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의 그늘
종교의 한계에 대해서는,
위대한 철학자는 물론이고 역사가들이 세속적 관점에서 그리고 비판적 신학자들이 수 세개에 걸쳐 분석해 왔다.
본질적 문제는 영적 진실에 관한 해석을 성전화(聖典化)하는 데서 생겨나는데,
영적 진실에 관한 해석은 성직자들의 영적 에고에 의한 오해의 귀결이다.
말하고 난 지 몇 세기가 지나서야 문자로 기록된 가르침을 변역하는 과정에서 많은 것이 사라진다.
이상은 잘 알려진 한계(의식 측정치에서 반영한 것과 같은)지만,
신도와 종교 자체와의 ㅘㄴ계에 대해서는 관심이 덜했다.
가장 명백한 오류는 신 대신 종교를 숭배하는 것이다. (진실로 깨달은 신비가라면 지지르지 않는 오류)
종교는 영감, 영적 사실, 중요한 정보를 제공해 주지만,
그런 것은 시간 속에 거하는 선형적 개념들의 집합체일 뿐 실상(Reality)자체는 아니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관찰되는, 종교 자체의 이름으로 종교의 본질적 진실을 위반하는 일로 귀착된다.
(예: 기독교와 이슬람의 십자군, 종교재판, 불신자 처단하는 것, 종교의 이름으로 무고한 이들을 살육하는 것,
신정 전체주의를 통한 종교의 정치적 해적 행위, '신앙의 이름으로' 비온전성을 합리화하는 것등)
이를테면 종교열은 제도로서의 교회를 신보다 우위에 두는 미묘한 형태와 우상숭배인데,
지비로우신 알라(Allah the All Merciful)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무고한 이들의 살육이 그 두드러진 사례다.
보다 미묘한 사례는 원시적이고 부족적인 관습이라는 외적 장식과 민족적 특이성을 과장하는 것인데,
그런 것들이 영적 진실의 핵심을 대신하는 초점이 된다.
이렇듯, 왜곡은 억압으로 귀결되고 기본적인 종교적 전제의 위반으로 귀결된다.
이상 모든 것 속에 있는 저변의 결함은 에고 자체의 그늘임이 분명한데,
그 다음에 에고는
종교를 자신의 목적(즉 자부심, 통제, 이득, 위신, 부, 떠받듦, 사회적 이미지, 그리고 자기애적 이득)을 위해 이용한다.
종교는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고, 지도이지 영토가 아니며, 표지이지 책이 아니다.
그리하여, 독실함처럼 보이는 과도한 종교열 자체는 병적 양심이 나타내는 것과 같은 오류가 될 수 있고,
그리고 그렇게 된다.
위대한 스승들은 종교가 아니라 신성(Divinity)에 관한 진실(Truth)을 가르쳤으며,
종교는 몇 세기 뒤에야 나왔다.
종교와 경전에 대한 숭배는 이해할 만한 것이지만,
예배하고 찾아야 할 대상은 , 종교와 경전의 진실이고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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