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장미꽃피는 6월은 우리나라에는 가장 잔혹한 달로 기억된다. 6,25 전쟁으로 나라가 초토화되고, 우리 국군과 국민들 100여만 명이 희생된 뼈아픈 달이다. 휴전한 지 73년이지만 아직도 6월이면 유가족들의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다. 정부는 나라를 지키다가 장열 하게 목숨을 바친 호국영령들을 추모하기 위해 6월 6일 현충일(顯忠日)을 국가 기념일로 정했다.
필자가 젊은 시절 현충일에는 조기를 달고, 오전 10시 전국에 사이렌이 울리면 길을 가던 사람들도 잠시 서서 묵념으로 호국영령들 추모를 했다. 그런데 지금은 추모는 고사하고 국기조차 계양하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북한의 위협은 여전한데도 6,25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들의 애국심은 퇴색되어만 가고 있다.
오는 6일은 71주년 현충일이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의 고귀한 희생을 추모하고 애국정신을 선양하기 위해 제정된 국가 기념일이지만 함께 기억하고 추모해야 할 은인의 나라 은인(恩人)들이 있다. 전투병력을 파병한 미국을 비롯한 16개국 젊은이들이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희생된 유엔군들이다.
전쟁에 참전하는 것은 곧 목숨을 내놓는 일이다. 지구상에 어디에 붙어있는지도 모르는 나라, 한 번도 만나 본 적도 없는 나라 국민들을 공산 침략으로부터 지켜주기 위해 참전했다가 전사하거나 실종, 부상을 당했다. 비록 국적은 다르지만 그들도 전쟁터에서 우리 국군과 함께 싸우다 피를 흘리고 죽어가며 대한민국을 지켜준 우리의 호국영령들이다.
2016년 KBS에서 6,25 특집으로 "장군의 아들"이 방영된 바 있다. 미국과 한국의 미공개 문서와 영상을 발굴 66년 만에 한국전쟁의 비화를 공개 방영한 것이다. 미국의 장군들과 그 아들들이 6,25 한국 전쟁에 참전 군인의 명예와 책임을 목숨보다 더 귀중하게 여겼던 이야기들이 당시의 영상을 통해 생생하게 전했다.
신생국가 대한민국이 탄생한 지 1년 반 정부가 채 자리도 잡기 전 북한 공산 괴뢰군들의 침략으로 풍전등화(風前燈火)와 같은 위기에 처했을 때 그들이 어떤 신념으로 우리를 지켜줬는지 사례를 보면 감동과 눈물이 서린다.
1953년 6월 25일 새벽 4시 소련이 지원한 탱크, 박격포, 다발총, 기관총, 항공기(MIG)등 각종 전쟁무기를 동원한 북한 괴뢰군들의 기습 공격으로 우리 군은 사력을 다해 방어했지만 무기와 병력부족으로 3일 만에 서울이 함락되고, 28일 만에 대구, 부산을 제외한 전국토가 함락되었다.
6,25 남침이 발발하자 6월 28일 트루맨 미국 대통령의 지시로 유엔안전보장회를 소집했다. 유엔에서 한국전쟁 참전이 의결되고 일본 점령군 사령관 맥아더원수(5성 장군)가 유엔군사령관으로 임명됐다. 우리의 마지막 보루인 낙동강 방어선 전투가 위기를 맞고 있을 때였다. 맥아더사령관은 일본에 주둔한 스미스부대 1개 대대를 선발부대로 한국전에 급파 낙동강전투에 투입시켰다.
한국에 파병한 미 8군 사령관으로 윌튼 워커장군이 부임한다. 워커 장군은 "무슨 일이 있어도 후퇴는 없다"라는 낙동강 방어를 독려했다. 낙동강 전투를 승리로 이끈 명장이다. 그리고 그해 12월 윌튼 워커장군은 불시의 교통사고로 사망하게 된다. 워커장군의 아들 샘 워커 대위도 아버지와 함께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갑자스런 아버지의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맥아더사령관은 샘 워커 대위에게 아버지 유해를 모시고 귀국하라고 지시를 한다. 그러자 샘 워커 대위는 "부대원을 전쟁터에 남겨두고, 혼자서 떠날 수가 없습니다. 한국에 남겠습니다"라고 한다. 아버지 장례보다 부하들 걱정이 앞선 미국의 군인정신이다.
맥아더 사령관은 "아버지 장례식을 아들이 치러야 할 것 아니냐면서 명령이니 귀국하라"고했다. 워커대위는 장례를 치르고 곧바로 귀대 신청을 했다. 전쟁터에 남겨둔 부하들 걱정에 한국에 다시 오려고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안 했다.
1951년 3월 윌튼 워커장군 후임으로 벤프리트장군이 미 8군 사령관으로 부임했다. 벤프리트장군의 외아들인 지미 벤프리트 중위는 해군 항공기 조종사였다. 미군의 해외 복무규정상 참전이 불가하자 탄원서를 제출 한국전에 지원했다. 지미 벤프리트 중위는 한국에 와서 어머니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낸다."어머니 저를 위해 울지 마세요,. 저는 제 임무를 다하기 위해 한국에 왔습니다. 저와 함께 비행하는 동료들의 안전을 빌어주십시오"라고 썼다.
벤프리트 중위는 1952년 4월 4일 임무수행 중 실종됐다. 즉시 수색대를 보냈으나 시신을 찾지 못했다. 수색이 길어질 것 같자 벤프리트 사령관은 모든 수색을 중단시켰다. 수색을 하다가 더 이상 희생을 막기 위해서였다. 벤프리트장군은 아들이 실종되자 전사자 가족들에게 위로의 편지를 보낸다.
저는 한국 전쟁에서 아들을 잃은 모든 부모님들이 저와 같은 심정이라 믿습니다. 우리의 아들들은 나라에 대한 의무와 봉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벗(한국인)을 위하여 자신의 삶을 내놓는 사람보다 더 위대한 사람은 없습니다. 벤프리트장군은 생존 시 찾아간 한국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 아들은 인천 앞바다에서 전사했습니다. 아들의 시신을 찾을 수만 있다면 그 애가 좋아하는 한국땅에 묻겠다고"했다.
맥아더 장군 후임 마크 웨인 크라크 유엔군 사령관의 아들 마크 빌 크라크 소령도 금화지구 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전역했으나 후유증으로 사망했다. 벨렌 덜레스 CIA국장 아들 지미 벨렌 덜레스 중위, 미 해병 제1항공 사단장 필드 해리스장군의 아들 윌리엄 해리스 중령, 2차 대전의 영웅 죠지 패튼장군의 아들 등 장군들의 아들들 37명이 한국 전쟁에 참전했다가 사망하거나 실종, 부상당했다. 한국 전쟁에 참전한 장군만도 142명이다.
드와이드 아이젠 하워 미국 대통령 외 아들 존 아이젠 하워 소령은 제3사단 대대장으로 중부전선 최 전선에서 근무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한국 전선을 방문했을 때 이야기다. 벤프리트 사령관이 전황을 보고하고 나자, 우리 아들은 지금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다. 벤프리트 사령관은 전방에서 근무 중이라고 했다. 그러자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우리 아들을 후방으로 배치해 주시오"라고 했다.
벤프리트 사령관은 아들 지미 벤프리트 중위가 임무수행 중 실종된 상황인데 대통령이 아들을 후방으로 배치해 달라는 청탁에 어이가 없어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 아들이 전투 중에 전사하면 명예로운 일이며 가문에 영광입니다". 하지만 "적군에 포로가 되었을 경우 대통령의 아들을 볼모로 전략적 협박을 할 것입니다.
그러면 "국민들은 대통령의 아들을 살리라고 여론이 일 것이고, 그리되면 우리의 전쟁수행에 막대한 차질이 초래할 것입니다".라고 했다. 그제야 벤프리트사령관은 대통령의 깊은 뜻을 이해하고 즉시 조치하겠다고 했다. 오늘날 미국의 강한 힘의 원천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짐작이 되는 대목들이다.
용산 전쟁기념관에 가보면 유엔군 참전용사 전사자들의 명패 위에 이런 글이 쓰여있다. "전혀 알지도 못하는 나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국민을 지키라는 부름에 응 했던 그 아들 딸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필자가 이 글을 읽다 보니 가슴이 먹먹하고, 눈시울이 촉촉해지며 코끝이 시큼해진다. 6,25 전쟁으로 전사한 우리 국군 전사자 13만 7천899명, 유엔군 4만 790명 전사자 중 미군 3만 6천573명이 전사하고, 10여만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전쟁기념관자료)
우리나라 장군의 아들들이나 대통령 국회의원 등 고위직 아들들이 다른 나라 전쟁에 미국인들처럼 부자간에 혹은 자진해서 참전할 의인들이 있을까. 아들이 자진해서 전쟁터에 간다면 허락할 부모가 있을까 종교의 교리나 건강을 핑계로 병역의무를 기피하는 젊은이들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이 가슴에 새겨둬야 할 이야기들이다. 그들이 한국국민을 지키겠다는 신념과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게 됨을 깨닫게 되고 돌아보게 한다. 그들도 우리의 호국영령들이다. 현충일에 다 함께 기억하고 추모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