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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 자족하는 마음 말씀/ 디모데전서 6:3-21 요절/ 디모데전서 6:6 | 2025. 2. 23 | |
디모데전서 제 6 강 |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그리스도인의 삶은 예수님을 배우고 닮아가는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 초점을 맞추기 위해서는 물질에 지배당하지 않는 마음, 자족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자족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자족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까? 오늘 말씀을 통하여 참 행복이 무엇인지 알고, 행복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복된 사람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목자가 힘써 할 일이 무엇인지 다시 환기시키고 있습니다. 그것은 다른 교훈을 막고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어떻게 됩니까? 그런 사람은 교만하여 집니다. 그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입니다. 바른 말 다시 말해 복음을 따르지 않고 다른 교훈을 주장하고 퍼뜨리는 거짓교사들은 자기가 신비로운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자기 자랑하고 자기 영광을 추구합니다. 그는 쉽게 교만해져서 배우려고 하지 않고 남을 가르치려고만 합니다. 그는 영적 세계를 다 아는 것처럼 말하지만 실상은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한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의 말도 듣지 않고 자기가 선생이 되어 많은 말을 하고 많은 다툼을 일으킵니다.
이런 사람으로 인해 교회는 하나 됨이 깨어지고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결국 복음 진리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런 거짓 교사들은 경건을 이익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며, 교회를 다툼의 장으로 만들고, 분열시키고 무너뜨리는 나쁜 사람들입니다. 영지주의자들이나 율법주의자들과 같은 거짓교사들은 성경공부와 비밀스런 모임을 통해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을 전해주는 댓가로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그들은 경건을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한 것입니다.
디모데가 이런 거짓 교사들에게 말려들지 않고 바른 말, 바른 복음을 따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6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자족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자족하는 마음은 어떤 것입니까? 그것은 물질에 매이지 않는 마음, 물질에 대한 바른 가치관입니다. 돈의 위력은 하나님의 자리를 빼앗을 만큼 큽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돈 때문에 복음에서 멀어지고 하나님을 슬프시게 할 때가 많습니다. 거짓교사들이 재미있는 전설과 족보 이야기와 신비로운 영적 세계를 말하며 돈을 많이 버는 것을 보면 나도 그런 세계에 뛰어들어서 인기와 부를 얻고자 하는 유혹이 들어올 수 있습니다.
싱글일 때는 가난이 두렵지 않았는데 결혼하고 자녀들이 생기면 돈이 많이 필요합니다. 고등학생이 되고 대학입시가 가까울수록 돈이 더 많이 필요합니다. 돈이 많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안 들 수 없습니다. 어떤 분은 춘천에 방문하는 선교사들을 잘 섬기고 선교여행도 하기 위해서는 돈이 많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돈에 대한 유혹은 세상 사람들뿐만 아니라 우리 목자들에게도 늘 따라다닙니다. 돈의 유혹을 이기고 돈에 지배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자족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자족하는 마음이 있을 때 참된 경건에 이를 수 있고, 그런 경건이야말로 큰 이익이 됩니다. 자족하는 마음이 없으면 돈의 유혹에 흔들리고 돈의 지배를 당하게 되기 때문에 참된 경건에 이를 수 없습니다. 신앙생활이 형식적이 되고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보다 돈을 더 믿고 의지하게 됩니다. 자족하는 마음을 가질 때 어떤 환경 가운데서도 물질의 유혹을 이기고 하나님 한 분을 믿고 의지하는 참된 경건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자족하는 마음을 가지려면 물질에 대해 어떤 가치관을 가져야 합니까? 첫째, 인생은 공수래 공수거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가는 것이 인생입니다. 7절은 인간의 실존은 공수래 공수거라는 것을 분명하게 말합니다.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욥은 하루아침에 많은 재산과 자녀들을 다 잃어버렸을 때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오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1:20,21) 우리가 누리고 있는 것은 내 것이 아닙니다. 잠시 맡아서 관리하고 쓰고 있을 뿐 그것들의 진정한 소유권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많은 재산을 가진 큰 부자라 할지라도 이 세상을 떠날 때는 다 놓고 빈 손으로 갑니다. 인생이 공수래 공수거라는 철학을 가질 때 우리는 물질과 우리 인생에 대해서 자족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둘째, 날마다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다면 그것으로 감사하라는 겁니다.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생존에 필요한 양식과 옷이 있는 것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오늘 먹을 양식이 있다는 것, 오늘 내 몸을 보호해줄 옷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감사제목입니다. 저는 전임목자로 세움 받으면서 내가 세끼 밥을 먹을 수 있을까, 양복 한 벌이라고 입어볼 수 있을까 염려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일용할 양식이 떨어지게 않게 하시고, 양복도 주시고 잠바와 코트도 주셨습니다. 없는 것을 생각하면 불평하게 되고 욕심이 생깁니다. 하지만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 알고 감사하게 되면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물질로부터 자유하게 됩니다. 김국환의 타타타는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해주는 인생철학을 담고 있습니다. “산다는 것은 좋은 거지, 수지맞는 장사잖소.” 그의 노래는 우리 삶은 예측할 수 없는 만큼 즐길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인생이라는 것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자녀들에게 아버지 하나님은 일용할 양식을 공급해 주시고 때마다 필요한 것들을 채워 주십니다. 오늘날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양극화입니다. 부자는 더 부자 되고 가난한 자는 더 가난해 진다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우울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이 땅의 삶은 잠시 잠깐입니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가 있습니다. 우리는 천성을 향해 가는 거룩한 순례자들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잘 나가는 사람들과 비교하지 않고 오늘 양식과 옷이 있는 것을 감사하고, 날마다 감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셋째,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는 것을 알고 돈보다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어떻게 됩니까?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입니다. 부자가 되고자 하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어떤 그리스도인은 ‘부자가 되게 해 주십시오’라는 것을 공식적인 기도제목으로 내놓기도 합니다. 문제는 부자가 되고자 하는 자들은 많은 유혹과 해로운 욕심에 빠지게 될 위험성이 크다는 겁니다. 돈의 속성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돈은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닙니다. 돈을 어떻게 버느냐도 중요하지만 돈을 어떻게 쓰느냐는 더 중요합니다. 돈에 대한 성경적인 가치관을 가질 때 돈의 노예가 되지 않고 돈을 바르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돈을 벌고자 하면 돈에 대한 사랑에 빠지기 쉽습니다. 연예를 해본 사람이라면 연예에 빠진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 것입니다. 늘 그 사람이 떠오르고 그 사람만 생각하고 그 사람이 나의 마음과 삶을 온통 지배하게 됩니다. 돈을 사랑하게 되면 늘 돈이 떠오르고 돈을 생각하고 돈이 나의 마음과 삶을 끌고 가게 됩니다. 성경은 돈을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경고합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됩니다. 돈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 자기를 찔렀습니다. 돈을 사랑하고 돈을 탐내는 자들은 돈의 미혹을 받아서 믿음에서 떠나게 됩니다. 결국 돈이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고 믿음을 앗아가고 많은 근심으로 나를 찔러 멸망에 이르게 합니다.
그러므로 돈에 대한 사랑에 빠지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돈에 대한 탐욕이 들어올 때마다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이켜야 합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사랑해야 할 대상은 돈이 아니라 우리의 창조주요 구속주이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십계명 중 첫째 계명이 무엇입니까?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두지 말라’입니다. 돈은 맘몬신으로 하나님 자리를 차지하려는 속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돈의 우상을 과감하게 치우고 하나님을 내 마음 첫 자리에 모시고, 내 하나님 여호와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사랑해야 합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어떤 싸움을 싸우라고 권면합니까? 바울은 먼저 디모데를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라고 부릅니다. 이는 디모데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깨우쳐주는 말입니다. 디모데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디모데는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디모데는 분명한 정체성을 가지고 돈에 대한 탐욕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디모데가 힘써야 하는 것은 바울로부터 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바른 교훈을 따르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는 것입니다. 이단적인 가르침으로부터 교회를 지킬 뿐 아니라 더욱 건강한 교회로 세워가기 위해서는 책임 맡은 목자가 솔선수범하여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할 것입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은 영적 싸움이요 영생을 취하기 위한 싸움입니다. 이 싸움은 주님께서 싸우신 싸움이요 승리한 싸움이요 지금도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거룩한 싸움입니다. 이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공중 권세 잡은 마귀와의 싸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순간 하나님을 믿고 믿음으로 싸워야 합니다. 믿음으로 싸울 때 영생을 취할 수 있고, 건강한 교회를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 영적 싸움을 위해 디모데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습니다.
만물을 살게 하신 하나님 앞과 본디오 빌라도를 향하여 선한 증언을 하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다시 말해서 최고의 권위를 가지고 바울은 디모데에게 명령합니다. 그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흠도 없이 책망 받을 것도 없이 바울이 명한 것들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온 힘을 다해 이단적 가르침들을 막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복음에 기초한 바른 교훈들을 지키라는 겁니다.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은 복되시고 유일하신 주권자이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이십니다.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이십니다. 바울은 절대주권자이시며, 만왕의 왕, 만주의 주이시며, 생명과 빛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원한 권능을 돌리며 아멘으로 응답합니다.
17-19절은 우리의 소망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가르쳐줍니다. 17절을 보십시오.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이 세대에 부자들은 어디에 소망을 두고 살아갑니까? 돈을 많이 가진 부자들은 마음이 높아져 자기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호의호식하며 떵떵 거리며 살 수 있기에 하나님을 찾지 않고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지 않습니다. 현재의 삶이 풍요로워서 여기가 낙원이라고 생각하고 천년만년 살고자 합니다. 하지만 이 세상나라는 영원하지 않습니다. 재물이 나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합니다. 돈 많다고 구원 받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재물은 정함이 없는 것이요 언제 사라질지 알 수 없습니다.
전쟁이 터지면 순식간에 재물을 다 잃어버리게 됩니다. 큰 병에 걸리게 되면 모아 두었던 재물이 금방 바닥이 나고 맙니다. 그러므로 부자들이라 할지라도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재물의 진정한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일시적으로 그 재물을 받아서 누리고 있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언제든지 다 놓고 떠나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재물을 맡기신 데에는 어떤 뜻이 있습니까?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데 있습니다. 재물로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고 너그러운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입니다. 재물을 복음역사를 위하여 사용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데 사용하는 것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일 뿐 아니라, 나를 위하여 하늘에 보물을 쌓는 것이며 영생을 취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서신 끝부분에서 디모데에게 다시 한번 망령되고 헛된 말과 거짓된 지식의 반론을 피함으로 네게 부탁한 것을 지키라고 권면합니다. 이것을 따르는 사람들이 있어 믿음에서 벗어난 자들이 있었기에 바울은 디모데에게 복음진리를 사수하도록 호소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를 통해 지도자의 중요성을 배웠습니다. 또한 지도자를 중심으로 교회가 복음진리로 영적 무장을 할 때 이단적인 가르침, 세속주의, 쾌락주의, 물질주의를 막아내고 세상을 향하여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배웠습니다. 올해 8명의 요회목자들이 세움을 받았습니다. 요회 이름이 매우 신선했고, 요회의 비전과 영적 방향이 분명했습니다. 어찌하든지 양 무리의 본이 되어 새 양들을 얻고 새역사를 이루고자 믿음의 결단을 드렸습니다. 봄학기 요회 모임을 꾸준하게 이루고 캠퍼스 전도와 일대일 성경공부에 도전함으로서 청년대학생들이 예수님을 만나고 빛을 발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