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은 막 14:1-9절이고, 제목은 “주님 사랑-구체적으로 표현하십시오.”입니다. 유월절 이틀 전에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시던 예수님의 머리에 한 여인이 옥합을 깨어 향유를 붓습니다. 삼백 데나리온의 가치를 허비한다고 책망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미리 자신의 장례를 준비하는 좋은 일을 하였다고 하시며,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인이 행한 일도 말하여 기억하리라 하십니다.
묵상
오늘은 여인이 깨뜨린 '옥합'에 대해서 묵상합니다. ‘옥합’(玉盒, alabaster jar)을 헬라어로 남성명사인 ‘알라바스트론’(ἀλάβαστρον alábastron)이라고 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여인이 가져 온 '향유'에 대하여, 실제로 같은 내용을 기록하고 있는 요 12:3절에 보면, 향유의 양을 한 근, 즉 1 ’리트라’(λίτρα-lítra)라고 밝혀 두고 있는 데, 그 무게는 12온스(약 340 g) 정도로 일반 소주병 (360 ml)과 비슷한 크기입니다. 본문에서는 여인이 옥합을 깨뜨렸다고 하는 데, 실제는 옥합 자체를 깨트렸다고 하기 보다는 향유의 증발을 막기 위해 단단히 밀랍형태로 막아 놓았던 덮개 부분을 깨뜨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향유이 가치가 어림 잡아도 300 '데나이온' 이상이라고 했으니, 노동자의 1년 임금에 해당하는 매우 큰 금액의 가치를 가지는 것이었습니다. 더구나 그 당시 여인의 몸으로 그 만한 것을 장만하려면, 여러 햇수 동안에 걸쳐서 몇 배의 노동을 해야만 마련할 수 있는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다른 표현으로는 처녀들이 결혼하기 위해 준비해가는 지참금과 같은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여인으로서 앞으로 누려야할 최고의 행복까지도 완전하게 포기해야만 가능했던 행동이었다는 말입니다.
이 여인의 파격적인 퍼포먼스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했을 것입니다. 수학적 계산이 빠른 경제인은 그 가치를 파악하는 데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어처구니 없는 낭비라고 악평하기에 충분했을 것입니다. 대개의 경우는 실성한 여인의 돌출 행동 정도로 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이 여인이 취한 특별한 행동의 진의를 온전하게 알고 계셨던 분은 오직, 예수님 한 분이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내 장례를 미리 준비했다.”(7절)라는 것이었습니다. 달리 표현하자면, 이 여인은 예수님을 향한 진실한 사랑과 헌신을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타낸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 사건에 대하여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9절)라고 정리하셨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묵상을 통하여 주님을 믿는 성도들이라면 누구나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로는 쉽게 고백하지만, 그것을 얼마나 구체적인 행동으로 표현하며 살아왔는가를 되돌이켜보는 계기로 삼게 됩니다. 얼마나 희생했으며,얼마나 소중한 것들을 주님께 드렸는가? 를 말입니다. 과연 나에게 이러한 기회가 주어진다면, 얼마나, 어느 정도로 내어 놓을 수 있을까? 깊은 고민을 해봅니다.
주님께서 오늘 저에게 주시는 위로의 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비록, 네가 여인처럼 옥합을 깨뜨리지는 않았지만, 그 동안 단잠을 포기하고,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무릎을 꿇어 기도로 드린 수 많은 시간들을 내가 기억하고 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의 비난과 비웃음을 감수하면서도 “나만 따르라.“(Follow Me)는 내 말에 따라 순종의 걸음을 지금까지 걸어오고 있음도 내가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네가 드릴 더 많은 헌신과 사랑의 수고에 대하여 내가 크게 기대하고 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로는 수 없이 떠들어 대지만, 실제적인 생활 속에서 기꺼이 허비해 드린 것이 별로 없었음을 고백 드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세한 것까지 기억하며 인정해 주시는 당신의 은혜에 감사 드립니다. 성령이여 도우사, 오늘의 삶의 자리에서 제가 보여드릴 수 있는 방법과 열정을 모두 동원하여 주님을 향한 사랑을 표현하는 하루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