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異邦人)
김영애
일년에 서 너 번 서울에 갈 일이 생긴다.
그 때마다 서울이라는 곳은 나 같은 사람이 살기엔 어울리지가 않는다는 생각
을 한다 빌딩 숲에서 느끼는 삭막함이 이루 말할 수 없다 이십대에 풋풋한 꿈
이 머물렀던 도시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도무지 정이 가지 않는다.
어쩌다 지하도엘 들어가면 나는 영락없는 시골 쥐가 된다.
어디로 빠져 나가야 할지 한참을 지하도 안에서 헤맬 때 가있다.
언제나 긴장감을 유지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도회지의 생활보다는 나를 키
워주고 내 삶의 터전인 넉넉한 충청도가 얼마나 좋은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걸어본다.
추적추적 서울의 거리에 비가 내린다.
터미널로 들어서니 어디에선가 돌아오고 어디론가 떠나려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마중을 나와서 누군가를 눈이 빠져라 기다리는 사람들과 허공에 손을 휘저으며
배웅을 하고 서있는 사람들 속에서 차표를 사려고 서 있을 때 누군가 사뭇 내 시
선을 묶어둔다.
까무잡잡한 얼굴에 버쩍 말라서 키가 커 보이는 눈이 큰 남자.
잔뜩 두려움에 찬 눈빛을 하고는 낡은 트렁크 하나를 들고 두리번거리고 있다.
동남아 어디에선가 온 듯한 그 이방인은 손에 메모지 하나를 들고 기웃거리는 모
습이 분명 누군가를 잡고 무언가를 묻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머리엔 부스스 새집을 짓고 조금 열려진 낡은 트렁크 안에서는 순대 속이 터져
나오듯 옷가지들이 서로 비집고 나오려한다.
아마도 조금 전쯤 비행기에서 내려 어디론가 일터를 찾아서 주소를 들고 그곳
을 향해 가려는 것이리라.
나는 연민 가득한 눈빛으로 낯선 이방인을 바라만 보고 있다가 이내 그의 곁으
로 서둘러 다가선다 “하이, 헬로우, 어드레스, 티켓 오케이, 땡큐”내가 알고 있는
필요한 영어 단어들을 총동원 해본다.
그가 가려고 하는 지방의 차표를 사주려는데, 꼬깃꼬깃 돈을 꺼내는 그의 지갑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그들의 가족사진을 보았다 내가 표를 사려고 기다리는
동안 그는 가슴에 품고 온 사랑하는 가족들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서있다.
순하디 순한 미소를 지어보인 후 휘적휘적 걸어가는 그의 등 뒤로 비가 내린다.
그는 낯선 곳으로 가는 버스에 짐짝처럼 몸을 싣고 떠났다.
지방의 어느 농공 단지, 허름한 조립식 공장에 여장을 풀고 공장 건물 한켠의
숙소에서 밤이면 새우잠을 잘테고 낮에는 몸을 도끼 삼아 일을 할 것이다. 어쩌다
휴일이면 시내버스 승강장에 멀뚱히 서서 버스 몇 대를 그냥 보내다가 시내로 나
와서는 낮선 거리를 배회하리라...
시키면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일을 하는 것만이 꿈을 실현하는 길이라고 믿으
며 부평초같이 같이 살아가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수만 명이나 된다고 한다 단지
이방인 이라는 이유만으로 인권을 유린당하며 최소한의 처우도 받지 못한다는 일
각의 소리를 들은 적이 있어서 그런지 유난히 커다란 그의 눈이 더욱 슬프게 느
껴져 왔다.
언젠가 TV 에서 외국인 노동자의 애환을 다룬 프로를 보고 슬프기도 하고 한편
으론 이 나라의 국민이란 것이 몹시도 부끄럽게 느껴진 적이 있었다.
우리나라도 한때는 광부로 떠나고 간호보조원으로 가서 허드렛일을 하며 가 족
의 생계를 책임지고 멀리 열사의 땅에서 피땀 흘려서 보낸 돈으로 보릿고개를 넘
지 않았던가 개구리가 올챙이 적 생각을 못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내가 잘살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이 받는 상처는 아랑곳도 없다.
사람들은 점점 나밖에 모르고 우리라는 말을 잘 쓰지 않는다.
사랑과 존중과 이해의 벽을 넘지 못하면 異國을 넘나들지 않아도 우리는 모두
이방인이다.
2006/23 집
첫댓글 내가 잘 살기 위해 다른 사람이 받는 상처는 아랑곳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