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방송 파워인터뷰
-윤형모 변호사
- 작년 10월, 한국 청소년 문화재단 회장에 임명 되셨는데요,
어떻게 청소년 문화재단과 인연이 되셨습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현재 문화재단 이사장으로 있는 이주열 이사장과의 운명적인 만남같이 생각됩니다.
제가 부산동부검찰청 부장검사로 근무하다가 1999년 6월에 인천지방검찰청 부장검사로 전보되어 왔습니다.
그 때는 주안 석바위에 인천검찰청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인천지방검찰청에 전보되고 나서 약 4개월 후인 1999년 10월에 그 유명한 인천 인현동 라이브호프집 화재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약 150명의 어린 중고등학생이 불법 라이브호프집에서 집단으로 놀다가 화재가 발생하여 그 중 52명이 사망하고 81명이 화상을 입은 대형화재사건이었습니다.
당시 사망한 피해자가 전부 10대와 20대 초반의 어린 학생들이었는데 비상구나 비상계단도 없는 불법영업 라이브호프집에서 집단으로 놀다가 화재로 52명이나 사망한 사건은 당시 불법유흥업소와 유착한 관련행정기관의 부패상과 함께 기성세대에 청소년문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화재사건이 계기가 되어 『어떻게 했길래 그렇게 열악한 환경의 불법 호프집에 10대의 학생들이 모여 놀 수밖에 없었느냐.』하는 반성이 확산되면서 전국적으로 청소년들에게 밝은 쉼터, 밝은 놀거리를 마련해 주자는 운동이 시작되었는데, 인천에서는 당시 이미 인천청소년문화사업단의 이주열 단장이 푸른쉼터운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주열 단장에게 검찰이 협조를 부탁하여 검찰과 공동으로 인천청소년문화사업단이 푸름쉼터운동을 확장하여 전개하게 되었습니다.
자유공원과 중앙공원을 푸른쉼터로 지정하여 매주 청소년지원자들을 받아 공연장을 만들어 공연을 하였는데 소년담당부장검사였던 저도 자연스럽게 푸른쉼터운동을 도우게 되었던 것입니다.
당시 실질적인 활동은 청소년문화사업단 단장인 이주열 단장이 하고 저는 미미하나마 뒤에서 돕는 역할을 하다가 저는 2001년 서울로 전보되어 인천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이주열단장은 그 청소년사업단을 잘 이끌어 문화활동 영역을 넓히면서 한국청소년문화재단으로 키워놓았고, 인연이 되었는지 제가 다시 인천에 와서 변호사로 일하면서 이주열 이사장이 재단 회장을 맡아 달라고 하여 작년 10월에 회장에 취임하게 된 것입니다.
- 한국 청소년 문화재단은 어떤 기관입니까?
한국청소년문화재단은 1986년 3월 인천청소년문화사업단으로 설립되었습니다.
인천의 열악한 청소년문화환경을 개선하고자 이주열 단장이 설립하여 청소년건전놀이문화 정착을 목적으로 운동을 시작하였습니다.
그 운동이 푸른쉼터운동을 계기로 확산되어 청소년놀이문화 정착을 위한 푸른쉼터운동 외에 청소년보호운동인 자녀안심하고 학교보내기운동, e-CLEAN 센터 운영, 청소년유해환경감시단 운영, 청소년봉사활동 지원을 위한 푸르미봉사단 운영. 소년소녀가장 돕기 푸르미하우스운동으로까지 운동이 확산되어 운동의 규모에 맞게 2009년 3월에 한국청소년문화재단으로 명칭을 바꾸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한국청소년문화재단은 2008년에 국제인증 ISO 9001번과 14001번을 받아 한국에서 비영리민간단체로는 처음으로 국제인증을 받은 단체입니다.
- 어떤 활동들을 하는 지 궁금합니다.
한국청소년문화재단의 활동은 청소년관련하여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데 크게 3가지 방향으로 나눌수 있습니다.
첫째는 청소년건전놀이문화 운동인 푸른쉼터운동이고,
둘째는 청소년보호운동인 자녀안심하고 학교보내기운동, e-CLEAN 센터 운영, 청소년유해환경감시단 운영이고,
그리고 셋째로 청소년봉사활동 지원으로서 푸르미가족봉사단 운영, 푸르미하우스운동이 있습니다.
- 중점을 두고 있는 활동이 있다면요?
사실 한국청소년문화재단은 재정만 허락한다면 청소년들에게 도움이 되는 모든 일을 하고 싶습니다.
지금 현재 하고 싶은 일은 글로벌 시대를 맞이하여 한국 청소년들과 미국 중국 일본 유럽 등의 청소년들을 맺어주는 국제청소년 친구맺어주기 사업을 하고 싶은데 재정이 허락하지 않아 못하고 있습니다.
청소년들에게 도움이 되는 모든 일이 한국청소년문화재단이 중점을 두고 있는 활동입니다. 특별히 중하고 중하지 않은 일이 따로 있을 수가 없습니다.
- 인천시 e-clean센터라고 있던데, 어떤 일을 수행하는 곳입니까?
인터넷은 이제 생활문화입니다. 인터넷의 필요성은 이 방송을 듣고있는 애청자 모든 분들도 알고 계시기에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인터넷은 청소년들에게는 제2의 가정, 친구가 되었습니다. e-CLEAN센터는 득이 되는 인터넷 청소년들에게 독을 걸러주는 인터넷 순기능을 활성화하고 역기능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아마 2000년대 초에 인터넷이 도입되면서 국민들이 인터넷의 기능에 환호하고 있을 때 인터넷의 부작용을 제일 먼저 간파하고 인터넷으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하여야 한다는 생각을 한국에서 제일 먼저 한 기관이 한국청소년문화재단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 법률은 청소년보호차원에서 음란물배포를 형사처벌하고 있고, 청소년들에게 술이나 담배를 파는 것까지 금지하고 있는데, 청소년들에게 술 담배를 파는 것보다 몇배나 해롭고 청소년들의 정신을 직접적으로 피폐시키는 인터넷 유해사이트를 금지할 수 있는 아무런 제재수단이 없어 그러한 인터넷 유해환경에 청소년들이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현실을 보다 못하여 한국청소년문화재단이 인터넷 유해환경으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하자는 유해사이트 차단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배포하다가, 인천광역시가 전국 지자체 중에서는 처음으로 이 사업을 지원하면서 인천광역시와 함께 인터넷 유해환경으로부터 청소년들을 보호하자는 e-CLEAN 운동을 전개하게 된 것입니다.
e-CLEAN 센터는 이런 e-CLEAN운동을 전개하는 본부입니다. 청소년들에게 인터넷 유해사이트의 해악을 홍보하고, 유해사이트에의 접속을 방지하기 위한 홍보강연, 불법사이트 차단 프로그램 배포, 인터넷 유해환경에 대한 청소년 웅변대회 등 인터넷유해환경으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한 다양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 청소년 푸른 쉼터는 어떤 역할을 하고 있습니까?
청소년푸른쉼터는 청소년들에게 밝은 놀거리, 밝은 놀터를 마련해 주기 위하여 쉽게 말하면 청소년들에게 공개적으로 끼를 발휘할 장소를 마련해 주는 곳입니다.
인천의 자유공원과 중앙공원이 푸른쉼터로 지정되어 매년 4월부터 11월까지 매주 토요일 청소년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공연을 하여 왔습니다.
1998년부터 2010년까지 454회의 공연을 수행하여 왔는데 대한민국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보기 힘들 정도로 지속적인 청소년문화행사가 되었습니다. 인천이 자랑할만한 문화행사입니다.
그 공로가 인정되어 2011년 2월에 제가 대표로 미국 뉴욕에 가서 유엔평화봉사상을 수상하였습니다.
그런데 인천 구도심 개발로 푸른쉼터를 운영할 장소가 마땅치 않아 2011년부터는 월미도 문화의 거리에서 토요일과 일요일 푸른쉼터를 운영할 계획입니다.
- 한국 청소년 문화재단 내에 있는 푸르미 봉사단, 푸르미 기자단 들은 어떤 구성원들로 이루어졌습니까?
푸르미봉사단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학생과 학부형이 함께 봉사단에 가입하여 봉사활동을 하게 구성되어있는데 각 중학교, 고등학교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봉사활동의 내용은 각 지역별로 자율적으로 정하며, 봉사활동에 대하여 한국청소년문화재단이 봉사확인서를 발급하여 대학수시입학 등에 사용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봉사활동점수는 필요한데 학과공부에 바쁜 중학생, 고등학생이 혼자서 봉사활동을 하는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하여 학부형과 함께 봉사활동을 할 수 있도록 구성한 것입니다.
재단에서 청소년들이 스스로 만드는 신문이라는 개념으로 푸른쉼터신문을 발행하고 있는데, 그 기자들도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학생들로 푸르미기자단은 구성하여 신문을 만들고 있습니다.
푸르미기자단은 모집공고를 내어 모집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이 직접 취재하고, 기사를 쓰고, 편집하고, 신문을 제작하여 푸름쉼터신문을 발행하는데, 학생기자로 현장경험을 하고 신문을 직접 만들어본 경력은 대학입학 등에서 중요한 평가요소가 됩니다.
유럽에서는 학생들에게 신문을 만들어보게 하는 커리큘럼이 있는데, 문화재단에서는 정식 기자로서 실제로 신문을 만들게 하여 살아있는 경험을 하게 하고 스스로 기사를 쓰면서 산 지식을 습득하게 하는 것입니다.
- 청소년들과 직접 만남의 시간을 갖기도 하시는지?
주로 학교를 방문하는 기회에 푸르미 가족봉사단의 학생과 학부형들을 만나면서 청소년들과 만납니다. 문화재단의 행사에 참가하는 청소년들과도 행사장에서 자연스럽게 만나게 됩니다. 청소년들이 저를 어렵게 대하는 것 같습니다.
- 가족 주말 농장도 운영되고 있다고 들었는데, 맞습니까?
문화재단이 남동구 서창동에 밭 3,000평을 임대하여 푸르미가족봉사단이 직접 상치나 시금치 등을 심어 가꾸는 주말농장을 운영하였습니다.
청소년들이 학교공부 때문에 멀리 시골로 갈 수 없으므로 가까운 곳에 밭을 임대하여 운영하였는데, 청소년들이 직접 밭을 가꾸고 흙을 만지면서 가족애를 느끼고, 정서순화와 협동심을 가질수 있게 하는 교육효과가 있었습니다.
- 어렸을 때 장래희망이 뭐였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어렸을 때는 한의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한의과대학이 종합대학에 다 있는 걸로 알았는데, 고등학교 졸업할 때 보니 서울대학교에 한의과대학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한의과대학은 제일 좋은 곳이 경희대 한의과였는데, 제가 고등학교 다닐때 부산전체에서 10등안에 들만큼 공부를 좀 하였는데 그 성적으로 경희대를 가기는 좀 억울하여 할 수없이 그 때 제일 좋다는 서울대학교 사회계열을 지원하여 서울법대로 가는 바람에 그 후에 인생이 법조인으로 풀렸습니다.
- 검사, 변호사로 활동할 당시 여러가지 사건들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기억에 남는 사건이 있으십니까? 청소년관련 사건도 있었나요?
큰 사건도 많이 취급하였지만 제일 기억에 남은 사건은 큰 사건이 아니라 1990년도에 의정부검찰청에 있을 때 동두천사창가로 납치된 안양여고생 2명을 구해준 사건과 강릉 검찰청에 있을 때 동해안에 필리핀 선박이 좌초되어 마을어촌계가 입은 피해를 받아주기 위하여 영국로이드 보험회사로부터 피해보상금을 받게 해 준 사건이 기억에 남습니다.
수필가인 피천득 선생의 수필중에 쓸데없는 것들이 그리는 포물선이라는 수필이 있는데, 우리 생활에 직접적으로 필요하지 아니한 것 들이 실제로는 우리 인생을 풍요롭게 한다는 내용의 글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우연한 만남,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한 것, 이런 것들이 기억에 남는 것 같습니다.
여고생 2명을 구해준 것이나 마을 어촌계에 보상금을 받도록 해 준 것은 굳이 제가 해야할 일이 아닌데도 내가 아니면 다른 사람이 할 수가 없을 것 같아 한 일인데 세월이 지난 후 제가 처리했던 큰 사건들보다는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한 그런 일들이 제일 기억에 남고 보람을 느낍니다.
- 10여년 전에, 인천지방검찰청에 형사계 부장검사로 계셨다고
들었는데요, 그때 소년담당 업무가 있었다고 하던데
어떤 업무였습니까?
인천지방검찰청에서 형사2부가 담당하는 업무중에 소년업무가 있습니다.
소년담당검사가 배치되어 주로 소년범죄를 취급하고 청소년선도협의회를 관리하고 있습니다.
소년범은 처벌위주가 아니라 교화위주로 사건을 처리하여야 하기 때문에 다른 형사사건과 다르게 취급할 필요가 있으므로 소년담당검사를 형사2부에 따로 배치하여 형사2부가 소년담당부로 불리고 있는 것입니다.
- 언제부터 청소년이나 청소년 문화에 대해 관심이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만?
저도 검사생활을 하면서 하루하루 업무에 바빠 청소년문제에 대하여 관심을 가질 겨를이 없었는데 2000년 경에 인현동 화재사건을 계기로 이주열 단장을 만나게 되었는데, 자신의 청춘을 바쳐 청소년을 위한 푸름쉼터를 운영하는 이주열 단장의 순수한 열정을 보면서 청소년문제에 대한 관심과 봉사할 마음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제가 이주열 단장을 처음보았을 때는 당시 저의 인생관으로는 자신을 희생하면서 남을 위한 인생을 산다는 것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점차 봉사가 무엇인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인생에는 자신의 진로를 결정하는 우연한 계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때 이주열 단장과의 만남이 오늘날 청소년문화재단 회장이 되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 청소년기는 어떻게 보내셨는지 궁금합니다.
저의 청소년기도 입시공부에 시달리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제가 58년생으로 중학교 평준화와 고등학교 평준화를 거치기는 하였지만 입시시험에 임박하여 평준화가 발표되었기 때문에 입시공부는 마찬가지로 하였고 고등학교 때에는 참 열심히 공부하였습니다.
그런데 요즘처럼 선행교육은 없었고, 좋은 참고서를 선택하여 혼자서라도 열심히 하면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었는데 요즈음은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전부 학원에 나가서 공부를 해야하니 제가 공부할 때보다 몇배 힘들고 교과과정도 어려워진 것 같습니다.
입시공부를 하면서 제일 하고 싶었던 일은 대학에 들어가면 친구들과 뗏목을 만들어 타고 바다로 나가 제주도까지 가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대학에 입학하고보니 그 곳도 입시공부를 할 때 동경하였던 유토피아는 아니었습니다.
당시 70년대 말의 한국사회의 복잡한 상황에서 늘 고민하고 방황하고 이 사회에 대한 불만에 가득차 있었던 청소년기를 보낸 것 같습니다.
- 혹시 자녀분들의 청소년기는 어땠습니까?
대학생과 고등학생 두명의 아이가 있습니다.
저의 세대는 그래도 대학을 졸업하면 어느정도 장래가 보장되는 세대였는데 요즈음은 대학을 졸업하여도 취직이 안될 정도로 청년실업이 심각하니 우리 세대보다 더 어려운 공부를 하면서도 불안한 마음을 더 심한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은 소수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전국의 중고등학생이 대부분 학원공부와 사교육에 시달리는 것 같습니다.
저의 아이들도 대학생이 되어도 공부에 시달리고, 고등학생은 청소년기에 하여야 할 독서나 운동 여행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입시공부에만 매달려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 저도 고등학생 자녀를 두고 있어서
청소년에 대한 문제에 관심이 많은데요, 요즘 청소년들에 있어서
최대 고민거리가 뭐라고 보십니까?
청소년마다 개인적인 고민이 다 다르겠지만 요즘 공통적으로 보이는 청소년들의 고민거리는 장래에 대한 불안입니다.
물론 청소년기에는 이 우주 전체가 하나의 고민이 되어 다가서는데 이러한 공통적인 고민 외에 최근 두드러지고 있는 청소년의 고민은 장래에 대한 불안으로 보입니다.
학교 성적에 대한 고민도 결국은 그것이 장래에 대한 불안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증폭되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청소년도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의 교육이 유치원교육부터 고등학교 교육까지 거의 대부분이 대학입시에 맞추어져 있어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되어 있다시피 한데 그 대학을 제대로 졸업한 사람들이 청년실업에 시달리는 것을 보면서 자신의 모든 시간을 바쳐 하고 있는 공부에 대한 회의와 함께 장래에 대한 불안이 우리 청소년들의 정신을 갉아먹는 최근의 가장 큰 고민이 된 것 같습니다.
- 요즘 청소년들이 제일 필요로 하는 게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요즘 청소년들 뿐만 아니라 모든 시대의 청소년들이 제일 필요로 하는 것은 다양한 문화를 접촉하여 보는 것과 독서인데, 한국의 교육현실이 청소년들에게 그런 여유를 가지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 청소년들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서 우리 세대가 도와줘야 할 부분이 있을까요?
우리 세대가 청소년들에게 도와주어야 할 부분임과 동시에 우리나라가 고쳐야 할 부분이 잘못된 교육시스템으로 생각합니다. 특히 오로지 대학입시만을 위한 사교육에 엄청난 비용과 시간과 노력을 허비할 수밖에 없는 교육현실과 시스템은 반드시 고쳐주어야할 부분입니다.
쓸데없는 돈과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게 하면서 청소년들을 옭아매고 있는 교육현실을 개선해 주는 것이야말로 가장 크게 우리 청소년들을 도와주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느 개인이나 단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한국의 교육시스템을 보면 가슴 답답하지만 그 교육시스템은 우리나라의 경제구조, 우리의 전통적 사고방식, 기업문화 등 각 분야와 밀접하게 얽혀있기 때문에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지 알 수가 없습니다.
가장 도와주고 싶은 부분이 개인의 힘을 넘어선 곳에 있어 안타깝습니다.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교육관련자를 포함한 국민 모두가 교육시스템의 개선에 나서서 우리 청소년들에게 쓸데없는 고생없이 진정으로 인생과 생활에 도움이 되는 교육을 받을수 있고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 한국 청소년 문화재단에 계시는 동안 이루고 싶은 일이 있다면 말씀해주십시오.
지금 한국청소년문화재단에서 하고 있는 일들은 남들은 계획만 하고 꿈만 꾸던 일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일들을 바로 실천에 옮겼고 이제 일상적인 일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재정이 부족하여 하고 싶은 일이 많아도 하지 못하는 일이 많습니다. 한국청소년문화재단의 재정을 튼튼히 하여 원하는 청소년사업을 마음껏 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놓고 퇴임하고 싶습니다.
- 개인적으로 이루고 싶은 일이 있다면요?
인천은 세계에서 가장 잠재력이 높은 도시입니다. 저는 태어난 곳은 인천이 아니지만 인천이 좋아서 검사시절 3번이나 지원해서 인천에서 근무하였고, 지금은 인천 연수구에 정착하여 살고 있습니다.
이 인천 연수구를 세계적인 국제도시로 만들어 우리 청소년들에게 물려주고 싶습니다.
인천을 세계적인 국제도시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은 빈말이 아닙니다.
‘곧 다가올 우리 삶의 방식(The Way We Will Live Next)’ 이라는 부제로 에어로트로폴리스 (Aerotropolis)라는 책을 저술한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 존 카사다(John Kasarda) 교수는 도시의 발전을 역사적으로 나누어 해안항구중심단계, 철도역중심단계, 고속도로중심단계, 교외중심단계를 지나 국제공항을 중심으로 한 국제적인 메가시티인 에어로트로폴리스의 단계로 발전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에어로트로폴리스로 발전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지역은 전세계적으로 몇 군데 되지 않는데, 미국의 디트로이트와 멤피스, 아랍에미리트의 두바이, 중국의 충칭, 인도의 하이데라바드,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과 함께 인천송도국제도시를 에어로트로폴리스로 발전할 수 있는 지역으로 꼽고 있습니다.
인천사람들이 국제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제대로 하면, 인천은 순식간에 세계적인 국제도시로 발전할 수 있는 필요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는 것입니다.
인천 연수구를 세계적인 국제도시로 만들어 다음세대의 우리 청소년들에게 물려주는 것이 남은 인생동안 제가 개인적으로 이루고 싶은 일입니다.
- 나에게 있어 청소년은 OOO이다....
청소년은 우리의 다음 세대이고 진부한 표현같지만 내일의 주인입니다.
우리의 유산을 받을 것이며, 우리가 못다한 일을 이루어 낼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건강하게 성장하여야 이 나라의 미래가 있습니다.
인천시민의 한사람으로서 청소년은 미래의 자산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 개인에게 있어 청소년은 추억이고 희망입니다.
우리 세대가 해야할 일을 다하여 건강한 대한민국 부강한 대한민국을
우리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