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을 여는 꽃들 (외 2편)
김형영
봄비 오시자
땅을 여는
저 꽃들 좀 봐요.
노란 꽃
붉은 꽃
희고 파란 꽃,
향기 머금은 작은 입들
옹알거리는 소리,
하늘과
바람과
햇볕의 숨소리를
들려주시네.
눈도 귀도 입도 닫고
온전히
그 꽃들 보려면
마음도 닫아걸어야겠지.
봄비 오시자
봄비 오시자
땅을 여는 꽃들아
어디 너 한번 품어보자.
헛것을 따라다니다*
나는 내가 누군지 모르고 산다.
내가 꽃인데
꽃을 찾아다니는가 하면,
내가 바람인데
한 발짝도 나를 떠나지 못하고
스스로 울안에 갇혀 산다.
내가 만물과 함께 주인인데
이리 기웃
저리 기웃
한평생도 모자란 듯 기웃거리다가
나를 바로 보지 못하고
나는 나를 떠나 떠돌아다닌다.
내가 나무이고
내가 꽃이고
내가 향기인데
끝내 나는 내가 누군지 모르고
헛것을 따라다니다
그만 헛것이 되어 떠돌아다닌다.
나 없는 내가 되어 떠돌아다닌다.
————
* 「열왕기 하권」17장 15절.
이런 法案
참으로 어이가 없다 보면
절로 쓴웃음이 터져 나오는데
그걸 바라보는 사람
저 표정 좀 보아요.
실없이 웃는 것 같아도
얼마나 편안해 보이는가.
보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을 보는 사람이나
모두 평화롭지 않아요.
시장 바닥 싸움판은
금방 무슨 일이 벌어질 듯 살벌하지만
누구든 바보웃음이라도 웃는 날이면
싸움판은 어느새 웃음판으로 바뀌는데,
모름지기 법을 만드는 사람들이
허구한 날 모이기만 하면 웃음은커녕
비방과 욕설, 거짓과 행패로 난장판을 만드니
보기에 민망하기 그지없지요.
도떼기시장만도 못한 그런 짓일랑
쓰레기통에 던져버리고
헛웃음일망정 한번 웃어보세요.
웃음이 안 나오면
옆 사람 웃는 걸 바라보면서
미소라도 지어보세요.
이것도 저것도 안 되면 아예 법을 제정하세요.
이를테면, 회의 시작 삼 분 동안
서로 마주 보며 웃기로 하는 법을.
지금 국사보다 시급한 건 웃음이니
잠시 웃고 나서 국사를 논의해보세요.
그 웃음의 파장이 어떤지
(물론 국민은 다 아는 일이지만)
활짝 보여주세요.
몇백 년 편싸움에 굳은 머릿속에서는
새로운 법안이 샘솟고,
그 중에서도 회의 시작 삼 분 동안
웃음꽃을 피우는 법안은
만장일치로 통과시켜보세요.
우리 국회는 말할 것도 없고
방방곡곡이 때아닌 꽃밭이 될 거예요.
나는 이 법안을 강력히 제안합니다.
(그렇다고 이 제안까지 웃음으로 넘기진 마세요.)
—시집『땅을 여는 꽃들』(2014)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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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영 / 1944년 전북 부안 출생. 1966년 《문학춘추》신인 작품 모집, 1967년 문공부 신인예술상에 각각 당선되어 등단. ‘70년대’ 동인으로 활동. 시집 『침묵의 무늬』『모기들은 혼자서도 소리를 친다』『다른 하늘이 열릴 때』『기다림이 끝나는 날에도』『새벽달처럼』『홀로 울게 하소서』『낮은 수평선』『나무 안에서』, 시선집『내가 당신을 얼마나 꿈꾸었으면』, 한영 대역 시집『In the Tree』.