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ttps://www.youtube.com/live/0Muh3gpjMJY?si=HDrxv1MwSLQCB7w-
사랑을 거부하는 백성 11:1~7
1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냈거늘
2 선지자들이 그들을 부를수록 그들은 점점 멀리하고 바알들에게 제사하며 아로새긴 우상 앞에서 분향하였느니라
3 그러나 내가 에브라임에게 걸음을 가르치고 내 팔로 안았음에도 내가 그들을 고치는 줄을 그들은 알지 못하였도다
4 내가 사람의 줄 곧 사랑의 줄로 그들을 이끌었고 그들에게 대하여 그 목에서 멍에를 벗기는 자같이 되었으며 그들 앞에 먹을 것을 두었노라
5 그들은 애굽 땅으로 되돌아가지 못하겠거늘 내게 돌아오기를 싫어하니 앗수르 사람이 그 임금이 될 것이라
6 칼이 그들의 성읍들을 치며 빗장을 깨뜨려 없이하리니 이는 그들의 계책으로 말미암음이니라
7 내 백성이 끝끝내 내게서 물러가나니 비록 그들을 불러 위에 계신 이에게로 돌아오라 할지라도 일어나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
불같이 강한 하나님 사랑 11:8~11
8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이키어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9 내가 나의 맹렬한 진노를 나타내지 아니하며 내가 다시는 에브라임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이요 사람이 아님이라 네 가운데 있는 거룩한 이니 진노함으로 네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10 그들은 사자처럼 소리를 내시는 여호와를 따를 것이라 여호와께서 소리를 내시면 자손들이 서쪽에서부터 떨며 오되
11 그들은 애굽에서부터 새같이, 앗수르에서부터 비둘기같이 떨며 오리니 내가 그들을 그들의 집에 머물게 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
[오늘의 말씀 요약]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 하나님이 애굽에서 불러내셨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멀리하고 바알에게 제사했습니다. 하나님이 사랑으로 이끄시고 먹이셨으나 그들은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싫어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뜨거운 긍휼로 그들을 멸하지 않으시고, 그들의 집에 돌아와 머물게 하실 것입니다.
---------
사랑을 거부하는 백성 11:1~7
하나님은 배반하는 백성에게 출애굽의 은혜를 상기시키십니다. 애굽의 노예이던 이스라엘을 하나님은 ‘내 아들’이라 하시며 구원해 내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 은혜와 사랑을 외면하고 바알들과 아로새긴 우상들에게 제사했습니다. 사랑받는 자에서 간음하는 자로 변질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오랜 역사 속에서 부모의 마음으로 그들을 이끄셨습니다. 걸음마를 가르치셨고, 안아 주셨으며, 그들의 상처를 치료하셨습니다. 사랑의 줄로 인도하셨고, 풍족하게 채우셨으며, 자유롭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놀라운 사랑을 경험하고도 하나님을 멀리하고 하나님 품으로 돌아오기를 싫어했습니다. 참된 사랑을 외면하고 배반한 결과는 다른 나라를 섬기게 되는 징벌입니다.
● 더 깊은 묵상
하나님은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어떤 사랑을 보여 주셨나요?
나를 향한 하나님의 세심한 사랑을 확인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
불같이 강한 하나님 사랑 11:8~11
자기 백성을 향한 하나님 사랑은 변함이 없고 포기가 없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에브라임을 결코 포기하지도 버리지도 않으십니다. ‘아드마’와 ‘스보임’은 유황과 불로 멸망한 소돔과 고모라 주변 성읍입니다(창 14:8). 하나님은 에브라임을 결코 멸망의 자리에 두지 않으십니다. 그분 마음에서 불타오르는 긍휼과 뜨거운 사랑이 공의의 진노보다 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한량없는 은혜와 자비는 인간의 이해를 뛰어넘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회복시키실 때 사자와 같이 큰 소리를 발하시면, 사방에 흩어진 백성이 떨면서 돌아올 것입니다. 하나님의 불타는 사랑과 애끓는 긍휼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 더 깊은 묵상
하나님이 에브라임을 포기하지 않으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나의 잘못과 배반에도 하나님이 계속 사랑으로 이끌고 계신다는 걸 느낀 적이 있나요?
한절묵상:호세아 11장 8~9절
사람은 하나님을 버릴 수 있지만,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북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순종과 죄악을 행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지 않으셨을 뿐 아니라 오히려 더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 사랑은 "왜?"라는 이유가 없습니다. 그분의 사랑은 "너여서!"라는, 존재를 향한 전적이고 절대적인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불굴의 열정과 의지로 끝까지 자기 백성을 품고 사랑하십니다.
스스로 마음속의 문을 닫기 전에는 하나님께 돌아가는 문이 활짝 열려 있다. - 오즈월드 체임버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세상으로 달려가는 저를 향해서도 불붙는 긍휼의 마음을 품으시는 하나님 사랑에 눈물이 납니다.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고 부르짖으시는 아버지 하나님께 이제 달려갑니다. 제게 걸음을 가르쳐 주시고 저를 안아 주셨던 하나님이 저를 다시 고치실 것을 믿습니다.
호세아 11:1~12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가슴앓이
물질적 풍요와 영적 빈곤의 시대에 호세아를 통하여
경고하셨던 말씀이 어쩌면 오늘의 나의 삶과
너무나 흡사 한 것 같아서 놀랍기도 하다.
특히 오늘의 말씀은 하나님의 사랑이
부모님의 사랑과도 너무나도 흡사하게 묘사하고 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에
사랑하여 애굽에서 불러 내었고(1)
걸음을 가르치고, 팔로 품에 안아 주시고,
아플 때에 낫게 해 주시고(3)
사랑의 줄로 저들을 이끌었고,
젖을 물리고 먹을 것을 주어(4)
극진한 사랑으로 보살펴 주었건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부르면 부를수록
반항하여 멀리하고, 바알에 제사하며, 우상에 분향했다(2)
심지어는 결심하고 하나님께서 물러났을 뿐만아니라
돌아오라 할찌라도 일어나는 자가 하나도 없었다(7)
이정도 되면 말씀처럼
내게 돌아오기를 싫어하니 앗수르 사람이 그 임금이 되며(5)
칼이 저희의 성읍들을 치며 빗장을 깨뜨려 없이하리니(6)하시는
말씀이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르지만
긍휼과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은 오히려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8)하신다.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내가 어찌 아드마, 소보임( 소돔과 고모라)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아서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8)하신다.
부모님의 사랑도 마찬가지지만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마음이 이와 같구나!!!!
음란한 아내 고멜을 데려다가 음란한 자식을 낳아라라고
일방적으로 말씀하실 때 하나님이 이렇수 있는가?하는
생각도 했었는데 하나님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생각이였다.
하나님의 사랑의 크기와 넓이와 깊이와 높이는
도저히 측량 할 수가 없는 것인가 보다.
돌탕을 기다리시는 아빠의 마음처럼
집나간 음란한 고멜을 다시 찾아와서 아내 삼는 것 처럼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
목적없는 사랑
이스라엘을 향한 사랑, 나를 향한 사랑에
눈 앞이 뿌옇게 흐려지기만 하다.
이스라엘을 앗수르에 포로가 되게 하신 것도
하나님께로 불러 오기 위한 일시적인 시련이요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사랑안으로 돌아오게 하시기 위한
사랑의 징계의 한 수단에 불과한 것이였다.
길이 참으시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아버지
징계를 통해서라도 은총 아래 머물게 하시고자 하시는
아버지의 그 크신 사랑
아버지의 그 마음을 알아가길 원합니다.
날마다 주님의 사랑의 줄에 메여 기뻐하며
찬양하며 감사하며 주님 앞에 머물게 하옵소서.
오늘의 말씀요약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 하나님이 애굽에서 불러내셨지만 그들은 바알에게 제사했습니다.
하나님이 사랑으로 이끌고 먹이셨으나 그들은 주께 가기 싫어했습니다.
그러나 주의 긍휼이 불붙는 듯해 그들을 멸하지 않고 애굽과 앗수르에서 불러 그들 집에 머물게 하실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해설
부르심을 무시한 이스라엘(11:1~7)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 백성이 사명을 제쳐 두고
자기 이익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면 하나님의 공의에 근거한 징계가 불가피합니다.
하나님이 애굽의 압제에서 건져 내신 이스라엘은 제사장 민족으로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온 세상에 드러내야 할 사명과 책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 뜻을 저버리고 가나안의 우상과 문화를 무조건 따랐습니다.
하나님은 아무런 공로나 자격이 없는 이스라엘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시고 바른길로 인도해 주셨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간섭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세상적인 계책과 방법을 강구했습니다.
하나님께 선택받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정체성과 존재 목적을 잃어버리면 세상의 포로로 전락하게 됩니다. 소명을 상실하면 소망이 사라집니다.
- 묵상 질문: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어떻게 대하셨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어떻게 대했나요?
- 적용 질문: 완악한 나를 자녀 삼으시고 “내 아들(내 딸)”이라 부르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어떻게 응답하고 있나요?
하나님의 불타는 사랑(11:8~11)
하나님은 그분의 자녀들이 저지른 죄에 대해서는 공의에 입각해 준엄하게 징계하실지라도,
뜨거운 사랑으로 긍휼을 베푸셔서 그들을 구원하십니다. 소돔과 고모라와 함께 멸망한
아드마나 스보임과 비교할 때, 이스라엘의 죄는 결코 가볍지 않았습니다. 그들 가운데 음란과 불법,
약자에 대한 착취와 학대가 만연했고, 자기 이익을 위해서라면 폭력이나 살인조차 서슴지 않는 잔인함과
냉혹함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인간의 본성이 연약하고 악하다는 것을 아시기에 안타까워하시며,
하나님께로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주십니다. 배은망덕한 자녀일지라도 버리지 않으시고,
끝까지 용서하시려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 묵상 질문: 타락한 이스라엘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에 긍휼이 불붙듯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 적용 질문: 오늘 말씀에 드러난 하나님의 마음을 누구에게, 어떻게 전하면 좋을까요?
오늘의 기도
저를 하나님 백성으로 삼아 주신 은혜가 얼마나 큰 것인지 알면서도 하나님 뜻을 따르지 않고
순간순간 제 의지대로 움직이는 완악함이 있습니다.
끝없는 사랑으로 용서하시는 주님께 몸과 마음을 드리고 시선을 고정하게 하소서.
하나님께서 호세아 선지자를 통해 이스라엘의 시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그들을 사랑했는지 밝히신다
출애굽의 위대한 역사에서 부터 시작해서[11:1]
멍에를 벗긴 그들을 팔로 안고 [11:3]
사랑의 줄로 이끌었으며
풍부한 것으로 채워 부족함이 없게 하셨지만[11:4]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와 사랑에 겨워서 감사를 모르고
자신들의 또 다른 만족을 위해 다른 신들을 섬기며
일편단심 하나님께로 향하여 돌아오기를 싫어하니
하나님께서 그들의 앗수르의 손에 붙이시며
앗수르 사람이 그들의 임금이 되게 하리라고 하신다[11:5]
이제 이스라엘의 심판은 확정되고 확정 되었다
더 이상 변동할 수 없는 이 심판의 집행을 앞에 놓고
그러나 하나님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 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 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이키어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내가 나의 맹렬한 진노를 나타내지 아니하며
내가 다시는 에브라임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이요 사람이 아님이라[11:8-9]
죄악을 용납할 수 없는 자신의 공의하심 때문에
자기 백성을 심판 가운데 들여보내셔야 하지만
한편 끔찍한 재앙 가운데 처넣어지게 될
자기 백성의 고통을 생각하니
하나님의 마음이 갈팡질팡 흔들리고 있는 심리를
사람의 마음에 빗대어 神人同形說[신인동형설]로 표현하신다.
이것은 마치 무던히도 속 썩이는 사랑하는 자식이
경찰에 잡혀서 감옥에라도 갔다 오기를 바라던 어머니가
막상 자식이 체포되어 수갑이 채워지고 잡혀가게 될 때
자기 배를 아파서 낳은 자식이 당할 고통을 생각하고
자기 속에서 긍휼이 발동되며 마음이 녹아지고
차라리 자신이 잡혀가서 고통 받게 되기를 바라며
먼발치에 떨어져 숨죽여 우는 모습이라고도 이해하게 된다.
그렇다 죄는 무서운 것이지만
이 죄보다 더 무서운 하나님의 사랑이
진노와 심판 가운데 처넣어지는
우리[나]를 그만 두고 볼 수 없어서
자기 아들을 보내시어
자신이 직접 모든 죄를 담당하고 뒤집어 쓴 채
형벌과 고통의 자리로 내려오신 것을
우리 주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자기 백성을 돌이키기 위해서
하나님은 최후의 카드를 사용하여
저들을 앗수르로 잡혀가게 하지만
기실 하나님은 여전히 저들 가운데 함께 계셔서
함께 잡혀가시며 함께 고통 받는 자리에 계시는 것을
오늘의 말씀을 통하여 충분히 드러내시고 밝히시는 것을 본다.
내가 나의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의 징계 가운데 처하여
고통 중에 신음할 때 나는 홀로 버려져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일시적 고난을 허락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더 아프시고 괴로우시며 마음에 불이 붓는 뜨거운 긍휼로
나를 주목하고 계신다는 것을 마음 깊이 받아 드린다.
오늘의 말씀을 통해 나는 다시 한 번
나의 죄악과 나의 못난 모습에도 불구하고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서 결코 떨어질 수 없는
말로 다할 수 없는 사랑인 것을 확인하게 된다.
그것은 나의 흉한 죄악으로도 끊을 수 없는 사랑으로서
아들을 통하여 십자가에서 결정적으로 보여주신 사랑이다.
이 사랑 때문에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앗수르에 넘기시면서
대성통곡하고 우셨으며[11: 10]
이 사랑의 곡성 때문에 이방에 흩어진 자기 백성들이
때가 되매 다시 둥지를 향하여 날아오는 새처럼
그리고 떨며 돌아오는 비둘기처럼
다시 자신들의 둥지로 돌아올 것을
호세아 선지자의 가슴을 통해 전달해 오신다. [11:10-11]
-
구원은 사람의 의에서 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의에서 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의를 의지한 이방인들은 의로움에 이르렀으나,
사람의 의를 의지한 그들은 이르지 못했습니다
"의를 따르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의의 법을 따라간 이스라엘은 율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어찌 그러하냐 이는 그들이 믿음을 의지하지 않고 행위를 의지함이라"(롬9:30~32)
이미 사람의 의의 속성은 주께서 부르면 부를수록 점점 더 멀어진다는 것이 역사적으로 증명되었습니다 "그들을 부를수록 그들은 점점 멀리하고"(호11:1~2) 사람의 의의 속성은 주께서 사랑을 주면 줄수록 점점 더 멀어진다는 것이 완전히 증명되었습니다 "사랑의 줄로 그들을 이끌었고 그들에게 대하여 그 목에서 멍에를 벗기는 자 같이 되었으나 내게 돌아 오기를 싫어하니"(호11:3~5)
그래서 사람의 의의 결말은 그들이 하나같이 다 구원의 주께로부터 끝끝내 물러간다는 것입니다 "끝끝내 내게서 물러가나니"(호11:7) 그러나 하나님의 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입니다 하나님의 의는 그들이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더 불타오르는 긍휼입니다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호11:8)
하나님의 의는 그들이 진노를 격발시키면 시킬수록 더 큰 사랑의 외침으로 불러 따르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 하늘 아버지께서는 이 하나님의 의를 세우시려고 하나뿐인 아들을 죄로 삼으셨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 제단에 내어주셨습니다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5:21)
참으로 우리 주께서 우리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부활하신 것입니다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롬4:25)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의 의로 생명을 얻고 나라를 받았으니, 오직 주만 자랑하기 원합니다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고전1:30~31)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은 다니엘의 세 친구에게 임한 것처럼, 역설적인 사랑이 무엇인지 드러내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라는 나무에 매달려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처절하게 피를 흘리시며 그 소중한 생명을 불태우셨지만,
그 생명을 내놓은 사랑은 결국 영원한 구원을 위한 빛이 되었고 가릴 수 없는 소망이 되었습니다.
앗시리아의 압제와 사망의 권세 가운데 이스라엘을 내어주셨지만,
결국 그들을 그 가난한 심령으로 다시 살려내기 위함이었고,
다시 그들의 본향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할 목적이심을 호세의 입술을 통해 미리 말씀하십니다.
부모가 드는 회초리는 자녀를 향한 사랑의 극치입니다.
날마다 그 놀라운 역설의 사랑을 더 알고 그 가운데 거하는 주님의 제자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은혜와 진리의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를 쉽게 외면하지만
결코 그 마음을 영원한 심판으로 향하지 아니하시고,
변하지 않는 사랑과 한이 없는 긍휼로 덮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아버지의 그 크신 은혜에 합당한 주님의 자녀로 세상을 향하여
소금과 빛이 되게 하시고,
우리의 힘과 생각이 아닌 성령의 인도하심과 말씀의 길을 따라 걸어가는
주님의 제자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에도 열방 가운데 주님의 복된 소식 전하시는
선교사님들의 가정과 사역위에 기름 부어주시고
모든 필요에 넘치도록 아버지께서 풍성하게 채워 공급하여 주시옵소서.
질병과 전쟁, 기근과 핍박, 모든 자연재해로 말미암아 고통받고
신음하는 이들을 불쌍히 여겨 주시고,
회복과 치유의 역사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 나라와 백성의 하나님을 경외하고,
아버지 사랑과 긍휼 아래 전심으로 섬기는 겸손과 순종의 거룩한 제사장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와 찬양을 아버지께 올려드리며,
우리의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신 예수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