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는 고구마가 인기가 있다. 나 어렸을 때에는 가난한 집의 식사대용이요, 방 윗목에 놓인 간식거리였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에 날마다 가서 놀았던 내 친구네 집 안방 윗목에는 늘 고구마 바구니가 놓여 있었다. 나는 그들이 고구마를 엄청 좋아하는 줄로만 알았다. 철이 든 후에 안 것은 그것이 그들의 점심식사였다는 것이었다. 나의 집에서는 가끔 아이들이 심심해 할 때 어머니가 쪄주는 간식이었다. 요즘에는 사람들에게 고구마의 인기가 높아져 값도 꽤 비싸다. 게다가 매스컴이나 책에서 웰빙식품이니, 건강식품이니 하면서 한껏 치켜 세워주어 잘사는 사람들이 더 좋아하는 먹거리가 되었다.
작년(2011년) 9월 중순에 M교회 목사님으로부터 어느 성도의 가정에서 뜯어놓은 섀시 문틀과 창문 일체가 두 벌이나 있으니 가져다 재활용하라고 전화가 와서 갔다. 남편은 시찰 내 목사님들 사이에서 건축가로 알려져 있는 목사인지라 간혹 내버리기 아까운 재활용 건축자재가 생기면 연락이 온다. 그걸 트럭에 실은 후에 M교회 목사님은 고구마를 몇 개 담아주었다. M교회 목사님도 농사를 짓는 줄은 미처 몰랐다.
“목사님께서 고구마 농사도 지으셔요?” “그럼요, 몇 년 전부터 고구마를 심어 팔아서 살림에 보태지요.” “벌써 고구마를 캐셨어요?”“고구마를 좀 일찍 캐서 팔면 벌이가 쏠쏠하답니다.”고구마를 남보다 더 일찍 수확해서 팔면 값을 비싸게 팔 수 있다고 했다. 그 당시 10kg 한 상자에 3만원 받고 판다고 했다. 사실, 시골교회 목회자들은 사례비가 많지 않아 생활하기가 빠듯하다. M교회 목사님은 위로 두 아들은 교육이 끝났으나 늦둥이 막내딸이 이제야 중학생인데 예술중학교에 다니므로 교육비가 만만치 않다고 한다. 그러니 부지런히 고구마를 팔아야 충당을 할 수 있겠다, 싶었다.
어쨌든, 우리 부부는 그 목사님에게 한 수 배우기로 했다. 내년에는 그 목사님과 시기를 맞춰 텃밭에 고구마를 심기로 했다. 우리는 그동안 매년 고구마를 늦게 심어 별 재미를 못 보았다. 2012년이 되어 4월부터 서둘러 밭을 갈아 준비를 마치고 M교회 목사님에게 연락을 했다. 우리가 고구마를 심어 돈을 좀 벌어보려고 했더니 올해에는 고구마 순이 부족하다고 했다. 작년에 비가 많아 고구마 작황이 안 좋아 씨 고구마가 부족한데다 겨울에 날씨가 하도 희한하여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는 사이에 씨 고구마가 대부분 썩었다는 것이다. 어쨌든 그 목사님을 통해서 그 교회 교우가 틔운 고구마 순을 일찌감치 주문했다. 그럼에도 4월 안에는 심지 못했고 5월 15일경이 되어서야 심게 되었다. 그나마 5월부터 가뭄이 계속되어 심은 고구마 순을 살리느라 엄청 애를 썼다.
고구마를 심은 지 90~100일이 지나면 대개 캘 수 있을 만큼 고구마가 밑이 든다는 얘기를 들은 터라 8월 15일이 되자 드디어 고구마를 캐보기로 했다. 들리는 말로는 올해에는 고구마가 커야 할 때에 가뭄이 심해서 고구마 밑이 실하지 않다고들 했다. 드디어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고구마 밭에 갔다. 밭 입구의 한 포기를 캐보았다. 남편의 팔뚝만한 고구마가 네 개나 나왔다. 참고로 말하자면 남편의 팔뚝은 매우 굵다. 고구마가 굵고 진한 색이 나는 걸 보니 맛도 좋아 보였다. 우리가 심은 게 밤고구마였던 것이다. 일단 맛이 좋아야 팔 수 있으니까 우리가 먼저 쪄서 맛을 보기로 했다. 맛이 엄청 좋았다.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르겠는 걸’하면서 고구마 장사에 나설 각오를 다졌다. 퇴직한 후 시간도 많은 내가 팔을 걷어 부치고 고구마 장사를 할 준비를 했다. 먼저 플래카드를 신청했다. ‘고구마 산지 직접 판매’라고 큰 글자로 새겨달라고 주문했다. 다음 날은 정읍에 가서 고구마 상자를 30개 샀다. 30상자만 팔고 나머지는 교회 성도들과 함께 주일 오후 간식으로 먹을 요량이었다. 상자 장사에게 고구마 시세를 물었다. “오늘 아침에 경매가로 29,000원 합디다”라고 했다. 아하, 경매가로 29,000원이면 소매가로 40,000원은 되겠군, 그렇다면 우리는 산지가로 30,000원만 받고 팝시다, 라고 내가 말했다. 남편은 고구마 장사꾼이 다 된 듯한 나를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그러나 사실은 내가 고구마 장사꾼이 된 게 못 미더웠는지 나 몰래 가까운 아파트에 사시는 우리교회 은퇴목사님에게 전화를 걸었던 모양이었다. 내가 말했다. “아, 내가 밭에서, 길옆에서 판다니까 왜 전화를 하고 그러셔? 가끔 길가다 보면 길옆에서 천막치고 팔고 있잖아. 잘 팔리던 걸. 나도 이제 시간이 남아도니 장사나 해볼까 하고 그러는데 왜 방해를 하고 그럽니까?” 아무튼 은퇴목사님께서도 심심하던 차에 신아 나셨는지 “빨리 한 상자만 캐서 가지고 와 봐. 실험삼아 한 상자 팔아보고 인기가 있으면 내가 계속 아파트 주민들에게 다 팔아줄게”라고 하셨다.
다음날부터 연일 비가 왔다. 마침 플래카드도 아직 도착하지 않아서 며칠 더 기다렸다. 드디어 다음 주 월요일에 플래카드가 도착했다. 비도 그쳤다. 우리는 플래카드와 상자를 싣고 밭으로 갔다. 먼저 몇 포기 캐보기로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이람! 지난번 캤던 것과는 달리 고구마의 작황이 형편없었다. 거의 밑이 안 든 것도 많고, 기껏해야 손가락 굵기의 고구마 두어 개 든 것도 있었다. 간혹 어쩌다 팔뚝 굵기의 고구마가 나오기도 했지만 한참을 캐도 한 상자 채우기가 어려울 성 싶었다.
우리 부부는 서로 마주보며 배꼽을 쥐고 웃었다. 그러면 그렇지, 목사부부가 장사는 무슨 장사를 한다고 난리를 피웠던고. 팔 고구마는 안 나올 것 같았다. 겨우 성도들과 함께 간식으로 먹을 정도나 나올까 싶었다. 조금 캐서 같은 동네 사시는 친정 부모님에게 절반 주고 집으로 돌아와서 우리의 계획을 수정하기로 했다. 그냥 성도들과 함께 간식으로 먹기로 했다.
은퇴목사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 왜 고구마 안 가지고 와? 내가 다 팔아준다니까?” 남편은 멋쩍게 말했다. “목사님, 사실은요, 가장자리에 있는 한 포기를 캐보고 고구마가 좋아서 모든 고구마의 밑이 잘든 줄 알았더니요, 나머지를 캐보니 밑이 안 들었어요. 아마도 올해에는 팔 것이 없을 것 같아요.” 은퇴목사님이 말씀하셨다. “에이, 싱겁기는. 내가 심심하던 차에 고구마 장사나 한 번 해볼까 하고 벼르고 있었더니 실망인 걸. 내가 여기 저기 전화를 하고 그랬드랬어.” “아무튼, 목사님, 고맙구요. 내년에 고구마 농사를 잘 지을 테니까 그 때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글쎄, 내가 내년까지 살아 있으려나 몰라.” “무슨 말씀이세요? 아직 몇 년은 끄떡없겠던 걸요. 몇 년 동안 저희 고구마 장사 좀 도와주셔야지요.” “하하하. 그래, 그러면 좋지.” 화기애애한 선후배 목사간의 대화가 있었다.
우리 교회 성도들 가운데 여자들은 대부분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점심식사를 드시고 집으로 가시지 않고 교회에 남아 얘기하며 혹은 낮잠을 자기도 하며 시간을 보내시다가 3시가 되면 주일오후예배 전 30분 동안 찬양에 동참하신다. 12시에 점심을 드시고 나면 젊은 성도들은 설거지를 하고 나이든 성도들은 방청소를 하신다. 오후 1시부터는 제각기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꽃을 피우기도 하시고 주중에 일을 많이 해서 피곤한 사람들은 한쪽에 누워 낮잠을 주무신다. 그러나 1시부터 3시까지 2시간 동안 웃고 떠들고 얘기를 하노라면 점심 먹은 게 다 소화가 되어 조금 배가 고파진다. 그 때쯤 간식이 필요하다.
사모인 내가 우리교회에서 가장 신경을 많이 쓰는 부분 중의 하나가 바로 이 간식을 준비하는 일이다. 가을부터 봄까지는 주로 고구마를 쪄서 먹고 나머지 기간에는 때로는 과자를, 때로는 과일을 챙겼다가 드린다. 그래서 우리교회 고구마 간식은 꽤 소문이 났다. 고구마가 몸에 좋은 웰빙식품 혹은 건강식품이라고 하니 고마운 일이다. 옛날처럼 가난한 사람들이나 먹는 인기 없는 먹거리였다면 그렇게 매 주일마다 고구마를 드시라고 줄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여, 우리 부부는 이번 주부터 토요일에 고구마를 캐어 주일 간식거리를 장만하기로 했다.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출처 및 필자 삭제시 복제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