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여호와는 변하지 아니한다!(말3:1-6)
갈등
1. 오늘은 대림절 두 번째 주일입니다. 말라기, 구약의 마지막 말씀을 나눕니다. 말라기는 나의 사자라는 의미에요. 말라기 선지자는 자신의 이름이 나의 사자인데 오늘 본문 1절,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라고 했어요. 1절 하반절에도,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곧 너희가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을 기록한 말라기도 사자이고, 하나님께서 보내실 사자가 예언되었고, 또 언약의 사자라는 말도 이어집니다. 사자는 하나님이 보내시는 사람인데, 오늘 본문에 세 명의 사자가 등장합니다.
하나님의 사자들이 등장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특별한 계획을 미리 말씀하시고-예언, 이루실 것을 약속합니다. 그 시기는 당장일 수도 있고, 어떤 경우에는 수백 년-천 년이나 그 후에도 이뤄집니다. 우리에게는 백 년이나 천 년이 상상 속의 이야기이지만, 하나님께는 하루와도 같아요. 하나님은 시공간에 제한되지 않으십니다. 오늘 세 명의 사자들이 등장하는데, 한 명은 오늘 말씀을 전하는 사자 말라기입니다. 두 번째 말씀하는 내 사자는 누구입니까? 이어서 오실 언약의 사자는 누구입니까? 이 두 사자를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목적은 무엇일까요?
갈등 심화
2. 지난 주일 파루시아라는 말을 나눴어요. 곧 오신다는 말과 기다림이란 두 가지 의미가 있어요. 내 사자와 언약의 사자가 파루시아하기 전에 오늘 본문은 그들이 올 것을 예언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상황을 전제합니다. 그 상황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예언자들을 통해서 말씀하셨어요. 오늘 본문에 말라기 당시의 상황이 엿보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2절, 불로 금을 연단하듯이 또 잿물로 표백을 해야 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었어요. 3절, 은을 연단하여 깨끗하게 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말라기 시대 이스라엘이 연단받고 깨끗하게 해야 할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3절, 그들이 공의로운 재물을 하나님께 드리지 않았습니다. 4절, 유다와 예루살렘의 봉헌물이 하나님께 기쁨이 되지 못했어요. 5절, 하나님께서 심판받을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들은“점치는 자, 간음하는 자, 거짓 맹세하는 자, 품꾼의 삯에 대하여 억울하게 하는 자, 과부와 고아를 압제하며 나그네를 억울하게 하는 자(약자들을 괴롭히는 자),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말라기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를 드리지 못했음이 잘 드러나고 있어요. 하나님께서 그들의 문제를 하나하나 지적해주셨어요.
3. 하나님께 온전한 제사를 드리지 않는 자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으니,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소홀히 하고 제대로 된 제물을 드리지 못했어요. 1:6,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이라고 하나님께서 책망하셨어요. 하나님께서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하고 부르시면, 제사장들이 부끄러워하고 어찌할 바를 몰라야 해야 합니다. 이것이 상식이잖아요. 그들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고 따졌습니다. 1:7,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제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물었습니다. 참 기가 막힌 이야기가 말라기에 나옵니다.
1:8, 너희가 눈먼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을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스라엘은 어떤 제물을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지 율법을 통해서 너무나 잘 알았습니다. 제물은 흠이 없는 온전한 것으로 드리라.(레22:21) 그들은 이것을 알면서도 지키지 않고 소홀히 하거나 무시했어요. 하나님께서 진노하셨어요.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 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으며 너를 받아주겠느냐? 사람이라도 너희가 준비한 것들을 선물로 받지 않을 것이다. 말라기 시대는 바벨론 포로 후에 고향 땅 이스라엘로 돌아온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이스라엘이 70년간 징역살이를 하듯이 징계를 받았어요.
4. 이렇게 징계를 받고 돌아온 이들이라고는 도무지 믿기지 않는 자세가 말라기에 보입니다. 하나님은 1:10,“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하나님께서 엄중하게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셨어요. 이런 식으로 제사드리는 너희는 차라리 성전 문을 닫아라. 나는 너희 제사를 기뻐하지 않고 너희의 제물을 받지도 않을 것이다. 말라기 시대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나 아무 의미 없는 제사를 드렸습니다.
5절에 그들의 삶의 모습이 나타나 있어요. 무당에게 점을 치러가고, 간음하고, 거짓 맹세하고, 일군들에게 월급을 제대로 주지 않고, 약자들을 억울하게 하고, 하나님을 경외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렇게 염치없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하나님은 놀라운 말씀을 선언하셨어요. 6절,“나 여호와는 변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야곱의 자손들아 너희가 소멸되지 아니하느니라.”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성전 문을 닫으라고 말씀하셨어요. 준엄한 심판을 선언해도 부족한 이들에게 말씀하시는 오늘 본문의 마지막 절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변하지 아니하신다고 했는데,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왜 여기서 이 말씀을 선언하셨을까요?
실마리
5. 오늘 본문에 세 사자가 등장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전하는 사자 말라기, 1절에 말씀하는 내 사자는 하나님 앞에서 길을 준비할 자입니다. 예수님이 오시는 길을 준비했던 세례 요한을 말해요. 주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광야에서 회개하라고 외치며 세례를 주었습니다. 셀 수 없는 유대인들이 전국에서 그의 거친 설교를 듣고 세례를 받기 위해 몰려왔습니다. 모든 이스라엘이 그를 하나님의 선지자로 여겼어요. 말라기 이후 400년 만에 하나님의 음성이 이스라엘에게 선포되는 영적 부흥이 세례 요한을 통해서 임했습니다.
세 번째 사자-언약의 사자는 예수님이세요. 언약의 사자 예수님이 오시면 금-은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같이,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이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을 밝힙니다. 말라기 시대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구제불능이었어요. 좀처럼 회개나 변화의 의지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의 변화-세계 모든 인류의 변화는 오직 언약의 사자가 오셔서 청결하게 할 때만 가능했습니다. 6절에, 나 여호와는 변하지 아니하신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속성을 의미해요. 하나님은 예나 지금이나 영원히 변함이 없으세요. 사람들이 변하고 세상이 변하는 것뿐입니다.
6. 하나님의 사랑도 언제나 변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야곱의 자손들-이스라엘이 소멸되지 않는 것이에요. 그들이 죄를 범하여 회개하지 않을 때, 하나님은 오래 참으셨어요. 이스라엘 왕들과 백성들이 회개하기까지 하나님은 얼마나 그들에게 기회를 주셨을까요? 북이스라엘 왕국이 우상숭배를 떠나지 않자, 하나님께서 앗수르-앗시리아에게 멸망을 당하게 하셨습니다. 남유다 왕국이 북이스라엘과 같이 멸망하지 않고 회개하도록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계속 보내고 기다리셨어요. 150년이나 유예기간을 주셨습니다.
불행하게도 남유다 왕국도 북이스라엘과 같이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았어요. 하나님은 그들을 바벨론에게 멸망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깨닫도록 앗수르와 바벨론을 징계의 도구로 사용하셨어요. 이스라엘이 바벨론에서 70년의 모진 세월을 보내며 깨닫게 하셨어요.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소멸되지 않으리라 약속하셨어요.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는 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늘 본문에 약속하신 언약의 사자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7. 이스라엘 종교인들과 군중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치며, 이 죄 값을 우리와 우리 후손에게 돌리라고 말했어요. 어리석고 겁 없는 어린아이처럼 외쳤는데, 그들이 외친 말대로 되었어요. 70년 로마의 디도 장군에 의해 100만 명의 유대인들이 학살을 당했습니다. 1900년 동안이나 이스라엘이 나라 없이 세계를 방랑했습니다. 이런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지켜주셨어요. 1948년 팔레스타인 땅에 이스라엘이 재건되게 하셨습니다. 세계사에서 전무후무한 일입니다. 탈무드의 위대함이 아니고 하나님의 위대하심입니다.
복음 제시
7. 세계 인류의 희망은 오직 언약의 사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말라기 시대의 이스라엘이나 오늘 세계의 현대인들은 차이가 없습니다. 세월이 오래 지났지만, 사람들은 좀처럼 변화되지 않아요. 현대인들이 예배를 귀하게 여기지 않아요. 말라기에게 선포한 것처럼, 하나님께서 교회 문을 닫았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실 곳들이 많습니다. 인류의 희망은 하나님의 속성에 기댈 수밖에 없어요.
“나 여호와는 변하지 아나하니니.”야곱의 자손들아 너희가 소멸되지 아니하느니라. 이러한 속성을 지니신 그리스도야말로 우리가 의지할 유일한 분이십니다. 세계 인류가 소멸되지 않은 것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희생제물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희생하심으로 우리 죄가 사함받고 다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기대
8. 예수님이 우리의 소망이 되시기 위해서는 금은을 연단하는 불과 잿물로 표백하듯이 우리가 깨끗하게 되어야 해요. 성결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5절과 같이 무당에게 점치러 가거나 간음하면 안 됩니다. 한국교회 안에 이 두 가지 죄가 아직도 성행하고 있답니다. 남의 품삯-월급을 주지 않고 약자들을 억울하게 하고 괴롭히면 안 됩니다. 이 두 가지도 한국교회 성도들 가운데 행한다는 뉴스가 주기적으로 들려요. 말라기 시대와 같이 참 슬픈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복음이 있지만, 그 복음을 따라 살지 않으면 복음은 효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복음의 능력이 사라져요. 무기력한 삶을 살 뿐입니다. 어제 새벽에 우리 국민들의 상당수가 잘못 이루며 축구 경기를 응원했습니다. 극적인 드라마와 같은 승리를 맛보고 환호했습니다. 12년 전 남아공 월드컵 후 한국 축구가 아시아를 벗어나 세계 무대에서는 이렇다 할 승리를 맛보지 못했어요.(박지성 시대가 끝나며) 그리고 12년 만에 손흥민 시대가 꽃이 피고, 참 오랜만에 승리를 국민들이 만끽했습니다. 축구의 승리와 같이 영적인 전쟁에서도 우리 국민들이 승리를 맛본다면 얼마나 좋을까 기대하며 기도합니다.
9. 우리가 영적인 전쟁에 승리하려면 능동적으로 반응해야 해요. 하나님을 경외하고, 예배를 귀하게 여기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와 예물을 드리는 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들을 우리가 소홀히 여기지 않고 관심을 집중하면, 어느새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됩니다. 예수님의 값비싼 희생의 가치가 우리 삶에서 적용됩니다. 주님의 은혜가 값싼 은혜로 전락되지 않습니다. 복음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우리가 복음을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대림절 두 번째 주일인데, 우리가 복음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도록 이 시간 다 같이 일어나 찬송하며 기도합니다.(오늘 찬양: 예수님은 누구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