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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성은 고려의 발상지
지금은 조선시대 이후 동이족의 주류가 서이족(지나족)에 밀리어 한반도로 축소되었지만 단군조선 이후에도 동이족은 중앙아시아와 중국본토를 차지한 역사의 주인공이었다. 이것은 단순한 민족사관에 입각해 없는사실을 과장해서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고려를 세운 왕건의 묘가 어디에 있을까! 한반도에 없고 중국 성도에 왕건 묘(영릉)가 있으며 유명한 관광지로 개발되었다. 대다수 역사학자는 촉나라 왕의 묘라 하지만 어떤 역사기록에서도 왕건이라는 왕은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고려를 세운 왕건으로 기록되어 있다. 왕건은 한주 송악사람이라고 역사는 기록한다. 그러나 한주는 황해도가 아니다. 중국 역사에서는 양자강 상류를 한주(漢州)라 부르며 그 일대를 송악으로 부른다. 그렇기 때문에 사천성 성도의 묘 주인공은 촉나라 왕건이 아닌 고려의 왕건인 것이다. 왕건이 출생한 지역이 그곳이기 때문에 역사무대는 양자강 일대인 것이다.
삼국시대 이후 고려까지 중국본토가 동이족의 무대라는 것은 한국 역사의 기록과 유적을 비교하면 중국 땅에서 일치하게 된다. 그 예를 두가지만 들어보겠다.
역사 드라마에서 재조명이 된 <왕건>드라마에서 후백제 견훤과 왕건의 나주해전이 나온다. 나주성을 침공하기 위해 임진왜란과 같은 대형전함 수십 척을 동원하여 영산강 위에서 싸운 기록이 나온다. 실제 나주와 영산강을 가본 사람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허구라는 것을 알게된다. 실제 나주성을 지나 흐르는 하천은 일반 개천과 같은 곳이기 때문에 오리 떼가 놀 수 있는 공간이지 수십 척이 전함이 해전을 벌일 공간이 나오지 않는다.
역사의 무대를 중국본토로 옮기면 정확히 들어맞는다.
사천성에는 장강삼협이 있다. 중국 최대의 하류로서 세계 3대하천인 양자강을 따라 만현, 삼협, 의창, 형주, 사시, 무한을 경유하여 구강에 이르는 코스를 말한다. 이곳은 해전이 일어나기 좋은 매복지형도 많고 강을 따라 많은 성이 존재한다. 지금도 백제성이 존재하며 백제유적이 즐비하다. 즉 양자강을 중심으로 후백제가 일어났으며 사천성 일대가 나주, 광주, 무한(무주), 해남이라는 지명이 그대로 존재한다. 역사적으로 중국은 양자강을 중심으로 하는 남조(南朝)와 황하강을 중심으로 하는 북조(北朝)로 존재하는 남북 대치상황이 역사적으로 재현되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남조선과 북조선의 준말이며 모두 조선의 역사인 것이다. 지금의 중국족은 남서쪽의 베트남과 운남성 유역변방에 세력기반을 다지는 일개 부족에 불과한 민족이다.
고려시대에 수많은 축조공사와 운하공사가 나온다. 그러나 한반도에는 고려시대 500년간 동원된 성벽이나 운하의 유적은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 중국에 존재하는 운하가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에 형성된 운하인 것이다. 삼국시대나 고려시대에 한양으로 곡물을 운반하려면 운하를 통과하는 기록이라든가 조운선의 기록이 자주 나온다. 한반도에서 전라도와 충청도의 곡물을 서울로 운송하려면 운하가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중국의 경우라면 중국 양자강 상류에서 황하강 중류까지 곡물을 운반하려면 양자강 상류에서 하류까지 운반되고 양자강 하류에서 운하를 통해 황하강 중류까지 연결되는 구조이기 때문에 가능한 역사기록인 것이다. 즉 호남성과 절강성 일대 물자를 산동성 일대까지 운반하기 위해 내륙의 운하를 통과하기도 하고 황해를 돌아 황하강 하류를 거슬러 올라가기도 한 것이다.
백제의 영역과 무대
백제라는 것은 제나라를 말한다. 이 말은 제나라의 땅을 제주라고 한다. 우리가 알고있는 제주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기록에서도 제주를 침공하는데 한번도 배를 이용해서 치지 않았으며 육상으로 가능한 것이다. 제나라의 본토는 원래 산동성 일대를 말한다. 백제는 삼면이 바다로 이루어진다고 나오는데 산동성이 삼면이 바다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원 한반도가 백제라면 신라가 동쪽에 있기 때문에 이면이 바다라고 기술되어야 한다. 그리고 여러 제나라의 중심을 백제라 한 것이며 그 중심의 영역이 산동성 북경에 존재한다. 중국 역사서에 남제-북제라는 칭호로 나오는 모든 나라는 백제의 제후국인 것이다. 제나라 이후 건설된 백제멸망 이후 백제의 장군에 의해 형성된 모든 나라는 백제에 뿌리를 두고있는 것이다.
백제의 8대 성씨는 한반도에 없다.
중국 25사와 삼국사기는 백제 대표적인 성씨를 다음과 같이 적고있다.
"백제유 대성팔씨 사씨 해씨 진씨 목씨 국씨 연씨 묘씨(혹 묘씨) 협씨"
"百濟有 大性八氏 沙氏 解氏 眞氏 木氏 國氏 燕氏 (?)씨(或 苗氏) 協氏"
백제 8대성씨 중 국(國)씨와 진(眞)씨를 제외한 6대 성씨가 한반도에는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두 성씨도 아주 희귀성씨라는 것이다. 즉 한반도에 남은 백제의 성씨는 백제유민의 일부라는 것이다. 즉 옛날은 씨족사회였으므로 백제를 지탱하고 유지하는 것은 성씨가 주축이다. 그러나 아무리 시간이 오래되었다고 하지만 지금도 김씨나 이씨처럼 남아있어야 한다. 그러나 중국 절강성이나 대만에서는 아직도 백제 8대성씨가 많이 남아있다. 그리고 8대 성씨의 유래는 모두 중국본토의 지명에서 유래되었다. 이것은 백제가 한반도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남제서 권58 동남이전 동이백제전에는 7개의 태수를 두어 지배했는데 태수의 지명 모두 한반도에는 없으며 전체가 중국 동해안 산동성에서 절강성 그리고 상해까지 산재한 지역이라는 것이다.
백제 부흥운동을 한 흑치상치는 운남성 출신이다.
역사책에서 백제가 멸망하고 백제 부흥운동이 일어나는데 그 대표적인 장군이 흑치상치라는 사람이다. 그러나 흑치상치는 한반도에 없으며 중국대륙에 존재한다. 중국인들은 백제의 명장 흑치상지(黑齒常之)를 "광동성 흠현 서북의 백제 서부인"이라 기록하고 있다.(장수전) 즉 백제서부가 광동성이라는 이야기이며 광동성 자체가 백제 땅이라는 것이다. 흑치상치가 백제 부흥운동을 주도하다가 당나라에서 활동하는데 갑자기 흑치상치가 광동성 출신이라는 것이다. 백제의 무대가 호남이라는 말은 중국 호남성 동정호이며 양자강 일대를 말한다. 즉 동정호가 유명하며 호를 따서 동정호의 남쪽을 호남이라 한 것이다. 한반도의 호남은 큰 호수의 남쪽이 아니다.
흑치라는 말은 아열대 열매를 먹으면 이빨이 검어진다. 지금의 운남성 옆 광서족이나 필리핀 남부에서 이빨이 검은 사람을 볼 수 있는데 이빨이 검게되는 열매가 자라는 지방출신이기 때문에 흑치상치인 것이다. 중국본토 자체가 동이족의 무대이며 팔도강산은 중국전체를 8방위로 나눈 것이다.
출처 : 씽크풀[세림의 상수파동클럽]
첫댓글 수긍이 가는 글 입니다.백제 강역을 한반도 서남부로 국한시키는 것은 식민 사관의 산물 입니다.우리 역사상 백제 만큼 큰 영토를 가진적은 없었습니다.
대련바다와 동해바다 어느쪽이 넓어 보이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