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들이 기억해야 할 한국교회 위인들 [66]
김철훈(金哲勳, 1905~1948)①
‘부러질지언정 휘지 않는 강직한 사람’으로 한국교회 순교 역사에 기록된 인물 김철훈 목사는 1904년 10월 7일 아버지 김경덕(목사)과 어머니 안독신 사이에서 3남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목사 가정에서 태어나 기독교 신앙으로 자랐습니다. 불과 14세의 어린 나이에 아버지 김경덕 목사가 1919년 3월에 만세운동에 참여했다가 주동자로 체포되어 3년 8개월간 옥고를 치르는 동안 그는 지평 공립보통학교에 재학 중이었는데, 교장 선생님 훈화 시간에 3·1 만세운동을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가 퇴학당할 위기에 놓였다가 교사들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하기도 했습니다. 선교사 곽안련의 추천으로 숭실중학교와 숭실전문학교에 입학해서 공부를 할 수 있었으나, 1929년 11월 3일 광주에서 일어난 광주학생만세운동 추모 행사에 참여했다가 주동자로 체포되어 1년간 옥고를 치르게 되었습니다. 그는 평양신학교를 졸업한 후 숭실중학교 교목으로 부임을 했지만 일본 경찰은 3·1만세운동에 참여한 아버지의 전력과 평양 학생만세사건에 연루된 그를 ‘불령선인’(不逞鮮人)으로 분류하여 교목에서 면직했습니다. 불령선인은 일제가 조선인 중 일본의 명령과 지도를 거부하고 저항하고 반항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용어였습니다. 불령(不逞)은 ‘불만이나 원한을 품다’ 또는 ‘그런 생각으로 난을 일으키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불령선인이라는 말을 듣게 되면, 오늘날 ‘빨갱이’ 소리를 듣는 것 같은 나쁜 꼬리표가 붙여지는 것이었습니다. 일제로부터 그런 취급을 당했기에 그가 갈만한 교회도 많지 않았습니다. 어렵게 평남 대동군에 있는 송사리교회에 부임해서 목회를 시작했지만 설교 중 우상숭배인 신사참배를 반대한 일로 체포되어 9개월간 감옥생활을 해야만 했습니다.
<참고문헌>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통합) 순교자기념선교회 홈페이지
https://pck-pcmma.com/132/?bmode=view&idx=1703640
이승하. “한국교회 순교자들(4) 김철훈 목사”(한국장로신문, 2025.05.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