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1. 28. 05;10
가을은 송두리째 사라지고 영하 4도까지 떨어진 새벽,
찬바람에 나뒹구는 낙엽을 바라보며 오늘이 며칠이더라 시계를 눌러
확인을 한다.
가까운 친구들의 연이은 발병 소식으로 어수선했던 11월,
11월도 3일밖에 남지 않았으니 세월 참 빠르다는 걸 느낀다.
특별한 일이 없으니 하루는 지루한데, 일주일은 빠르고 한 달은 쏜살같이
지나가고 일 년은 총알같이 사라진다.
코로나 세상이 지겨워서 버킷리스트(bucket list)를 없앤 지 2년,
지난 2년 동안 내가 무엇을 했던가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제대로
한 일이 생각나지 않으니 세월을 무의미하게 보낸 모양이다.
종심이 되어 다시 만난 겨울,
이번 겨울은 어떻게 윈터링(wintering)을 해야 할까.
그냥 무의미하게 겨울나기를 해야만 하는가.
코로나 확진자가가 연일 4천 명을 넘나드는 코로나 팬더믹 시대,
날씨는 점점 추워지고 사회적인 환경은 세상과의 단절을 요구한다.
인사이더가가 아닌 아웃사이더가 된 지 이미 오래지만,
그래도 세상으로부터 더이상 거부당하거나 단절이 되고 싶지 않은데 점점
인생의 휴한기를 강요하니 말이다.
배우 송승환이 황반변성과 망막색소 변성증으로 시력을 잃어간다는 기사에
의하면 그는 6개월 후 실명이라는 진단을 받았고 30cm 앞에 있는 사람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다고 한다.
즉 30cm의 세상에 포위돼 있고 그 너머는 아득한 절벽이라고 표현을 하면서도
물러서지 않고 연극을 공연한다.
나의 뇌종양 크기는 변화가 없지만 눈은 황반변성으로 시력을 점점 잃어간다.
눈꺼풀 수술로 간신히 0.2 정도는 보이는데 언제까지 유지될지는 모르겠다.
생물학적으로 몸은 늙어가고 눈은 점점 나빠져가도 정신은 짱짱하니 어쩌란
말인가.
10;00
창밖의 목련나무에 동아(冬芽)가 튀어나오기 시작한다.
벌써 내년 봄을 위한 잎눈을 품고 꽃을 피울 궁리를 하는 목련나무를 보며
묘한 생각이 든다.
저 나무나 나 역시 겨울을 선택할 수는 없지만 어떻게 이 겨울을 살아낼지는
선택할 수 있다.
기나긴 겨울의 시작,
끝을 모르게 기승을 부리는 코로나 바이러스,
예전 코로나보다 더 무섭다던 사스, 신종플루, 메르스가 사라졌듯 이 또한
지나가겠지.
겨우 남았던 은행잎이 떨어져 노랗게 물든 골목길을 어느 노인이 빗자루로
가을과 함께 쓸어담고,
울타리에 철 모르고 핀 백여송이의 장미꽃이 고개를 숙이기 시작한다.
이 글을 쓰던 중
쇼팽의 '이별의 곡'이 끝났다.
이어서 차이코프스키의 마지막 작품으로 알려진 교향곡 6번 '비창'이
흘러나오니 내친김에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8번 '비창'까지 들어야겠다.
원래 비창(悲愴)이란 뜻은 말 그대로 참담하도록 슬프고 서러움을 말한다.
차이코프스키의 비창 1,2악장이 어둡고 우울하고 장엄하고 웅장하다면
3악장은 리드미컬한 왈츠 형식의 곡이고, 마지막 4악장은 희망을 담은
아름다운 선율로 끝내는데 반해,
조성진이 연주하는 베토벤의 비창은 대체로 섬세하고 아름다운 선율이
넘친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창밖에서 들리는 쌍둥이 아기의 깔깔거리는 소리에 마음이 따뜻해지는 아침,
송승환 배우에게 공연하는 연극이 뜻한 대로 이루어지라는 사바하(娑婆訶)라는
응원의 말을 마음속으로 전한다.
2021. 11. 28.
석천 흥만 졸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