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휴가 시즌이 막바지에 이른 지난 주말, 우크라이나의 도네츠크주(州), 자포로제(자포리자)주의 아조프(아조우) 해안은 피서객들로 붐볐다. 작년과는 판이하게 달라진 풍경이다. 아조프해안은 우크라이나군이 반격에 나선 최전선에서 불과 80~90km 떨어져 있고, 머리 위로 군용 헬기들이 날아다니지만, 피서객들은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는 8일 우크라이나 전쟁의 두번째 여름 피서 시즌을 맞아 도네츠크주와 자포로제주 아조프 해변가에 사람들이 몰렸다고 전했다. 현지에서 올린 피서객들의 영상도 온라인에 넘쳐났다. 이들이 찾은 주요 해양지는 유명한 휴양도지 베르댠스크를 비롯해 우르주프, 멜리키노, 유리예프카 등이다.
아조프해 휴양지들. 맨 왼쪽이 베르댠스크, 우르주프(표시)에서 오른쪽으로 유리예프카, 얄타, 벨로사라이스카야 코사, 멜리키노 등의 휴양지가 있고, 맨 오른쪽이 마리우폴이다/얀덱스 지도 캡처
전쟁 전과 달라진 것은, 베르댠스크 등 아조프해 유명 해안이 러시아군의 통제 하로 넘어갔다는 사실이다. 또 이 곳을 찾는 피서객들도 우크라이나인들이 아니라, 독립한 친러 도네크츠인민공화국(DPR) 주민들이라는 점이다. 휴양지의 한 게스트 하우스 주인은 2014년 동부 돈바스(도네츠크주와 루간스크주) 전쟁 이후 끊어졌던 DPR, 친러 루간스크인민공화국(LPR) 고객들이 다시 찾아왔다고 반겼다.
DPR·LPR 주민들이 아조프 해안으로 몰리면서, 작년만 해도 파리를 날리던 이 지역 관광 사업이 다소 살아났다. 스트라나.ua는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군의 점령지를 하나씩 수복하고 있다는 전황 발표에도, 피서객은 특별히 당황하지 않는 것 같다고 썼다. 러시아군의 방어 능력에 대한 믿음에다 우크라이나 점령지에 대한 러시아의 실효적 지배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도네츠크의 유명 블로거 콘스탄틴은 "피서객들로 붐비는 도네츠크주 아조프 해안보다 더 차분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자포로제주 베르댠스크로 갈 것"을 추천했다. 베르댠스크는 예전부터 유명한 휴양지다. 도네츠크 해안 지역보다 훨씬 더 나은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다.
한적한 베르댠스크 해변가를 보여주면서, '이 곳으로 오라'고 하는 블로거/캡처
그럼에도 피서객이 아직 크게 몰리지 않는 것은 역시 '전쟁 리스크'다. DPR의 주도 도네츠크시(市)에서 다소 멀다는 점도 한 원인으로 보인다. 실제로 베르댠스크는 반격에 나선 우크라이나군의 최종 공격 목표다. 그래서 우크라이나군의 미사일과 드론이 정기적으로 날아오기도 한다.
가장 북적이는 해안은 개전 초기 최대 격전지였던 '마리우폴' 해변이다. 도네츠크시에서 가깝고 비교적 안전하다는 이유다. 우르주프 해변도 사람들로 붐비고 저녁에는 카페와 관광 명소가 떠들썩하다. 가격도 베르댠스크보다 10% 이상 저렴하다. 베르댠스크 호텔의 하루 숙박비가 2,000~2.500 루블(더불 기준, 2만8천원~3만5천원)이라면 도네츠크 해안은 2,000 루블 이하다.
피서객들로 붑비는 아조프 해안가의 모습/사진출처:SNS, 스트라나.ua
값싼 게스트 하우스도 인기다. 1인당 평균 숙박비가 300~500 루블(4천원~7천원)이다. 물론 따뜻한 물도 나오고, 와이파이(Wi-Fi)도 잘 터진다고 한다. 한 게스트 하우스 주민은 "올해에는 러시아 흑해 휴양지와 비슷한 가격을 책정했다"며 "9월 중순까지 예약이 꽉 찼다"고 말했다. 그는 "작년에는 다소 위험했으나 이제는 모든 게 정리됐다"며 "2014년에 마지막으로 우리를 찾아왔던 DPR, LPR 주민들이 다시 왔다"고 반가워했다.
그러나 모스크바 또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온 손님들은 아직 없다.
휴양지 곳곳에서 전쟁은 느껴진다. 머리 위를 날아다니는 군용 헬기와 도로를 통제하는 검문소다. 우르주프 근처에만 네 개의 'DPR검문소'가 있다. 하지만 특별히 통행을 차단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가끔 포격 소리도 들리지만,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게스트 하우스 주인은 말했다.
긴 전쟁으로 개선된 점도 있다. 아조프 해안의 물이 훨씬 더 깨끗해졌으며, 해파리도 사라졌다는 것. 마리우폴의 산업지대가 공장 가동을 중단하고, 러시아군의 폭격으로 완전히 폐허로 변한지 1년 이상 지나면서, 바다가 제 모습을 되찾은 것이다. 전쟁이 2년째에 접어들면서 적응이 끝난 주민들에게 '전쟁은 더 이상 없다'는 표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