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주고받는 마음
모임득
꽃을 주고받거나 꽃집에서 고즈넉이 있는 꽃들을 보면 떠오르는 말이 있다.
“당신 애인 꽃집 여자예요?”
생각날 때마다 머리를 흔들며 잊으려 하지만 나오는 웃음은 어쩔 수가 없다. 남
편에게서 꽃이나 화분을 언제부터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맞벌이하던 시절, 남편
은 늦게 퇴근하는 날이면 초인종을 누르지 않고 열쇠를 사용하였다. 내가 자고 있
었던 것은 아니지만 직장을 다니는 아내에 대한 배려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술을 마시어 기분이 최상일 때면 초인종이 울렸다 그때마다 현관 문틈
으로 내밀어지는 꽃다발을 받아 들고 탄성을 지르면 남편은 불그스레한 얼굴로
나타났다.
우아한 백자 항아리에는 청순해 보이는 백합이 꽂히기도 하고 정열을 태우는
장미며 한 송이로도 온 집안을 향기로 가득 채우는 후리지아등으로 꽃향기가 끊
길 때가 없었다 허전하던 베란다에도 화분은 늘어났다 따가운 줄기를 어떻게 들
고 왔는지 소철이며 아마릴리스, 선인장 등………….
신비한 빛깔로 아름다움을 뽐내며 향기를 풍기는 꽃을 항아리에 꽂아 거실이나
방에 두면 집안 분위기가 활짝 살아나고 있음을 느낀다 울하거나 피곤에 지쳐
현관문을 열었을 때 집안에서 풍기는 그윽한 향기와 남편이 건네준 꽃을 바라보
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생기를 띄었다.
무뚝뚝하고 표현을 별로 하지 않는 경상도 사나이인 남편에게서 꽃을 받으리라
고는 상상도 못하였었다. 그만큼 말이 없고 애정 표현에 인색한 남편인데 항아리
에 꽂인 꽃을 바라보며 왜 꽃을 선물했을까 생각을 해 보았다.
사랑을 고백하거나 기쁜 일이 있을 때 우리는 꽃을 선물하곤 한다 꽃 자체가
사랑 고백의 뜻을 포함하기도 하고 꽃을 보면 누구나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이리
라. 나 역시 꽃을 받을 때의 그 무언의 말이 사랑의 말보다 몇 배 더 큰 효과로
가슴을 울렁이게 하곤 하였으니까.
남편이 언제부터 꽃을 선물하였던지 꽃을 받게 된 무렵에 자기를 사랑하느냐고
물어 왔었다. 글쎄요 하며 얼버무리고는 “내가 당신을 만난 건 그 해 가을이 쓸쓸
했기 때문이야”장난삼아 던진 말에 충격을 받았었나. 친구의 소개로 만나서 남편
의 적극적인 청혼으로 결혼하였으니 글쎄요란 단어를 사랑해요라는 말로 바꾸어
듣고 싶었던가.
아니면 언젠가 회사로 전화했을 때 직원이 꽃꽂이 선생님이냐고 물은 적이 있
었는데, 좋아하는 여인이 꽃집을 하고 있어 보고 싶을 때마다 꽃집에 들렀을 수도
있는 일 아닌가.
생각을 하면 할수록 꽃을 주는 마음을 순수하게 보지 않고 남편이 꽃집 여자를
좋아할 것이라는 엉뚱한 생각이 들자 일주일에 두 번 꼴로 꽃을 받을 때마다 즐
거움은 그만큼 덜했다 시들어 없어지는 꽃을 돈으로 환산해 아까운 생각도 들었
고 베란다에선 관리 소홀로 빈 화분만 늘어갔다.
그날도 남편은 초인종을 눌렀다. 노란 들국화 한 다발을 받아들고 현관을 들어
서는 그이에게 물었다 “당신 애인 꽃집 여자에요?” 순간 남편의 표정은 무척 실
망하는 눈치였고 그 후로 꽃과의 만남은 중단되었다.
길을 가다가 담장위로 뻗어 나온 꽃이나 나무를 보면 걸음이 멈추어진다 정원
이 아름다운 그 집 안주인의 살림살이는 보지 않아도 정갈하고 깔끔할 것이라고
짐작하고는 “당신 애인…………”을 떠올리기도 하였다.
좋아한다는 말을 꽃으로 표현하였을 남편의 마음을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못한
나의 실수, 빈 항아리에는 남편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전해 받은 꽃을 담고 싶어
졌다.
남편이 술에 취해 기분이 좋은 어느 날 넌지시 우리 집 백자 항아리가 허전하
다고 하였더니 픽 웃기만 한다 어떻게 하면 남편이 꽃을 다시 사 오게 될까 빈
항아리를 바라보는 마음은 한없이 쓸쓸하였다.
꽃을 받는 사람보다 주는 이의 마음이 더 예쁘지 않을까 술 한 잔에 기분이 좋
아지고 보니 가장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아내가 생각났을 것이고 마음먹
은 대로 잘 해 주지 못해서 미안했었기에 꽃집에 들렸을 것이다 장미, 소국 양귀
비, 아네모네, 거베라 천일홍………… 다발채로 색색이 진열되어 있는 꽃을 고르면서
머릿속으론 꽃을 받고 좋아할 아내의 모습을 상상하며 미소 지었을 것이다.
꽃을 받을 때의 그윽한 도취와 행복감, 그러나 꽃을 주는 이의 마음을 지혜롭게
받아들이지 못하면 그 꽃은 이미 시든 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러니 꽃을 주는 사
람과 받는 사람의 마음이 일체감을 느낄 때야만이 꽃이라는 아름다움으로 피어난
다는 것을 느꼈다.
아무리 화사한 꽃이라도 그 싱싱함이 열흘을 넘지 못하지만 꽃을 주는 이의 마
음을 가슴에 듬뿍 받으면 오래 지속되리라 꽃을 주는 마음, 꽃을 받는 마음, 우리
부부가 그런 마음으로만 살아간다면 무엇을 더 바랄까.
직장도 그만두고 꽃 받는 것은 옛일이 되었을 무렵, 사소한 일로 남편과 싸운
이튿날 현관 배웅도 하지 않고는 남편이 엘리베이터를 타자마자 문을 잠가 버렸
다 오 분쯤 지났을까 현관문이 심하게 일렁거려 나가 보니 남편은 보라색 들국
화 다섯 송이를 내 밀고는 사라졌다.
푸짐한 꽃다발에 비하여 화려하진 않지만 뿌리 채 달려있는 들국화 다섯 송이
로 인해 자연스레 화해한 셈이다 작은 화병에 꽂아 식탁에 놓고는 하루 종일 오
고가며 향기를 맡았다 며칠이 지나 말라비틀어진 꽃에 코를 대니 꽃이 그렇게 좋
아 하기에 꽃을 선물한 당신의 마음이 좋다고 하니 빙그레 웃는 그의 얼굴을 보
며 난 탄식했다. 요놈의 입 때문에…………… “당신 애인 꽃집 여자예요?”소리만 안했
어도 언제나 향긋한 꽃을 받아 볼 수 있으련만.
설레이며 기다리는 꽃과의 만남이 언제나 다시 시작될까? 다시 꽃을 받게 된다
면 눈에 보이는 꽃의 빛깔이나 향기의 외형만을 보진 않을 것이다 꽃을 건네주는
그 마음을 가슴에 담고 항아리에 채우리라.
2006/23집
첫댓글 꽃을 주는 이의 마음을 지혜롭게
받아들이지 못하면 그 꽃은 이미 시든 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러니 꽃을 주는 사
람과 받는 사람의 마음이 일체감을 느낄 때야만이 꽃이라는 아름다움으로 피어난
다는 것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