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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주 기행](16)백제시대부터 내려온 충남 가야곡 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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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부터 술맛은 ‘물맛’이고 ‘쌀맛’이라고 했다. 이는 물과 쌀에 따라 술의 맛이 정해진다는 뜻이다.
가야곡 왕주를 얘기할 때 물맛과 쌀맛을 얘기하는 사람이 많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충남 논산은 예나 지금이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곡창지대다. 가도 가도 논이다. 당연히 쌀이 많다. 그리고 물이 깨끗하다. 옆으로 금강이 지난다. 쌀이나 물을 오염시킬 만한 것도 없다. 청정하다. 여기서 나온 쌀과 물이 ‘왕주’가 되었다. 왕주는 백제시대부터 내려온 우리의 술로 거기에는 백제인의 얼과 한이 서려 있다.
#옛날엔 어주, 요즘은 왕주
쌀이 많이 나는 가야곡 등 충남 논산 일대에는 예나 지금이나 술이 많았다. 백제시대부터 이집 저집 곡주를 빚었다. 그러나 조선시대 중엽 금주령이 내려지면서 쌀로 술을 만드는 것이 어려워졌다. 사람들은 산과 들에서 채취한 약초를 넣어 술을 담그기 시작했다. 이른바 약주다. 조선시대 말 다시 곡주로 술을 만드는 것이 가능해지자 사람들은 곡주와 약주를 접목시키기 시작했다. 가야곡 사람들이 만들어낸 이 술은 그 맛과 약효 면에서 탁월했다. 한양까지 소문이 났다. 왕실에 진상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어주(御酒)’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것이 바로 후에 ‘왕주(王酒)’라는 이름으로 바뀐 바로 그 술이다.
‘궁중술’을 대표하는 왕주는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돼 있는 종묘대제(중요무형문화재 56호)에서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 왕주의 전통은 명인 남상란씨(59)에 의해 이어지고 있다. 남씨의 친정은 대대로 왕주를 빚어왔다.
#왕실에 진상하던 그 술 그대로
‘왕주는 향으로 마신다’는 얘기가 있다. 그 절묘한 향. 술잔을 입에 대는 순간 향은 코를 타고 온몸으로 퍼진다. 무슨 향일까. 누구도 딱 부러지게 얘기하지 못한다. 야생국화·구기자·솔잎·홍삼·매실 등 갖가지 재료가 은은한 향을 뿜어내기 때문이다.
술 얘기에 빠뜨릴 수 없는 게 또 하나 있다. 누룩이다. 누룩은 술의 원천이다. 왕주에 쓰이는 누룩은 특별하게 만들어 진다. 매실이 들어간다. 매실은 누룩 특유의 쾌쾌한 냄새를 제거하는 데 효과가 있다. 누룩을 누룩답게 하는 구수한 향기는 그대로 남는다. 이 누룩의 향기는 고향을 떠올리게 한다. 특별하게 만들어진 이 누룩은 술의 맛에, 그리고 술의 향기에 마지막 ‘점’을 찍는다.
야생국화는 두통을 낫게 하고 눈과 귀를 밝게 한다. 식욕증진·정장·원기회복 등에 좋고 고혈압에도 효험이 있다. 구기자는 어떤가. 뼈와 근육을 튼튼하게 하고 정력을 증진시킨다. 혈액순환을 촉진시켜 성인병 예방에 효능이 있다.
솔잎은 매일 먹으면 중풍을 예방할 수 있다고 한다. 홍삼이 몸에 좋은 것은 누구나 아는 일. 항당뇨 작용을 하고 알코올 해독을 촉진한다. 이런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왕주를 ‘보신(補身)하는 술’이라고 한다. 이런 약재를 넣어 만든 왕주는 늘 밝고 투명한 황금색을 띤다.
왕주는 아무리 마셔도 숙취가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요즘 출시되는 왕주는 영하 5도로 얼렸다가 48시간 뒤 여과하는 ‘냉동여과’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숙취의 원인물질(아세틴알데히드)을 제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명주보자기로 짜냈는데 이 방법으로는 숙취의 원인을 완전히 제거할 수 없었다. 그러나 냉동여과를 통해 이 문제가 해결됐다. 가야곡 청정지역의 150m 지하 암반에서 뽑아 올린 물만 쓰는 것도 왕주가 뒤끝 깨끗한 술로 자리를 잡게 한 또 하나의 이유다.
#안주로는 굴전·육전·붕어찜 등이 최고
왕주를 마실 때는 안주도 가릴 일이다. 왕이 마시던 술인 만큼 어울리는 안주가 따로 있다. 싱싱한 굴로 만든 굴전이 우선 좋은 안주로 꼽힌다. 신선한 고기로 지져낸 육전 역시 어울리는 안주다. 논산을 대표하는 탑정저수지의 민물고기 요리도 왕주와 함께 즐길 수 있는 안주로 꼽힌다. 그 중에서도 붕어찜을 권하는 사람이 많다. 논산지역에서는 최고의 술에는 최고의 안주가 있어야 한다는 판단에 따라 최근 궁중요리 전문가들과 함께 왕주에 어울리는 안주를 개발하고 있다.
〈논산|윤희일기자 yhi@kyunghyang.com〉 |
[전통주 기행]‘TIME OF KING’으로 외국인 입맛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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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곡 왕주의 전통은 한 가족의 대를 이은 노력 덕택에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 중심에 서 있는 사람이 가야곡 왕주의 명인 남상란씨(59·전통식품명인 13호)다.
남씨는 친정어머니 도화희씨로부터 왕주의 비법을 배웠다. 도씨 역시 친정어머니 민재득씨(작고)로부터 왕실에 진상하던 왕주의 제조 비법을 전수받았다. 민씨는 자신의 가문(여흥 민씨)을 통해 왕실로 진상되던 왕주의 제조 비법을 배워 딸에게 전수했고 도씨 역시 딸인 남씨에게 그대로 전해줬다. 지금의 명인인 남씨의 외할머니가 바로 민씨다. 남씨는 이렇게 대대로 내려온 ‘궁중술’의 전통 제조 비법을 남편 이용훈씨(60·가야곡왕주 대표)와 함께 한 단계 발전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남씨는 대량생산을 위한 기계화가 이루어진 지금도 전통 비법을 기본으로 해서 술을 만든다는 원칙을 버리지 않고 있다. 그는 쌀을 씻을 때도 선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늘 흐르는 물을 이용한다. 쌀의 잡티 등 불순물을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서다. 술밥과 누룩 등을 술독에 앉힐 때 넣는 솔잎도 항상 5~6월에 채취한다. 솔잎 고유의 향과 맛이 가장 왕성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남은 이물질을 없애기 위해 참나무 숯과 말린 고추 3~4개를 띄우는 과정과 밀봉한 뒤 그늘에서 100일간 숙성시키는 과정 등 기본은 모두 전통비법 그대로다.
남편 이씨는 술의 명맥을 단순히 이어가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가야곡 왕주를 한해 6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브랜드로 키웠다. 알코올도수 13도의 전통 왕주 이외에 25도와 40도짜리 증류주를 잇따라 내놓으면서 왕주는 어느새 전국 브랜드로 자리잡았다.
정연(38)·준연(35)·규연(32)씨 등 3형제도 부모의 뒤를 이어 왕주에 인생을 걸었다. 이들은 어머니로부터 왕주의 전통 제조 비법을, 아버지로부터 왕주를 제조·판매하는 기업의 경영 기법을 배우고 있다. 요즘은 미국에서 유학한 준연씨를 중심으로 왕주의 국제화에도 나서고 나섰다. 최근 양주병과 비슷한 디자인의 증류주 브랜드인 ‘TIME OF KING’(사진)을 내놨다. 외국인의 입을 겨냥한 왕주다. 곧 ‘위스키 말고 왕주 줘’를 외치는 외국인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논산|윤희일기자〉 |
[전통주 기행]각종 약초 혼합제조 ‘보신하는 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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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역사와 함께 해 온 우리의 민속주는 그 지방의 특색을 그대로 담아내면서 저마다 독특한 맛을 간직하고 있다.
우리의 혼이 담긴 민속주를 논할 때 충남 논산 가야곡에서 생산되는 ‘왕주’를 빼 놓을 수 없다. ‘궁중술’로 널리 알려진 왕주는 가야곡 청정지역의 맑은 물을 사용하여 100일 동안 정성스럽게 익힌 술이다. 짜릿하고 새콤달콤하면서도 은은한 약초 향이 일품이다.
‘왕주’와 본격적으로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995년 논산시의회 의원으로 재직할 때다. 당시 가야곡 왕주는 민속주 등록을 계기로 본격적인 생산에 들어가는 단계였다. 왕주를 만드는 사람들은 최고 품질의 술을 만들어 국민에게 내놓겠다며 혼신의 힘을 기울이고 있었다.
2년 뒤인 97년에는 충남도가 왕주를 주류부문 최초로 도지사 추천특산품으로 지정했다. 이를 계기로 왕주의 명성은 높아져 갔다. 당시 심대평 충남도지사는 각종 행사 때마다 왕주를 내놨다. 심지사는 타지에서 방문하는 손님에게도 늘 ‘왕주’를 권했다.
고향의 술 ‘왕주’에 매료돼 왕주의 애호가가 된 나는 시장이 된 뒤에도 입장이 변하지 않았고 오히려 왕주에 대한 사랑은 깊어만 갔다. 그래서 ‘왕주 홍보맨’을 자처하며 누가 시키지 않아도 왕주의 우수성을 알리고 있다.
왕주를 좋아하는 이유는 왕주가 고향의 술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왕주의 제조과정과 왕주의 품질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왕주는 각종 약초를 혼합해 제조하기 때문에 적당히 마시면 ‘보신기능’을 얻을 수 있는 술이다. 왕주는 또 그 향이 일품이다. 누룩 특유의 향이 적절하게 어우러진 왕주의 향은 오래오래 지속되기로 유명하다. 여기에 매실의 단맛과 신맛이 왕주 특유의 ‘감칠 맛’을 만들어낸다.
지금도 논산에선 손님이 오면 ‘왕주’를 내놓으며 자랑한다. “왕주는 술중의 술, 최고의 술입니다.”
〈임성규·논산시장〉 |
※출처 :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