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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사람 2018년 창간호_FOCUS POET_나희덕의 시 작품론 / 박현솔
(요약)
박현솔, 「고통의 감각과 여성성의 확장 - 나희덕 시인의 근작시를 중심으로」
시대적 배경 및 페미니즘 맥락
미투 운동과 SNS 발달로 여성 및 약자의 인권 인식 강화
1980년대 이후 본격화된 페미니즘 문학 논의
여성의 모성성: 제도적 장애물이 아닌, 돌봄과 순수한 심성으로 전환
나희덕은 생태주의적 페미니즘과 여성성 확장을 통합한 시인
시집별 여성성과 모성성의 흐름
『뿌리에게』: 모성적 세계관의 정조가 강하게 나타남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뿌리에서 잎으로의 전환, 존재의식 강조
『그곳이 멀지 않다』: 만삭의 몸, 슬픔의 분만 등 모성적 상상력의 확장
『어두워진다는 것』: 죽은 엄마의 형상, 모성의 무형성 강조
『사라진 손바닥』: 늙은 호박의 생명력, 몸을 내어주는 모성
『야생사과』: 양수, 강물, 생명의 순환을 모성적 시선으로 탐색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말, 바다, 생명력으로의 해방
근작시의 여성성 확장 및 분석
3-1. 「Rhythm 0」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퍼포먼스 차용
여성 육체에 가해지는 편견과 폭력 고발
"숨죽인 육체" = 억압된 여성성, 리듬 없는 신체
사랑과 폭력의 극단, 남성 시선에 대한 비판
3-2. 「붉은 텐트」
피흘리는 여성의 은유적 공간 제시
세이렌 신화 차용: 구조를 요청하는 목소리
남성 중심적 사고에 대한 전복과 연대 강조
3-3. 「슬픈 모유」
영화 에 기반
성폭력의 대물림과 여성의 심리적 상처 형상화
감자: 심리적 방어기제, 슬픔의 상징
감자꽃: 사회적 무관심의 상징
3-4. 「삼킬 수 없는 것들」
억압, 부조리, 사회적 금기들을 삼킬 수 없는 현실
순응보다는 토할 수 있는 힘을 통한 저항 제안
3-5. 「분홍신을 신고」
안데르센 동화에서 모티프 차용
여성의 자유 억압하는 종교 규율 비판
오랫동안 잠든 분홍신: 잠재된 자유의지
3-6. 「라듐처럼」
버지니아 울프, 마담 퀴리, 가나안 여자 등 실존 여성 인물
남성 중심 사회에 저항한 여성들의 상징적 존재
성공적 페미니즘을 위해선 강물과 격랑 같은 더 큰 힘 필요
나희덕 시의 페미니즘 특징 정리
억압과 폭력을 고발하는 동시에 상생과 소통을 지향함
남성을 배제하기보단 함께 연대하고자 하는 시적 태도
모성, 생태, 사회적 페미니즘의 복합적 통합
규범/관습/종교/제도에 대한 비판과 새로운 여성성의 탐색
결론
나희덕 시는 맹목적 페미니즘이 아니라 자신만의 감각과 사유로 확장된 여성성을 형상화함
기존 페미니즘과의 공통점과 차별성을 통해 독창적 시세계를 구축해 나가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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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의 감각과 여성성의 확장
- 나희덕 시인의 근작시를 중심으로
박현솔
최근 한국 사회에 제기된 미투운동으로 과거의 악습들과 모순들을 반성하고 새로운 양성평등의 길로 나아가기를 바라는 염원들이 더욱 커진 듯하다. 그리고 페미니즘운동에 대한 인식들도 이전보다 한 단계 더 성숙해지고 있다. 과거부터 여성들이 받아왔던 차별과 소외, 폭력 등이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 확대 공유되면서 여성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온라인상의 다양한 사회관계망 서비스의 발달은 여성뿐만 아니라 사회적 약자의 인권을 확대시키고 그들의 피해를 효과적으로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기류를 타고 더욱 확대되고 있는 페미니즘이 도입 초기에는 여성운동으로의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다가 80년대에 들어서서 활발하게 논의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당시에도 남성들이 여성들의 작품에 드러난 문학성을 편파적인 시각으로 재단하는 정도였고 여성 시인들의 작품을 제한된 주제의 수준 낮은 것으로 평가하는 한계를 드러냈다. 이후에 여성 이론가들과 여성 시인들에 의해서 이전 세대의 여성시인의 시들이 재조명되기 시작하였고, 90년대에 들어서면서 페미니즘은 상생으로서의 페미니즘을 표방하면서 다양한 스펙트럼을 형성하게 된다. 이때 여성과 가장 근접한 생태주의와 결합하면서 남성 중심적 세계관에서 배제된 여성과 자연의 회복을 모색하게 된다. 그렇지만 페미니즘에서 여성의 모성성은 제도적인 구속이고 장애로 인식되었고 극복되어야 할 것으로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여성의 몸에 대한 인식 역시 가부장적 인식으로 오랫동안 왜곡되었기에 이를 극복하고 여성들이 주체적인 인식을 갖기 위해 노력해야 함을 표방하게 된다. 이러한 90년대의 페미니즘 흐름에 동조하면서 여성성의 확장을 모색한 대표적인 시인으로 나희덕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나희덕 시인은 등단 초기부터 인간과 자연의 공동체적 운명을 노래하면서 식물적인 상상력으로 자신의 삶을 내면 깊이 성찰해 왔다. 이러한 그녀의 시에서 모성성은 여성의 자유를 침해하거나 책임의식을 갖게 하는 장애로 인식되기보다는 세상을 보살피는 따뜻함으로, 인간의 순수한 심성을 유도해내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녀의 첫 시집 ��뿌리에게��는 모성적 세계관이 두드러진 정조로 나타나고 있으며, 두 번째 시집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에서는 “뿌리”에서 “잎”으로의 전환을 통해 모성성을 이어가는 존재의식을 드러낸다. 그리고 세 번째 시집 ��그곳이 멀지 않다��에서 만삭의 몸으로 “슬픔을 분만하는” 방에 대한 상상력과 상처 입은 “한 마리 짐승을 키우는” 것이 사랑임을 깨닫기도 한다. 또한 네 번째 시집 ��어두워진다는 것��에서 아기를 구하려다 죽은 엄마의 이야기에서 모성을 “허공의 한줌”으로 형상화시킨다. 그리고 “또 하나의 목숨을 제 몸에 기를 때만이” 진정한 행복과 불행을 알게 되는 여성으로서의 삶을 고백한다. 더불어서 다섯째 시집 ��사라진 손바닥��에서는 생명을 품은 모성과 벌레들에게 몸을 내어주는 늙은 호박의 건강한 생명력이 이어진다. 그리고 여섯째 시집 ��야생사과��에서 “양수”에 쌓여 생성되고 있는 여린 존재들과 강물로 돌아가는 존재들의 순환을 모성적 상상력으로 그려낸다. 마지막으로 일곱째 시집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에서는 자신의 사고가 뿌리에서 줄기, 가지, 잎의 시간으로 흘러왔고, 몸에 담아두었던 “말”들을 바다에 놓아줌으로써 새로운 영감을 얻는 상상력으로 이어진다. 이와 같이 나희덕의 시에서 일관되게 제시되고 있는 여성성과 모성성, 생태학적 상상력은 시간이 흐를수록 그 품새가 넓어지고 깊어지면서 그녀만의 페미니즘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이번에 나희덕 시인이 보내온 근작시에는 그동안 그녀가 지향했다고 정리되었던 에코페미니즘보다는 여성성이 확장된 시들이 주로 선정되었다. 이들 시들은 이전에 그녀의 시집 전반에서 보았던 시들과는 분위기가 다른 면들이 많이 보인다. 그것은 이전부터 여성들이 감당해온 고통과 상처, 슬픔의 역사가 더욱 확대되면서 현대의 여성들이 남성 중심적 사고방식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피해와 구속을 받고 있는지, 여성에 대한 편견들이 화자로 등장하는 “그녀”들을 얼마나 아프게 하는지 다시금 느끼게 한다.
1. 어떤 리듬도 허락되지 않은 새벽
여기 72개의 사물들이 놓여 있습니다.
장미, 향수, 빵조각, 포도, 와인, 깃털, 꿀, 채찍, 가위, 못, 쇠막대, 외과용 수술칼, 권총, 총알 한 개, 채찍, 사슬, 바늘, 망치, 톱, 립스틱, 스카프, 거울, 유리잔, 카메라, 책, 머리핀……
이 사물들은 전적으로 당신에게 속해 있습니다.
위험을 감수하는 두려움과 고통만이 내게 속한 것입니다.
자, 당신을 끌어당기는 사물이 있나요?
당신 속의 두려움과 욕망에 따라 무엇이든 선택하세요.
테이블 위의 사물들로 당신은 나에게 어떤 일이든 할 수 있습니다.
옷을 잘라낼 수도 있고 머리에 총을 겨눌 수도 있어요.
장미 가시로 나를 찌를 수도 있고 향수를 뿌릴 수도 있어요.
내 유방을 만지거나 키스할 수도 있고
다리 안쪽에 칼을 꽂거나 목에 상처를 내어 피를 마실 수도 있어요.
나를 해치거나 죽인다 해도 어쩔 수 없어요.
물론 한때라도 죽고 싶었거나 죽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
사실 나도 두렵습니다.
어떤 말도 행위도 할 수 없이 서 있을 뿐이니까요.
다만, 시간은 정해져 있습니다.
여섯 시간 후 어떤 모습으로 있게 될지 궁금하군요.
조각상처럼 숨죽인 육체 위로
당신의 행위가 남긴 흔적, 그게 바로 나예요.
그래요, 나는 극단까지 가고 싶었습니다.
인간 내면에 깃들어 있는 사랑과 폭력의 끝이 어디인지
우리는 얼마나 멀리 갈 수 있는지
얼마나 뜨거워질 수 있는지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얼마나 비참해질 수 있는지
새벽 두 시, 퍼포먼스는 끝나고
나는 주술에서 풀려난 인형처럼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순간 모두가 도망치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종류의 리듬도 허락되지 않은 새벽이었습니다.
* 마리나 아브라모비츠의 퍼포먼스 작품.
- 「Rhythm 0」전문
이 시는 여성의 육체에 가해지는 편견과 폭력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다. 시적 화자는 자신의 앞에 놓여있는 “72개의 사물들” 중 일부를 소개하면서 이 사물들을 사용해서 “당신”이 나에게 어떤 행위를 하더라도 받아들이겠다는 선언을 한다. 물론 독자들은 여성과 남성이 섞여있다는 가정 하에서 “여섯 시간” 동안 어떤 제약도 받지 않는 상황으로 초대된다. 화자는 “한때라도 죽고 싶었거나 죽고 싶은 것”은 아니며 이 말을 하고 있는 지금도 역시 두렵다는 고백을 한다. “조각상처럼 숨죽인 육체 위로/당신의 행위가 남긴 흔적, 그게 바로 나”라는 발언이 끝나자마자 시간은 흐르기 시작한다. 독자들은 나열된 사물들을 훑어보면서 자신의 “두려움과 욕망”에 따라 몇 가지의 사물들을 선택할 것이다. 그리고 이 사물들로 화자에게 어떻게 할까를 고민하게 된다. “립스틱” , “스카프” 등으로 예쁘게 꾸며줄 수도 있고, “채찍” , “사슬” 등으로 괴롭힐 수도 있으며 더 나아가서 “권총”에 “총알 한 개”를 넣어 순식간에 죽일 수도 있다. 독자들은 어떤 사물들을 선택하여 화자의 몸에 어떤 흔적을 남기게 될까. 이 지점에서 시인이 이와 같은 시를 쓴 의도가 궁금해진다. 화자는 “사랑과 폭력의 끝이 어디인지”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얼마나 비참해질 수 있는지” “극단까지 가고” 싶었다고 말한다. 실제로 있었던 마리나 아브라모비츠의 퍼포먼스에서 관객들은 이런 상황이 낯설어서 그냥 구경만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 한 사람이 먼저 여자의 몸에 어떤 행위를 하자 다른 사람들도 하나 둘 그녀에게 다가가서 또 다른 행위들을 했다. 그녀의 몸을 만지는 사람, 장미가시로 찌르는 사람 등등. 나중에는 그녀를 해하는 정도가 지나쳐서 박물관 측에서 퍼포먼스를 중단시켰다고 한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사실은 그녀를 해한 사람들은 모두 남성이었다는 것이다. 이 퍼포먼스를 통해서 마리나 아브라모비츠는 여성들의 아픔과 인내를 표현하고 싶었고, 오랫동안 고통을 참고 인내해온 여성들의 속박을 풀고 미래로 나아가는 모습을 구현하고자 했다고 의도를 밝혔다.
그렇다면 “Rhythm 0”라는 제목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Rhythm 0”는 “어떤 말도 행위도 할 수 없이 서 있”는 “숨죽인 육체” 즉 억압된 화자의 몸으로 제시되고 있다. 이것은 더 나아가서 여성의 육체에 가해진 남성들의 편견과 왜곡된 시선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렇게 남성들의 시선에 억압당한 여성의 몸은 리듬이 존재하지 않는 굳어버린 육체인 것이다. 이러한 연유를 그간의 작품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다. 나희덕 시인은 등단 초기에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키워내는 근간으로써 ‘뿌리’에 집중하고 이것이 ‘줄기’와 ‘잎’과 ‘열매’ 쪽으로 이동하면서 그녀의 시적 포즈도 생태학적 상상력으로 자리를 잡아갔는데 그 기저에는 대지와 자연을 품은 존재로서 여성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즈음 그녀의 시들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삶 속에서 고통을 절감하고 있으면서도 쉽게 아프다고 소리 내어 말하지 못한다. 감정으로, 육체로 스며드는 삶의 무게를 묵묵히 참고 견디면서 아픔과 고통을 순순히 받아들인다. 이러한 흐름은 세 번째 시집까지 이어지는데 ��그곳이 멀지 않다�� 말미에 실린 시인의 말에서 “슬픔을 섣불리 표현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자신의 슬픔에 덜 열중하게 되었을 때, 시인으로서는 다른 존재의 울음소리에 좀 더 귀 기울일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그녀의 생각은 “붉은 불빛 아래 치욕에 시들어가는 여인들의 살갗” (「저 자리들」)과 “자꾸만 살을 저며 가는” (「탱자 꽃잎보다도 얇은」) 존재들과 “내 몸을 제물 삼아” “마른 연못에서 불을 피우는 그들” (「마른 연못」)을 새롭게 인식하는 것으로 드러나게 된다.
2. 피로 빚어진 붉은 텐트 속으로
울지 마세요
그리고 어서 들어오세요
붉은 텐트 속으로
여자들은 모두 여기 와서 피를 흘려요
한 달에 한 번씩
아니, 하루에도 몇 번씩
피에 젖은 깃발처럼
상처 입은 새처럼
바람에 파닥거리는 붉은 텐트 속으로
바닥에 흩어진 딸기를 밟고 가는 사람들이여
이 절벅거리는 슬픔을 보세요
으깨진 살과 부르튼 입술로 노래하는 이여
입술을 둥글게 오므려 보세요
노래는
숨결을 모아 소리의 화환을 만드는 것
귀를 틀어막고 총총걸음으로 지나는 사람들이여
이 오래된 노래를 들어 보세요
사이렌의 노래를
우리는 저마다 기울어지는 난파선이니
깜박이는 불빛으로 다른 난파선을 비추는 눈동자이니
가라앉는 손을 잡는 또 하나의 손이니
어서 여기로 들어오세요
우리의 피로 빚어진 붉은 텐트 속으로
- 「붉은 텐트」 전문
피를 흘리는 여자들은 “붉은 텐트”로 입성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데 “한 달에 한 번” 월경을 치르는 여자와 “하루에도 몇 번씩” 폭력이나 사고에 노출되어 피를 흘리는 여자들이 그 대상이다. 그것은 “으깨진 살과 부르튼 입술” 부분에서 짐작할 수가 있다. 즉 모든 여자들이 “피에 젖은 깃발”이나 “상처 입은 새”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원죄의식과 남성 중심적 억압과 폭력에 시달리고 있기에 “붉은 텐트”가 존재하게 된 것이다.
특히 “상처 입은 새”의 모습에서는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세이렌(seiren)’이 떠오른다. ‘세이렌’은 상반신이 여자이고 하반신은 새의 형상을 한 소녀의 모습으로 지중해의 작은 섬에서 살고 있다. 이 세이렌의 노래를 들은 배의 선원들이 그 소리에 홀려서 바위 쪽으로 배를 몰아가면 보이지 않던 암초에 걸려서 배가 좌초되고 세이렌이 바다에 빠진 선원들을 잡아먹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오디세우스가 세이렌의 노래가 어떤지 듣고 싶어서 자신의 몸을 돛에 묶고 선원들의 귀를 밀랍으로 막아 그곳을 무사히 지나갔고 이에 낙담한 세이렌이 바다에 몸을 던져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그런데 “바닥에 흩어진 딸기를 밟고 가는 사람들”은 이 시대의 평등과 사회의 정의를 믿고 살아가는 소수의 여성들을 외면하거나 상처를 주는 존재이다. 그리고 “귀를 틀어막고 총총걸음으로 지나는 사람들” 역시 폭력에 노출된 여성들의 다급한 외침과 두려움을 의식적으로 회피하며 자신의 안위만을 염려할 뿐이다. 이러한 사람들의 태도는 위의 오디세우스의 행태와 유사하다. 여자의 아름다움을 탐하면서도 그 상처와 고통에는 무관심한 이기적인 남성 심리의 양면성을 보여주고 있다. 즉 “사이렌의 노래”는 위험에 처한 여성들이 구조를 요청하는 목소리이고, 남성 중심적인 폭력적 세계를 폭로하는 목소리인 것이다.
신화에서 세이렌은 여성의 얼굴을 가진 새이면서 악녀로 제시되기도 하고 남성들의 세계를 위협하는 존재로 부각되고 있다. 배를 타고 험한 바다를 가르는 뱃사람들은 모두 남성들이며 그들을 위로하기도 하면서 위험에 빠트리는 여성은 폄하의 대상이 되었기에 자신들을 유혹하지 못한 여성은 죽음에 이르도록 결말을 예정해 놓았다. 하지만 시인은 그러한 남성 중심적 사고를 전복시키고 인간은 “저마다 기울어지는 난파선”이고 “깜박이는 불빛으로 다른 난파선을 비추는 눈동자”이며 “가라앉는 손을 잡는 또 하나의 손”이기에 공존과 상생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처럼 위기의 상황에 놓인 여성들과 관련된 시들이 시인이 상재한 시집들 속에 여러 편 있는데 “숨을 쉬기가 어려워요” “폐에서 물 좀, 물 좀, 빼주세요” “숨 막혀서 못 견디겠어요” “도와줘요, 제발” (「겨우 존재하는」)에서 다급한 목소리를 직접적으로 드러내거나 “술 취한 남자들이 갈기고 간 오줌 냄새”와 “변태성욕자들, 또 다른 노숙의 달인들에 관해” “동물적인 감각으로 익혀온 바가 있다” (「그러나 밤이 오고 있다」)에서 여성 노숙인의 삶을 근접해서 들여다보기도 하고, “조롱은 녹슨 방주처럼 가라앉았다” “새가 가진 것은 조롱 속의 허공” “새가 할 수 있는 일은 울음소리를 흘려보내” “조롱 안과 밖의 공기를 드나들게 하는 것이었다” (「조롱의 문제」)에서 “울음”을 통해 새의 위기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방식 등 다양하게 여성들이 직면한 위기들을 포착해내고 있다.
3. 엄마라는 타인의 고통 속에서
엄마라는 타인의 고통 속에서
나는 태어났어요
감자덩굴에 매달린 작은 감자알처럼
노래로 치욕을 견뎌낸 여인,
그녀가 낳은 핏덩이는
세상에 던져진 채 간신히 살아남았지요
슬픈 모유를 먹으며 자라는 동안
나의 심장소리는 점점
엄마의 심장소리를 닮아갔어요
거리에 떠도는 영혼에게 잡혀갈까봐
벽 쪽으로 꼭 붙어서 걷고
두려울 때는 아무도 모르게 노래를 불러요
상처 입은 비둘기의 울음처럼
먼 고향의 파도소리처럼
가만히 숨결을 모아 소리의 꽃다발을 만들지요
노랫소리에 벽과 문이 열리고
이젠 혼자서도 밤길을 걸을 수 있어요
나는 더 이상 영혼 없이 태어난 아이가 아니에요
내 몸에서는 매일 감자 싹이 자라요
질 속에 박힌 감자에서
덩굴이 뻗어나와 나를 휘감아버릴 것 같아요
누구도 나를 범하지 못하도록 막아놓은
이 슬픔의 돌덩이를
그만 내 몸에서 꺼내주세요
당신의 정원에는 꽃이 만발하지만
감자꽃은 왜 없나요
감자꽃으로는 왜 꽃다발을 만드는 사람이 없나요
오늘도 먼지와 잡담의 거리를 지나
집으로 돌아와요
마침내 노래를 멈춘 엄마 곁으로
엄마를 어디에 묻어야 하나요
고향까지는 너무 멀어요
바다가 사막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그곳까지는
* 페루 영화 <the milk of sorrow>, 클로디아 로사 감독
- 「슬픈 모유」 전문
여기에서 여성의 육체는 모성을 발현하는 장소이면서 또 한편으로는 남성의 성폭력을 경험하는 슬픈 시련의 장소이기도 하다. 여성의 몸에 가해지는 성폭력이 피해 여성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다음 세대의 딸들에게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이 시는 페루 영화 <the milk of sorrow>에 관한 것이다.
페루 내전 때 군인들에게 성폭력을 당한 엄마는 그 원한과 슬픔을 평생 노래로 풀어내었고, 노랫소리를 들으며 자란 딸은 엄마의 슬픔을 자신의 슬픔으로 받아들이면서 “두려울 때는 아무도 모르게 노래”를 부르는 의식을 치른다. 이러한 딸의 노래는 “상처 입은 비둘기의 울음”이 나아가야 할 곳이 “먼 고향의 파도소리”임을 상징적으로 제시해 준다. 노래는 그녀의 무의식 속에 잠재된 고통을 퍼 올리는 도구가 되기도 하지만 무겁게 침잠한 그녀의 삶을 이용하는 타자들의 이기심을 드러내 보여주기도 한다. 주인공이 노래를 부르고 얻은 진주는 그녀의 삶에서 건져 올린 소중한 결과물이고 “마침내 노래를 멈춘” 어머니를 고향에 묻을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이 된다.
혼기가 찬 딸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고통뿐만이 아니라 남성들의 왜곡된 시선으로 알 수 없는 병까지 얻은 상태이다. 성폭력 당시 어머니의 두려움과 고통이 그 젖을 먹은 아기에게 전염되고 아이의 영혼이 두려워서 땅속으로 숨어버린다는 ‘슬픈 모유병’. 그러한 편견으로 딸은 이중의 고통을 안고 살아간다. 즉 “거리에 떠도는 영혼에게 잡혀갈까봐 벽 쪽으로 꼭 붙어서 걷고” 혼자서는 밤길을 걸을 수도 없는 심리적 위축상태에 빠져 있다. 그래서 “영혼 없이 태어난” 자신의 존재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면서 이를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살아간다. 하지만 가부장적 억압과 남성들의 왜곡된 시선은 그 논리의 허점을 드러내고 마는데 그것은 의사가 주인공의 삼촌에게 ‘슬픈 모유병’은 없다고 말하는 장면과 주인공이 일하는 집 여주인이 어릴 적 인형을 찾고서 어른들의 말은 모두 거짓이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드러난다.
여기에서 “감자”는 그녀에게 언제 닥칠지 모르는 성폭력을 막을 수 있고 주인공의 심리적 안정을 확보하기 위한 도구로 쓰인다. 그런데 페루의 결혼 풍습에서 감자를 길고 예쁘게 깎으면 행복한 결혼생활을 할 수 있다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주인공이 처한 현실과 대비되면서 상황적인 아이러니를 유발시킨다. 그동안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인식한 주인공은 “질 속에 박힌 감자에서 덩굴이 뻗어나와” “휘감아버릴 것” 같은 위기감을 느낀다. 그래서 함께 일하던 정원사에게 “이 슬픔의 돌덩이를 그만 내 몸에서 꺼내주세요” 요청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주인공의 질에서 빼낸 감자가 화분에 심겨져서 꽃을 피우고 주인공과 다시 대면하는 장면은 상처의 치유와 여성성의 회복이라는 영화의 주제의식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시적 화자는 자신이 “엄마라는 타인의 고통 속에서” 태어났다는 걸 인지하는 순간부터 운명의 악순환과 고통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본다. 이것은 “바다가 사막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상황과도 유사한데 바다와 사막은 전혀 다른 것 같으면서도 지구의 역사에서 서로 다르지 않고 그렇다고 완전히 같을 수 없는 양가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바다와 사막의 정서를 가진 여성성도 단절된 듯하지만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잔잔하게 흐르거나 모래바람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새롭게 인지해야 한다. 나희덕의 시에서 육체적, 정신적으로 상처받은 여성들의 이야기는 「몰매기를 기억함」, 「만삭의 슬픔」, 「허공 한줌」. 「나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 등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4. 삼킬 수 없는 것들
내 친구 미선이는 언어치료사다
얼마 전 그녀가 틈틈이 번역한 책을 보내왔다
『삼킴 장애의 평가와 치료』
희덕아, 삼켜야만 하는 것, 삼켜지지
않는 것, 삼킨 후에도 울컥
올라오는 것……여러 가지지만
그래도 삼킬 수 있음에 늘 감사하자. 미선,
입속에서 뒤척이다가
간신히 삼켜져 좀처럼 내려가지 않는 것,
기회만 있으면 울컥 밀고 올라와
고통스러운 기억의 짐승으로 만들어버리는 것,
삼킬 수 없는 말, 삼킬 수 없는 밥, 삼킬 수 없는 침,
삼킬 수 없는 물, 삼킬 수 없는 가시, 삼킬 수 없는 사랑,
삼킬 수 없는 분노, 삼킬 수 없는 어떤 슬픔,
이런 것들로 흥건한 입속을
아무에게도 열어 보일 수 없게 된 우리는
삼킴 장애의 종류가 조금 다를 뿐이다
미선아, 삼킬 수 없는 것들은
삼킬 수 없을 만한 것들이니 삼키지 말자.
그래도 토할 수 있는 힘이 남아 있음에 감사하자. 희덕
- 「삼킬 수 없는 것들」 전문
나희덕의 시에서 여성화자는 오랜 전통과 관습으로 체제화된 가부장적 인식과 부조리의 상황들을 참고 견디며 그것에 적응해보려는 노력을 기울인다. 그것은 화자의 내부에서 걸러져서 맑게 우러나기도 하고, 고통스러운 정화를 거부하며 무의식중에 표면으로 떠오르기도 한다. 즉 여성이라는 한계만을 강조하는 외부적 상황들과 내면의 자유로운 의지가 충돌하면서 심리적인 갈등을 일으킨다.
세 번째 시집 ��그곳이 멀지 않다��에 실린 「어떤 항아리」에서 시인은 “금이 간 항아리면서 금이 갔다고 말할 수 없는 항아리”에 대해서 말한다. 그 항아리는 “간장을 담으면 어디선가” 새고 다른 액체는 고스란히 담고” 있어서 “간장만 통과시키는 막이라도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의 희귀한 항아리이다. 시적 화자는 이 항아리가 “너무나 짜서 맑아”지거나 “너무 오래 달여서 서늘해진” “고통의 즙액만을 알아차리는” “감식안”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에 이른다. 그녀는 오래 달여서 담아놓은 것이 간장뿐이 아님을 간접적으로 말해준다. 한 아이의 엄마로, 아내로, 며느리로, 사회인으로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모든 부조리한 것들. 그것들을 바로잡으려는 생각도 하지 못하고 마음속에서 들끓고 삭힌 것들을 화자는 “고통의 즙액”이라고 단언한다.
또한 네 번째 시집 ��어두워진다는 것��에 실린 「방석 위의 생」에서는 또 다른 여성화자의 삶이 펼쳐진다. 그녀는 회식자리에 참석하게 되는데 한 직장에 다니는 직원들이 모두 참석한 이 자리에서 예상치 못한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직장의 높은 상사와 일반 직원들이 섞인 회식자리는 한편으로는 줄 서기나 줄 세우기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 자신의 “방석을 어느 방석 옆에 내려놓을 것인가”를 골몰히 생각하는 사람들과 “한상에 둘러 앉아 먹고 마시는 동안” 자신의 출세에 도움이 되는 “방석”을 찾아서 “방석이 방석을 밀고” “방석이 방석을 끌어당기고” “방석이 방석에게 웃고” 있는 장면이 이어진다. 그리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방석이 방석에게 소리지르고” “방석이 방석을 밟고” “방석이 방석과 헤어지고” 있는 장면이 펼쳐진다. 회식을 끝내고 밖으로 나온 화자는 “불씨가 남아있는 연탄재 두 개”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심란했던 마음을 “둥근 방석”에게서 위로를 받는다.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 시집 ��사라진 손바닥��에 실린 「연두에 울다」에서 열차를 타고 가다가 창밖을 바라보는데 벼들이 들판 가득 자라고 있는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화자는 연둣빛을 밀고 올라온 들판의 수많은 “벼포기”들을 보면서 “아직 고개 숙이지 않은 출렁거림”이나 “수런거림” 같은 것을 느낀다. 그것은 주어진 대로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의지를 가지고 결연하게 나아가는 위대한 존재와 같은 인상을 준다. 그리고 화자는 동시에 자신의 내면을 향해 시선을 돌린다. 지금 저 순수한 의지를 바라보는 “내 안은 왜 이리 어두운가” 누군가의 시선에, 사회와 제도에 갇혀있는 나의 모습은 어떠한가 그렇다면 왜 저 빛처럼 환하고 역동적이지 못한가 등의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깨달음은 울음을 쏟는 상황으로 이어지고 “저 빛에 나도 두고 온 게” 있음을 자각하면서 새로운 자아의 각성을 이끌어내고 있다.
이 시 역시 위에서 소개한 시들과 같은 선상에서 해석할 수가 있다. 화자의 친구 “미선이”가 보내온 “삼킴 장애의 평가와 치료”라는 책이 단순히 몸의 소화능력에 관한 것이라면 친구의 말처럼 “삼킬 수 있음”에 “감사”해야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그것이 심리치료나 언어치료에 관한 것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삼켜야만 하는 것, 삼켜지지 않는 것, 삼킨 후에도 울컥 올라오는 것”을 삼킬 수 있음에 감사해야 한다면 아직도 가정에서, 사회에서, 직장에서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것들이 여성들의 삶을 짓누르고 있다는 단서가 된다. 그리고 친구 미선이는 자신을 억압하는 것들과 부대끼면서도 이에 순응하면서 살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화자는 친구 미선이의 운명론적이고 순응적인 사고방식에 동의할 수 없다. 자신의 삶 속에서도 “간신히 삼켜져 좀처럼 내려가지 않는 것” , “기회만 있으면 울컥 밀고 올라”오는 것” , 여러 “삼킬 수 없는” 것들이 “분노”와 “슬픔”을 느끼게 하면서 사라지지 않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화자는 “삼킬 수 없는 것들은 삼킬 수 없을 만한 것들이니 삼키지 말자”고 제안한다. 아직은 “토할 수 있는 힘이 남아 있”기에 인정할 수 없는 제도와 규범, 악습들을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5. 나는 이제 어디로든 갈 수 있어요
음악에 몸을 맡기자
두 발이 미끄러져 시간을 벗어나기 시작했어요
내 안에서 풀려나온 실은
술술술술 문지방을 넘어 밖으로 흘러갔지요
춤추는 발이
빵집을 지나 세탁소를 지나 공원을 지나 동사무소를 지나
당신의 식탁과 침대를 지나 무덤을 지나 풀밭을 지나
돌아오지 않아요 멈추지 않아요
누군가 나에게 계속 춤추라고 외쳤죠
두 다리를 잘린다 해도
음악에 온전히 몸을 맡길 수 있다니,
그것도 나에게 꼭 맞는 분홍신을 신고 말이에요
당신에게도 들리나요?
둑을 넘는 물소리, 핏속을 흐르는 노랫소리,
나는 이제 어디로든 갈 수 있어요
강물이 둑을 넘어 흘러내리듯
내 속의 실타래가 한없이 풀려나와요
실들이 뒤엉키고 길들이 뒤엉키고
이 도시가 나를 잡으려고 도끼를 들고 달려와도
이제 춤을 멈출 수가 없어요
내 발에 신겨진, 그러나 잠들어 있던
분홍신 때문에
그 잠이 너무도 길었기 때문에
- 「분홍신을 신고」 전문
이 시는 안데르센의 동화 <빨간 구두>에서 모티브를 가져오고 있는데, 한 가난한 소녀가 어머니가 죽은 후에 부잣집 할머니에게 입양된 이야기이다. 평소에 소녀는 빨간 구두를 신는 것을 좋아했고 교회에 갈 때에도 빨간 구두를 신어서 할머니에게 꾸중을 듣곤 한다. 이상하게 소녀가 빨간 구두를 신으면 저절로 춤을 추게 되고 가끔은 춤을 멈출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소녀는 빨간 구두를 멀리하지 않고 오히려 더 자주 신고 나간다. 할머니가 병이 들어도 마을의 무도회장을 들락거리고 그 때문에 할머니의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하게 된다. 빨간 구두를 신은 소녀는 춤을 멈추고 싶었지만 소녀 앞에 나타난 천사는 계속 춤을 춰야한다고 말한다. 소녀가 천사에게 자비를 구하고 그 대답을 듣기도 전에 빨간 구두는 또 어디론가 그녀를 데려간다. 춤을 추는 게 너무 괴로웠던 소녀는 마을의 사형 집행인에게 찾아가서 자신의 발을 잘라달라고 부탁한다. 발을 자른 후에 사형 집행인은 소녀에게 나무로 만든 발과 목발 한 쌍을 내어준다. 그때서야 소녀는 잘못을 뉘우치고 경건한 생애를 보내며 구원을 받는다.
동화의 원작과 이 시가 다른 것은 시간의식을 끌어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원작이 춤의 연속성을 이어가기 위해서 공간의 변화를 추구하고 있는 반면에 시에서는 공간의 변주와 함께 “시간”을 언급하고 있다. 즉 여성화자의 발에 신겨진 “분홍신”이 오랫동안 “잠들어” 있었고 “그 잠이 너무도 길었기 때문에” “춤을 멈출 수가 없”다.
그런데 왜 분홍신이 잠을 자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정보가 제공되지 않고 “누군가 나에게 계속 춤추라고 외쳤”다고만 말하고 있다. 동화에서는 소녀가 교회에 갈 때 검정구두를 신어야 하며 그 규율을 깬 주인공을 할머니가 꾸짖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빨간 구두를 신고 교회를 가다가 만난 늙은 군인이 소녀의 신발 바닥을 두드리면서 춤을 출 때 소녀에게 단단히 붙어있도록 주문을 거는 장면이 나온다. 또한 천사가 그녀의 앞에 나타나서 계속 춤을 춰야한다고 말하는 장면도 나온다. 이러한 것들을 종합해볼 때 화자는 엄격한 규율과 잣대를 가진 종교제도가 오랫동안 여성의 자유를 억압하고 속박해왔음을 제시하고 있다.
위의 시와 유사한 작품인 「휠체어와 춤을」의 일부를 살펴보기로 한다.
그래요/그건 차라리 울음에 가까웠어요/당신의 발도/흑인가수의 노랫소리도/흙 묻은 신발을 벗듯 울음을 털고 있었죠(…)음악이 다시 시작되고/우리의 발은 바닥을 울리며 번져갔지요/찢어진 땅을 꿰매는 풀처럼/갈라진 파도를 합치는 바람처럼/한 움직임이 다른 움직임을 데려왔어요/우리의 팔이 가까워질 때마다/당신은 땀에 젖은 얼굴로 지옥에서 돌아오고/우리의 팔이 멀어질 때마다/당신은 천국에서 웃고 있었지요/작고 둥근 바퀴가/ 당신의 두 발을 대신해 돌곤 했어요/낯선 우리를 태운 방주는 아주 멀리 도망갔지요
이 시에서도 당신이 타고 있는 “작고 둥근 바퀴”가 언급되고 있는 것으로 봐서 상대방의 다리가 불편한 상태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음악이 시작되면서 “찢어진 땅을 꿰매는 풀처럼” “갈라진 파도를 합치는 바람처럼” “한 움직임이 다른 움직임”을 데려왔다는 표현에서 춤이 연속적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특히 “지옥”과 “천국” “방주”가 제시되고 있는 것에서 종교적인 색채를 띠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눈치 챌 수 있다. 즉 춤과 종교적인 것의 연관성을 통해서 여성의 자유의지를 침해하는 종교제도의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음을 확인할 수가 있다.
6. 더 많은 강물과 격랑이 필요하다
어떤 먼 것
어떤 낯선 것
어떤 무서운 것에 속한 아름다움
그것을 위해서는
더 많은 강물과 격랑이 필요하다
이곳은 수심이 깊어 위험하니 출입을 금합니다
돌을 외투 주머니에 채우고
강물 속으로 걸어 들어간 버지니아 울프처럼
말의 원석에서 떨어져내리는
글자들처럼
식탁 아래 떨어진 빵 부스러기를
끌고 가는 개미처럼
부스러기만으로 배가 부르다고 했던
가난한 가나안 여자처럼
허기 없는 영혼처럼
불꽃 없는 빛처럼
마담 퀴리가 처음으로 추출해낸
0.1g의 라듐처럼
희고 빛나는 것들
그러나 검게 산화되기 쉬운 것들
- 「라듐처럼」 전문
이 시에 등장하고 있는 “버지니아 울프” , “가나안 여자” , “마담 퀴리”는 모두 여성이다. 그들은 남성이 권력을 장악한 이 세계에서 자신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가면서 여성의 존재 이유와 목소리를 냈던 사람들이다. 여성의 계급 층위에서도 가장 낮은 위치에 있는 “가나안 여자”나 그보다 조금 더 높은 문학적 명성을 가진 “버지니아 울프”나 물리학과 화학계를 뒤흔들었던 “마담퀴리” 모두 굳건히 세워진 남성 중심적 사고방식과 편견에 부딪치는 걸 피할 수 없었다. 여기에서는 가부장적 세계에 접근할 수 없도록 만들어놓은 금기를 “수심이 깊어 위험하니 출입을 금”하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들은 같은 분야의 남성들과 견주어 봐도 결코 떨어지지 않는 능력과 자질을 갖추고 있지만 그 시대의 남성 중심적 세계는 굳건한 성벽을 쌓아올려서 쉽게 무너뜨릴 수 없는 강력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들은 모두 자신의 의지를 끝까지 밀고 나간다. 가난한 “가나안 여자”는 “부스러기만으로 배가 부르다”고 자신을 낮춤으로써 겸손한 마음과 순수한 믿음으로 예수의 기적을 이끌어내어 귀신에 씐 딸을 구하게 된다. 그리고 버지니아 울프도 여성의 성 정체성과 결혼제도에 절망하면서도 이를 예술로 승화시켜서 문학에서 자동기술법과 모더니즘의 선구자적 위치에 오르게 된다. 또한 마담 퀴리 역시 “0.1g의 라듐”을 발견해서 의학계의 미래를 밝게 비추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하지만 화자는 이전 시대 여성들의 페미니즘을 향한 의지와 노력은 값진 것이지만 “어떤 먼 것”과 “낯선 것” “무서운 것에 속한 아름다움”을 이루기 위해서는 “더 많은 강물과 격랑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즉 사회적, 계급적 남성 중심적 편견 속에서 여성인권을 신장하여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을 이루기 위해서는 죽음도 불사하는 열정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많은 여성들이 희생을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고 예측한다. 그만큼 “희고 빛나는 것들”은 “검게 산화되기 쉬운 것들”이고 페미니즘의 성공적인 실현은 험난한 과정 끝에서야 얻어낼 수 있는 아주 소중한 것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이렇게 페미니즘의 성공을 위해서는 여성의 대척점에 서 있는 남성에게 굴복하기만 해서도 안 되고 저항하기만 해서도 안 된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시인은 화해와 상생이라는 카드를 꺼내든다. 나희덕의 시에서 남성 중심적 세계와의 화해와 상생을 모색하는 시들로는 여섯 번째 시집 ��야생사과��에 실린 「밤 강물이여」와 「어떤 出土」가 있다.
낯선 물결이 반짝인다/바로 눈앞에서, 또는 아주 먼 곳에서//몇시간째 그 흐름에 몸을 맡기고 있으니/누가 흐르는지 알 수가 없다// 수면 위로 떠올랐다가 어디론가 흘러가는 기억의 포말들// 밤 강물이여/여기, 나를, 내려놓는다//비로소 그를 미워할 수 있게 되고/비로소 그를 용서할 수 있게 되는 곳(…)몸 속 깊이 잠들어 있던 강물이 깨어나/물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곳//밤 강물이 고요한 것은/더 깊이 더 멀리 움직이기 때문이다.
고요히 흐르는 역사와 시간 앞에서 남성과 여성은 어떤 편견도 없이 경계를 허물어서 함께 흘러가야 한다는 인식이 드러나고 있다. 그리고 남성과 여성이 함께 “물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곳”이 바로 여기 “밤” “강물”이며 지금 이 순간부터 서로 소통으로,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어떤 出土」에서는 “고추밭을 걷어내다가” “그늘에서 늙은 호박을 발견”하고 이를 굴려보니 “그녀의 젖을” “온갖 벌레들이 오글오글 빨고 있는” 것을 목도한다. 그것은 마치 “소신공양을 위해” “타고 있는 불꽃”이나 “은밀한 의식” 같아서 화자는 그 자리를 피해준다. 나중에 가서 보니 “그녀는 젖을 다 비우고” “잘 마른 종잇장처럼 땅에 엎드려” 있다. “스스로의 죽음”을 덮고 있는 “관뚜껑” 속에는 “둥근 사리들”만 그녀가 존재했다는 것을 알리고 있다. 즉 시인에게 페미니즘은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모성성으로 따뜻하게 보듬어 안아야 할 세계로 인식하고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시들은 그동안 나희덕 시인이 다양하게 발표해온 작품들 중에서 여성성이 확대된 작품들이었다. 시인이 목격했던 여성에 대한 부조리들을 작품으로 모두 표현할 수는 없었지만 세상의 모든 여성들이 직면했던 문제들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왔음을 알 수 있었다. 첫 시집 ��뿌리에게��부터 다섯째 시집 ��사라진 손바닥��까지 모성과 생명력에 대한 것이 주를 이루다가 여섯째 시집 ��야생사과��에서부터 일곱째 시집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에서 여성이 직면한 남성 중심적 세계의 부조리함과 억압적인 것들을 자주 토로하고 있다. 그것은 모성과 생명에 대한 사랑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존재하고 있음을 확실히 인식한 결과라고 생각된다.
또한 그것은 여성에게 가해진 편견의 시선들과 여성을 억압하는 제도와 규범, 악습들이라고 생각한다. 이들 작품 속에서 여성에게 가해진 편견의 시선들은 주로 여성의 몸에 가해지는 남성들의 편견과 왜곡된 시선, 위급상황으로 몰고 가는 폭력, 다음 세대로까지 이어지는 성폭력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여성을 억압하는 제도와 규범, 악습에는 삼키려고 해도 삼킬 수 없어서 토하게 되는 여러 상황과 악습들이 제시되고 있다. 그리고 엄격한 규율과 잣대로 여성의 자유를 억압하고 속박해온 종교제도의 문제점도 제기된다. 또한 사회적, 계급적 남성 중심적 금기를 넘어서 평등한 세상을 이루기 위해선 죽음도 불사하는 수많은 희생을 치러야함을 예견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희덕 시인의 페미니즘에서 남성은 거부되거나 소외시켜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함께 소통해야 할 대상이라는 특징을 갖는다. 그러면서도 아직 고통에 속해있는 여성들과 진정한 페미니즘의 완성을 위해서는 더 멀리 감각의 촉수를 뻗어가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렇게 그녀가 알 수 없는 사각지대에서 여성들의 목소리는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서 재인식하고, 이를 자신의 작품으로 형상화하면서 페미니즘의 흐름을 깊이 있게 가져갈 것이다. 따라서 맹목적인 페미니즘의 추종이 아닌 자신만의 특이한 여성성의 확대를 지향해온 시인의 시세계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기존의 페미니즘과는 어떤 지점을 공유하며 나아갈지가 또 하나의 기대점이 된다.
박현솔
제주 출생. 아주대 대학원 졸업, 국문학 박사. 1999년 《한라일보》 신춘문예와 2001년 《현대시》 신인상을 통해 등단. 시집으로 ��달의 영토��, ��해바라기 신화��와 시론집 ��한국 현대시의 극적 특성��이 있음. 2005년과 2008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지원금 수혜. 경기시인상 수상. 현재, 본지 ��문학과 사람�� 주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