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역사] 삼계탕(蔘鷄湯)
일제강점기 때 닭백숙에 인삼 가루 넣어… 올림픽 때 보신탕 금지되자 대표 보양식 됐죠
삼계탕(蔘鷄湯)
김현철 서울 영동고 역사 교사 입력 2024.07.02. 00:36 조선일보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보신탕 판매가 금지되자 삼계탕집이 문전성시를 이룬다는 내용의 1984년 8월 15일 자 조선일보 기사. /조선일보 뉴스라이브러리
최근 집에서 데워 먹는 간편식 삼계탕 판매량이 늘고 있다고 해요. 일찍 찾아온 무더위로 보양식 수요는 늘었지만 물가 상승으로 외식은 부담되니 비교적 저렴한 간편식이 인기를 끄는 거예요.
여름철 삼복더위를 이겨내는 대표적인 전통 보양식 삼계탕은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을까요?
과거에 고기는 양반 같은 상류층이 아니면 주로 제사 같은 특별한 날에만 먹었어요. 무더운 여름철 특별 건강식으로 먹기도 했어요. 예전에는 지금처럼 병아리를 사시사철 부화시키기 어려웠어요. 그래서 봄철에 부화한 병아리가 여름쯤 먹을 만한 크기로 크면 보양식 재료로 활용했대요.
병아리와 닭의 중간 정도 크기로 성장한 이런 닭을 예전엔 연계(軟鷄)라고 했어요. 세월이 지나 지금은 ‘영계’라고 부르죠. 오늘날 흔히 먹는 ‘영계백숙’도 예전부터 시작된 거예요.
이렇게 만들어 먹던 닭백숙에 인삼을 넣어 만든 요리를 계삼탕(鷄蔘湯)이라고 불렀는데, 이 계삼탕이 삼계탕의 기원이라고 볼 수 있어요.
전통 음식이라 해서 역사가 길다고 생각하겠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오랫동안 먹어온 건 닭백숙이고, 계삼탕의 시작은 일제강점기로 보는 것이 정설입니다.
일제강점기 때 중추원(조선총독부의 자문 기관)이 조선의 풍속을 조사한 자료나 일제강점기에 편찬된 요리서 ‘조선요리제법’을 보면, ‘조선의 부유층들은 여름철 닭백숙을 만들 때 닭 안에 찹쌀과 인삼 가루를 넣어 먹는다’는 기록이 있어요. 인삼 뿌리를 통째로 쓰는 게 아니라 인삼 가루를 사용한다는 점만 빼면 지금의 삼계탕과 매우 유사하죠. 다만 조선 후기부터 인삼 생산량이 늘어났기 때문에 이때쯤 삼계탕이 등장했을 것으로 추측하기도 합니다. 닭과 인삼을 함께 달여 그 국물을 마시거나 환약으로 만들어 먹었다는 기록도 있어요.
삼계탕이 인삼 가루 대신 지금처럼 인삼 뿌리를 그대로 넣어 먹는 음식으로 발전한 것은 1960년대 전후로 보여요. 6·25전쟁 이후 냉장고가 보급돼 수삼(인삼을 말리지 않고 자연 상태 그대로 둔 것)을 신선하게 보관했다가 요리에 쓸 수 있게 됐어요. 그 전엔 보관이 어려우니 인삼을 말려 가루로 만들었다가 먹었고요.
삼계탕이 복날 보양식으로 인기가 높아진 건 1988년 서울 올림픽 전후라고 해요. 당시 보양식의 대표 주자는 보신탕이었는데, 올림픽을 앞두고 해외에서 ‘개 식용’이 논란이 되자 서울시가 보신탕 판매를 금지했어요. 결국 보신탕의 인기는 줄었고 그 자리를 삼계탕이 차지하게 됐다고 합니다. 과거엔 보신탕이 서민의 여름 보양식, 삼계탕은 상류층의 보양식으로 여겨졌는데 이젠 삼계탕이 대중적인 보양식이 됐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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