃劃
자질의 눈물이요 자질(子姪): 아들과 조카
옷우에 그림빗은 옷에 묻어있는 얼룩은
안해의 눈물이라 아내의 눈물이라
소동파의 조운인가 소동파(蘇東波)의 조운(朝雲): 아침에 낀 구름.
양대운우 불상하다. 양대운우(湯臺雲雨)
그중에 사람죽어 남실(南室)이 산후에 젊은 나이로 죽다.
존몰이 되단말가 존몰(存沒)
명록이 데코안자 명록이를 데리고 앉아서
누수로 문답하니 루수(淚水). 눈물을 비 오 듯 흘리면서 묻고 대답하니
집떠난지 오래이니
그후일을 어이아리
만수천산 멀고먼대 만수천산(萬水千山)
내어찌 도라가며
덤덤이 사인회포 첩첩이 쌓인 회포
다그릴수 잇단말가 다말 할 수 있겠느냐
명록아 말드러라
무사이 돌아가서
우리집 사람트러
사랏드라 전하여라
죄목이 개가우니 죄목이 가벼우니
은명이 쉬우리라 은명(恩命). 멀지 않아 방면될 것이다
거연이 추석날에 거연(居然): 평안하고 조용한 상태 . 지나날 추석이 되면
가가에 상묘하니 집집마다 산소에 성묘하니
우리집 사람들도
쇼분을 하나니라 소분(掃墳) : 산소를 깨끗하게 소제하는 것.
본관이 하난마리 명천부사가 하는 말이
이곳에 칠보산은 칠보산(七寶山): 현의 동쪽 56리에 있다. ( 첨부된 명천부 지리지)
북관중 명승지라
금강산과 가치하니 금강산에 비교할 만큼 아름다우니
칠보산 한번가셔
방수심산 엇드한고 방수심산(訪水尋山) ; 산 구경
나도역시 조커니와
의리예 난처이라 의리난처(義理難處)
원지에 족인몸이 멀리 쫒겨난 사람이
형승에 노난일이
분의예 미안하고 분의(分義)
첨영에 고이하니 첨령(瞻聆): 여러 사람이 보고 듣는 일
마음에 조컨마는
못가기로 작정하니
주수의 하난마리 주수(고을원) 명천부사가 하는 말이
그르치 아니하리
악양루 황강경은 악양루(岳陽樓: 동정호에 있는 정자)와 황강(黃岡)의 경관은
왕등의 사적이요 왕등(王騰): 송나라 때 등자경(藤子京)이 이곳 태수로 좌천되면서 퇴 락해진 누각을 증수하게 되는데, 그때 범중엄을 초청하여 유명한 악 양루기(岳陽樓記)를 짓게 하였다.
적벽강 저정노름 적벽강(赤壁江: 중국 호북성 황주에 있다) 저정(저亭)
구소의 풍정이라 구양수와 소동파의 풍류라
김학사 칠보산이 학사(學士): 홍문관 부수찬 이상 관료의 별칭. 한림학사.
무산험 잇스리요 무슨 흠이 있겠는가
그말을 반겨듯고
황연이 이러나서 황연(晃然): 환하게 밝은 모양
나귀에 술을 실고
칠보산 드러가니 이미 인근 3읍의 선비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구름갓한 천만봉이
화도강산 광경이라 畵圖江山光景 경치가 너무 좋아 그림을 마치 보는 듯
박달령 너머가셔 박달령(柏檀嶺)
금강동 드러가니 금강동(金剛洞)
골골이 물소래난
백옥을 찌져잇고 백옥(白玉)이 굴러가는 소리를 내고
봉봉이 단풍빗츤
금수장을 둘너셔라 금수장(錦繡帳): 비단장막
남여랄 급히타고 藍輿: 의자와 비슷하고 뚜껑이 없는 작은 가마.
개심사 들어가니 개심사(開心寺):칠보산에 있는데 경관이 뛰어나고 승려 22명이 있다
원산은 그림이요 원산(遠山: 멀리보이는 산
근봉은 물형이라 근봉(近峰) 물형(物形) 물건의 생김새
육십명 선비들이
압희서고 뒤예서니 부군을 따라 공부하는 인근 3개 고을 선비들이 먼저와 기다렸다
풍정도 조커니어와
광경이 그지업다
창망한 지는해에 창망(滄茫)하다: 넓고 멀어서 아득하다.
개심사 드러가니
밤한경 세운후에
미명에 이러나서 미명(未明): 날이 밝기 전
쇼세하고 문을여니 소세(掃洗): 세수
기생둘 압헤와서 기생 두 사람이 찾아와서
현신하고 하난말이 현신(見身):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처음으로 자신을 보임
본관삿도 분부내어 본관사또(本官使道): 고을 원의 명령으로
김교리님 칠보산에 김교리 같은 풍류 시인에게 너의 같은 기생이 없이 무슨 재미가
너업시 노름되랴 있겠느냐. 김교리는 사양을 하겠지만 내가 할 도리는 해야 한다
당신은 사양하되
내도리야 그럴손가
산신도 섭섭하고 산신(山神)
원학도 슬프리라 원학(猿鶴); 원숭이와 학.
너의들 송거하니 송거(送去): 보내다
나으린들 엇지하랴
부디부디 조심하고
칠보청산 거행하라
삿도님의 분부끄태
소녀들 대령하오 小女들 待令하오
우숩고 붓그롭다
본관의 정성이요
풍류남아 시주객은 風流男兒 詩酒客은
남관의 낫뿐이네 남관(南關) 남쪽에 사람 중에 나밖에 없을 겄이다
신선의 곳에와서 신선이 사는 곳에서 오면 (나도 신선인데)
너랄어찌 기하리요 너를 어찌 (忌) 피하겠느냐
이왕에 너히들이
칠십리 등대하니 명천읍에서 개심사까지 70리 길을 왔으니
풍류남아 방탕정이 風流男兒 放蕩情: 풍류를 아는 장부의 호탕한 정.
매몰하기 어려워서 매정하게 뿌리 칠 수 없어서.
방으로 드라하고 방으로 들어오라 하여
이름뭇고 나물으니 이름 묻고 나이 물으니
한년은 매향인데 한 기생의 이름은 매향(梅香)인대
방년이 십팔이오
하나넌 군산월이 군산월(君山月)
십구세 꼬치로다 십구세 꽃이로다.
화상불너 음식짓고 중을 불러서 아침을 짓게하고
노래시켜 드러보니
매향의 평우죠는 매향이 부르는 평조와 우조의 가락은
운우가 흐터지고 구름과 비가 흩어 지 는 듯하고
군산월의 양금쇼래 군산월이 연주하는 양금(洋琴)소리는
만학천봉 푸르도다 만학천봉(萬壑千峰)이 더 푸른 듯하다
지로승 압세우고 지로승(指路僧): 길 안내하는 중
두기생 엽헤끼고
연하만고 깁흔고세 연하만고(煙霞萬古):고요한 산수의 경치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개심대 올라가니 개심대(開心臺)
단풍은 비단이요
수성은 거문괴라 물소리는 거문고라
창고봉 노적봉과 창고봉(倉庫峰). 노적봉(露積峰)
만사암 천불암과 만사암(萬獅巖). 천불암(千佛巖)
탁자봉 주작봉은 탁자봉(卓子峰), 주작봉(朱雀峰)
그림으로 둘너지고
물형으로 놉고놉다 물형(物形): 물건의 생김새.
아양누 한곡죠를 아양루(峨陽樓)
두기생이 불너떠니
만산이 더푸르고
단풍이 더불도다 단풍(丹楓)이 더 붉다
옥수로 양금치니 玉手 洋琴
숑풍인가 물소랜가 송풍(松風)인가 물소린가.
군산월의 손결보소
곱고도 고울시고
춘산에 풀순인가 봄에 산에 나는 새싹
안동밧골 금난인가 安東 받골 금란(錦蘭)
양금우에 노난손이
보드랍고 알스럽다 안쓰럽다
남여타고 전향하야 남여를 타고 전향(轉向): 방향을 바꾸어서
하마대 올라가니 하마대(下馬臺)
아까보든 산모양이
홀지에 환형하여 홀지(忽地). 환형(環形). 갑자기 형태가 바뀜
모난봉이 둥구러코
히든바우 푸르도다
절벽에 색인이름 석공에게 명하여 “瀛洲學士 金鎭衡”이라고 세기다.
만조정 물색이라 영주(瀛洲)는 신선이 산다는 삼신산의 하나.
산을안고 도라가니
방선암이 여기로다 방선암(訪仙巖)
기암괴석 입입하니 奇巖怪石立立
갈수록 황홀하다
일리를 드러가니 일리(一里)를 더 들어가니
금강굴이 이상하다 금강굴(金剛窟)
집가튼 놉흔굴이
석색창태 외로와라 석색창태(石色蒼苔)
연적봉 기이하고 연적봉(硯滴峰)
회상대 향하다가 회상대(會像臺)
두기생 간데업서
찾노라 골몰터니
어디셔 일셩가곡 일성가곡(一聲歌曲)
중천으로 나려오니 중천(中天)
놀내셔 바라보니
회상대 올라안자
일지단풍 꺼거쥐고 일지단풍(一枝丹楓)
녹의홍상 고은몸이 녹의홍상(綠衣紅裳)
만장암 구룸우에 만장암(萬丈岩)
사람을 놀랠시고
어와 기절하다 기절(奇絶):갑자기 몹시 놀람.
이몸이 이른고세 내가 온 곳이
신선의 지경이라 신선 지경(神仙地境): 신선이 사는 곳
평생의 분연으로 분연(分緣): 평생에 무슨 인연이 있어서
경구에 자취하여 경구(瓊區): 신선이 살고 있는 곳에 스스로 찾아와서
바람에 부친드시
이광경 보앗고야
연적봉 지낸후에 연적봉(硯滴峰)
선연을 따라가니 선연(仙緣): 신선이 거니든 길을 따라
연화봉 절바우난 연화봉(蓮花峰) 절 바위는
청천에 솟아잇고 청천(靑天)
배바우 서책봉은 서책봉(書冊峰)
안전에 솟아잇네 안전(眼前); 눈앞에
생황봉 보살봉은 생황봉(笙篁峰)
신선의 굴혈이라 굴혈(掘穴)
매향은 술잔들고
만장운 한곡조로 만장운(萬丈雲)
군산월 안즌거동
아조분명 꼬치로다 아주 분명한 꽃이로다.
오동목판 거문고에 오동목판(梧桐木板)
금사로 주를뫼아 금사(錦絲): 비단 실로 줄을 메어
대쪽으로 타는양이 대나무로 타는 모양이
거동도 곱거니와 거동(擧動)
섬섬한 손길끄희 섬섬옥수(玉手閃閃):가냘프고 고운 여자의 손을 이르는 말.
오색이 영농하다 오색령농(五色伶濃)
너의 거동 보고나니
군명이 엄하여도
반할변 하얏고야 반할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영웅열사 업단마른 영웅열사(英雄烈士) 없다는 말은
사책에도 인난이라 사책(史冊)에도 있으니
내마음 단단하나
너에게 큰말하랴
본거이 큰병이요
아니볼세 약이런가
이천리 절새중에 이 천리 절새(二千里絶塞): 이 천리 밖 변방에서
단정히 몸가지고 단정(端正)
거적을 잘한거이 거적(居謫)
아조모도 네덕이라 이모든 것이 너의 덕이다
양금을 파한후에
절집에 나려오니
산승의 찬물보소 산승(山僧)의 찬물(饌物): 절 음식
정결하고 향기롭다 정결(淨潔)하고 향기(香氣) 롭다
이튼날 도라오니
회상대 노든이리 회상대(會像坮): 칠보산에서 놀던 일이
전생인가 몽중인가 전생(前生)인가 몽중(夢中)인가
천애예 이향객이 천애(天涯)에 이향객(離鄕客)이
이를쥴 아랏던가
흥진하여 도라와셔 흥진(興盡): 흥이 다함
수노불너 분부하되 수노(首奴)불러 분부(分付)하기를
칠보산 유산시난 칠보산(七寶山)에서 유산(遊山) 할 때
본관이 보내기로 명천부사가 (기생을)보내어서
기생을 다렷으니 기생과 같이 즐겼으니
도라와 생각하니
호화한중 부란하다 호화(豪華)한 중 불안(不安)하다
다시난 지휘하여 지휘(指揮)
기생이 못오리라
선비만 다리고서
시쥬랄 기록하니 칠보산 잡영과 칠보산 유산기를 짓다
청산은 그림되야
술잔에 떨어지고
녹수는 글이 도야 녹수는 문장이 되어
조위우희 단청이라 종이 위에 단청이라
군산월 녹의홍장
깨엿구나 꿈이로다
일월이 언제던고
구월구일 오날이야 중구(重九): 중양절
당한림 이적선은 唐翰林 李謫仙: 당나라 한림학사 이태백이 스스로 적선이라 하였다
용산에 놉히 취코 용산(龍山)에 올라가 크게 취하고
됴선에 김학사는 조선의 김학사(홍문관의 응교이하 부수찬을 학사라 칭함) 는
재덕산에 올랏고나 재덕산(在德山)에 올라가 고향에서는 重九 지낼 때를 생각하다
백주황화 압희노코 백주(白酒: 막걸리) 황화(黃花: 黃菊)앞에 놓고
남향을 상상하니 남향(南鄕): 고향
복병산 단풍경은 복병산(伏屛山) 단풍경(丹楓景)
이활의 독차지요 이활(而活): 족질 달연(逹淵)의 字. (주) 참조
이하에 황국화는 이하(籬下): 울밑에 황국화는
주인이 업엇고야 주인이 없구나
파려한 늘근안해 파려한 늙은 아내
술들고 슬펏던가
추월이 낫갓하니 가을 달이 휘영청 대낮 같이 밝으니
조운의 회포로다 조운의 회포(朝雲懷抱): 소동파의 남천고사(南遷故事)
칠보산 반한몸이
소무굴 보려하고 소무굴(蘇武窟)을 보려고
팔십리 경성땅에 경성(鏡城) (명천에서 80 리 거리)으로 가는 길에
장연으로 드러가니 장연(長淵)
북해상 대택중에 북해(北海)의 큰 못 가운데에 있는
간양도 외로와라 間羊島. 양도(羊島): 현의 남쪽 1백 54리에 있는 섬
추광은 가업난대
갈꼬치 슬프도다 가을꽃이 서글프다
창파는 망망하여 창파(蒼波)는 망망(茫茫)하여
해색을 연하엿고 해색(海色)을 연(連)하였고
낙엽은 분분하여 낙엽은 어지러이 날리는 것은
천고에 날앗고나 그 옛날부터 그러하였으리라
충신의 놉은자최 충신의 높은 자취
어대가 차자볼고
어와 거룩할사
쇼중랑 거룩할사 소중랑(蘇中郞): 소무(蘇武)를 말함. 中郞將(벼슬이름)
나도나도 이를망정
주상님 갤이떠나 임금의 곁을 떠나
절역의 몸을떤져 절역(絶域)으로 떠나와서
회포도 슬푸더니
오날날 이섬우의 간양도 팔경 시를 지음
정경이 가타고나 정경(情景)
낙일에 칼을집고 낙일(落日)
글짓고 도라서니
변산의 풍설중에
촉도갓한 기리로다 촉도(蜀道): 중국 四川省으로 통하는 극히 험준한 길.
귀문관 도라드니 촉(蜀)의 잔도(棧道), 처세하기 어려운 상황을 이르는 말.
음참하고 고이하다 음참(陰慘)하다: 음침하고 참혹하다. 괴상하다
삼첩으로 둘러지니 삼첩(三疊)
일신이 송구하다 송구(悚懼): 두려워하다. 황송해하다
노방에 일분토난 路傍 一墳土 길가에 있는 저 무덤은
왕쇼군의 청총인가 왕소군의 무덤인가(주3)
처량한 어진혼이
백양이 슬프도다 백양(白楊): 사시나무. 여기서는 왕소군이 시집간 흉노 땅. (추운 땅)
춘풍에 한을 맷고 春風은 중국 한나라 궁녀로 흉노 선우에게 억지로 시집감을 비유
홍협을 우럿고나 이태백의 시 왕소군에 나오는 시 구절.
당당한 왕패소리 부군이 시 “題 王召君塚”을 짓다.
월야에 우나니라 왕소군이 타고 가는 말방울 소리가, 달밤에 우는 소리와 같다
술한잔 가득부어 누구의 무덤인지 알수 없으나 귀양온 자신을 생각하며, 그 무덤을
방혼을 위로하고 가련한 왕소군으로 여기고 술한잔을 따라주는 풍류객의 면모가보인다
유정으로 드러오니 유정(柳亭)
명천읍이 십리로다
탄막에 드럿다가 탄막에 들어가 쉬고 있는데
경방자 달여든다 경방자(京房子): 여기서는 홍문관 심부름꾼. 가 달려오니
무산기별 왓다던가
방환지명 나렷으니 방환지명(放還之命) 방면되었으니 돌아오라는 명이 내려지니
천은이 망극하여
눈물이 방방하다
문적을 손에들고 문적(文籍): 공문서
남향하여 백배하니
동행의 거동보소
치하도 거룩하다
식전에 말을타고 밥도 먹지 않고
주인을 차자가니 여기서 주인은 명천부사
만실이 경사로다 만실(滿室)이 경사(慶事)로다
죄명이 업섯스니
평인이 되엿고나 평인(平人)
천은을 덥헛스고 천은을 입어서
양계를 다시보니 양계(陽界): 밝은 세상.
삼천리 고향땅이
디척이 아니신가 지척(咫尺)
격장하고 못오더니 격장(隔墻):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웃함.
군산월이 대령한다
천연한 거동으로
우스며 치하하니
나으리 해배하니 해배(解配): 귀양에서 풀림
작히작히 감축할가
칠보산 우리인연
춘몽이 아득더니 춘몽(春夢)
이날에 너를보니
이것도 군은인가 군은(君恩)
그리다가 반긴정이
맛나고도 향기롭다
본관의 거동보소
삼현육각 거나리고
이곳으로 나오면셔
치하하고 손잡우며
김교린가 김학산가 김 교리 인가 김 학사 인가
셩군의 은택으로 성군(聖君), 은택(恩澤)
나도이리 감축거던 감축(感祝)
임자야 오작할가
홍문학사 정든사람 홍문학사(弘文學士)
성군의 은택인가
일시나 천케하랴
지금으로 제안하고
그길로 나완노라
이더지 생각하니
감사하기 그지업다
군산월을 다시보니
새사람 되엿고나
형극에 석긘난초 형극(荊棘) 난초(蘭草): 가시 밭 속에 있던 난초를
옥분에 옴겻고나 옥분(玉盆)에 옮겨 놓은 듯
진애예 야광주 진애(塵埃:먼지 속에 뭍 혀 있던)에 야광주(夜光珠)
방물군자 안횟던가 방물군자(方物君子) 아니던가
신풀에 무친칼리
누를보고 나왓던고
꼿다운 어린자딜
임자랄 만횟고나
금병화촉 깁흔밤과 금병화촉(錦屛花燭)
화조월석 발근나레 화조월석(花朝月夕)
글지으면 화답하고
술가지면 동배하니 동배(同盃)
정분도 깁거니와 정분(情分)
호사도 그지업다 호사(豪事)
시월에 말을타고 시월(十月)
고을을 차자가니
본관의 성덕보소
남복짓고 승교내여 남복(男服) 승교(乘轎)
이백냥 행자내며 행자(行資)
저하나 따로쥬며
임행에 하난마리 임행(臨行): 떠나는 길
뫼시고 잘가그라
나으리 유경시에 유경(留京)
내게야 내외하랴 내외(內外)
천리강산 대도상에 千里江山 大道上
김학사의 꼬치되어 꽃이되어
비위를 마초면셔
조케조케 잘가그라
승교를 압서우고 승교(乘轎): 가마
풍뉴남자 내다르니 풍류남자(風流男子)
오든길리 넙고넙다
길주읍 드러가니
본관의 거동보소
금병화촉 너른방에 금병화촉(錦屛花燭)
기악이 가득하다 기악(妓樂)
군산월 하나이나 군산월 하나 만으로도
풍정이 자족한대 풍정(風情)이 자족(自足)
면면이 군산월이 면면(面面)
금상첨화 되엿고나 금상첨화(錦上添花)
신조에 발행하여 신조발행(晨朝發行): 새벽에 길을 떠남
임연역 중화하니 임연역: 역참
창해난 망망하여 창해망망(蒼海茫茫)
동천이 그지업고 동천(東天)
변산 중중하여 변산중중(邊山重重)
면면이 섭섭하다
추풍에 채를들고 추풍(秋風)
성진읍 드러가니 성진(城津): 지금은 함경도 학성군.
북평사 마촌다시 당시 북평사는 김완식(金完植)으로 예문관에 있다가
두문관 합석하니 북평사로 나왔는데 부군과 경연에서 4개월 같이 있었다
삼읍관가 군병이요 三邑官家軍兵
길주 단천 홍원이라 吉州 端川 洪原 모두 함경도의 고을
금촉이 영농한대 錦燭 玲瓏
평사의 호강이라 북평사 때문에 호강을 하다
본관이 하난마리
학사의 따린사람
몰골이 기이하다 기이(奇異)
서울겐가 북천겐가
청직인가 반당인가 반당(伴倘): 관아에서 부리던 사환.
일홈은 무엇이며 이름은 무엇이며
나헌디금 멧살인가 나이는 몃살인가
숀보고 눈뫼보니
남중일색 처음보네 男中一色
우스며 대답하되
북도아희 대려다가 北道
남주에 옴긴후에 南州
장가드려 살라하네
종적을 감추우고
풍악중에 안잣드니 風樂
평사가 취한후에
김교리 청지기야
내겻해 이리오라
위령을 못하여셔 위령(違令): 명령을 어길수 없음
공순이 나아드니 공순(恭順)
숀내여라 다시보자
어찌그리 기이한야
총모피 토수속에 총모피(葱毛皮) 토수(吐手)
옥수를 반만내니 옥수(玉手)
덥석들어 쥘라할제
뻬치고 일어서니
게집의 조분소견
매련코 매련하다
산아해 모양으로
손잡거던 손을쥬고
희롱이 천연하면
왜여왜여 하련마는
가득이나 수상하여
치보고 나리보며
군관이나 기생이나
면면이 보든차에
매몰이 빼친난양
제버릇 덥흘손야
평사가 눈치알고
몰랏노라 몰랏고나
김학사의 안회인줄
몰랏노라 몰랏도다
만당이 대소하고 滿堂大笑
뭇기생 달여드니
앗가보든 남자몸이
게집통정 하갯고야
양색단 후루막이
옥판다라 왜압쓰고
꼿밧해 썩여안자 꽃밭에(기생들 사이에)
노래를 밧고주니
천상에 옥동인가 天上玉童
화원에 수나윈가 화원의 나비인가
달울며 일출구경
망양정에 올라가니 망양정(望洋亭)
금촉에 꼬치피고 금촉(錦燭) 해뜨는 모습이 밝는 촛불같다.
옥호에 술을부어 옥호(玉壺): 술병
마시고 취한후에
동해를 건너보니
일색이 오르면셔
다홍바다 되난고나
부상은 지척이요
일광은 슬회로다
대풍악 잡아츠고
해상을 구버보니
부유갓한 이내몸이 부유(浮游)
성은도 망극하다
북관을 못왓드면
이노름 엇지하며
급제곳 안햇으면
군산월이 게서올라
평사를 이별하고
마천령 넘어가니
구룸우에 길을두고
남녀로 올라가니 남녀(藍輿)
군산월 압서우면
안전에 꼬치피고 안전(眼前)
군산월 뒤서우면
후면이 선동이라 선동(仙童)
단천에 중화하고
북청읍 숙소로다
반야에 깁은정은 반야(半夜)
양인만 아나니라
금석갓한 언약이요
태산갓한 인정인데
이원에 중화하고 이원(利原): 서울과의 거리는 1천 1백 89리이다.
영흥읍 숙소하니 영흥(永興)
본관이 나와보고
밥보내고 환대하네
고을도 크거니와
기악이 금즉하다 妓樂으로 끔찍이 대접하다
대풍악 파한후에
행절이만 자바두니
고음도 고을시고
청수부용 정신이요 淸秀芙蓉 精神
운우양태 태도로다 雲雨양태
효두에 발행하여 날이 밝기 전에 길을 떠남.
덕원정평 지난후에 德原. 定平 고을 이름
고원으로 드러가니 고원(高原): 고을 이름
주수의 반기난야 주수(고을 수령)
내달라 손잡으며 달려와서
경사를 만낫고나
문천에 중화하고 문천(文川) 서울과의 거리는 6백 68리이다
원산장터 숙소하니
명천이 천여리요
서울이 육백리라
주막집 깁흔방에
계명에 소세하고 닭울때 세수하고
군산월 깨와시니
몽롱한 수해당이 濛濃 海棠
이슬에 후진거동
귀코도 아름답다
유정하고 무정하다
예바구 할거시니 할 이야기가 있으니
네잠간 드러보리
이전에 장대장이 以前에 張大將이
제주목사 과만후에 제주목사로 있다가 임기를 마치자
정드럿든 수청기생
바리고 나왓더니
바다를 건난후에
차마잇디 못하여셔
배잡고 다시건너
기생을 불러내여
허리에 비수빼어
옥용을 버힌후에
도라와 대장하고
만고명인 되얏나니
나는본데 문관이라
무변과 다르기로 무관과 다르니
너날오날 보내는게
장대장 비수로다
이내말 드러보라
내본대 영남에서
선비의 졸한몸이
천리를 기생실고
천고에 업난호강
끈나게 하엿스니
죄명을 어제벗고
협창하고 서울가면 협창(挾娼): 기생을 옆에 끼고,
분의예 미안하고 분의(分義)
모양이 왯드니라
부듸부듸 갈가거라
다시볼적 잇나니라
군산월의 거동보소
깜짜기 놀내면셔
원망으로 하난마리
바릴심사 계시거던
즁간에 못하여셔
어린사람 호리다가
사고무친 천리박게
개불물어 던지다시
이런일도 하나잇가
나으리 성덕으로
사랑은 배부르나
나으리 무정키로
풍전낙화 되엿고나
오냐오냐 내본뜨전
그르치 아니하여
십리만 가자든게
천리가 되엿고나
저도부모 잇난게라
원이한 심회로셔 원이(遠離)안 심회(心懷)
우스며 그리하오
눈물노 그리하오
해성은 우레갓고 바다소리.
촉광은 명멸하되
홍상에 눈물나려
학사두발 히겟노라 너의 눈물로 나의 머리가 더 희어지겠구나
승교에 다마내야 가마에 태워 먼저 돌려보내니
져먼저 회송하니
천고에 악한몸은
내하나 뿐이로다
송군산월시(送 君山月 詩)
학사풍류태번화(學士風流太繁華) 학사의 풍류는 번성하고 화려하여
천리영래마상화(千里嶺來馬上花) 말위에 꽃을 싣고 천리를 같이 왔네
녕별이안이별수(寧別爾顔離別手) 손잡고 얼굴 보며 아쉬운 이별하니
홍장금일숙이가(紅粧今日宿離家) 꽃 같은 너의 모습 꿈속에나 그려 볼가. (의역하였음)
말타고 도라서니
안변이 삼십리라
남정의 간장인들
인정이야 업슬소냐
이천리 장중주랄 손안의 구슬을 하루아침에 잃어 버렸구나
일조에 노첫고나
풍정도 잠간이요
흥진비래 되겟고나 흥진비래(興盡悲來)
안변읍 드러가니
본수의 하난마리
엇지그리 박졍하오
판관도 무섭던가
남의눈이 무어신가
장부의 헛된간장 허(虛)한
상하기 쉬우리라
내기생 봉선이랄
남복시켜 압세우고
철령까지 동행하여
회포랄 잇게하소
봉선이 불너내어
따라가라 분부하니
자색이나 몰골이나 자색(姿色)
군살월이 모양인대
깁고도 깁흔정이
새낫보고 노힌런가 네 얼굴 보고 마음이 노이겠는가
풍설은 아득한데
북천을 다시보니 북천(北天)
춘풍에 날린꼬치
진흘게 궁으난듯
추천에 외기러기 추천(秋天)
짝이업시 가나니라
철령을 넘을 적에
봉선이 하직하니
엇구진 이네몸이
이근것이 이별이라 이별하는데 익숙하다.
다시엇지 못만나랴 봉선이에게 시를 지어주고, 다시 오언절구 두수를 짓다.
남녀로 재넘으니
북도산천 끗이난다
서룸도 끄치나고
인정도 끄치나고
풍류도 끄치나고
나문거시 귀흥이라 귀흥(歸興): 돌아가는 즐거움
회양에 중화하고
김화김성 지난후에
영평읍 드러가서
철원을 발븐후에
포천읍 숙소하니
황성이 어듸멘야
귀흥도 도도하다
갈적에 녹음방초
올적에 청포로다
적객이 어재더니 적객(謫客)
영주학사 오나리야
술먹고 말을타면
풍정이 절노나고
산보고 물건너면
노래로 겨웟고나
만사여생 이몸이야 만사여생(萬死餘生)
천고호걸 이몸이야
축석령 넘어가니
삼각산이 반가와라
중천에 소삿스니
귀흥이 놉하잇고
만수의 상화피니 만수(萬樹)에 상화(霜花): 많은 나무에 서리 꽃이 피어있으니
설상의 춘광이라 눈위에 봄 빛이라
삼각에 재배하고 삼각산 밑에 대궐이 있다
다락원 드러가니
관주인 마중나와 관주인(館主人: 역승)
우룸으로 반길시고
동대문 드러가니
성상님이 무강할사
행장을 다사리고
환고향 하나고나 환고향(還故鄕)
조령을 넘어서니
영남이 여기로다
오천셔 밤세우고
가산에 드러가니 가산(家山): 고향산천
일권이 무양하여 일권(一眷) 집안
이전이든 모양이라
어린것 반갑고나
잇글고 방에드니
애쓰든 늘근안회
붓그러워 하난고나
어여불사 동문안이 동문안: 수득(壽得)이 모.
군산월이 네왓느냐
박잔에 술을부어
마시고 취한후에
삼천리 남북풍상
일장춘몽 깨엿고나
어와 김학사야
급제늣다 한을마라
남자의 천고사업
다하고 완나니라
강호에 편케누어
태평으로 늘게되면
무산험이 또이스며
구할이리 업나니라
글지어 기록하여
부녀분들 보신후에
후생에 남자되어
내노릇 하게하소.
철종 계축 동 시월에 홍문관 부수찬 지제교겸 선전관 문신
청사산인 서
(주1)양금: 채로 줄을 쳐서 소리를 내는 현악기의 하나. 사다리꼴의 오동나무 겹 널빤지에 받침을 세우고 놋쇠로 만든 줄을 열네 개 매어 대나무로 만든 채로 쳐서 소리를 낸다. 금속성의 맑은 음색을 지녀 영산회상과 같은 관현악 또는 단소와의 병주(並奏) 따위에 쓴다.
조선 영조 때 아라비아에서 청나라를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주2)
김달연: 1809년(순조9)~1856년(철종7) 초산영감보다 8년하
본관은 의성, 자는 이활(而活). 호는 병명(甁塢) 김진낙(金鎭洛)의 아들로
헌종(憲宗) 6년 문과에 급제. 사헌부 지평을 지냈다. 문집으로 持平公遺稿가 있다
(주3)
청총(靑塚) : 한(漢) 나라 왕소군(王昭君)의 묘(墓)를 말한 것임. 왕소군이 오랑캐 추장의 아내로 잡혀가서 죽었는데, 그 지방의 풀들은 다 백초(白草)뿐이나 오직 소군의 무덤에는 청초(靑草)가 돋았음. 두보(杜甫)의 시에, “홀로 청초만이 남아서 황혼을 향한다[獨留靑塚向黃昏].”라 하였음. 유명한 “春來不似春”도 왕소군 시의 한구절.
주) 황소군에 대한 시
왕소군(王昭君) 이백(李白)
왕소군 치맛자락 구슬안장 훔치듯/ 소군불옥안 (昭君拂玉鞍)
말위에 올라타니 붉은 빰이 울었네/ 상마제홍협 (上馬啼紅頰)
오늘은 한나라 궁녀이나 / 금일한궁인 (今日漢宮人)
내일은 오랑케 첩이라네 / 명조호지첩 (明朝胡地妾)
왕소군 (1) 백낙천(白樂天)
얼굴은 오랑케 먼지에 덮혔고, 머리는 바람에 휘말렸으며/ 만면호사만빈풍(滿面胡沙滿鬢風)
눈썹 검정흐리고 볼의 연지 지워 졌네 / 미소잔대검소홍(眉銷殘黛臉銷紅)
마음쓰리고 몸고달퍼 초췌한 모습 / 수고신근초췌진(愁苦辛勤顦顇盡)
이제 바로 초상화 같이 볼품없어라. / 여금각사화고중(如今却似畵圖中)
왕소군 (2) 백낙천
한나라로 돌아가는 사신에게 전할 말을 부탁하노라 / 한사각회빙기어(漢使却廻憑寄語)
황금으로 미인을 다시 사갈 날자는 언제일가요? / 황금하일속아미(黃金何日贖蛾眉)
임금께서 저의 얼굴이 어떻드냐 물으셔도 / 군왕약문첩안색(君王若問妾顔色)
한나라 대궐에 있을 때만 못하다 하지마세요! / 막도불여굴리시(莫道不如宮裏時)
왕소군(王昭君) 안축(安軸)
군왕의 황금각을 새벽에 여니 / 君王曉開黃金闕
전거가 덜커덕덜커덕 북쪽 사자 떠난다 / 氈車轔轔北使發
명비가 눈물을 머금고 초방에서 나오니 / 明妃含淚出椒房
봄바람은 뜻이 있어 귀밑머리에 분다 / 有意春風吹鬢髮
한산과 진새가 점점 멀어가나니 / 漢山秦塞漸茫茫
들리는 슬픈 피리 소리에 가을밤이 길어라 / 逆耳悲笳秋夜長
애닲아라 저 궁려(흉노(匈奴)가 살던 집)의 한 조각 달은 / 可憐穹廬一眉月
일찍이 대 앞의 궁중 모양의 단장을 비추었거니 / 曾照臺前宮樣粧
이 몸을 바쳐 오랑캐와 함께 살아가려니 / 將身已與胡兒老
다만 고운 얼굴이 빨리 시들지 않을까 걱정한다 / 唯恐紅顔凋不早
비파줄 속의 다하지 못한 정은 / 琵琶絃中不盡情
해마다 무덤에 나는 푸른 풀에서 보리로다 / 塜上年年見靑草
명비의 무덤[明妃塚] 진퇴격(進退格) 김종직
한제가 본래부터 경국지색을 구했는데 / 漢帝本求傾國色
명비가 어찌하여 오랑캐 문정에 떨어졌나 / 明妃何事落氈庭
스스로 박명한 탓으로 쌍궐을 하직한 것이요 / 自緣薄命辭雙闕
돈이 없어서 일생을 그르친 것은 아니라오/ 不爲無金誤一生
달빛어린 변새에는 넋이 맥맥이 이어지고 / 夜月龍沙魂脈脈
봄바람 부는 무덤에는 봄풀이 푸르러라 / 春風馬鬣草靑靑
무례한 되놈들도 오히려 막배를 하는데 / 胡雛縱牧猶膜拜
더구나 중국 천하 나그네의 마음이랴 / 何況中華過客情
명비원(明妃怨) 5수 서거정
북풍이 눈을 불고 흑산은 깊기만 하여라 / 朔風吹雪黑山深
조국 떠난 만리 밖 명비의 마음을 어이할꼬 / 萬里明妃去國心
한 곡조 비파 소리를 그 누가 알아들을꼬 / 一曲琵琶誰解聽
저문 구름 남북에 애간장 끊는 소리로다 / 暮雲南北斷腸音
음산 만 리에 한의 넋이 갈 곳을 몰라라 / 陰山萬里漢魂迷
청총엔 사람 없고 달만 나직이 떠 있구나 / 靑塚無人月欲低
유황이 만일 지하에서 왕소군을 만난다면 / 泉下劉皇如邂逅
응당 흉노 정벌 그만둔 걸 부끄러워하리 / 也應慙愧畜征西
한 나라는 되놈 다스리는 데에 실책하였고 / 漢家失策御胡戎
재차 화공의 손에서 미인을 또 그르쳤도다 / 再誤蛾眉畫手中
가련도 해라 궁비가 처음 변새를 나갈 적에 / 可惜宮妃初出塞
춘풍에 젖은 시름겨운 귀밑을 차마 봤으랴 / 忍看愁鬢濕春風
변새의 모래 바람에 눈발 어지러이 날릴 제 / 塞上風沙雪亂飛
가련하여라 아직도 한궁의 의복을 입은 채 / 可憐猶著漢宮衣
시름겨울 땐 억지로 비파 타며 눈물 흘리고 / 愁時强撥琵琶泣
다시 융왕께 사냥 마치고 돌아가길 고했네 / 復噵戎王罷獵歸
겹겹의 담요 장막 밖엔 눈이 아직 안 갰는데 / 氈幕重重雪不晴
선우는 싸우러 나가서 삼경의 밤이 되었네 / 單于出戰夜三更
호한의 은혜 깊고 얕은 걸랑 말하지 말고 / 莫噵胡漢恩深淺
시름 속의 악부 소리나 시험 삼아 들어보자 / 試聽愁中樂府聲
명비곡(明妃曲) 양촌 권근
명비의 고운 맵시 경국의 절색인데 / 明妃嬋娟傾國色
한 나라 천자는 미처 알지 못했다오 / 漢家天子曾未識
처음에 상을 그려 후궁에 드렸더니 / 初憑繪素試後宮
후궁에선 뽑아서 곁에 둠직하다 했네 / 後宮謂選堪置側
황금 뇌물 써가며 화공에게 빌붙으니 / 競用黃金媚畫工
붓끝에서 질 바뀌어 미운 얼굴 고와지네 / 豪端換質極容飾
명비의 품성은 착하고도 순진하니 / 明妃禀質淑且眞
분단장 얼굴 꾸며 미혹을 사겠는가 / 豈肯冶容激蔽惑
수줍어 아미 거두고 고개 숙이며 / 低頭羞澁斂雙蛾
멍하니 앉았으니 그림인들 되리 / 扼腕睢盱描不得
그림으로 밉고 고움 결정을 하니 / 臨軒按圖定姸媸
옥 같은 그 체질 버림을 받네 / 玉質却見遭棄斥
궁적에서 제거되어 초방을 나와 / 乃除宮籍出椒房
하루아침에 되 나라로 시집을 가네 / 一朝遠嫁凶奴國
되 나라는 만 리라 눈 서리 내리 쌓여 / 胡天萬里霜雪繁
가고가는 날마다 향토와는 멀어지네 / 行行日與鄕土隔
유 다르고 말 다르니 친하잔들 친해지리 / 殊音異類不可親
한 번 죽어 제 몸 청산 아까울 게 없지마는 / 一死自潔非所惜
십 년이라 긴 세월 궁중에서 보낼 적에 / 憶在深宮十載餘
한 나라 옷을 입고 한 나라 밥을 먹고 / 衣是漢衣食漢食
재물마저 후히 싸서 나를 출가시켰으니 / 且厚資粧嫁我行
한의 은혜 하도 깊어 하늘도 망극하이 / 漢恩自深天罔極
임의 마음 어찌 나를 밉게 보아 그랬겠나 / 宸心豈是私妾身
되놈과 화친하여 난리를 막자는 것 / 爲欲和戎息兵革
소신(小信)을 굳히자고 경솔히 죽는다면 / 苟堅小諒輕自裁
화 맺히고 틈 벌어져 어찌 앞 일을 헤아리리 / 禍結釁生將不測
변방에 싸움 터져 용호가 다툰다면 / 邊庭塵起龍虎爭
억조창생 가엾게도 칼날에 쓰러지니 / 億萬蒼生陷鋒鏑
일부러 죽지 않고 한의 은혜 보답하자고 / 故將不死報漢恩
갖은 능욕 다 받으며 모진 목숨 살아가네 / 隱忍偸生受凌辱
얼굴 펴고 한 번 웃음 되놈 위해 아니로세 / 花顔一笑非爲胡
그에게 호감 주어 한의 적을 없애자는 것 / 務悅胡心除漢敵
밝고밝은 이내 마음 뉘라서 알아주리 / 明明此心誰得知
비파를 당기어라 한 가락 타자꾸나 / 惟把琵琶彈一曲
비파곡 다 마쳐도 한만은 가이없어 / 琵琶曲盡恨無涯
외론 무덤 가을 풀은 이제껏 푸르르네 / 孤憤秋草今猶綠
(참고) 춘명일사(春明逸史)
무덤의 이름
예전에
* 청총(靑塚)이 있었는데 이는 왕소군(王昭君)의 무덤이고,
* 현총(玄塚)은 양자운(揚子雲)의 무덤이고, 자운은 전한(前漢)의 학자 양웅(揚雄)의 자(字)
* 수총(羞塚: 부끄러운 무덤)은 주매신(朱買臣)의 아내의 무덤이고,
한나라 주매신이 만년에 영달하여 회계 태수(會稽太守)로 부임할 때 누더기 차림에 인수 (印綬)를 허리에 차고 군저(郡邸)에 가자 아전이 인수를 발견하고는 경악하여 상관에게 보 고하였으며, 마침내 그를 영접하기 위해 백성들을 동원하여 길을 치우게 하였는데, 그중 에는 주매신을 경멸하며 버렸던 옛날의 아내와 그 남편도 끼어 있었다는 고사가 전한다. 《漢書 卷64上 朱買臣傳》
* 예총(穢塚:더러운 무덤)은 진회(秦檜)의 무덤이다.
진회(秦檜) : 남송(南宋) 고종(高宗) 때의 재상으로, 금(金) 나라와의 화의(和議)를 주장하 며 당시의 충신(忠臣)과 양장(良將)들을 거의 모두 죽이고 축출하였다.
진회(秦檜)의 증손 거(鉅)는 송(宋) 나라 말기에 기주 통판(蘄州通判)으로 있었는데, 금 (金) 나라 사람들이 쳐들어와 성이 무너지자 두 아들 준(浚), 혼(渾)과 함께 목숨을 바쳤 다. 이에 조정에서 관직을 추증(追贈)하고 의열후(義烈侯)에 봉하는 동시에 사당을 세워 제사를 지내게 하였는데, 이 일은 심경(沈勁)의 고사와 대략 비슷한 점이 있다. 사람의 선 악(善惡)이 출신 가문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 이와 같다.
* 적총(赤塚)이 있는데 최영(崔瑩)의 무덤이고, 예총(穢塚)이 있는데 서선(徐選)의 무덤이다.
* 명천도호부(明川都護府)
동쪽은 경성부(鏡城府) 경계까지 6리, 북쪽은 같은 부(府) 경계까지 7리,
남쪽은 바닷가까지 1백 70리, 서쪽은 길성현(吉城縣) 경계까지 44리이고,
남쪽으로 서울까지는 1천 5백 56리 일정 17일 반
남쪽으로 함흥감영 까지 6백4십리 일정 7일
북쪽으로 길주 병영가지 1백50리 일정 2일
東至鏡城界六里北至鏡城界十里南至海岸一百二十里西至吉州界四十五里南距京一千五百五十六里十七日半程南距監營六百四十里七日程北距兵營一百五十里二日程
【건치연혁】 본래 길주(吉州)의 명원역(明原驛)이다. 본조 예종(睿宗) 원년에 고을 사람 이시애(李施愛)가 반역을 일으켰기 때문에 격을 낮추어 길주를 길성현(吉城縣)으로 만들고, 또 장덕산(長德山)에서부터 북쪽 지역을 분할하여 따로 현(縣)을 만들어 명원역(明原驛)을 치소(治所)로 삼고, 명칭을 명천(明川)이라 하였다.
군명: 명원(明原).
衙舍 在城內西舊號 청민헌(聽民軒)
官職
* 府使 武臣蔭從三品三十朔交遞
* 교수
座首一人. 別監三人. 兵房軍官二人. 軍器監官一人. 戶長一人. 討捕軍官四十人府軍官七十四人. 衛旗牌官九十人. 守城旗牌官八十五人. 衙前七十四人.
知印六十名. 使令八十名. 軍牢十六名. 官奴五十五名. 官婢四十八名.
校奴二十一名. 校婢三十五名. 諸色匠人三十七名
인구 己卯式爲準 (영조35)
민호 5,268호
남자 13,954구. 여자 14,411구
形勝
七寶山 在府東南五十六里自長白山逶迤而東爲在德山城基址自在德東南距四
十里許散作諸峯巒所謂千佛萬獅等峯岌嶸竸秀開心會像等臺陂陁通眺而金剛窟三浮屠寺巖俱幽嚴奇詭爲北關之名區
산천
영평산(永平山) 현의 남쪽 32리에 있는 진산이다.
마유산(馬乳山) 현의 남쪽 1백 64리에 있다.
칠보산(七寶山) 현의 동쪽 56리에 있다.
백록산(白鹿山) 현의 서쪽 59리에 있다.
가을마산(加乙亇山) 현의 동남쪽 1백 73리에 있다.
국화대산(菊花臺山) 현의 남쪽 1백 25리에 있다.
우화령(于禾嶺) 현의 남쪽 30리에 있다.
숭산(崇山) 현의 남쪽 31리에 있다. 산꼭대기에 이상한 바위가 우뚝히 서 있다.
바다 현의 동남쪽 1백 70리에 있다. 대천(大川) 현의 서쪽 12리에 있는데, 속칭 우화천(亏禾川)이라고 부른다. 그 근원이 두 군데에서 나오는데, 하나는 백록산(白鹿山)에서 나오고, 하나는 장백산(長白山)에서 나와서 북으로 흘러 사마동보(斜亇洞堡)를 지나 동쪽으로 경성부(鏡城府)와의 경계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간다.
양도(羊島) 현의 남쪽 1백 54리에 있다.
송도(松島) 현의 동쪽 73리인 황진(黃津) 가에 있다. 난도(卵島) 현의 남쪽 2백 90리인 바다에 있다. 바윗돌이 험준하여 사람이 다닐 수 없다. 장끼가 많이 서식하여 새끼를 기른다.
황진리 온천(黃津里溫泉) 현의 동쪽 65리에 있다.
【토산】 사(絲)ㆍ삼[麻]ㆍ석이버섯[石蕈]ㆍ사향(麝香)ㆍ꿀ㆍ복령(茯笭), 토삼청(土三靑) 영평산(永平山)에서 산출된다. 주석(朱石) 현의 남쪽인 황토동(黃土洞)에서 산출된다. 옻[漆]ㆍ인삼ㆍ오미자ㆍ대구[大口魚]ㆍ문어(文魚)ㆍ홍합(紅蛤)ㆍ전복[鰒]ㆍ은어[銀口魚]ㆍ삼치[麻魚]ㆍ송어(松魚)ㆍ연어(鰱魚)ㆍ황어(黃魚)ㆍ자해(紫蟹)ㆍ게[蟹]ㆍ해삼(海蔘)ㆍ곤포(昆布)ㆍ다시마[塔士麻]ㆍ고리마(古里麻)ㆍ수달(水獺)ㆍ미역[藿]ㆍ담비[貂]ㆍ청서(靑鼠)ㆍ화피(樺皮)ㆍ소금. 『신증』 방어(魴魚)ㆍ무태어(無泰魚)ㆍ해달(海獺)ㆍ쌍어(雙魚), 죽전(竹箭) 양도(羊島)에서 산출된다.
『신증』 【성곽】 읍성(邑城) 정덕(正德) 정축년에 처음으로 쌓았는데, 둘레가 3천 3백 척, 높이 10척이고 안에 우물이 두 개 있다.
【관방】 사마동보(斜亇洞堡) 현의 북쪽 32리에 있다. 돌로 쌓았는데, 둘레 1천 3백 73척, 높이 9척이다. ○ 병마만호(兵馬萬戶) 1명이다. 『신증』 금상(今上) 20년에 만호(萬戶)를 폐지하고 권관(權管)을 두었다.
【봉수】 건가토 봉수(件加土烽燧) 현의 북쪽 8리에 있다. 북쪽은 경성(鏡城)의 이마퇴(尼麽退)에, 남쪽은 영평산에, 서쪽은 화파(樺坡)에 호응한다. 영평산 봉수(永平山烽燧) 북쪽은 건가토(件加土)에, 남쪽은 고참현(古站峴)에 호응한다. 고참현 봉수(古站峴烽燧) 현의 남쪽 42리에 있다. 북쪽은 영평산, 남쪽은 길성현의 반현(礬峴)과 호응한다. 화파 봉수(樺坡烽燧) 현의 북쪽 20리에 있다. 동쪽은 건가토에, 북쪽은 원산(圓山) 및 사마동 남봉에 호응하고, 서쪽은 임연세동(林延世洞)에 호응하고, 남쪽은 농보전현(農堡前峴)에 호응한다. 사마동 남봉 봉수(斜亇洞南峯烽燧) 현의 북쪽 21리에 있다. 남쪽은 화파 및 임연세동에, 북쪽은 원산(圓山)에 호응한다. 임연세동 봉수(林延世洞烽燧) 현의 남쪽 34리에 있다. 동쪽은 화파, 남쪽은 우화농보(于禾農堡)의 전현(前峴)에 호응한다. 농보전현 봉수(農堡前峴烽燧) 현의 남쪽 46리에 있다. 북쪽은 화파, 서쪽은 입암(立巖)에 호응한다. 입암 봉수(立巖烽燧) 현의 남쪽 58리에 있다. 북쪽은 농보(農堡)의 전현(前峴), 남쪽은 길성(吉城)의 녹반현(綠礬峴)에 호응한다. 원산 봉수(圓山烽燧) 현의 북쪽 40리에 있다. 남쪽은 사마동 남봉과 화파에 호응하며, 북쪽은 경성(鏡城)의 이파(梨坡)에 호응한다. 『신증』 사마동 이흥도대 봉수(斜亇洞李興道代烽燧) 현의 북쪽 65리에 있다. 북쪽은 경성(鏡城)의 강가덕(姜加德)에, 남쪽은 송치생대(宋致生代)에 호응한다. 금상(今上) 16년에 원산 봉수를 폐지하고 옮기어 여기에 합쳤다. 송치생대 봉수(宋致生代烽燧) 현의 북쪽 95리에 있다. 북쪽은 이흥도대(李興道代)에, 남쪽은 기운봉(起雲峯)에 호응한다. 기운봉 봉수(起雲峯烽燧) 현의 북쪽 1백 39리에 있다. 북쪽은 송치생대(宋致生代)에, 남쪽은 길주(吉州)의 서산(西山)에 호응한다.
【학교】 향교(鄕校) 현의 남쪽 2리에 있다.
【역원】 명원역(明原驛) 현의 북쪽 5리에 있다. 이시애(李施愛)의 군대가 패하여 이 역(驛)의 북쪽에 왔다가, 부하인 이주(李珠) 등에게 묶여서 원수(元帥)에게 보내져 죽임을 당하였다. 고참역(古站驛) 현의 남쪽 36리에 있다.
寺剎
雙溪寺 在邑西五十九里白鹿山僧徒二十五名
五峯菴 在邑西北四十里斜亇洞僧徒二十名
石林寺 在邑東南九十里僧徒五名
金藏寺 在邑東南五十里七寶山初到處僧徒三十名
開心寺 在邑東南五十六里七寶山景致在形勝條僧徒 二十二名
兠率菴 在七寶山遊賞處無恒居僧徒
新興寺 在邑南七十里僧徒十五名
大同寺 在邑東南一百五十里僧徒十五名
松德寺 在邑東南一百五十里僧徒二十六名
隱峯寺 一名黃士寺在邑南五十里今廢新興以下四寺俱在七寶山外麓
中菴 在邑南九十八里陵山今廢 石門菴 在邑東南一百十里七寶山外麓今廢
【사묘】 사직단(社稷壇) 현의 서쪽에 있다. 문묘(文廟) 향교에 있다. 성황사(城隍祠) 현의 동쪽 2리에 있다. 여단(厲壇) 현의 서쪽에 있다.
【고적】 영평산성(永平山城) 고참(古站) 북쪽에 층산(層山)이 있고, 그 위에 옛적에 돌로 쌓은 성이 있는데, 둘레가 4천 7백 12척이다. 안에 큰 못이 있는데, 날이 가물 때에 여기에서 비를 빌면 효험이 있다. 지금은 폐지되었다. 대사동보(大寺洞堡) 현의 서쪽 29리에 있다. 돌로 쌓았는데 둘레가 8백 31척이요, 높이가 5척이다. 지금은 반쯤 퇴락하였다. 소사마동보(小斜亇洞堡) 현의 북쪽 30리에 있다. 벽돌로 성을 쌓았는데, 둘레가 4백 4척이다. 지금은 폐지되었다. 가을마산성(加乙亇山城) 돌로 쌓았는데, 둘레가 2천 5백 20척이다. 지금은 폐지되었다. 『신증』 고장군파(古將軍坡) 현의 서쪽 95리에 있다. 돌로 쌓았는데 둘레가 1천 9백 65척이다.
《대동지지(大東地志)》
【연혁】 본래 여진 궁한리촌( 女眞弓漢里村)이다. 중종(中宗) 7년에 혁파하여 길주(吉州)에 예속시켰다가 8년에 다시 설치하였다. 선조(宣祖) 39년에 도호부(都護府)로 승격시키고 치소를 영평 고성(永平古城)으로 옮겼으며 뒤에 다시 지금 치소로 옮겼다.
【방면】 아간(阿間) 남쪽으로 60리이다. 상오화(上汚禾) 서쪽으로 30리이다. 하오화(下汚禾) 부내(府內)로부터 동쪽으로 30리이다. 상가(上加) 남쪽으로 1백 리이다. 하가(下加) 남쪽으로 1백 20리이다. 상고(上古) 동쪽으로 95리이다. 하고(下古) 동남쪽으로 1백 50리이다. 위는 모두 경계의 끝이다.
【진보】 재덕진(在德鎭) 북쪽으로 30리이다. 선조(宣祖) 38년에 영평산(永平山) 고성(古城)에 설치하였고, 사마동(斜亇洞)에 옮겨 합하였으며, 재덕성보(在德城堡)ㆍ재고참(在古站)이라고도 하며 북층산(北層山) 위는 둘레가 4천 9백 척이며 우물이 3개, 못이 하나 있다. 순조(純祖) 때에 귀문관(鬼門關)의 남쪽 소사마동으로 옮겼으며 옛터가 있다. ○ 병마만호(兵馬萬戶)가 1명이다.
【봉수】 항포동(項浦洞) 서남쪽으로 20리이다. 북봉(北峯) 북쪽으로 10리이다.
【창고】 읍창(邑倉)ㆍ산창(山倉) 서북쪽으로 30리이다. 덕창(德倉) 45리이다. 평창(坪倉) 서남쪽으로 25리이다. 고창(古倉) 서남쪽으로 45리이다. 아창(阿倉) 남쪽으로 45리이다. 신창(新倉) 남쪽으로 70리이다. 상가창(上加倉) 남쪽으로 1백 리이다. 하가창(下加倉) 남쪽으로 1백 20리이며 해변이다. 서창(西倉) 동남쪽으로 1백 20리이다. 동창(東倉) 동남쪽으로 1백 50리이며 해변이다. 상고창(上古倉) 동쪽으로 90리이다. 하고창(下古倉) 동남쪽으로 95리이다.
【교량】 대천교(大川橋) 덕진(德鎭) 북쪽이다. 북교(北橋) 증산천(甑山川) 아래이다. 고참교(古站橋) 서남쪽으로 28리이다.
【토산】 석이버섯[石蕈]ㆍ옻[漆]ㆍ소나무[松] 칠보산(七寶山)에서 난다. 용수(龍鬚) 한 줄기의 직선 길이는 여러 자[尺]나 되며, 가늘기는 힘줄과 같고, 견고하기는 뼈와 같고, 붓을 꽂는 통으로 사용한다. 바다에서 나는 물고기와 소금은 길주(吉州)ㆍ경성(鏡城)과 같다.
* 초산도호부(楚山都護府) . 리산(理山)군이었다
동쪽은 위원군(渭原郡) 경계까지 24리, 남쪽은 위원군 경계까지 1백 60리, 운산군(雲山郡) 경계까지는 2백 53리이고 희천군(熙川郡) 경계까지는 2백 50리이다. 서쪽은 벽동군(碧潼郡) 경계까지 5백 9리, 북쪽은 압록강까지 12리이고, 서울과의 거리는 1천 1백 93리이다.
獨鎭 東至渭原郡界十五里. 南至雲山郡界二百五十里.至熙川郡界二百五十里
西至碧潼郡界七十里. 北至鴨綠江十五里. 東西七十里. 南北二百六十五里.
南距兵營六百五十里六日半程. 距監營七百六十里七日半程.
距京都一千一百九十三里十二日程
건치연혁】
본래는 여진족이 살던 두목리(豆木里)이다. 고려 공민왕 때부터 사람들이 점차 불어 본조 태종 2년에 산양호(山羊湖)ㆍ 어떤 때는 호(湖) 자를 회(會) 자로 하기도 하였다. 도을한(都乙漢)ㆍ봉화대(烽火臺)ㆍ등이언(等伊彦) 등지를 합쳐 이주(理州)라 칭했는데 13년에 통례대로 지금 이름으로 고쳤다. 세종 때 읍을 앙토리(央土里)로 옮겼고 세조 때 진(鎭)을 두었다. 도을한과 봉화대는 지금은 위원군에 속한다.
【군명】 리산(理山)ㆍ이주(理州).
官職
* 府使 兼兵馬僉節制使從三品堂上履歷窠文武三十朔交替
* 교수
*座首一人. 別監三人. 左右兵房軍官二人. 各倉監官十三人. 千摠二人.把摠三人哨官十三人. 領將二人. 敎鍊官三人. 旗鼓官四人. 旗牌官五十九人. 城丁旗牌官八十二人. 烽燧別將三人. 衙前五十一人. 通引二十三人. 使令十名. 軍牢四十五名. 官奴四十八口. 婢二十一口
公廨
館舍 衙舍 臥雲軒 觀民軒 裨將廳 供需 伺候廳 鍾閣 鄕時所 將廳 任廳討捕廳 募義廳 守堞廳 堂上廳 府軍官廳 武學廳 訓鍊廳 忠義廳 軍士廳
【성씨】
본군 원(元)ㆍ안(安)ㆍ박(朴) 모두 내성(來姓)이다.
【산천】
숭적산(崇積山) 군 동쪽 1백 25리에 있는 진산(鎭山)이다.
거을쌍산(巨乙雙山) 군 서남쪽 30리에 있다.
안찬령(安贊嶺) 군 서쪽 25리에 있다.
조동산(曹東山) 군 남쪽 60리에 있다.
합지산(蛤池山) 군 동쪽 15리에 있다.
가을한령(加乙罕嶺) 군 동쪽 30리에 있는데 위원군과 경계하고 있다.
취사령(吹沙嶺) 군 남쪽 1백 50리에 있다.
판막령(板幕嶺) 군 남쪽 1백 70리에 있다.
우령(牛嶺) 군 남쪽 2백 50리에 있다.
대물이산(大物伊山) 고이산군(古理山郡) 동쪽 20리에 있다. 압록강 군 북쪽 15리에 있다.
상운대천(上雲臺川) 고이산군 남쪽 1리에 있다.
우장천(牛場川) 우장역(牛場驛) 남쪽에 있다. 근원은 우령(牛嶺) 밑에서 나와 북으로 흘러 동건강(童巾江)으로 들어간다.
동건강 군 서쪽 78리에 있다. 상운대천과 우장천 등이 합쳐 이 강이 되었으며, 아이보(阿耳堡)를 지나 압록강으로 들어간다.
남천(南川) 성 남쪽 2리에 있다. 신동(薪洞)에서 나와 압록강으로 들어간다. 파저강(婆猪江) 이하는 압록강 바깥 땅에 소속되어 있다.
연시산(延時山)ㆍ토자산(兎子山)ㆍ알미부(斡眉府) 군과의 거리가 2백 40리이다. 홍타리(紅陁里) 군과의 거리가 2백 70리이다.
아한리(阿閒里) 군과의 거리가 2백 70리이다.
올자산(兀刺山) 군과의 거리가 2백 70리이다. 앙토구자(央土口子)에서 압록ㆍ파저 두 강을 건너면 북쪽 큰 들 가운데 성이 있는데 올자성이라 한다. 사면이 벽같이 솟아 높은 절벽을 이루고 있어 다만 서쪽으로만 오를 수 있다. 고려 공민왕이 북원(北元)과 절교하고자 하여 우리 태조(太祖)로 하여금 동북면 원수로 삼아 동녕부(東寧府)를 치게 하니, 동지(同知) 이올로첩목아(李兀魯帖木兒)는 태조가 이른다는 말을 듣고 험한 곳으로 옮겨 이 성으로 근거를 삼으려고 옮겨와서 보위하고 있었다. 태조가 야둔촌(也頓村)에 이르니 이올로첩목아가 나와 도전하다가 얼마 후에 무기를 버리고 두 번 절하고 3백여 호를 이끌고 항복해 왔다. 그 추장 고안위(高安慰)는 오히려 성을 근거로 항복하지 않으므로 우리 군사가 그것을 포위하였다. 태조가 손수 70여 명을 쏘았는데 모두 바로 그 얼굴에 맞으니 성중은 기운을 잃게 됐다. 고안위는 밤중에 도망하고 여러 성은 모두 항복했다. 이로써 동쪽은 황성(皇城)에 이르고 북쪽은 동녕부(東寧府)에 이르고 서쪽은 바다에 이르고 남쪽은 압록강에 이르도록 모두 빈 땅이 되었다. 이 전쟁에 어떤 사람이 헐린 담 아래에 서서 우는 것을 보고 잡아 물으니 그가 말하기를, “나는 원(元) 나라 장원(狀元)인 배주(拜住)이다.” 하니, 태조는 즉시 옷과 말을 주어 같이 데리고 와서 왕에게 보고하여 판사농시(判司農寺) 직을 주고 한복(韓復)이라는 이름을 주었다. ○ 이상 네 곳은 지금은 야인(野人)이 사는 곳이다.
理山府
山川
北山 在府北五里自江界狄踰嶺來爲主脈 沙器㯖嶺 在府西十里 安贊嶺 在府西二十五里 巨乙雙山 在府西三十里 曹東山 在府六十里 蛤池山 在府東十里前有池 多樂嶺 在府東南間五十五里 梨嶺 在府南一百十里 吹砂嶺 在府南一百五十里 板幕嶺 在府南一百七十里 午場嶺 在府南二百十里 牛峴嶺 在府南二百五十里 銅寺洞嶺 在府東十五里 披木嶺 在府東五十五里 三梗嶺 在府東六十里 薪嶺 在府東五十五里 直等洞嶺 在府南三十五里 昏翳嶺 在府東六十里 艾嶺 在府西五十里 栢幕嶺 在府南一百十五里 大物伊山 在府南一百四十里 棘城嶺 在府南二百五十里 踰頭幕嶺 在府南二百七十里 靈枷㯖峴 在府南一百六十里 臥龍洞嶺 在府南一百八十里 車嶺 在府南二百五十里 了號未嶺 在府南二百五十里 月隱乃嶺 在府西南間二百六十里 昌城巨里嶺 在府西南間二百六十里 鴨綠江 在府北十五里其源出自白頭山西經江界 渭原 理山 碧潼 昌城 朔州至義州分爲三江入于海 雲臺川 在古理山南一里其源出於大物伊山至板幕洞口入于牛場州 牛場川 在府南二百里牛場院前其源出於泉川西南流入于別河川 別河川 在府南一百二十里其源出於昌城巨里嶺下北流入于童巾江 龍淵川 自牛峴鎭東有二源一出熙安洞一出棘城洞合于舊牛峴鎭前過車嶺鎭至靈枷㯖與板幕洞水合爲西江入于童巾江 童巾江 在府南七十八里上雲臺牛場龍淵諸水合流過阿耳鎭入於鴨綠江 南川 在府南門外二里其源出於薪嶺經東面至于央土里洞口入于鴨綠江
【토산】 사(絲)ㆍ삼ㆍ꿀ㆍ담비ㆍ청서(靑鼠)ㆍ인삼ㆍ사향ㆍ오미자ㆍ잣ㆍ수달ㆍ부석[水泡石]ㆍ여항어.
【성곽】 읍성(邑城) 석축으로 둘레가 3천 9백 5척, 높이가 9척이고, 성안에 6개 샘이 있다. 행성(行城) 두 곳이 있는데, 모두 석축이다. 하나는 적탄(赤灘)에 있는데 길이가 2천 8백 73척, 높이가 7척이다. 다른 하나는 남문 밖에 있는데 길이가 4백 41척, 높이가 5척이다.
【관방】 아이보(阿耳堡) 군 서쪽 55리에 있다. 석축으로 둘레가 5천 7백 84척, 높이가 3척이다. 이 안에 우물이 세 개 있고 군창이 있다. ○ 병마만호(兵馬萬戶) 한 명이 있다.
산양회 보(山羊會堡) 군 서쪽 23리에 있다. 석축으로 둘레가 9백 14척, 높이가 3척이다. ○ 권관(權管)을 보내어 수자리하게 했다. 『신증』 김사동보(金士洞堡) 군 서남쪽 75리에 있다. 권관을 두어 수자리하게 했다
【봉수】 합지산 봉수(蛤池山烽燧) 동쪽은 위원군(渭原郡) 동천(銅遷)에 응하고 서쪽은 송봉(松峯)에 응한다. 송봉 봉수(松峯烽燧) 군 북쪽 18리에 있는데, 동쪽은 합지산에 응하고 서쪽은 구천산(九天山)에 응한다. 구천산 봉수(九天山烽燧) 군 북쪽 21리에 있는데 동쪽은 송봉과 응하고 서쪽은 고연대산(古煙臺山)과 응한다. 고연대산 봉수(古煙臺山烽燧) 군 서쪽 31리에 있다. 동쪽은 구천산에 응하고 서쪽은 아이보(阿耳堡)와 응한다. 아이보 봉수(阿耳堡烽燧) 동쪽은 고연대산과 응하고 서쪽은 벽동군(碧潼郡) 광평(廣坪)과 응한다.
【학교】 향교(鄕校) 성안 서쪽에 있다.
【역원】 우장역(牛場驛) 군 남쪽 1백 94리에 있다. 고이산역(古理山驛) 고이산성(古理山城) 안에 있다. 앙토역(央土驛) 성안에 있다. 판막원(板幕院) 군 남쪽 1백 50리에 있다. 차유원(車踰院) 군 남쪽 2백 40리에 있다. 우령원(牛嶺院) 군 남쪽 2백 25리에 있다.
【사묘】 사직단(社稷壇) 군 북쪽에 있다. 문묘(文廟) 향교(鄕校)에 있다. 성황사(城隍祠) 군 북쪽 3리에 있다. 여단(厲壇) 군 북쪽에 있다.
【고적】 앙토리목책(央土里木柵) 군 동쪽 5리에 있다. 고이산성(古理山城) 군 남쪽 1백 3리에 있다. 석축인데 둘레는 2만 3천 10척, 높이는 10척이다. 성안에 우물 넷이 있고 군창이 있다. 평지성(坪地城) 군 남쪽 1백 20리에 있다. 석축으로 둘레가 3천 9백 17척, 높이는 16척이다 성안에 샘이 넷 있다. 산성(山城) 군 남쪽 1백 80리에 있다. 석축으로 둘레가 6만 4천 2백 9척, 높이가 12척이다. 성안에 우물이 두 개 있다.
【명환】 고려 강윤철(康允哲) 부만호(副萬戶)로 방어를 잘했다.
『신증』 【열녀】 본조 김씨(金氏) 박학손(朴鶴孫)의 처이다. 남편이 죽으매 밤낮 시체를 붙들고 통곡하며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더니 사흘만에 죽었다. 이런 일이 조정에 보고되어 정문을 세웠다.
樓亭
肅邊樓 客舍前門樓舊稱閑北樓 雨化樓 在鄕校 暎湖亭 在府南川邊巖上 三松亭 在阿耳鎭前城頭巖上
鎭堡
山羊會堡 在府西二十三里石築周回九百十四尺高三尺成化二十一年我 成宗十六年乙巳始差權管戌之 肅宗朝陞萬戶 代將一人兵房軍官二人把守監官二人生殖木監官一人軍器監官一人禁蔘監官一人軍案監官一人衙前五人通引五人官奴十一口婢七口壯武隊九十九名精抄七十八名城丁軍十名 阿耳鎭 在府西五十五里石築周回九千七百八十四尺高三人內有三井二倉萬歷二十三年乙未罷金士洞堡及外非兒里兩鎭權管合設于卽今鎭基陞僉使 千摠一人兵房軍官二人把摠二人旗鼓官三人敎鍊官二人哨官七人把守監官一人衙前十四人通引七人使令十五名奴三十八口婢二十五口軍官一百人壯武隊二百三十名精抄三百三十九名城丁軍三百十二名 車嶺鎭 在府南二百二十里車嶺下雍 正甲寅始設僉使 兵房軍官二人軍器監官一人把摠一人旗鼓官一人敎鍊官一人哨官二人軍官一百六十六人旗牌官四人衙前九人通引六人使令十名作隊軍三百五十五名屯軍四百六名 牛峴鎭 在府南二百三十里牛峴下雍正甲寅始設僉使 兵房軍官二人把摠一人哨官二人旗鼓官一人敎鍊官一人旗牌官四人軍官一百十五人衙前十三人通引八人作隊軍三百三十三名屯軍三百四十八名官奴一口使令十名
첫댓글 북천가를 지은 김진형과 내 5대조는 종반 간이다.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나오는 가사지만 역시 낙민 장달수군이 해제를 달아 내게 보내왔기에 여기 올려 놓는다.--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