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심을 깨치는 글 >
미국에서 꽃피는 대승 불교 - 우리들의 수행 이야기
자등명 법등명
自燈明 法燈明
글 | 현안스님
한국 수행자분들을 만나기 시작하면서 한자로 된 불교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그 중에 자주 들었던 부처님의 가르침이 '자등명 법등명'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부처님께서 자등명 법등명이라 하셨으니, 우리가 우리 자신의 마음 등불을 믿고 따르라 했습니다. 여러 스님들도 나에게 너무 스승을 맹목적으로 따르면 안되고, 자등명 법등명이란 말처럼 어느 정도 배우면, 내 마음의 등불에 의지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말을 듣는 즉시 의문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영화 스님이 해주신 '깨닫기 전까지 절대 내 자신의 마음을 믿지 말라'는 말씀이 처음부터 지금까지 많이 도움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상을 깨고자 하는데, 그 아상의 생각하는 마음의 목소리를 듣고 따르는 것이 현명하지 않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참선을 배울 때 결가부좌의 아픔과 불편함으로 마음이 쉬지 않고 매우 괴로웠습니다. 마음 속에서 '다리가 이렇게 아파서 명상이 잘 되지도 않는데 차라리 반가부좌로 하면 더 잘 몰입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올라왔습니다. 왜 결가부좌가 나한테 안좋은지, 반가부좌가 더 좋을 수도 있는지 수천가지 이유가 내 마음 속에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깨닫기 전까지 절대 내 자신의 마음을 믿지 말라는 말대로 스승님의 가르침을 따랐습니다.
게다가 출가한 후 지금까지도 저는 스승님께서 주시는 시키는 일이나 지침을 이해할 수 없을 때가 있지만, 일단 따라서 해봅니다. 지금까지 스승님이 하라는 대로 했기 때문에 내 마음과 몸에 변화가 계속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의 몸과 마음이 변한 후 예전에 마음 속에 올라왔던 수천가지 생각들이 얼마나 바보같은지 항상 보였습니다. 나는 스승님의 말씀과 지침을 따르면서 내 스스로의 어리석음이 한꺼풀 한꺼풀 계속 더 타파할 수 있었다는 것을 잘 압니다.
자등명 법등명 自燈明 法燈明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아난다의 청을 듣고 노년에 설한 가르침이라고 합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죽림촌에 계실 때 병에 걸리셨을 때 아난이 마지막 설법을 청했습니다.
네이버에서 자등명 법등명을 찾아보니, '스스로 마음의 등불을 밝히고, 부처님이 설하신 법의 등불을 밝혀서 수행하라'는 해석이 검색됩니다. 이 말은 자칫하면 스승을 찾을 필요가 없고, 자기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잘 살펴라, 자기 마음만 믿고 의지하면 된다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얼마전 미국에 계신 영화 스님께 “자등명 법등명”의 뜻을 설명해 주실 수 있는지 청했습니다. 그래서 영화 스님께서 해주신 설명을 토대로 자등명 법등명의 의미를 글로 요약해 보았습니다.
사실 “자등명 법등명”은 부처님의 말씀으로 열반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기본적으로 '시간이 적절할 때, 자신에게 의지하고, 다른 이에게 의존하지 말아라'라는 뜻입니다. 즉 필요 시 자신의 등불로 빛을 내어 비추고, 필요 시 법의 등불 즉 법의 빛을 내서 비추라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부처님은 다른 이에게 의존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의 가르침이 이러하다면 선지식을 찾아라는 대승의 기본적인 가르침과 모순되지 않을까요? 우리는 언제 빛을 밝혀야 할까요? 무엇을 비춰야 하는 것일까요? 이것은 제가 가졌던 의문과 비슷합니다. 한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내 자신의 마음에 의지하라는 이 부처님 말씀에 대해서 말해주셨는데, 저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선지식에 의지해 왔습니다.
阿難!於現在,或我滅後,若有人
『以自燈明,隨時自歸依,不歸依他人;以法燈明,隨時法歸依,不歸依他人』者──阿難!彼等,於我比丘衆中,將在最高境地,必定樂於修學。」
장부경전長部經典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일단 무엇을 밝혀야 하는 것일까요? 영화 스님께서는 비춰서 밝혀야 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가진 문제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무명(無明)과 우치(愚癡)를 밝히는 것입니다. 불교에서 등불 또는 빛은 밝음을 뜻하고, 이는 무명, 우치와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 우리를 가로막는 것, 우리의 마음을 괴롭히는 것을 밝게 비추는 것입니다. 부처님이 우리에게 법을 가르쳐 주신 것은 바로 우리의 문제를 스스로 밝히도록 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어떤 문제가 있을까요? 여러분은 어떤 문제가 있습니까? 예를 들어서 깨닫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것도 해결해야할 문제입니다. 우리 스스로의 빛을 사용해서 왜 아직 깨닫지 못했는지 비춰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또는 우리가 왜 아직도 정토에 가지 못했을까라고 생각한다면, 어떻게 정토로 갈 수 있을지 물어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빛을 사용해서 그런 문제를 비출 수 있습니다. 왜 우리는 아직 이 사바세계에 있는지, 아직 정토에서 왕생하지 못했는지 비춰보는 것입니다.
이법등명以法燈明이란 법의 등불을 사용해서 문제를 밝게 비춘다라는 뜻인데, 법에서 온 빛을 써서 문제를 밝히고, 어떤 문제인지 이해하려 해보는 것입니다. 다른 이에게 문제를 고치기 위해 의지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알아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우리를 위해 대신 알아내주길 기대할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문제가 있어서, 그것이 우리의 마음을 괴롭힌다면, 그것이 우리에게 큰 문제라면, 우리 스스로 알아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선지식을 찾으라는 대승의 가르침은 어떠한가요? 대승에서는 배우고자 한다면 선지식을 찾으라고 합니다. 부처님은 다른 이에게 의지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선지식은 다른 사람이 아닌가요? 외부에 의지하지 말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럼 이 두가지 가르침에 모순이 있지 않나요?
사실 선지식이 하는 일은 우리에게 법을 설명해 주거나 우리에게 법이 어떤 뜻인지 그 지침을 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선지식은 우리에게 법을 사용한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설명해줍니다. 즉 선지식은 그냥 법의 등불입니다. 그러므로 선지식은 사실 어떤 다른 사람이 아닙니다. 선지식은 우리에게 빛을 주고, 우리가 어떤 법의 등불을 사용해야 비출 수 있는지 가리켜 줍니다. 그것이 바로 선지식이 해야하는 일입니다.
예로 어떤 이가 자꾸 우울해지는 문제가 있다고 하면, 선지식은 그 사람에게 “성모 마리아를 10번 외워요”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 그것이 바로 법입니다. 스승은 우리가 사용해서 문제를 밝힐 수 있는 법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선지식이 우리에게 준 법으로 그 문제를 밝힐 수 없다면, 그렇다면 주의를 기울여 봐야 할 것입니다. 실패한 이유가 우리가 못해서 그런 것인지, 법이 실패한 것인지 알아야 합니다. 선지식은 기본적으로 어떤 법의 등 즉 빛을 사용해서 문제를 밝혀야 하는지 우리에게 가르쳐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후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빛을 써서, 법의 등불 속에서, 문제를 밝혀봐야 합니다.
영화 스님께서는 선지식의 역할이 우리가 문제가 있을 경우, 우리가 써서 문제를 살펴보고 고칠 수 있는 법 즉 다르마를 이야기해주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럼 우리는 그 문제를 고치기 위해 알려준 법을 사용해 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깨닫고 싶은데 아직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선지식이 다리를 꼬고 앉으라고 말해줬습니다. 우리가 싫다고 이를 거부하면, 그럼 우리가 법을 사용하는 걸 거부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법의 등불을 취하여 밝히는 것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문제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법등명以法燈입니다. 선지식이 다리를 꼬고 앉는 것을 법으로 사용한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빛을 사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이를 실행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의 등불을 사용한다는 것은 '불을 켠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불을 켜지 않으면 그건 선지식의 문제가 아닙니다. 단지 우리가 켜는 것을 거부한 것입니다.
이렇듯 부처님의 가르침은 매우 깊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매우 심오하여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에 부처님은 조사라고 불리는 제자들을 이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홀로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조사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그러면 그들은 우리가 어떤 법의 등불을 사용해야 알아낼 수 있는지 도와줄 것입니다. “자등명”이란 우리가 우리의 지혜를 사용해서 문제를 밝힌다는 뜻입니다.
선지식의 도움없이 스스로 어떻게 문제를 고쳐야할지 결정한다면, 우리가 알아서 바른 법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스스로 바른 법을 고르기 위해서 시도한다면, 성공할 가능성이 거의 희박합니다. 그 까닭은 우리의 마음이 혼란스럽기 때문입니다. 애초에 이런 혼란스러운 마음으로부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혼자 문제를 풀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성공 가능성은 매우 희박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모든 문제에는 이를 풀 수 있는 법이 있다는 점입니다. 불법에는 어떤 문제든 밝혀줄 수 있는 등불이 있습니다. 그만큼 부처님의 말씀은 아주 강력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법의 등불을 써서 문제를 비추라고 하셨습니다. 모든 문제를 밝힐 수 있는 법이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선지식이 준 법을 우리가 따르면 우리의 빛이 밝게 빛날 것입니다. 그런 법이 없다면 우리의 빛이 빛나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문제가 있을때 이자등명 즉 문제를 위해 우리의 빛으로 비추고, 그것을 열심히 실행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고쳐줄거라 기대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아직 문제를 고칠 수 없었던 것은 잘못된 법을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의지해야 하며, 스스로 알아내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의존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우리의 문제를 대신 고쳐줄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도 문제를 고칠 수 없다면 그건 단지 우리가 잘못된 방법을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문제를 고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도 고치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잘못된 법을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다른 법을 찾아봐야 합니다. 그래도 안되면 다른 법, 그런 후 또 다른 법, 그렇게 계속 찾아봐야 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문제를 고쳐야 하지만, 여러분이 현명하다면 선지식을 찾아가서 어떻게 문제를 고쳐야 할지 물어보세요. 모든 문제에는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모든 문제에는 법의 솔루션 즉 해결책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그냥 적용하기만 하면 됩니다.
참고: 영화 선사의 영어 법문 유튜브 링크 2020년 9월 6일 https://youtu.be/N5T9fLka_XI
Shakya XianAn (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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