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권이 들어서며 청와대가 개방되었다고 합니다.
문득 2003년 봄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의해 개방된 청남대가 생각나네요. 당시는 신행정수도와 관련한 공부에 몰두하던 터, 남다른 소회를 글로 남겼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떤 정권이 들어서든 우리네 삶이 크게 달라질 건 없겠지만, 첫걸음을 뗀만큼 혹시나... 일말의 기대를 가져보며 먼지 앉은 글을 꺼내봅니다.
참! 이달 22일까지 청남대를 무료 개방한다고 합니다. 대통령 별장 구경 후 천안에 들르시면 식사&차는 낭만배달부가 책임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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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당신의 평화로운 전원마을에 누군가가 찾아와 ‘개발해주겠다’고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을 해 온다면? 그리고 귀 간지러운 속삭임이 일부 실현되어 관광단지로 지정되고 유람선이 운행된다면? 당신은 장밋빛 미래를 꿈꾸면서 평생 잡았던 낫과 호미와 어망을 내던지고, 땡빚을 내어 상가를 짓고, 모터보트를 사들일 것인가?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 집과 논밭이 댐 속에 가라앉았어도 고향을 떠나지 못한 사람들. 수몰민으로서 설움의 세월을 삭여 오다가 느닷없는 관광단지 지정에 ‘이제는 살았구나’하며 온갖 빚을 내어 장밋빛 미래에 투자했던 사람들. 그러나 개발은 취소되고 ‘안 된다, 못 한다’ 예전에 없던 규제만 생겨나 도리가 없게 된 사람들.
충북 청원군 문의면. 강이 호수가 되기 전, 이곳은 인근 어느 고을보다 부자마을로 손꼽혔다고 한다. 강변의 옥답에서는 소출이 넉넉했고, 한지가 만들어졌고, 담배가 경작되었다. 그러나 495미터의 대청댐이 72미터 높이로 들어서자 모든 것이 바뀌었다. 송시열 선생의 영정이 봉안된 영당마을이 잠기고, 장차 아홉 정승이 날 곳이라던 구승골이 가라앉고, 인심 좋던 뒷골과 장터 마을이 수몰되었다.
“질 좋은 쌀을 생산하던 무논, 하얀 모래사장이 있는 강변이 다 잠겼슈. 그때 쓰던 강배도 쓸모가 없어진 뒤에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었다가 장마 때 가라앉아 버렸쥬. 지금은 수몰을 겨우 면한 다랑논을 가꾸거나 밭을 일궈 고추 따위나 심고 있슈. 근데 지금도 가물 들어 물이 빠지면 강바닥에 있는 배가 보여유.”
이 마을에 태를 묻었다는 주민이 들려주는 얘기다. 예전 이곳 벌앗 마을 사람들은 강길을 이용했다고 한다. 강배에 소도 서너 마리 싣고, 늘 하던 대로 물을 건너고, 어부동 마을을 통해 대처로 나가 일을 보곤 했단다. 하지만 강과 호수는 달랐다. 손바닥만 한 나룻배를 타고 몇 십분 씩 깊은 호수를 건너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뱃사공 하나가 물에 빠져 죽자 물길을 버리고, 마을 뒤 고갯길을 넓혀 그곳으로 다녔다고 한다.
1970년대 후반 당국에서는 대청댐 수몰민에게 적절한 보상을 약속했고, 1980년 충청북도는 일대를 관광단지로 지정했다. 기대에 부푼 주민들은 빚을 내어 보트를 사고 상가를 지어 올렸다. 그러나 댐 준공식에 참석한 대통령의 “별장을 지었으면 좋겠네.”라는 한마디에 청남대가 들어서고, 군사보호구역이 되고, 청정지역/수질보전특별대책지역이 되고, 어로행위 제한구역이 되었다. 그리고 주민들은 하나 둘 마을을 떠나기 시작했다.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신탄진 IC에서 나와 신탄진 사거리에서 대청댐 방면으로 들어서면 호젓한 드라이브 코스가 나온다. 대청댐을 건너 청주 방향으로 가면 문의면이 나오고, 다시 화남 쪽으로 접어들면 저수용량 15억 톤의 대청호가 나온다. 충북의 청원/보은/옥천 3개 군과 대전시 동구 대덕구에 인접해 있는 다목적 인공호수다.
대청호의 모습을 제대로 보려면 신라 때 세워진 현암사(청원군 현도면 하석리)에 올라야 한다. 현암사에 올라 주위를 둘러보면 남쪽으로 금산, 서쪽으로 계룡산, 동쪽으로는 속리산 줄기가 이어진다. 그리고 호수 한가운데 잠겨있는 듯한 산 뒤편으로 일단의 고풍스런 건축물들이 보인다. 바로 청남대, 대통령 별장이다.
청남대는 1983년 12월에 지어져 전두환 대통령 이후부터 역대 대통령들이 별장으로 이용한 곳이다. 하지만 1993년 김영삼 대통령 취임 이후 당시 7개나 되던 지방 청와대를 개방할 때도 청남대는 마지막 ‘대통령의 별장’으로 남아 개방되지 못했다. 일국 수반의 휴식처였던 만큼 구체적인 규모나 시설은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전용 별장 및 낚시터, 골프 연습장, 비행장 등을 포함해 50만 평 내외로 추정될 뿐이었다.
이 청남대가 23년 만에 개방되었다는 소식이 들린다. 참여정부의 대선공약이 지켜진 모양이다. 인터넷 언론에 의하면 문의면 주민 500여 명이 돼지를 잡고 잔치를 벌였다고 한다.
지난 20년 동안 대통령 별장 주변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규제와 제약을 받았던 사람들. 국민관광단지로 지정되며 전국 제일의 호반도시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에 빚까지 내었으나 결국 나라님을 원망했던 사람들. 청남대란 얘기에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던 그 사람들.
“강이 호수가 되는 날, 임금이 머물 자리가 되리라”고 예언했다던 원효대사. 그 덕이 높았던 고승은 알고 있었을까? 임금이 잠시 머물고 간 그 자리에 억울한 백성들만 남아 하늘을 원망했다는 사실을. 그 백성들의 가슴이 20년 만에야 다시 두근거리고 있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